로스쿨 선행학습
행인의 [입 닥치고 있는 로스쿨 지지단체들] 에 관련된 글.
왠만하면 걍 잊고 살라고 했는데, 꼭 잊을만 하면 기사가 하나씩 눈에 띈다. 겨울방학을 맞이하여...가 아니라 입학준비시즌을 맞이하여 각 대학 로스쿨이 입학대상자들을 대상으로 소위 '선행학습'을 실시하고 있단다. 기사가 떠도 꼭 이런 류의 기사가 뜬다.
어차피 입학하면 정규커리큘럼을 통해 배울 내용들을 선행학습이라는 명목으로 미리 가르치는 이유는 뭘까? 우선 가르치는 내용이 뭔가를 봐야한다. 기사를 뜯어보면 현재 선행학습을 통해 가르치는 내용은 학부 법학과 1학년생들이 배우는 '법학개론' 수준의 법학상식이다. 학부에서 법학을 전공한 학생들에게는 이미 배우고 남은 내용들이라 선행학습의 효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그렇다면 이 선행학습에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학생들은 다름 아니라 학부에서 법학 이외에 다른 전공을 수학한 학생들이다. 여기에 비록 학부에서 법학과목을 수강했다고 하더라도 장기간 현업에 종사하던 사람들이 선행학습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대상이 될 거다.
그렇다면, 왜 이들을 대상으로 사전 선행학습을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일본의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재 3회까지 시험을 치룬 바가 있는 일본 로스쿨의 합격률은 40% 수준에도 턱없이 못미치고 있다. 원래 일본이 로스쿨을 설치할 때는 합격률을 70~80%정도 수준으로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애초 예상보다 절반 수준도 안 되게 합격률이 떨어지는 데다가 결정적으로 학부 비법학 전공자들의 합격률은 30%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뭘 어떻게 되냐? 당연히 일본판본을 그대로 따라가는 거지. 각 대학들은 이게 심각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왜냐하면, 명목상 정원의 50%가 비법대 출신의 학생들이 몰려있는 상황에서 각 로스쿨의 합격률을 높이는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이들 비법대 출신 학생들의 합격률이 높아지는 것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자 각 대학은 신기묘묘한 비책을 급조하기에 이르렀고, 바로 지금처럼 아직 입학식도 치루지 않은 입학대상자들을 대상으로 '선행학습'이라는 과외를 시키게 되는 거다.
이미 이 블로그에서만 수차례 로스쿨의 문제점에 대해서 포스팅을 했더랬다. 대충 로스쿨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글만 정리를 하더라도 트랙백을 건 글을 제외하고 목록이 아래처럼 나온다.(최근 글부터 위에서 아래로)
[한국대학교육연구소] 로스쿨 등 전문대학원제도는 필패!
결국 각 대학 로스쿨이 선행학습이라도 해야 입학생은 물론 학교 스스로의 불안감을 씻을 수 있게 된 것이 아직 시작조차 하기 전의 한국 로스쿨 상황이다. 당연히 이러한 일들이 벌어질 것임은 예견했었고, 앞으로 벌어질 일들은 위에 정리된 글들 속에 충분히 정리해 놨다.
행인이 로스쿨 계에 있어서만큼은 미네르바에 필적할 예견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저런 글들을 올린 것이 아니다. 이건 밥그릇 싸움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현직 교수들과 법조인은 물론 여기에 빌어붙어 올바른 로스쿨 운운하면서 되지도 않는 시민운동씩이나 벌렸던 운동단체들 역시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거 예상 못했다면 개념없이 말빨이나 세운 또라이들이 될 것이고 예상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질러보자고 시작했다면 무책임한 인간들이 될 것이다. 어느쪽이던 행인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긴 마찬가지겠지만.
그런데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의 제시는 그닥 뾰족한 것이 없다. 최근 올라온 의견을 보면 두 가지 정도가 보이는데, 그 중 하나는 오늘자 프레시안에 실린 이호균 변호사의글이고 다른 하나는 어제 인터넷 법률신문에 올라온 사설이다.
이호균 - "로스쿨이 교육이 '고시원 방식'으로 돌아가서야..."
이호균 변호사는 별로 구체적이지 않은 형태로 "법률 서비스 수요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지만, 대학교수들과 법조인들 간의 이전투구양상을 극복하기 위해선 법률 서비스의 실제 수요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질과 양 모두를 발전시키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이미 로스쿨법이 통과되기 전에 여러 경로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했던 이야기다.
하지만 그러한 의견은 완전히 무시되었고, 실적만들기에 급급했던 참여정부는 결국 사학법 개악안과 로스쿨법안을 맞바꾸면서 "참여민주주의"의 의미를 완전히 사장시킨 채 로스쿨법을 통과시켰다. 지금 상황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 한들 이호균 변호사의 주장은 씨도 먹히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명박이만큼이나 독선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노무현은 물론이고, 이은영의원을 비롯한 탄돌이들의 충성경쟁이 과열되어 있던 그 상황에서는 그저 로스쿨법이 개판 오분 전의 상황에서 통과되는 것을 지켜보아야했을 뿐인 거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로스쿨 시행에 있어 법률수요자들의 목소리를 들어 보다 나은 방향을 찾을 방법이 있느냐 하면, 그거 역시 암담하기 이를 데가 없다. 그 이유는 이호균 변호사의 글 안에 이미 다 나와 있다. 현행 로스쿨 제도 자체가 시스템적으로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호균 변호사가 자기 글에서 줄줄이 다 정리해 놓고 있다. 물론 그 내용들은 이미 행인이 위에 정리해놓은 각 글 안에 다 해놓았던 이야기들이다.
상황이 이러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현행 로스쿨 제도의 한계 안에서는 도저히 법률 서비스 수요자의 이해관계를 반영할 수가 없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호균 교수의 의견은 걍 그랬으면 하는 이상의 발현일 뿐 현실적으로는 어떤 대안도 되지 못한다.
한편 법률신문의 사설은 보다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딱 한 줄로 정리되는 이 제안은 "로스쿨 운영에 시장원리를 과감히 도입"하자는 것이다. 법률신문 사설이 주장하는 바는 다른 것이 아니다. 정원제한 철폐하고 서울과 지방 간 나눠먹기 식으로 되어 있는 현행 로스쿨 인원배정제도를 폐지하자는 것. 왜 이렇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인식은 역시나 행인이 그동안 씨부려놨던 내용들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런데 해결 방안에 대한 인식은 완전히 다르다. 그동안 포스팅을 하면서 행인이 주장했던 방안은 다른 게 아니다. 현재 사법고시를 변호사 자격시험으로 바꾸고 상대평가를 절대평가로 바꿔서 일정한 수준에 있는 사람에게는 모두 변호자 자격을 주자는 거다. 그리고 이들이 개별적으로 실무연수를 받도록 하고, 현직 법조계가 실무연수를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면 된다. 실무연수를 위한 비용 등은 본인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본질적으로 변호사 수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는 것이 행인의 주장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행인 역시 시장논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된다. 그건 당연하다. 왜냐하면 지금 법조계는 완전독점의 형태다. 즉 제한된 정원에 들어간 일부 합격자들이 사법연수원이라는 완전 밀폐된 공간에서 획일적 법무연수를 받고 나오게 됨에 따라 바로 이 과정을 통과한 극소수의 법조인들만의 카르텔이 형성되고 이들이 법률서비스시장을 좌지우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법률서비스 독점현상을 극복하는 것이 사법개혁의 첫 단추가 된다는 것은 지금도 변함없는 신조다. 더 엄밀히 말하면 지금 법률서비스에는 일반적 의미의 시장이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법률신문의 사설이 주장하는 시장화는 전형적인 약육강식의 법칙이 적용되는 시장화다. 만일 로스쿨에 대한 현행 법률의 각종 제한을 완전히 풀어서 일본식으로 인가제를 도입할 경우 그토록 우려했던 학교서열화는 하루아침에 현실이 되버린다. 다시 말해 로스쿨 합격률이 좋을 수밖에 없는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 로스쿨은 문전성시를 이루지만 특히 지방대학의 경우에는 아예 로스쿨이라는 것이 유명무실해져 버리는 결과가 발생한다.
어차피 사법시험제도 하의 현실에서 역시 이러한 현상이 굳어져 있는 판에 그렇게 된다고 해봐야 큰 문제가 있겠느냐는 생각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로스쿨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안되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향을 고민해야할 일이지 현재의 문제를 더욱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결과가 벌어진다는 것은 묵과하기 어려운 일이다.
방법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 기왕 시작한 거 걍 끝까지 두고 보며 캐세라 세라 하는 것. 둘째, 완전히 논의를 거꾸로 돌려 로스쿨이고 뭐고 다 때려 치고 처음부터 다시 구조를 짜는 것. 당연하게도 두 번째 방법은 이제 씨도 먹히지 않는다. 원점으로 되돌리기엔 이미 들어간 돈이 너무 많다. 정부나 학교만 돈을 퍼들인 것이 아니라 지금은 로스쿨에 진학한 개개인들도 역시 비용을 투자했다. 이런 상황에서 만일 논의를 원점으로 돌린다고 하면 아마 천지개벽이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면 첫번째 방법을 고수해야 하는데, 이건 매우 무기력한 일이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왜그랬을까~하고 노래나 부르고 앉아 있는 수밖에 없다.
부득불 내놓을 수 있는 고륙책이 하나 있긴 하다. 변호사 자격시험을 이원화 하는 거다. 로스쿨 출신들과 비로스쿨 출신들이 변호사 자격시험을 볼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건데 이거 역시 당분간은(어쩌면 영원히) 받아들여지기 힘들 거다. 기껏 로스쿨 유치하느라고 박터지게 싸워 기득권을 획득한 학교들이 우선 가만 있지 않을 것이고, 변호사 수가 더 많이 늘어나게 되는 제도적 변형을 법조인들이 용납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래 저래 로스쿨은 앞으로 계륵신세를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 안에 이호균 변호사가 이야기하는 법률 서비스 수요자의 목소리는 더더욱 들어가지 못할 것이고. 그저 법정에 갈 일이 없도록 몸보신 하면서 사는 것이 장땡이 될 거다. 그런 의미에서 사이버 모욕죄에 걸리지 않도록 손꾸락 관리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는 행인이다. 흡...
변호사 자격도 운전면허처럼 발급하지... 깔끔하게...
말걸기/ 기본적인 구조는 그렇게 가야 하는 건데...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