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인권단체'의 메일

사학법과 로스쿨법을 가지고 연신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오늘 본회의에서도 아마 이 쟁점이 또 불거질 듯 보인다는데, 도대체 이 두 법안이 줄다리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완전 이해불능이다. 잘못된 법안들을 놓고 서로 딜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한나라당이 그토록 목을 매다는 사학법재개정 문제는 더 이야기할 건덕지도 없다. 웃기지도 않으니까. 기본적으로 사학을 '사적소유물'로 이해하는 자들과 논의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등록금과 정부보조금이 없으면 당장 학교를 운영할 능력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사적소유' 운운하는 것은 비웃음을 한껏 받으며 손가락질을 당해도 할 말 없는 일인데, 한국 사회에서 사학재단을 운영하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처럼 쪽팔린 줄을 모르는 철면피들이다.

 

로스쿨법안. 이거 역시 황당한 법안이다. 이 로스쿨 법안에 대해서 행인은 이미 몇 번의 포스팅을 통해 문제제기를 한 바 있다.

 

법학전문대학원 논쟁

사학법 재개정?

니 탓이오...

쏠림현상

 

현재 진행 중인 정부의 로스쿨도입추진은 참여정부의 마지막 치적을 위한 작업이다. 걸레가 되어버린 사학법은 참여정부가 보여주었던 지난 4년 간의 개혁작업이 '영삼식 개혁'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난 점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써프라이즈 같은 전형적 무현교 교도들은 증시활황이나 부동산 가격정체 등을 수치로 보여가며 참여정부의 개혁이 성공하고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나 그렇게 따지면 전두환때라고 해서 개혁이 실패했다고 할 이유가 있겠나.

 

참여정부가 한 개혁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손에 만져지는 것이 없는 마당에 마지막 남은 큰 '구찌'가 바로 사법개혁이라는 부분이다. 특히 사법개혁에서 가장 사람들에게 쉽게 인식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로스쿨이다. 사법개혁의 그 무수한 과제들 중에서, 예를 들어 공판중심주의라는 것이 도입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개혁이 되었다고 인식하지는 않는다. 그건 "당해 봐야 안다". 즉, 이전 법정에서 받았던 대접과 새로 법정에 가서 받는 대접의 차이를 느낄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확인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로스쿨은 이와 전혀 다르다. 로스쿨이 만들어지는 즉시 입시과정부터 요동을 치게 되고, 대학은 난리가 나게 되며, 그 결과 학부입학을 앞둔 수험생은 로스쿨 진학에 도움이 되는 학과를 물색하거나 학부에 입학한 이후에도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한 몸부림을 치게 된다. 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는 이 꼴을 또 봐야 되고 그 밑으로 학비 채워넣어주기 위해 등골이 휘어야 한다. 로스쿨 되는 즉시 그 '개혁'의 내용이 어떻건 간에 사회적으로 뭔가 했다, 또는 뭔가 하고 있다는 인식을 확실하게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로스쿨법안의 각론부분에서도 문제가 많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로스쿨도입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제다. 열우당의 이은영의원 같은 경우 로스쿨 도입이라는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의원이 된 것처럼 로스쿨만이 살길임을 주장하나 한국사회에서 채권법 분야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이은영교수께서 과연 뭘 믿고 미국식 로스쿨이 자신의 전공분야 발전에 일익을 담당할 것이라 자신하는지 의문이다.

 

로스쿨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는 이미 언급한 바도 있고 다른 자료들이 많이 있으므로 생략하고, 이 대목에서 행인이 가지는 또 하나의 의문.

 

새사회연대라는 '인권단체'가 있다. 이 인권단체로부터 올 3월부터 무수히 많은 이메일을 받는다. hrnet이라는 메일링리스트에 가입되어 있는데, 바로 이 메일링리스트를 이용해 새사회연대가 메일을 보내는 것이다. 그런데 새사회연대가 보내는 메일 중 상당한 수가 로스쿨 도입을 촉구하는 내용의 메일이다.

 

물론 새사회연대의 메일은 언제나 '올바른' 로스쿨 도입이라는 전제조건을 붙이고 있다. 그런데, 도대체 뭐가 '올바른' 로스쿨인가?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현재의 로스쿨 법안은 정원을 제한하고 있고, 등록금이 비쌀 수밖에 없으며, 학교 설치와 관련된 지역적 안배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부분을 해소하면서 로스쿨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언급된 문제들이 해소되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는 얘기다.

 

적어도 '인권단체'는 어떤 정치적 행위나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장래에 한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어떻게 '인권'적인 영향을 발생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로스쿨 도입에 대한 그들의 찬성요지는 결국 많은 변호사를 양성해서 전 사회의 구성원들에게 고른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인권'의 보장정도도 높아질 수 있다는 거고. 그런데, 과연 로스쿨이, '올바른' 로스쿨이 그 역할을 할 수 있나?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건가?

 

주장의 핵심을 간단하다. 싼 비용으로 양질의 변호사를 많이 양성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로스쿨처럼 고비용에 저효율의 양성과정을 새로 추가하여 사회적인 부담을 늘릴 것이 아니라 비정상적으로 변호사자격부여에 제한을 만들고 있는 현행 제도의 구조를 개선할 일이다.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 다만, 어떤 방법을 취하든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 하는 일부 변호사집단의 강력한 직역이기주의와 부딪쳐야 한다.

 

고비용 저효율구조를 거쳐 나온 전문가집단이 얼마나 그 사회에 '인권'적으로 기여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특히 법률구조적으로도 이질적인 미국식 로스쿨을 도입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심각하게 부정적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인권단체'인 새사회연대는 이 부분에 대해서 다른 인권단체들과 밀도있는 논의를 해야한다.

 

밀도있는 논의를 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새사회연대가 보내는 메일에 '올바른 로스쿨법 제정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로 나오는 연대단체에는 인권단체연석회의도 들어가 있는 듯 하다. 그러니까 hrnet 메일링리스트를 이용해 메일이 오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인권단체연석회의에 들어가 있는 무수한 인권단체들이 정말 로스쿨에 합의했나? 아니면 로스쿨이 뭔지도 잘 모르고 거기 이름만 올린 것인가?

 

한나라당과 열우당이 펼치고 있는 사학법 vs 로스쿨의 줄다리기가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와중에 어느 '인권단체'가 보여주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에 대해서는 언제고 문제를 제기해야겠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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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3 06:14 2007/07/03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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