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촛불'에서 얻은 교훈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지난달 말에 "미 쇠고기 수입반대 불법폭력시위사건" 수사백서를 발간했다. 무려 378쪽에 달하는 이 "백서"는, 2008년 일어났던 촛불집회와 관련하여 그 원인-예컨대 MBC PD수첩-에서부터 집회시위의 현상과 현재 재판 진행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자료와 활동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백서에 대한 분석이 필요하겠으나, 대충 훑어본 바로는 첫째, 아이구 대~한민국 검찰 여러분, 수고 많았어용이라는 칭찬(!)과 둘째, 이 백서가 한국 검찰의 수준을 한큐에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는 놀라운 자기고백서라는 느낌이 후딱 든다. 시간 나는 대로 이 백서가 가지고 있는 흥미진진한 면모를 소개, 분석하고픈 생각이지만 어째 그럴 시간에 다른 책 한자나 더 읽는 것이 영양가가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전형적 공무원 보고서 형식으로 만들어진 이 "백서"는 바로 그러한 편집상의 특수성 때문에 400쪽에 육박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설렁설렁 쉽게 읽혀진다. 물론 읽다가 불현듯 "백서"를 집어던져 공중제비 36회 시전을 해보고 싶은 충동이 여러번 들기는 한다. 그런 차원에서 약간의 인내심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하다.
눈에 띄는 부분은 2008년 촛불집회에 대응하면서 검찰이 얻은 "교훈" 부분이다. 이건 좀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 최고의 문제풀이 도사들이 모여 앉아 얻은 교훈은 사법고시 등 각종 고시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적지않은 합격의 비기를 알려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행인이야 뭐 이런 류의 시험과는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이므로 해당될 일이 없으나 뻥구라닷컴은 혹시 모를 수험생 신분의 방문자들을 위해 이런 서비스도 제공한다. 이게 다 공덕을 쌓는 길이다.
검찰이 얻은 교훈은 이렇다. 먼저 수사의 측면.
- 촛불시위와 같은 폭력시위 재발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폭력 우려집회를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등 집회신고와 관련된 요건을 보다 엄격히 해석하여 운영함이 상당함
- 집시법 제5조 제1항 제2호에 해당하여 불법 폭력이나 도심의 극심한 교통체증 유발이 예상되는 집회 등에 대해서는 금지통고 등을 통해 이를 사전에 적극 차단할 필요가 있음
이 부분은 집회신고를 수리하는 과정에서 원천적으로 불법폭력집회를 막아야 한다는 의지의 천명 되겠다. 일단 대~한민국 검찰의 놀라운 헌법적 마인드 혹은 인권의식을 이 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촛불시위 = 폭력시위"라는 관점. 검찰의 관점을 그대로 유지하자면, 즉 촛불시위조차 폭력시위와 동일시하는 그들의 관점에서 도대체 폭력시위가 아닌 시위는 어떤 종류가 있을까? 기본적으로 이런 시각은 집회시위 자체를 죄악시 또는 불법시하고 있는 검찰의 저열한 인식수준을 그대로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인식수준 덕에 인권의 최후보루를 운운하는 검찰의 백서에서 "폭력 우려집회를 금지"해야한다는 초헌법적 발상이 가능해진다.
"폭력 우려집회"라는 것은 누구의 기준인가? 혹시 폭력배들이 집회시위를 하겠다고 신고를 할 때를 이야기하는가? 그건 아닐 거고. 만일 집회시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행사는 그 폭력을 행사한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지 그들을 기준으로 집회시위 자체를 폭력집회라고 규정할 근거는 뭔가? 애초에 이런 근거없는 규정을 통해 경찰력을 동원할 이유를 만드는 것 자체가 폭력이라는 것에 대해 검찰은 뭐라고 항변할까?
검찰이 예를 들고 있는 집시법 제5조 제1항 제2호의 규정은 이렇게 되어 있다.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
예를 들어 "좌경용공척결집회"를 하겠다고 재향군인회 등 보수단체들이 집회신고서를 제출한다고 하자. 이들이 행동지침을 마련해 복장은 군복으로 통일, 성조기 하나씩 지참, 권총형 최루가스발사기, LPG 가스통, 쇠파이프, 일본도 등 연장을 집회 주최측에서 준비, 현장에서 인공기 및 국방위원장 인형 화형식 행사진행 등을 실행하기 위해 주도면밀하게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하자. 그렇지만 이들이 집회신고서에는 이런 내용 하나도 넣어놓지 않았다. 그런데 과거 이들이 KBS 앞이나 문화방송 앞이나 기타 장소에서 진행했던 집회에서 빼놓지 않고 준비된 연장으로 신선한 연장질을 계속 했다는 것을 경찰이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의 집회신고서는 반려되고 집회는 금지될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 조까는 소리다. 금지될 이유도 없고, 저들이 그런 짓 한다고 해서 앞으로 저들이 주최하는 집회를 "폭력 우려 집회"로 규정하여 일일이 요건심사해서 금지통고할 일도 없다. 왜? 그렇게 하는 것 자체가 위헌이고 경찰이 집행해야 할 직무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집회신고서에 집회 중 기물손괴, 방화 등을 할 예정임. 이렇게 써서 신고서 제출하는 넘들이 있나? 그렇다면 뭘 근거로 저 규정을 적용할 것인가? 대충 기분에 따라서? 니들이 점쟁이냐?
어쨌거나 그런데, 어째서 촛불집회는 "폭력시위"로 규정되어 차제에 집회의 금지나 제한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는 걸까?
검찰이 얻은 교훈은 또 있다.
- 그동안 불법 폭력집회시위에 대하여는 '해산위주'의 방어적 수세적 방식으로 대처하였음
- 그러나 ~ '검거위주'의 적극적 능동적 대처방식으로 전환하여 폭력행위자 극렬저항자 등에 대하여는 퇴로를 차단하여 현장에서 검거함을 원칙으로 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성이 있음
- 이를 위하여 검거요원 및 채증요원을 확충하고, 주요 집회장소에 채증용 CCTV를 설치하는 등 효과적인 채증방법을 도입하여 현장 및 추적검거의 실효성을 확보해야 할 것임
앞의 것이 사전 조치였다면 이것은 현장조치의 일환이다. 그런데 퍼뜩 드는 의문 한 가지는 촛불집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수세적 방식'이 뭘까 하는 거다. "명박산성"?
이순신장군 동상 앞에 컨테이너 박스를 쌓아올린 것은 방어가 아니고 공격이었다. 그래서 사실 "명박산성"이라는 용어는 사건을 희화화하는데는 효과적이었는지 몰라도 그들의 행태가 가지는 본질을 오히려 희석시킨 바가 있다. 집회시위가 시작도 하기 전에 먼저 집회시위가 이루어질 공간을 물리적으로 봉쇄해버리는 것이 어떻게 '수세적 방식'이 될 수 있을까? 이 점을 볼 때, 한국 검찰의 언어사용능력은 매우 유치한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앞으로 검찰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겐 사법시험이 아니라 한국어능력검정을 먼저 실시해야할 판이다.
아무튼 더 웃기는 건 요원확보에다가 "CCTV" 설치, 뭐 이따위 것들인데, 아무리 한국이 빽가진 넘 꼴리는 대로 CCTV 설치하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집회시위 다발지역이라는 이유로 CCTV 설치했음 좋겠다는 이야기를 검찰이 나서서 대놓고 하는 건 허경영이 지 이름 따라 불러보라고 싸이코짓 하는 거하고 다를 바가 없다.
검찰이 얻은 매우 다양한 교훈 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 불법 폭력행위자에 대한 단호한 현장조치
- 채증자료를 통한 불법 폭력시위자 추적 철저
- 상습시위꾼 추적 검거
- 신속한 사건처리로 재범 억제
- 유관기관과의 협력 협조관계 구축 및 공소유지 등 철저
어차피 법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집회시위현장이 되었든 나이트클럽 싸이키 조명 아래가 되었든 죄진 넘이 있으면 잡아서 처벌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선 뭐라고 할 말이 없다. 그런데 적어도 집회시위과정에서 발생한 불법폭력행위를 특정하여 이야기하려면, 예를 들어 "상습시위꾼 추적 검거" 같은 용어는 배울만큼 배웠고 시험성적 우수한 검찰이 할 이야기가 아니다.
더욱이 검찰이 얻은 교훈에서는 이런 대목도 등장한다.
- 불법폭력시위의 근원적 차단을 위해서는 현장 폭력시위자 외에 폭력시위를 조직적으로 주도한 주모자 주동자 등 배후세력을 철저히 규명하여 처벌하는 것이 중요함
- 따라서 현장 채증자료는 물론, 사무실 및 주거지 압수수색, 이메일, 계좌추적, 실시간 통화내역 조회 등 다양한 수사기법을 동원하여 현장 행위자와 배후세력의 연계를 밝히는 것이 필요함
그냥 니들이 안기부... 아니 국정원 해라... 아니면 국정원 밑으로 들어가 걍 그짓거리만 하던가. 이건 집회시위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폭력행위를 억제함으로써 시위가 평화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예 집회시위 자체를 꿈도 꾸지 못하게 하겠다는 발상이다.
검찰이 얻은 교훈을 실천하게 되면, "배후"의 범위는 도대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아고라에 글 올리는 아고리언들? 뻥구라닷컴에 글 올리던 행인? "상습시위꾼" 배출의 전당인 각종 시민단체, 민중운동단체는 다 그 배후가 될 것이고. 그러면 이렇게 목록에 올라가는 집단과 개인 전체에 대해서 "압수수색, 이메일, 계좌, 통화내역" 등을 죄다 추적하고?
뭐 이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검찰이 만들어낸 백서의 몇 십배 정도 되는 분량의 "검찰백서 비판백서"가 시리즈로 나와야 될 판이다. 특히 촛불집회와 관련되어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공소장을 그대로 공개한 것이나 PD수첩 관련 사항을 하나 하나 백서에 올려놓은 것, 하다못해 김모 작가의 이메일 내용까지 그대로 백서에 실어 놓은 검찰의 행태는 이게 도대체 검찰인지 뒷골목에서 흥신소 운영하는 양아친지 구분을 할 수 없을 정도다.
검찰청 CI
이 검찰청 CI에 대한 설명을 보면
- 대나무의 올곧음에서 모티브를 차용
- 직선을 병렬 배치하여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이미지
- 상단의 곡선으로 천칭저울의 받침 부분을, 중앙의 직선으로 칼을 형상화하여 균형있고 공평한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표시
- 주 색조인 청색은 합리성과 이성을 상징
- 좌측으로부터 각 직선은 공정, 진실, 정의, 인권, 청렴을 상징
그런데 이번에 발간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백서"에 따르면, 한국검찰은 "중립성과 독립성"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 보수우익단체들의 가스통 시위는 걍 개인에 대한 제한(뭐 그것도 아주 널럴한)으로 끝나지만, 여중생부터 시작해 이름모를 대중들이 참여해서 촛불을 들면 백서까지 펴내면서 다 때려잡아야겠다는 교훈을 얻는 검찰에게 존재하는 중립성과 독립성의 정체는 뭘까?
그 연장선상에서, "균형있고 공평한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과연 대~한민국 검찰들이 하고 있는지 역시 여전히 불투명하다. 이런 백서를 보더라도, 과연 이 백서를 출간한 사람들이 "균형있고 공평한 사고와 냉철한 판단"을 하고 있는 사람들인지, 걍 지들 마음에 안 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박멸해버리고 말겠다고 설치고 다니는 조폭류의 사람들인지 잘 모르겠다는 거다. 물론 이 백서를 펴낸 사람들이 최소한 시험문제를 푸는데 있어서만큼은 "냉철한 판단"을 하던 사람들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게다가 "공정, 진실, 정의, 인권, 청렴"에 관해서만큼은 최소한 이 백서를 펴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검찰 내 일부 인사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만일 이들이 "공정, 진실, 정의, 인권, 청렴"이라는 가치에 충실한 사람들이라면 아무리 정신이 나갔더라도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이런 식으로 백서발간하면서 사법부를 압박하는 짓은 하지 않는다.
그렇잖아도 용산사태와 관련해서 수사기록을 제출하지 않고 있는 검찰에 대해 그 수준을 의심하고 있는 차에, 덜컥 이렇게 누가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알아서 지 수준에 대한 평가근거를 자진납세하는 검찰을 보면서 앞으로 살기 참 팍팍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이 수사백서, 앞으로 심심할 때마다 쬐끔씩 훑어봐야겠다.
세월이 지나 우리 후대에서 권력에 붙어 기생하는 검찰에 대한 예시교재로 쓰면 좋을 책이네요.
훌륭한 교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부 많이 하신 분들이 제 얼굴에 침뱉는 짓을 이렇게 몰상식하게 하는 걸 보면 도대체 뭘 공부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 백서, 간략히 요약하자면 '관제데모이외에는 모조리 금지하는 것이 좋겠다.' 겠지요. 뭐, 썩 나쁘지는 않을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역시 한줄 정리의 끝을 보여주시는군요. ^^
간단히 검토를 했는데, 이거 피의사실 사전공포에다가 불순한 재판개입의 목적이 너무 확연히 보이더라구요. 형법공부하는 친구들에게 슬쩍 보여줬는데, 다들 기가 막혀서 말을 못하더군요... 좀 더 검토해보고 어떻게 대응이 가능한지 여부를 판단해보려구요. 신임검찰총장이 검찰수사관행을 개선하겠다고 한 게 엊그제인데, 싹수가 보이질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