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正名)운동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독수리 오형제(원제 : 과학 닌자대 갓챠맨)"라는 에니메이션 시리즈가 있었더랬다. 워쩐 연고로 인하여 이들의 이름이 독수리 오형제가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동안 수많은 기라성같은 분들의 노력을 통해 이 에니메이션 시리즈의 제목이 가지고 오류가 모두 해결되었다는 것은 경축할만한 일이다.

 

"독수리 오형제"로 잘못 붙여진 본 에니메이션 제목의 진짜 이름은

 

조류위장 4의남매 앤드 그리고 1사이보그

(본 이름이 완성되기까지의 지난한 학술적 토론과정은 생략하기로 한다)

 

물론 제목에 대하여 일부 소수설이 있는데, 소수설은 다수설과 비교할 때 "조류"라는 단어를 "잡새"라고 바꿔쓴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소수설은 단지 다수설의 아류설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잡새'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어감의 치졸함 및 자칫 "짭새"로 발음됨으로 인해 "조류위장 4의남매 앤드 그리고 1사이보그"가 가지고 있는 숭고한 지구방위임무의 수행을 한국 도심에 종종 출몰하는 "짭새"들의 행태와 혼동하게 될 우려가 있으므로 공식 다수설인 "조류위장 4의남매 앤드 그리고 1사이보그"라는 명칭이 적절하다 하겠다.

 

정확한 이름은 약간 피곤하긴 하다. 일단 "조류위장 4의남매 앤드 그리고 1사이보그"라는 긴 풀네임보다는  "독수리 오형제"가 훨씬 간단하면서도 엣지 있어 보인다. "앤드 그리고"를 "와"로 바꿔서 "조류위장 4의남매와 1사이보그"라고 바꾼다 한들, "독수리 오형제"라는 심플한 제목보다 복잡하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 일반의 상식에 관습적으로 각인되어온 "독수리 오형제"라는 제목을 "조류위장 4의남매와 1사이보그"로 바꾸는 것 역시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수반하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간에 "독수리 오형제"라는 뜬금없으면서 자기 정체성조차 흐려버리는 제목 보다는 "조류위장 4의남매와 1사이보그"라는 제목이 주인공들의 구성을 보다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할만 하다. 이토록 어떤 현상이나 사물에 붙여지는 이름이 정확하게 그 본질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느냐의 여부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우찌된 일인지 근자에 들어 이렇게 이름의 중요성을 그닥 인식하지 못하는 세태가 만연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세태를 한하며, 올바른 이름을 찾아주려는 노력을 운동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조갑제 옹이다. 갑제옹의 이런 노력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인데, 그 중요한 사례가 천성산 지키기 단식투쟁을 가열차게 벌임으로써 웬만한 단식투쟁은 명함도 못내밀게 만들어버렸던 지율스님을 '여승 지율' 혹은 '여중 지율'로 불러야 한다고 명확하게 주장했던 것이었다. 세간의 사람들이야 스님이 되었던 여승이 되었던 그게 별로 중요하지는 않은데, 어쨌든 이분은 그게 매우 중요했던 거다. 여기서 저자의 장삼이사들과 천재의 차이가 발견되는 법이다.

 

최근까지도 이분은 한글전용화를 미친 X수작 정도로 폄하하면서 한글은 한자의 '발음기호'라는 희한한 학설을 펼침으로서 한국의 언어학계 및 한글학계에 충격을 던진 바가 있다. 더욱이 이번에는 일반적으로 공식문서나 언론보도에 '일왕'으로 표기되는 일본왕에 대해 '천황'으로 표기해줘야 한다는 주장을 펼침으로서 올바른 이름에 대한 이분의 놀라운 끈기와 집착을 보여주기도 했다. 갑제옹과 더불어 근래에 이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분은 김동길 옹인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와 관련해서 "서거는 무슨 서거냐, 투신자살이지"라며 명확한 용어의 사용을 눈치없이 주장하기도 했다.

 

바로 이와 관련하여, 이분들의 사상과 활동력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살고 있는,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분들의 노익장에 기생하며 살고 있는 행인의 뻥구라닷컴은, 이분들이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으로 인하여 완성하기 어려워보이는 올바른 이름붙이기 운동, 즉 정명(正名)운동을 과감히 계승하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제대로 이름을 붙여주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위기의식이 더 깊어지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고위공직자 인선과정에서 보여졌듯이 이제 대세는 위장전입과 편법증여와 논문표절이다. 이 사람들이 일하려는 정권의 성격은 "중도실용". 위장전입이나 편법증여, 논문표절이 없는 사람들은 아예 입각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정권의 성격을 "중도실용"이라고 하는 것이 적절한지 검토해야 하겠다. 이쯤 되면, "중도실용"이라는 말보다는 "잡범우대"라는 말로 이 정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이 와중에 대법관 청문회에서 곤욕을 치루는 부군에 대해 애틋한 정을 자신의 싸이에 올렸던 박선영 자선당 대변인은 자신들의 현 입장을 '진인사대천명'이라 표현한 바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 '진인사대천명'이라는 고어는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결자해지(結者解之)'였다. 공당의 대변인씩이나 하시는 분이 용어의 용례를 몰라서 이렇게 한 것은 아니겠고, 아마도 결자해지보다는 뭉개고 뻗팅기는 것이 몸보신에 더 유리하다는 암중의 심사를 '진인사대천명'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 외에도 무수한 용어의 오용이 산재한 바, "주요하천일대 세멘 공구리질"이라고 표현하여야 할 것을 "4대강 사업"이라고 한다던가, "시장통 혼잡가중행위"를 "민생행보"라고 한다던가 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물론 문제가 제기되면 각하를 비롯하여 그 휘하 청와대 대변인, 각급 공무원들은 "오해"라고 하며 진화에 허덕거리고 있으니, 어쩌면 이 정권의 성격을 "오해"정권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더 적절한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이처럼 정권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정명운동"을 펼쳤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골로 갈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있다. 최근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가 국정원의 사찰의혹을 제기했다가 법무부장관으로부터 피소를 당한 일을 보면, 쥐뿔도 없는 행인의 입장에선 그저 입조심 손가락 조심이 장땡이 아닐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하여 만만한게 뭐라고, 제일 먼저 손가락에 걸리는 사람들은 다름아니라 영원한 뻥구라닷컴의 밥, 조갑제옹과 그 일당들이다.

 

이분들을 뭐라고 불러드려야 할까? 공식문서나 언론보도에서는 이분들을 '보수' 혹은 '우익'이라고 지칭한다. 행인 역시 편의상 이들을 간혹 보수 혹은 우익으로 뭉쳐서 부른 적도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이분들은 보수 혹은 우익으로 불러드릴 만한 뭔가가 없다. 예를 들어, 적어도 한 나라의 보수 혹은 우익이라고 하면, 자국의 존엄성이라는 가치에 함몰되면 함몰되지 그걸 부정하고 나서서 타국의 위엄에 기대는 짓은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제정신 가진 보수라면, 31절이나 광복절에 성조기 들고 광장에 나가 아메리카를 신으로 모시는 따위의 짓거리는 하지 않는다. 더 나가 일왕이라고 하건 천황이라고 하건 간에 한 때 침략자였던 자들의 수괴를(물론 지금은 그 수괴의 자손) 떠받들이는 짓은 하지 않는다.

 

더 나가, 적어도 한 사회의 보수라면, 그 사회의 관습과 가치관을 누구보다도 존중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수' 소리를 듣는 일군의 어르신네들은 오늘도 현충원 일대에 매복하면서 호시탐탐 DJ의 묘를 파훼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 최소한 한국사회에서 죽은 자의 봉분을 훼손하는 자들은 도굴꾼들 정도밖에는 없다고 할 때, 이분들은 도굴꾼도 아니면서 이짓들을 하는데 이걸 보수라고 봐야할지 그걸 잘 모르겠다. 이건 그냥 노망에 준할 정도로 개념을 상실했다고 보는 편이 더 나을 거다.

 

자, 이분들을 지칭할 명확한 이름이 필요하다. 꼴통이라는 용어가 있긴 하나 이 용어는 그 어감 상 공식문서나 언론에서 사용하기가 좀 껄끄럽다. 마찬가지로 개념상실분자나 혹은 망개념분자 같은 용어는 어째 급조된 티가 팍팍 나므로 쓰기가 곤란하다. 반동분자나 맹동분자 같은 용어는 수령님과 국방위원장님의 일파들이 쓰는 용어의 냄세가 나서 아마 남한 사회에서 자리잡기는 좀 어려울 듯 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하루 속히 진행해야 할 일이다. 이분들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붙여드리는 것. 그것이 후대로서의 책임이기도 하거니와 이분들의 행위가 적절한 의미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 최선의 길이기도 하리라. 공모전이라도 해야할 판이다. 1등 1000원, 2등 500원 건다.

 

"조류위장 4의남매와 1사이보그"라는 훌륭한 이름을 학술적으로 규명해 낸 이 땅의 '다중지성'들의 놀라운 활약이 다시금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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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7 13:59 2009/09/17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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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9/09/17 21:52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들리는 말에 의하면 검찰이 유죄협상제도(플리바게닝:Plea Bargainingㆍ범죄 사실을 시인하는 대신 형량을 낮춰주는 제도)를 검토했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도 효율적인 수사를 위한 경제성에 기준을 두다 보니 그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만일 저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까? 그러면서 힘에 의한 협박으로 죄를 인정하게 되고 파렴치범이..

    • Tracked from
    • At 2009/09/18 17:04

    행인의 [정명(正名)운동이라도 해야 할 판인데] 에 별 관련은 없으나 곁들여 생각해볼 만한 거랄까 간만에 열폭한 관계로 잠시 블로깅을 멈추리라 생각했건만, 오지게 살떨리는 몇 개의 보도를 보고나니 손가락이 지 쏠리는 대로 키보드를 달리려 한다. 이것도 병이면 병이겠지만, 새삼 의문스러운 것은 도대체 상식이라는 넘은 어디로 출장을 갔기에 대~한민국 땅에서 대면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것일까? 우선 눈길을 끌었던 기사는 이거다.

  1. 20세기말 나우누리 유머게시판에서 '독수리 오형제'의 명칭을 둘러싼 기나긴 논쟁과 토론을 기억하는 1인.

    • ㅋㅋㅋ
      정말 "기나긴 논쟁과 토론"이었는데...
      그러고 보니 그 과정을 다시 세상에 알려보는 것도 재밌을 듯 싶으오. ㅎㅎ

  2. 통쾌합니다. 그리고 공감합니다.

  3.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미치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미치시면 아니되옵니다... 항간에 "조류위장 4의남매와 1사이보그"에 대해 이들이 사실 남매관계가 아니라 조직서열관계라는 설도 있음을 아울러 알려드립니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