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쌍한 넘들

# 1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던 넘덜이 있었더랬다. 세 넘이 자취를 했는데, 개인정보보호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는 행인이니만큼 각각 ㅇ, ㅅ, ㅈ이라는 이니셜로 실명을 감추기로 하겠다. 나중에 뻥구라닷컴에서 본인여부를 확인했을 때, 내용상 문제가 있다거나 과거를 그대로 묻고 싶다면 이멜 보내기 바란다. 물론 이멜 보낸다고 해서 한 번 올리 뻥구라를 내리거나 수정하지는 않는다. 정황을 추가할 수는 있을 거다. 각설하고...

 

암튼 이넘덜이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이넘덜 중 ㅅ과 ㅈ에 얽힌 슬프고도 애처러운 에피소드 한 자락. 언젠가 이넘들이 수중에 땡전 한 푼 없는 관계로 며칠 밥도 먹지 못한 일이 있었다. 통장잔고는 더하고 뺄 것도 없이 0원. 주머니 탈탈 털어봐야 먼지만 폴폴 날릴 뿐이고. 그러나 깡다구로 뭉친 싸나휘들이었던 이 두 넘은 곧죽어도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 얹을 수는 없다는 개꼬장 근성을 발휘하여 걍 굶고 있었더란다. 마빡에 "動卽損"이라고 써 붙이지는 않았으나, 움직이면 배고픈 법. 그렇게 며칠을 자취방 구석에서 가만히 누운채 보내고 있었더랬다.

 

그러나 뱃속에 들어 앉은 껄뱅이의 곡소리가 천정이 무너져 내릴 정도로 커져가던 어느날, 견디다 못한 두 넘, 결국 자리를 털고 일어나 SOS를 때리러 밖으로 나왔다. 나오긴 했는데, 지까짓 것들이 SOS 때려봐야 별수 없이 가족장학금 신청이나 할 수밖에 없는 상황. ㅈ이 용기를 내어 집에 전화를 했단다. 대충 돈 떨어져 전화했으리라 감잡은 엄니가 "용돈 보내주랴?"라고 물었으나, 오기와 깡으로 단식까지 단행했던 존심이 있다보니, "뭐 꼭 용돈이 필요해서 그런 건 아니지만 여유 있으시면 만원만 보내주십사 "하고 거만하게 청구를 했단다.

 

아들의 완고함에 수긍하신 건지 어쩐지 몰라도, 엄니는 알뜰하게 달랑 만원을 통장에 넣어주셨다. 그런데 그만 통장입금을 하면서 수수료를 따로 부담하지 않으시고 보내는 만원에서 수수료를 떼어내셨다네? 돈을 부쳐주셨으리라는 희망에 불타 자동출금기를 향한 이 두 청춘. 잔고 확인을 해보니 몇 백원이 모자란 만원이라...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결국 어찌어찌하여 돈 천원을 구해 무통장 입금을 한 후 다시 자동출금기에서 만원을 뽑았단다.

 

며칠 굶은 뒤끝에 손에 쥔 돈 만원이 너무나 감지덕지 한지라, 어떤 넘에게는 껌값도 안 되는 돈일지 모르나 오늘 이 순간만큼은 이 만원으로 정승처럼 먹어보세~! 라는 불굴의 호기가 발동. 만원 범위 내에서 가장 걸판지게 먹어제낄 수 있는 종목을 찾아 먹이를 쫓는 늑대의 눈빛으로 주변을 훑던 그들 앞에 떡 하니 나타난 것은, 당시 한참 유행을 타던 "피자뷔페"...

 

옳다꾸나 이거로세, "피자뷔페"로 달려들어간 두 넘, 어지간히 고팠던 형편인지라 뱃가죽이 넘실거릴 정도로 퍼자신 게, 둘이 합쳐 대짜 4판인지 5판인지를 처먹고 춘향이 곤장치며 생일상 받아먹던 변학도마냥 꺽꺽 거리고 나왔는데... 아뿔싸... 며칠 굶은 빈 속에 그 느끼한 것을 한 두 쪼가리도 아니고 몇 판씩을 처넣고 나왔으니 위장과 창자가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 결국 둘 중 한 넘이 가게 입구에서 울렁거리며 치밀어 오르는 그 무엇을 참지 못하고 도로 입으로 꺼내 아스팔트 바닥에 피자를 부쳤단다. 그걸 쳐다보고 있던 다른 한 넘 역시 지 개성껏 피자 한 판을 옆에다가 퍼질르게 되었고.

 

결국 위장에서 잘 섞인 재료를 입으로 분출하여 중력낙하를 이용한 포스트모던 피자를 길바닥에다 제작한 두 넘은 허기짐을 달랜 값으로 찾아온 피로감에 지쳐 다시 자취방에서 퍼질러져 버렸다는...

 

 

# 2

 

쥐뿔도 없으려니와 궁상의 극치를 달리고 있던 이 세 넘의 자취방 말 그대로 가난한 자의 아픔이 물씬 풍겨나오는 분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지만이 살 길이라는 신념 하나로 굳게 뭉친 이 세 넘은 집구석에 TV와 비디오데크를 준비해 두고 있었더랬다.

 

오지게 추웠던 어느 겨울 날. 갑자기 비디오 한 판이 급히 때리고 싶어졌던 행인, 비디오샵에 들려 비디오 테잎 하나를 빌려 이넘들 집으로 향했다. 워낙 추웠던지라 급히 이넘들 자취방을 들어갔는데...

 

자취방 실내 기온이 바깥 기온과 같은 상태. ㅅ과 ㅈ 두 넘이 덜덜 거리며 옹송옹송 모여 앉아 있었더랬다. "방이 왜 이리 추워?"라는 질문에 이 슬픈 자취생들의 대답은 기름이 떨어져서 보일러를 돌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 보일러가 터지면 어쩌나 싶었는데, 어차피 없는 살림에 복불복이라는 체념만이 방안의 한기에 얹혀 유령처럼 술렁였다. 더 얘기해봤자 아픔만 커질 것이라는 생각에 얼른 비디오나 보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테잎을 돌렸다.

 

잠시후 밖에서 얼근히 취한 ㅇ이 들어왔다. 이넘 취해서 먼저 자야겠다고 하면서 이불을 둘둘 말고 드러누웠는데, 문제는 그 방에 이불이 달랑 그거 한 채밖에 없었다는 거. 워낙에 이넘들이 죄다 촌놈들이었는데, 다들 아시다시피 촌놈들의 이불에 대한 집착은 땅부자들이 위장전입에 목숨거는 것 만큼이나 집요한 것이어서, 그넘의 이불이라곤 손바닥만큼도 뺏어내기가 힘든 상황이 되었던 것이었다.

 

콧털에 고드름이 매달릴 정도로 덜덜 떨다가 결국 비디오고 나발이고 이러다간 강시가 되겠거니 생각이 들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자취방으로 돌아오려 하는데, 덜덜 떨면서 잠들기를 기다리는 ㅅ과 ㅈ이 너무 애처로워 걍 오늘 내 자취방에 가서 자자고 했더니만, 역시나 똘기충천한 존심으로 굳게 뭉친 이 넋빠진 싸나휘들이, 이렇게 둘이 붙어 자면 견딜만하다면서 혼자 가란다. 사실 그건 추위가 견딜만 해서라기보다는 방구석 밖으로 몸을 움직이기 싫다는 극단의 귀차니즘이었으나 싸나휘의 자존심이란 것은 그렇게 포장되는 법이다.

 

결국 머나먼 남쪽나라에서 유학온 두 넘이 모진 서울의 한파를 온 몸으로 견디며 사시나무 떨듯이 덜덜거리고 있는 것을 뒤로 하고 행인은 따땃한 행인의 자취방에 가서 잘 잤다. 다행히도 그넘들은 그 혹한의 시간을 견뎌 내고 강시신세를 면한 채 십여년이 지난 지금 알아서 잘 먹고들 산다.

 

 

# 3

 

갑자기 이넘들의 일들이 생각난 이유는 별 게 아니다. 연구실에서 자는데 새벽에 얼어 뒈지는 줄 알았다... 일교차가 심하다고는 하나 추위를 별로 타지 않는 행인의 입장에서 그저 뭐 별 탈 없으리라 생각했었는데, 오늘 새벽녘에 그만 추위로 인해 잠을 잘 수 없는 지경에 빠졌다는 거 아닌가.

 

그래서 결국 오늘 낮에 학교 근처 마트에서 이불 한 채를 샀다. 이 밤은 아마도 어제보단 덜 춥게 지낼 수 있으리라. 그 때 그넘들 자취방에 기름이라도 한 통 넣어줄 걸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베어오는 하루였다.

 

생각해보면 그 땐 그넘들이 불쌍한 넘들이었는데, 오늘 이 궁상을 맞이하고 보니 정작 불쌍한 넘은 행인이 아닌가 싶다. 이거 뭐 후원회라도 조직해야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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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17 23:41 2009/09/17 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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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ㅇㅅㅈ.. 설마 MBC 아나운서였어요 행인? 컭..ㅋㅋㅋ

    • 흠... mbc 아나운서 중에 ㅇㅅㅈ이 누군지 잘 모르겠네용. ㅜㅜ
      암튼 참 불쌍한 넘들이었어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