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청교육대 부활론

고향의 어떤 분의 이야기. 울 종손형님이 "형님"이라고 하니 항렬로 따지면 행인에게도 형님뻘 되시겠지만, 실제 나이로 따지면 형님이라고 하기엔 좀 뻘쭘하고 "아재"정도로 불러야 할만한 연배의 그 분은 삼청교육대를 "탈출"했던 과거가 있다. 한 십년 전 쯤 들었던 그분의 구전에 따르면.

 

이분이 하루는 읍내 나가서 친구들과 술을 잘 마시고 얼근히 취해 있었는데, 어쩌다가 주변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과 싸움이 붙었다. 치고 박고 했는지까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엎치락 뒤치락까지는 했던 듯 싶고, 누가 신고를 했는지는 몰라도 경찰이 출동을 해서 지서로 끌려가게 되었다. 지서 유치장에 들어가 씨끈벌떡 하고 있었는데, 술이 점점 깨면서 좀 묘한 기분이 들더라나.

 

우째 싸움을 하다 붙들려 왔는데, 조서 쓰자는 경찰넘 하나도 없고, 같이 싸웠던 넘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도 않고, 엔간해서는 텅텅 비어있기 일쑤인 시골 깡촌 지서 유치장에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좀 많았더란다. 뭐 워낙 하찮은 사건인지라 대충 하룻밤 재우고 내보낼라나다보다 생각하고 있는데, 새벽녘에 지서가 웅성웅성 하더니 갑자기 군바리들이 들이닥치더란다.

 

술도 덜 깬 상황에서 무슨 일이 났나 하고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유치장 문이 열리면서 들이닥친 군인들이 유치장 안에 있던 사람들을 죄다 끌고 밖으로 나갔다. 이게 왠일인가 하고 뻘쭘이 서있다가 뒤통수 후드려 맞고 전투화발에 채이면서 덩달아 끌려 나갔더니 군용트럭이 있었고, 무장한 군인들의 인솔을 받으며 그 트럭에 올라 타야 했다. 그리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트럭에 실려 이동을 했다고 한다.

 

공포의 시간이 흐른 후 걷혀진 포장 밖으로 끌려 내려왔을 때는 거기가 어딘지도 모르는 산골짜기의 한 병영. 연병장에 늘어서자마자 갑자기 군인들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후려 치고 정신없이 두드려 맞았단다. 그러다가 누더기 같은 유격복 한벌씩을 주면서 연병장 한복판에서 옷을 갈아 입힌 후, 차례대로 끌려가 머리를 깎이고, 그 와중에 대기자들은 계속 구르고.

 

며칠을 그렇게 흘러 갔단다. 매우 추울 때였다고 하는데, 숙소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잠은 모포 한장 덮은 채 연병장에서 자야 했단다. 성질같아서는 한 놈 패고 튀고 싶었지만 실탄 장전되어 있는 총구가 계속 자신들을 가리키고 있는 상황에선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더라나...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자신이 지금 삼청교육대에 끌려 와 있다는 것. 그리고 또 들리는 말로는 살아서 돌아가기 힘들다는 것.

 

아재가 이야기를 해줄 때는 웃어가면서 마치 흘러간 옛이야기 하듯 썰을 풀어 나갔지만,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를 뿐만 아니라 자신이 그곳에 끌려갔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상기될 때마다 이러다가 죽는 거 아니냐는 공포가 엄습했다고 한다. 정말 그랬을 거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열심히 하면 일찍 보내준다는 둥, 여기 수용된 사람들 중 일부는 조만간 다른 곳으로 옮겨 간다는 둥의 이야기를 교관 비스무리한 넘들이 이야기를 해줬다는데 도통 귀에도 들어오지 않더란다.

 

어쨌든 그러다가 하루는 밤에 연병장에서 덜덜 떨며 자고 있는데, 날이 추워 도저히 잠이 들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빨이 왈그랑 달그랑 부딪치며 온 몸이 요동을 치고 있어 눈도 감기 힘든 상황이었단다. 그런데 마침 이 아재 옆으로 경비병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고 한다. 연병장을 비추고 있는 라이트때문에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이 경비병이 다름 아니라 동네 후배였던 거다.

 

너무나 반가운 마음에 "야, 아무개야~!"하고 이름을 부르며 아는 척을 했단다. 경비병이 얼굴을 돌려 이 아재를 확인하더니 갑자기 당황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이 개쉐끼가 안 처자고 뭐하는 거야?" 뭐 어쩌구 욕을 하면서 개머리판으로 내려 치고 전투화발로 내리 누르더란다. 저항의 의지마저 사라진 아재가 뒹굴면서 피하는데, 이 후배가 몸을 숙여 머리를 굽히면서 나즈막한 소리로 속삭였다. "형, 그냥 지금은 조용히 있어요. 있다 새벽에 다시 올테니까."

 

그러더니 다시 일어나며 또 몇 차례 밟는 시늉을 하더란다. "니들 같은 쉑기들 때문에 내가 좆뺑이를 치잖아~!" 이러면서. 맞는 와중에도 이 아재는 아, 이넘이 뭔가 수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란다. 그래서 그냥 쥐죽은 듯이 다시 자리로 돌아가 모포를 뒤집어 쓰고 덜덜 떨면서 밤을 버티고 있었단다.

 

새벽녘이 되었을 때, 진짜 그 후배가 돌아왔다. 그리고는 보퉁인지 뭔지 암튼 뭐를 주면서 연병장 어느 쪽으로 나가면 개구멍이 있고, 그 개구멍을 나가 어느 쪽으로 쌔가 빠지게 뛰다보면 큰 도로가 나오는데, 거기까지 가서 옷을 갈아입고 아무 차나 타고 고향으로 튀라고 알려주더란다. 지금밖에는 시간이 없으니 빨리 튀라고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겨를이 없이 후배가 알려준 대로 개구멍을 찾아낸 후, 도대체 길이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를 산길을 밤이 새도록 뛰고 또 뛰었단다. 해가 뜬 후에는 혹시라도 들킬까봐 최대한 몸을 숨기고 있다가 날이 어둑해질 무렵부터 또 뛰고 뛰었단다. 그러다가 용케 큰 도로를 발견했고, 거기서 보퉁이에 싸인 사복을 꺼내 입었는데, 기지바지에 하얀색 남방인지 와이셔츠인지가 있더라고.

 

날은 추운데 달랑 그렇게만 옷을 입고 있으니 또 오한이 들어 힘은 힘대로 들었지만, 살아야된다는 욕망은 그런 것쯤은 문제가 안 되는 거였다. 어딘지도 모르는 길을 따라 한참을 걷고 있는데 자동차 불빛이 보였단다. 그래서 손을 흔들고 탔는데 그 산골에 왠 택시가 있더라고. 아무튼 불문곡직 택시를 잡아타고 고향앞으로 출발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세월이 세월인지라 택시기사가 계속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통에 좌불안석.

 

그런데 계속 웃옷의 옷깃이 뻗뻗한 게 자꾸 목에 걸려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뒤집어보니 그 후배가 어떻게 구했는지 돈까지 꼬깃꼬깃 숨겨놓아 주었더란다. 아무튼 살려고 그렇게 된 일인지 모르겠으되 택시를 타고 고향 근처까지 왔고, 택시비는 그 돈으로 해결하고 거기서 또 여차저차 고향 집까지 돌아오긴 했는데.

 

이 아재가 얼마나 겁에 질렸는지, 집에 들어가 부모님께 자신이 집에 왔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헛간인지 어딘지에 꽁꽁 숨어서 거진 1년을 문 밖에도 나오지 않고 숨어 살았단다. 밥은 날 새기 전이나 해지고 난 후에 몰래 받아 먹고 똥오줌은 요강으로 해결하고...

 

1980년 9월 9일자로 발표된, 당시 계엄사령관 이희성 명의의 담화문을 보면, 8월 4일부터 진행한 사회정화활동의 일환으로 불과 한 달만에 3만 7천명이 넘는 "폭력, 사기, 밀수, 마약사범 등 각종 사회적 독소"들을 소탕했고, 그 중 "선도 가능한 2만 3천 7백 14명"을 삼청교육대로 보냈다. 이 담화문 상으로 보면 그 때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던 고향의 아재는 "폭력, 사기, 밀수, 마약사범 등 각종 사회적 독소" 중 한 명이어야 했는데, 행인이 알기로 행인보다 띠동갑 정도 윗길인 그 아재가 한 일이라곤 취중에 옆 테이블 손님과 멱살잡이 한 것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계엄사령관 이희성은 담화문에서 삼청교육대를 두고 "우리 군은 그동안 이들에게 육체적 훈련과 정신교육을 병행, 자성과 사회질서 유지를 습성화할 수 있도록 ... 헌신적으로 지도한 결과 귀향한 대부분의 퇴소자들은 자기의 죄과를 진심으로 참회하고 새시대 새국가 건설에 모범된 국민의 한 사람이 되어 적극적 참여할 것을 다짐하는 등 솔선수범하는 생활자세를 보이고 있어 이를 본 주민들은 삼청교육이야말로 사회정의구현을 위한 첫 단계 사업이라고 금번 조치에 크게 찬사를 보내고 있"다면서 자화자찬을 했다.

 

그리고 덧붙여 "새역사의 여명기를 맞이하여 국민 여러분께서는 정직한 사람이 정당한 댓가를 받을 수 있고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지금의 사회정화사업이 새시대 건설의 정신 혁명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 있으시기를 바랍니다"라는 명문장을 남겨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발작적 집착을 보이고 있는 이명박 정권의 집권 여당 한나라당에선, 당의 최고위원이라는 자가 "제2의 삼청교육대 보완" 운운하는 대가리 총맞은 소리를 공공연하게 떠벌리고 있다. 지들의 정신적 유전자가 누구로부터 유래하는지를 너무나 명확하게 보여주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개판으로 치닫는 정치판일지라도 상도의라는 것이 있다. 아직도 삼청교육대의 피해자들이 그 고통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따위 소리를 하는 것은 망발도 이만저만한 망발이 아니다. 이 발언을 한 허태열은 아마 좀 억울할지 모르겠다. 자신의 발언 취지는 조폭들이 만연하면서 토호세력과 연계해 토착비리를 자행하고 있으니 이를 해결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었지 결코 예전같은 식의 삼청교육대를 부활하자는 것이 아니었다고 항변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렇게 따지면, 실제 토호세력과 결착되어 이권사업에 개입하고 때로는 물리력까지 동원하여 이익을 추구하고 있는 일부 관변단체들부터 정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실상은 오히려 이 정권이 바로 그들에게 지원금까지 덤으로 넘겨주면서 덩치를 키워주고 있다. 허태열은 이런 상황을 몰라서 이런 소리를 하는 걸까? 조폭이 문제면 검경에게 시민단체들 뒤나 쫓아다니지 말고 조폭들 검거나 성실히 하라고 하면 될 일이다. 허태열은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거다.

 

피해자들이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도 이따위 소리를 할 정도면 얘네들 앞으로 어디까지 나갈지 알 수가 없다. 그래, 좋다, 까이꺼 삼청교육대 다시 만들자. 만들어서 우선 토호세력과 유착되어 갖은 전횡을 일삼고 있는 관변단체들 구성원부터 거기 보내도록 하자. 그리고 말이 되는 소린지 아닌지 분간도 하지 못한 채 입에서 나오는 대로 떠들어대는 니들부터 다녀오도록 하자. 일단 니들이 죽도로 주어터지고 쌔가 빠지게 굴르고 나서 용케 살아 돌아온 다음에 이걸 범 사회적으로 확장할지 부터 한 번 따져보자.

 

29만원짜리 인생의 정신적 적자들은 오늘도 딱 29만원짜리 인생의 그것과 똑같은 수준의 사고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대통령 이명박이 아무리 국격을 높이자고 성화를 부려도, 집권여당 최고위원의 인식수준이 29만원짜리 정도일진데, 국격의 상승은 공염불에 불과하다. 국민소득 40000불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는 욱일승천의 대~한민국 수준이 이정도라는 건 꼴불견도 여간 꼴불견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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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07 20:50 2009/10/07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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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지금도 독일 노인네들중에는 나치가 유능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답니다. 그때는 폭력배들이 없어서 밤에 안심하고 길거리를 활보할 수 있었대요. 살인마는 라디오연설이나 하는데 잡범들만 고생이군여..

    • 어느 때나 고생은 잡범들이 합니다. ㅎㅎ

    • 뭐에요? 그럼 이놈의 세상은 법도 없고 정의도 없단 말에요? 사람을 한 명만 죽여도 당연히 처벌을 받는데 사람을 다섯명이나 죽여놓고서 처벌을 받지않는다는게 말이 돼요. 올해 가기전에 반드시 빵에 처넣읍시다.

    • 음.. 명바기하고 조갑제하고 자본가 몇명때문에 삼청교육대 고민 좀해봐야되는거 아닌가모르겠네요. 삼성 이시키들은 자기들밖에 몰라. 완전 왕자들의 집합체야. 제가 너무 사악한가요?

    • 니네들 먹여살리느라 고달프다. 앞으로도 먹여살려줄테니 정신교육 좀 받으면 안되겠니. 차카게살아라~~~

  2. 아 무섭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