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언과 사기
법학이 뒷북의 학문이라면 경제학은 예언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고나 할까.
암튼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강단에서 쏟아져 나오는 경제학적 언설들과 현실의 괴리감이라는 것을 진하게 체감했던 입장에서, 경제학은 무척 어려운 학문분야인 것 같다.
그건 뭐 기본적으로 수치와 도표가 나오는 순간 뇌활동이 정지해버리는 행인의 단순무식한 두뇌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만. 그래도 어떡하랴. 잡고 있는 어떤 주제가 그쪽과 연관되어있다보니 분초를 다투며 굳어버리는 뇌를 다독여가며 들여다볼 수밖에.
신 자유주의적 관점의 경제학자들의 글을 읽다보면 언제나 갑갑해지는 것 중 하나는 그들이 동원하는 논리구조, 즉 "만일 ~하다면 ~할 것이다"라는 if~then의 문장구조에서 언제나 그 "만일"이라는 가정이 초현실적이라는 것. 예컨대 "만일 완전경쟁시장이라면"이라는 전제는 어느 정도 현실가능성이 있다는 걸까?
이걸 잘 아는 신자유주의자들은 거기에 다시 "만일"이라는 전제 위의 전제를 또 동원하게 된다. "만일 모든 정보가 투명하게 만인에게 공개되어 있다면"이라던가 "만일 정부의 규제가 완전히 사라진다면"이라던가 하는 것. 그런데 이것 역시 초월적 상상계에 속하는 가정이라는 것은 그들 역시 잘 아는 것이고.
따라서 이런 논리구조를 따라가다보면 그들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탈출구를 확실하게 열어놓게 된다. 현실에서 그들의 논리가 전혀 정합성을 띠고 있지 않고 있음이 밝혀지는 순간, 그들은 유유하게 전제의 실현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의 결론이 현실과 괴리될 수밖에 없다는 '학문적' 변명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전제라는 것이 4차원의 영역이기때문에 3차원의 현실세계에선 언제나 영원한 지향으로만 남는다는 것.
2006년에 작고한 미국 경제학자 갤브레이스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혹은 시장지상주의적 경제학자들의 논리를 '사기(fraud)'라고 규정한다. 이들은 경제상황, 정치적 관계, 국제적 충돌 등은 물론 학문적 용어조차도 자신들의 사기행각을 위해 변형하고 왜곡한다. 갤브레이스의 관점에서는, 예를 들어 이들이 '자본주의'라는 체제 정식화를 위한 용어를 '시장'이라는 용어로 바꾼다거나, 노동 대신 '일'이라는 중립적 용어를 선호하고, '소비자주권' 같은 용어를 만들어 내는 것 역시 사기행위를 위한 일종의 작업이라고 비판한다.
갤브레이스가 인용한 어떤 구절, 즉 케인즈가 어떤 여인의 묘비에서 인용한 글은 '일'이라는 단어를 이용한 극명한 사기행각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나의 죽음을 슬퍼 말아요, 벗이여
나를 위해 울지 말아요, 절대로
난 이제 아무 일도 하지 않을 테니까
영원히 언제까지나" - 45쪽
갤브레이스의 짧은 에세이들보다는 더 자세하게 이들의 사기행각을 다룬 책은 장하준의 신간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다. 장하준의 장점은, 그의 이전 책들도 마찬가지지만, 아주 어려울 수 있는 이야기를 매우 쉽게 풀어낸다는 점이다.
사실 그전의 책들(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도 마찬가지지만, 이번에도 장하준은 자신의 책을 통해서 뭔가 새로운 학설을 만들거나 이론적으로 복잡한 체계를 소개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처럼 혼미해진 상황이 왜 발생했는가를 생각하는데는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
물론 장하준이 들고 있는 사례들 중에는 견해를 달리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예컨대 한국에서 왜 이과 고등학생들의 상당수가 의대를 진학하려 하는가와 같은 문제는 그 원인에 있어서 경제학적 고려 대신 다른 차원의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런 부분을 제외하고, 이번 신간에서 주목할만한 것은 결론 부분인데, "세계 경제 재건을 위한 시스템 재설계의 8가지 원칙"이라는 거창한 목적의 제안이다.
거창한 목적의식과는 달리 그다지 새로워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건 아마도 장하준이 제시하는 8가지 원칙이 신자유주의를 반대해왔던 사람들이 그동안 제시해왔던 대안들과 유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자본주의의 건전성 회복을 목적으로하는 장하준의 의도와는 달리 자본주의체제 자체를 극복하고자 하는 관점에서는 식상해보일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간에, 이 두 책은 적어도 지금 현실의 자본주의, 즉 그동안 득세했던 시장지상주의적 신자유주의체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유사한 견지에서, 베르나르 마리스가 쓴 두 권의 책, 즉 "무용지물 경제학"과 "케인즈는 왜 프로이트를 숭배했을까?"도 같이 놓고 볼만하다.
여기 언급한 4권의 책들은 모두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즉 소위 주류경제학자들, 더 정확히 말하면 신자유주의자들의 견해가 사실은 불량한 예언이며 일종의 사기라는 것.
경제학에는 거의 조예가 없는 입장에서, 이들의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골머리 싸매고 들여다봤던 미제스, 하이에크, 프리드먼, 뷰캐넌, 노직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맞는 것인지를 명확하게 가를만한 주제는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이론이든, 그 이론이 아무리 위대한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한들 현실에 발 디디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공상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양측의 이야기를 제대로 대조하고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좀 만들어보고 싶다는 욕심이 계속 솟구친다.
그런데 여기서 언급했던 경제학의 이야기들은 딱 두 부류다. 하나는 완전한 자본주의체제의 이상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좀 더 현실적이고 따뜻한 자본주의를 만들어보자는 논리. 따라서 자본주의체제 자체의 극복을 이야기하는 또다른 경제학의 입장은 다른 경로를 통해 확인해야 한다.
아놔... 기껏 읽은 책들 정리하려고 했더만 갈길이 멀다는 것만 확인하게 되누나...
주류 경제학자들의 논법에 한 가지 덧붙이면, 사실 이들이 그런 '진공상태'를 현실에서 만들어 간다는 게 더 정확한 것 같구요. 실제 경제학 교수들이 관료로도 많이 진출하고, 관료를 많이 양성하기도 하고, 정부기관에서 교육도 뻔질나게 하잖아요. 뿐만아니라, 각종 금융경제 정책에 관여하고 있고요. 일선 기업뿐만 아니라, 전경련이나 삼성, 엘지 등의 민간 연구소와 자본가 단체들, 국책 연구소, 일간지와 경제지, 주간지 등에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포진하고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이들은 이런 연합 세력 내에서 위치하고 있는 있는 셈이죠. 따라서 경제학은 경세학이고, 세상을 경영하다가 실패하면 편리하게도 아카데미로 후퇴하는 방법도 터득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하면 100점 맞을 수 있는데, 니가 제대로 안해서 그래, 라는 좀 웃긴 논리?
저분들은 사람들의 두뇌속을 "진공상태"로 만들죠.
논문 언제 다 쓰실려고 이러케 헤매신당가? 나야 조치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만일 ~한다면, ~할 것이다“는 이만저만한 사기가 아니죠. 뻔한 거짓말을 하면 순진한 맛이라도 있는데, 이 사람들은 오직 자연법칙에서만 가능한 „if ~ then" 논리를 찬탈하여 자기들이 마치 무슨 자연법칙과 같은 엄연한 법칙을 이야기하는 양 행세하죠. 자연법칙에서 이야기하는 „if~ then“은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논리로서 과거 if이하 요건이 완전히(!) 주어진 상황에서 then이하의 결과가 나타났기 때문에 앞으로 if이하 요건이 주어지면 then이하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인데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이런 과거는 완전히 사상하고 거꾸로 미래에서 과거로 가려고 하지요. 그래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은 사실 지들이 미래를 이미 살았다는 것인데 이건 이만저만한 사기가 아니죠.
논문은... ㅠㅠ
미래를 먼저 살고 과거를 예언하는 것이 저분들의 습성이라 현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어차피 자기들 먹고 사는 건 아무 문제가 없으니까요.
뜬금없지만 저는 하준씨도 케인즈도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이.
신자유주의(?) 개네들 전에 주류가 케인즈 계열이잖아요.
그냥 말은 그럴싸 해도 결과적으로 경제학으로 지들 값어치 높이고
어떻게 하면 포장하고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는 것 밖에 없다고 하면 너무 시크한가요? ㅋㅋ
예전에 케인즈 전기 쓰신 분이 케인즈 하신 말씀중에
신자유주의자들이 케인즈가 동성애자라고 깠는데
사실 케인즈는 부인과도 잘 살았다는 변호(?)가 생각나네요.
그놈의 신자유주의자들은 경제만 (위너를 위한) 자유주의자인가 ㅋㅋ
의외로 케인즈가 나치들에게 호의적이었나 암튼
무슨 이유였는지 케인즈주의의 부정적인 면들이
나치의 경제체제와 유사하다는 비판도 있었는데
이에 대한 언급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는듯 싶네요.
아니면 신자유주의자들도 지들도 찔려서 그런가...
뜬금없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봅니다. 장하준의 책을 조선일보가 대대적으로 홍보해주는 현상은 일정한 맥락이 있는 거죠. 경제적인 측면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장하준의 논의틀은 박통추종자들에게도 훌륭하게 이용될 수 있는 내용이 그득하니까요.
장하준의 글은 뒤집어놓고 보면 신자유주의자들 입장에서도 똑같은 논리로 반박할 수 있을 거에요. 한국의 계획경제에 대한 일정한 옹호는 반대로 그 계획경제의 끝에 밝혀진 총체적 부실이라는 것을 살짝 감추고 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