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현수막
말썽 많았던 "쥐20"이 끝났다. 사건은 우습게 종결되었고, 그 우스움은 사회적으로 공유되었으며, 어쩌면 진중했어야 할 사건은 그래서 한없이 희화화 된다. 허무함마저 감도는 희화화의 끝이 새로운 도전의 전기로 전환될지 아니면 한 때의 웃음거리로 남아 술안주로 전락할지 그건 모르겠다.
"쥐20" 기간 중에 일어났던 기가 막힌 일들이 많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역사적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한 일들이 몇 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이거.
교정에 걸려있던 이 두 현수막은 현실공간에 작동하고 있는 어떤 위화감을 그대로 드러낸다. "쥐20" 행사가 끝나자마자 자취를 감춘 두 현수막이지만, 이건 그대로 기록할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이 현수막들이 그냥 웃음거리가 아니라 가슴 한 켠에 먹먹함으로 남게 되는 건, 이 현수막들이 걸려있던 시기의 오묘함 때문이기도 하다. 11월 12일까지 교정에 걸려있던 이 현수막들은 11월 13일에 사라졌다.
11월 13일. 오늘은 바로 40년 전 청계천 어름에서 어떤 재단사가 제 몸을 사른 날이다. 그 재단사의 일기 한 구석에 남겨졌던 작은 소망 하나는 "대학생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오늘 그 재단사가 저 현수막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가을 하늘이 슬프도록 시리다.
행인님의 [어떤 현수막] 에 관련된 글. 무엇을 기대하는가. 만약에 누군가가, '난 아나키즘이 제일 좋다' 라든가, '난 전태일이 내 우상이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이 설령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아나키즘이나 전태일이라 할지라도, 저 표현의 추종적이고 맹목적 늬앙스때문에 매우 불편해할 것이다. 하물며, '의장국은 T.O.P'라는 저 현수막을 쓴 자들에게 무엇을 더 말하리요. 이 자본의 현실 속에서, 대학이라는 공간만은 순결하고도 비판적인 엄숙한 공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