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첫 걸음은
대(통령)박(근혜)의 기자회견은 한국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재난’적 상황의 근저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별도의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대박의 사고방식은 부친의 그것을 계승한다. 기자회견의 주된 요지는 “알아서들 하(기)세요”였다. 내 말 들으면 소통이고 내 말 안 들으면 패주겠다는 원칙론도 여전하다. 어쨌든 여러 주제에 대해 대(통령)박(근혜)은 많은 말을 했고, 이에 어떻게 대응해 나갈 것인지는 앞으로의 숙제가 되겠다.
서로 믿지도 못하면서 '대박'은 무슨...
뭐니 뭐니 해도 이번 대박 기자회견의 하이라이트는 “통일은 대박”이었다. 통일은 대(통령)박(근혜)이 하겠다는 굳은 의지의 표명이라고 보인다. 그 ‘대박’이라는 단어 하나를 고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궁금하진 않다. 하지만 그 대박이 어떤 경로를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을지에 대해선 아직도 모호하다. 마치 창조경제가 뭔지 모호한 것처럼. 내용에 대한 비판은 평론가들이 많이 지적하고 있으니 패스하자.
1월 1일 북조선의 샛별대장이 발표한 신년사에도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신년사를 글자크기 10포인트로 A4용지 6장을 빽빽하게 채워 넣은 이 백두혈통 3대 군왕의 패기가 읽는 사람 신경질 나게 하지만 건성건성 박수치다간 목이 열 개라도 모자란 상황의 심각성을 인식하며 경외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읽어야 했다. 긴장도를 최고도로 올리고 읽어봤지만 김정은 역시 이렇다하게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안을 제시하진 않고 있다.
남과 북이 태양의 자손들로 권좌를 채우고 있는 현실이다. 북은 태양 수령의 손자, 남은 태양 유신의 적자. 이 따끈한 남북대치의 상황에서 ‘대박’이 도래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건 역시나 신뢰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언급했을 때 결론은 그거다. “개기지 마라!” 남과 북은 이렇게 통한다. 괜히 하나의 민족, 하나의 조국이나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니다. “알아서들 하(기)세요”와 “개기지 마라!”는 건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어쨌든 남북의 수장들이 서로 이따위 이야기를 늘어놓고서는 정작 상대방을 향해서는 믿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신뢰. 남한은 김정은의 신년사를 믿을 수 없다고 하고 북조는 남한의 괴뢰들을 믿을 수 없다고 한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신뢰를 쌓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대박’의 신화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서로 믿지 못하는 이유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으로 미루어볼 때, 당분간은 남이나 북이나 서로를 신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는 대단히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건 양측에 공히 책임이 있다. 우선 북조를 보면, 이 동네의 허세정치는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번 김정은 신년사에서도 강조된 ‘마식령속도’는 이렇게 그 실체를 드러낸다.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지만 북조선의 뽀샵 수준은 그들의 허세정치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인터넷 매체인 자주민보에 따르면 북조는 이미 UFO까지 개발해서 미제와 그 괴뢰들을 벌벌 떨게 하고 있다는데, 이 뽀샵은 그마저도 의심스럽게 만든다. 적어도 국제사회에서 공인된 줄기세포 뽀샵수준은 바라지 않더라도 최소한 일베의 짤방 정도 퀄리티는 보여줘야 그나마 믿을 만할 것이다. 뽀샵을 이따위로 해놓고 ‘마식령속도’ 운운하면서 남한에게 “개기지 마라!”고 하는 건 그냥 자위(masturbation)일 뿐이다. 이러니 남한이 북조에 대해 신뢰를 보내기가 어렵다.
남한이라고 크게 다를 거 없다. 사실 현재 남한사회에서 최고 대박은 ‘종북’이다. 어떤 사안이든 현 정권에 불리하거나 기분 나쁜 모든 것에는 ‘종북’이라는 표식을 붙이는 것으로 만사가 해결된다. 이들 종북만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즉 종북이 없으면 생존의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종종북’이 활개를 친다. 드디어는 밥값 깎아주지 않으면 종북이 되는 시대가 도래 했다. 종북일소가 창조경제의 핵심이 되는 요사한 세태에서 남한의 어떤 국회의원은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고 어떤 정당은 위헌정당으로 낙인찍혀 해산청구를 당하고 있다. 이렇게 모든 부정적인 문제를 북한과 연관 짓는 남한에 대해 북조선이 신뢰를 보낼 수가 없다.
신뢰의 회복을 위해 필수적인 것은 상대방을 서로 아는 것이다. 국정원의 댓글러들만 북조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남한의 인민은 북조에 대해, 북조의 인민은 남한에 대해 서로 알아야 하는 거다. 그래야 상호 간에 오해와 감정이 발생하지 않게 되고, 음모론 때문에 갑론을박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서로를 알게 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고 이것이 신뢰구축의 첫 걸음이 될 터이다.
신뢰의 회복이 먼저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북한에 대고 이야기해봐야 거기까지 목소리가 전해지지도 않을 것이고, 행여 전해지게 된다면 국가보안법 상 회합통신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으니 그건 생략하자. 다만 소통의 대가인 대박에게 한 가지 권할만한 것이 있다. 아무 조건 없이 북한 방송과 언론매체, 인터넷을 개방하자. 이건 전적으로 남한의 민중들이 북조에 대해서 알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북조 사이트에 접속하려 하면 불법 · 유해 정보(사이트)에 대한 차단 안내라는 화면이 뜬다. 뭔가 무시무시하고 보면 안 되는 그런 것이 있는 듯 하다. 북조의 사이트에 접속하는 행위는 “안보위해행위”에 해당된다. 그들의 사이트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종북’ 행위가 된다. 그런데 이래가지고는 북조의 실정이 어떤지 남한의 민중은 알 도리가 없다. 알 도리가 없다보니 국정원 덧글러들이 싸지른 덧글이나 조선일보 같은 극우 신문들이 소설을 쓴 것만 보면서 북조에 대해 상상하는 걸로 만족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막아놔 봐야 그다지 쓸모도 없는데, 어차피 보고 싶은 사람, 봐야 할 사람들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북조 사이트를 보고야 만다. 오히려 이렇게 막아놓고 있는 동안 북조에 대한 정보가 왜곡되면서 ‘종북’이 늘어나게 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냥 다 풀어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면 남한의 민중은 이런 화면을 접할 수 있게 된다.
자, 제 정신 박힌 남한의 민중들이 북조 언론의 저런 글과 사진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역시 위대한 샛별대장님은 나이 서른도 되지 않았는데 백두혈통만의 천재성으로 위대한 스승의 반열에 오르셨구나, 이렇게 생각하며 가이없는 존경심에 눈물을 뚝뚝 흘릴까? 아니면 수령님을 빼다 박은 모습을 보면서 위수김동의 추억을 간직하게 될까?
자, 이 기사를 보면서 남한의 민중들은 어떻게 북조를 받아들일 것인가? 지금 저 사람들 농사지으러 가는 건데, 저 모습을 보면서 지상낙원의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까? 그뿐만이 아니다. 저들 사이트에 교양자료로 떠 있는 각종 문건들을 남한의 민중들이 읽으면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 역시 북조의 수령님은 민족의 태양이셨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될까?
물론 독특한 거 수집하는 사람들도 있고, 컬트에 목매다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한 사람들이라면 아마 북한의 공식 사이트들을 보면서 조갑제닷컴이나 일베를 연상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조갑제닷컴이나 일베보다도 이 사이트들이 더 영향력을 끼칠 가능성은 장담하건데, 없다. 아마도 자주민보 수준의 관심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뭐가 문제가 될까?
그냥 풀 건 다 풀자
오히려 막혀 있음으로 해서 환상은 유포된다. 북한 사이트들 죄 둘러봐도 UFO 이야기 같은 건 아예 없을 뿐만 아니라 눈썰미가 없는 사람이 보더라도 북한이 그런 비장의 기술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고 이해할만한 어떤 행간의 정보도 없다. 그런데 이렇게 막아놓고 있다보니 자주민보 같은 곳에서 북한이 이미 70년대에 미제의 방공망을 뒤흔들었으며 UFO를 가지고 있다는 구라를 치게 된다.
그리고 이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는 자들을 국정원 덧글러나 검찰 등 수사기관은 국가보안법을 동원해 두드려 팬다. 결국 맞은 자들은 졸지에 국가보안법이라는 희대의 악법에 당한 피해자가 되고 진실을 이야기하다가 권력에 의해 탄압받는 지사가 된다. 두들겨 팬 자들은 국가안보를 위해 혼신의 열정을 다 바친 애국자가 되고. 한 백 년 후쯤, 역사가들은 이러한 현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게 될 것이다. 개 코미디.
백지장처럼 순결한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좋지 않은 것을 아예 보여주지 않는 것이 상책이라는 발상은 전형적인 국가후견주의다. 그러나 이러한 류의 후견주의가 가져오는 결과가 무엇인지는 붓다가 출가한 사건을 통해 역사적 검증이 끝난 바 있다. 오히려 이런 식의 국가후견주의는 본질적으로 주권자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다. 민주공화국 체제의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국가가 장악한 채 내놓지 않고 있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러한 교만함으로 인해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저 헌법의 규정은 휴지조각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말인데, 남북 간 신뢰를 회복하고자 한다면, 북조가 어떻게 하든 간에 남한이 먼저 북한 방송과 인터넷을 개방하는 것이 좋겠다. 북조의 인민들에게는 아직 어떻게 수를 쓰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남한의 민중들에게만은 북조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 낫다. 천국을 바라는 신앙이 가능한 것은 그 천국을 실제로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조에 대한 환상은 그곳을 제대로 들여다 볼 기회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종북척결 하는데 아까운 돈과 시간을 들일 것 없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것부터 해보는 것이 어떨까? ‘대박’을 터뜨리기 위한 준비로 이것만큼 쉬운 것이 없다고 보이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