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팔이'는 이제 그만
대중의 공포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것은 매우 흔한 수법이다. 불안감을 자극해서 판매효과를 극대화하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약장수 건강보조식품 판매업체와 정치인이다. 약장수와 정치인은 이런 점에서 비슷한 경향을 보인다. "그냥 놔두면 병 난다"고 하는 약장수와 "쟤네 찍으면 난리난다"는 정치인의 발언은 문장의 구성과 그 함의가 일맥상통한다.
여기에 덧붙여 약을 파는 업종 중에 언론이 있다. 대표적으로 조선일보같은 경우인데, 이 신문은 언제나 독자들에게 공포심을 안겨줌으로써 자신들의 명맥을 유지한다. 사실 한국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인 종북이 이 조선일보인데, 이 이상한 신문은 북한이 있음으로 인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정도다. 조선일보는 자신들의 지면을 통해 북한이 언제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것처럼 최악의 극빈국임을 강조하다가도, 북한이 한 번 마음 먹으면 조선일보 본사 건물이 가루가 될 것처럼 '약을 판다.' 북한이 언제 남한을 선사시대 이전의 상태로 되돌릴지 모른다는 언술을 주문처럼 반복한다.
조선일보만이 아니다. 이번엔 한겨레다. 1월 13일 한겨레의 성한용 선임기자는 칼럼을 통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전멸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성 기자가 부르르 떨며 다 죽는다고 이야기하는 '야권'은 어떤 의미에서 야권일까? 그 기준은 달랑 하나뿐인데, 간판이 "새누리당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새누리당 빼고 다 모여라"가 결론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여야 할 이유 역시 하나 뿐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새누리당이 한국 땅을 다 먹어버린다는 것.
그런데 여기서 "야권"은 누군가? 야권이라고 하면 어디까지를 이야기하는가? 성 기자의 논지에 따르면 민주당 - 안철수 신당은 물론 '진보정당'까지 포함된다. 뭉뚱그려 '진보정당'이라고 하지만 여기에는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통진당이 모두 들어 있을 것이다. 성 기자의 야권재편 그림은 결국 '민주당-안철수 신당-노동당-녹색당-정의당-통진당'으로 진용을 드러낸다.
물론, 현 정권의 '비정상성'이 어떤 사회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정권의 거수기인 새누리당이 정치를 어떻게 희화화하는지는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그리고 이들에게 계속해서 힘이 실린다면, 즉 선거에서 이들이 이긴다면 앞으로 무슨 문제가 일어날지 예측하기 어렵진 않다. 하지만 성 기자의 우려는 전형적인 '공포팔이'다. 그리고 그 공포팔이의 필연적 귀결은 민주당 중심의 야권 재구성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성 기자가 제시하는 민주당 중심의 야권 재구성은 당일 김한길 민주당 대표가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불통과 무능의 정치가 계속되고, 민생과 민주주의가 파탄날 것”이라고 엄포를 놓는 것과 묘하게 맥을 같이 한다. 특히 김 대표는 "야권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면 국민의 뜻에 따라 판단하겠다"고 하며 야권연대에 대한 여지를 열었다. 한겨레와 민주당이 사전에 교감을 했는지, 아니면 성 기자와 김 대표가 입을 맞출 정도로 막역한 사이인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한결같은 '공포팔이'의 방향이 결과적으로는 민주당에 힘 실어주기 정도로 나타난다. 그럴바에는 차라리 좀 세게 이야기해서 새누리당 말고 다른 정당들은 다 합치라고 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성 기자의 칼럼은 아무리 뜯어봐도 딱 그 수준의 이야기 이외에는 정리될 것이 없다. 그렇게 되면 야권연대니 뭐니 하는 구차한 소리는 더 하지 않아도 될 터이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정치의 발전은커녕 현실정치를 고착시키는 선에서 머물고 말 것이다. 성 기자는 야권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민주당이 2006년의 참패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이라고 전제를 다는데, 이것은 '야권'이라는 단어의 집합적 의미와는 상관없이 그의 관점이 오로지 민주당에 국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달리 말해 성 기자에게 민주당 이외의 다른 '야권'은 민주당의 승리를 위한 건강보조식품 정도의 의미밖에 없는 것이다.
성 기자가 새누리당에 비해 야권의 대응이 안이하다고 질타하지만 내가 볼 때는 성 기자의 관점은 안이하다못해 한심할 지경이다. 그가 혹시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이후 정치발전을 위한 정계재편의 그림이라도 제시했다면 혹시 모르겠다. 그러나 이렇게 당면 선거를 눈 앞에 두고 민주당 수혈론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는 논리를 펼치는 것 외에 어떤 다른 그림을 그릴 역량이 그에게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차피 연대나 연합이라는 것은 그 바닥에서 놀고 있는 동종업계 인사들이 가장 잘 알고 잘 한다. 지금 민주당과 안철수의 그룹, 정의당이 선거연대에 대해 일정하게 회피하고 있을지라도 결국 때가 되면 어떻게 해서든 이합집산이 벌어지게 되어 있다. 특히 지방선거의 특수성에 비추어볼 때, 중앙의 방침이라는 것이 지역의 특성을 무조건 배제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출마자의 숫자만 보더라도 총선이나 대선과는 비할 바가 없이 많기 때문에 지역별로 선거에 대한 합종연횡은 이어질 것이다. 성 기자가 대놓고 우려하지 않더라도 정치인들이 할 건 다 한다.
문제는 성 기자가 이야기하는 이런 류의 야권연대라는 것이 한국사회의 정치를 어떻게 왜곡해왔는지에 대한 반성과 비판을 전제하고 나오는 것이냐이다. 예를 들어 성 기자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민주노동당-진보신당의 선거연대가 한나라당에게 승리했으니 그 전례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바로 그 선거 이후, 한국사회의 진보정당들이 어떻게 붕괴되었는지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이 없다. 그리고 더더욱이나 그렇게 승리한 민주당이 이후 새누리당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행보를 보여왔단느 것에 대해서도 함구한다.
이런 전례가 어디 한두 번인가? 87년 이래 지금까지 대선과 총선과 지선을 경유하면서, 야권연대니 선거연합이니 혹은 전략적 투표니 후보단일화니 하는 미명 아래 "될 놈 밀어주자"는 분위기 띄우면서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저쪽 진영이 승리하면 다 죽는다고 엄살을 피워왔다. 그래서 그 결과는 뭔가? 한겨레의 살림살이 좀 나아졌는가? 오히려 그 와중에 실낱같은 희망을 키우면서 진보정치의 새 장을 열려고 했던 수많은 시도는 번번히 꺾이고 말았다.
지금 진보정당이라고 분류되는 정당이 4개나 되지만 그 존재감 자체가 사라진 형편이다. 물론 가장 중요한 원인은 자생력을 키우지 못한 제 정당들의 한계때문이다. 하지만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어떠한 방법도 보수정당들은 용인하지 않으며 그 중 한 정당이 바로 민주당이다. 게다가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진 않았지만, 보수정치권 언저리에서 이삭줍기에 한정된 정치행보를 '새정치'라고 포장하는 안철수 신당이나 민주당과 진보정당이 어떤 이념적 및 정책적 측면에서 연대나 연합을 할 수 있을까? 오로지 세력분점에 한정된 선에서만 얽히고설킬 수 있을 뿐인데 그것이 과연 새누리당에 대응할 수 있는 뭔가를 만드는 과정으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인가?
선거연대를 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거 아니면 저거라고 단정하는 순간 정치는 소멸될 뿐이다. 정치는 어떠한 가능성이라도 열어놓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 기자가 해라 마라 할 필요도 없이 할 때 되면 하고 못할 것 같으면 안 하는 게 정치의 흐름이다. 새누리당의 전횡을 막기 위해 야권이 연대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성 기자의 전망이 여전히 안이한 '공포팔이'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아쉬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