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유
'아프리카 박물관' 노예착취 건에 대해 논평을 냈는데, 많이 서글퍼진다.
'노예'라는 말이 이렇게 인구에 회자되는 오늘이 과연 어떤 시댄지 분간이 되지 않아서이다. '염전노예' 문제가 일어난지 불과 며칠 되지 않았다.
특정지역을 여기에 결부시키면서 쓰레기같은 말을 뱉어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렇게 언론에 드러난 '노예'들에 반응하는가? 모르고 있다가 알게 되어서?
아니 그보다는 멀찍이 떨어져 욕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감이 유지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상 내 주변에서 벌어지는 혹독한 '노예'의 현실들에 대해 우린 얼마나 민감한가?
신새벽부터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리어카를 끌며 폐지를 줍고 있는 노인들은 '노예'의 삶과 크게 다를까? 말도 되지 않는 정리해고를 당해 24명의 동료와 가족이 죽어가는 동안 길바닥에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노동자들의 처지는 과연 얼마나 달랐을까?
그들의 삶에 우리는 얼마나 분노하며 들고 일어났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사회적 공분'이라는 것이 어떤 특정한 사건에서는 폭발하지만 일상의 경우에는 일어나지 않는 듯 하다. 그 특정함이라는 것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가 욕지거리 하는 이상의 책임을 지지 않아도 별 상관 없을 정도일 때 발생하는 듯 싶기도 하고.
나 또한 그렇게, 내 손에 닿지 않는 곳의 문제에 대해서만 분노하고 욕지거리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많이 슬프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상태가 이제 습관이 되어 버린 것 같기도 하죠. 너무 어려워요. 언제나.
2주동안 슬픔과 화남과 또 다른 뭔가 빠진 느낌이 있었는데 이거였네요.
사방에서 슬프고 화나는 일이 있는데 알려지지도 못하는 일이 정작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