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KE와 NICE
국민...이 아니라 초등학교 고학년때였는지, 아니면 중딩 입학하고 난 후였는지 몰겠다만은, 암튼 그 때 '메이커'의 붐이 일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5일장에서 사다주신 흰고무신이 검정고무신보다 훨씬 그럴싸하게 대접받는다는 거밖에 몰랐던 주제에 '메이커'라는 건 아예 개념 자체가 머리속에 들어올 계제가 없었던 때였다.
운동화라고는 기차표와 말표가 경험의 전부였고, 그나마도 커가는 발 사이즈는 무시한 채 얼마나 오래 신을 수 있느냐가 선택의 기준이었던 탓에, 고무 밑창에 뽕밖은 수준에 불과한 축구화가 가장 화려한 선택이었던 듯 하다.
까놓고 이야기하자면, 아마도 부모님께 물건의 상표를 가지고 칭얼거리지 않을 수 있었던 유일한 이유는 그런 상표가 있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이었으리라. "모르는 게 약"이라는 고래의 명언은 그래서 명언이었는지 모르겠다.
암튼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잘살고 못사는 것에 따른 구분을 친구들 간에 두지 않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 순간, 주변에 삼삼오오 듣도 보도 못한 '메이커'라는 것을 신고 입고 다니는 친구들이 늘어났더랬다.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무수한 메이커 중에 얼마나 살아남고 얼마나 도태되었는지는 모르겠으되, 지금껏 기억나는 건 Nike라는 메이컨데, 이게 어찌나 유행이었는지 그 메이커 신발 신고 온 놈은 선망의 대상이 되거나, 어느날 그넘의 신발이 깜쪽같이 사라졌고, 또는 어딘가에서 뽀려온 그 메이커 신발과 땀복을 입은 넘이 '절도죄'의 혐의로 끌려가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것.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야릇한 도안의 신발이나 옷을 입고 온 애들이 쥐뿔도 아니면서 다른 애들에게 관심받는 것이 영 거시기하던 때였다. 어차피 그래봤자 피죽먹기도 벅찬 집구석이라 메이커 사달라는 말 한 마디 못하고 그냥 버텼는데, 부모 입장에선 오히려 그게 더 서글펐던지 어느날 뭐 메이커라고 하나 신발을 사오셨더랬다.
그 신발의 도안은 Nike와 유사했으나 매끈해야 할 유선형의 도안에 까닭없는 뿔다구가 하나 솟아있었고, 영문표기는 Nike가 아닌 Nice였다... 없으니만 못한 신발을, 그래도 새 신발이라고 신고 갔다가 애들에게 개망신을 당한 후 상했던 자존심은 한 세대가 훌쩍 넘어가는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개쪽의 기억으로 살아 남아 있다.
참화라고밖에는 할 수 없는 세월호 침몰 사건을 다룬 기사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가장 가슴아팠던 기사는 "다른 아이들은 메이커이름을 부르며 애들을 찾는데, 우리 아이는 돈이 없어 메이커 하나 입히지 못해 찾을 수 없을까봐..."라고 했던 어느 어머니의 말이었다.
밥인지 커핀지를 입에 넣고 있다가 그 기사를 보곤 그만 다 쏟아놓고 말았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아니면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온 위액인지 모르겠지만, 한참 동안을 그 시고 쓰린 기운을 버티지 못하고 내내 꺽꺽 거리고 말았다.
격하게 공감합니다. 저는 사실 나이스인지 니스인지도 안 신었는데.. 짝퉁에 정조를 팔지 않은 것이지요 ㅋㅋㅋ 암튼 저도 저 얘기를 어디선가 읽고 꺽꺽거리며 한동안 하늘을 봤네요... 남 얘기 같지 않고 그래서 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