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로전을 기대하며
1월 12일, 민주당의 박기춘 사무총장이 기초선거 정당공천제 폐지 공약을 새누리당이 이행하지 않으면 공천비리를 폭로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주 훌륭하다. 폭로, 그거 괜찮은 아이디어다.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이 그동안 정당공천제를 폐지하라고 목청을 높였던 것이 아주 터무니없는 일은 아니었다. 사실 기초의원 공천과정에서 불거진 보수정당들의 문제점은 상당히 심각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역구 국회의원이 입김을 넣어 자기 사람 내려 꽂기, 줄세우기 등 공천에 악영향을 끼치고, 이후 기초의원은 지역구 국회의원의 총알받이가 되거나 행동대장이 되어 활동하고, 이 과정에서 지역정치는 실종되는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물론 경실련 등 시민단체들은 정당에게 뺏기 지역의 맹주자리를 되찾고픈 욕망을 감추지 않는다. 공공연하게 주민이 만든 후보 운운하는 것은 결국 자기들이 지역에서 정당노릇을 하겠다는 거다. 정당노릇은 하고 싶지만 정당 만들 능력은 안 되고, 또는 정당의 권리는 누리고 싶지만 정당의 책임은 지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길을 찾고 있다. 매우 비겁한 일이지만 그것도 뭐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정당은 다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의 경우 지방정치를 망조가 들게 만든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 하지만 그 정치적 책임이라는 걸 이들 보수정당들은 회피하고 싶다. 그러자니 핑계거리를 찾아야 하고 마침 적절하게 나타난 핑계거리가 바로 정당공천제였던 거다. 그래서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개나소나 너나나나 할 것 없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겠다고 악다구니를 썼다.
하지만 그게 쉽질 않다. 지금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 내놓은 어떤 안도 위헌이다. 입법부의 일원인 국회의원들은 자신들의 법이 헌법구조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알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지금 이 사람들은 헌법이고 뭐고 그저 자신들의 계산기에 어떤 변수를 집어넣어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을까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급기야 정당공천제 폐지를 하지 않으면 그동안 너희들이 저질렀던 더러운 짓들을 남김없이 까발리겠다는 협박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정치활동은 협박이 아니라 장려되어야 할 사항이라고 본다. 네거티브 정치활동이 정치혐오를 일으키는 요인이라고 흔히들 이야기하지만, 사실 네거티브가 없이 무슨 상호비판과 견제가 가능한지 잘 모르겠다.
더구나 이건 그냥 단순히 네거티브가 아니다. 그동안 후보공천과 관련된 온갖 비리를 유권자들이 다 알 수 있게 하는 것은 아주 아주 훌륭한 일이다. 오히려 만시지탄의 감이 없지 않은데, 왜 이런 훌륭한 작업을 정치인들이 그동안 하지 않았는지 오히려 궁금할 지경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박 총장이 어떠한 외압에도 흔들리지 말고 새누리당의 공천비리를 낱낱이 까주기 바란다. 정당공천제 폐지를 한다고 하던 안 한다고 하던 관계없이 말이다. 가차없는 폭로로 새누리당의 문제점을 남김 없이 유권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해주기 바란다.
더불어 새누리당 역시 다른 당들의 공천비리나 기초의회 및 기초단체에서 저지른 비리 등을 알뜰하게 까발려주면 좋겠다. 그래서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서로 얼마나 더 많이 비리를 저질렀는지, 누가 더 큰 문제를 저질렀는지 유권자들이 죄다 알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될 경우 유권자들은 정당공천제가 문제가 아니라 이들 정당들이 문제였다는 사실을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향후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한 중차대한 계기이다.
물론 박 총장은 물론이려니와 민주당이나 새누리당이 상호 비리를 폭로하는 흥겨운 싸움을 전개하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어차피 까봐야 한 쪽만 다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치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사건의 전개가 일어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다만 그 와중에 유권자들만 호구가 된다. 박 총장의 발언은 그 자체로 이미 정당공천이 아니라 정당이 문제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자세한 내막을 지들끼리만 알고 있고 유권자는 모른다. 그리고 지들끼리 덮어버리고 유권자들을 호도한다. 이래 저래 힘없는 유권자들은 또다시 보수정당끼리의 장난질만 바라보고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