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쓰는 게 답이다.
전력요금 누진제와 관련한 여러 공방이 오가는 속에 당이 누진제 폐지라는 뜬금포를 날려서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는 사건이 벌어졌다. 비판이 쇄도하자 ‘폐지’라는 단어를 은근슬쩍 ‘재조정’이라는 단어로 바꿔치기 하고는 시침을 떼고 있다. 과거에 당에서 나왔던 각종 정책을 조금만 일별했더라도 이런 쪽팔림은 면할 수 있었을 터다. 하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대변인 명의로 언론을 비평씩이나 하고 있는 이 자가당착이 당분간은 지속될 것이므로.
다만 이번 논란의 와중에 조금은 생각할 필요가 있는 몇 가지 주제가 보인다. 우선 누진제를 조정하자는 입장에서 제기되는 주요한 이유 중 하나가 ‘세상이 변했다’는 거다. 잔가지 쳐내고 그 고갱이만 좀 보자면, 이 말인즉슨 과거와 달리 전기를 사용하는 여건이 바뀌었으니 요금제도 변경해야 한다는 것. 쉽게 이야기하자면, 지금의 요금제가 만들어지던 옛날에는 없었지만 이제는 집집마다 전기밥솥은 기본이고, 에어컨 켜고, 김치냉장고 돌리고, 가스렌지 대신 인덕션으로 요리하고, 전자렌지며 전기오븐이며 온갖 가전제품이 늘어나서 전기사용이 많아졌으므로 이에 부응해야 한다는 논리가 되겠다.
이건 전형적인 개발논리이다. 이 논리대로라면, 향후 더 많은 가정용 전기제품이 보급되는 것에 맞추어 더 많은 전력이 사용될 것이고 그때마다 전기요금을 더 낮추는 것으로 귀결된다. 전기소비가 계속 늘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이런 논리는 앞으로도 더 많은 전기를 사용해야만 한다는 것이 당연시되는 논리다. 전력효율이 높은 제품을 만들어내고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율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전력사용이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를 맞추려면 화석에너지나 핵에너지에 대한 의존율을 낮추긴 어렵다.
반대편에서는 전기사용을 기본권의 측면에서 접근해서 개별적 적정사용량을 기본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런데 이건 정책적 측면에서 기준을 어디에 맞추어야 하는가라는 매우 골치 아픈 문제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가구당 사용하는 전력이라는 것은 1인 가구냐, 2인 가구냐, 3인 가구냐, n인 가구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사람마다 또 다른데, 더위 많이 타는 사람이나 더위 안 타는 사람이 서로 사용하는 전기량이 다르고, 3인 가구라고 할지라도 가전제품을 얼마나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최근에 지어진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바람 한 점 들지 않는 쪽방에 사는 사람이 사용하는 전기량이 다르다. 말인즉 모든 개인을 만족시키는 기준이라는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물론 이건 전기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제는 전기만이 아니라 한국의 에너지 산업 전반이 가지고 있는 왜곡을 어떻게 개선할 것이냐이다. 1차 에너지가 2차 에너지보다 더 비싼 현실은 상식에도 어긋난다. 석유가 되었든 석탄이 되었든 가스가 되었든, 하다못해 핵이 되었든 간에 이런 원자재를 가공해서 만든 전기가 도리어 가스보다 더 싼 판에 누가 값 싼 전기를 놔두고 가스를 쓰겠나? 가정에서조차 이제는 인덕션이 무슨 대세인 듯 사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전기로 만든 철강제품이 미국에서 관세폭탄을 두드려 맞는 상황까지 벌어진다.
에너지정의행동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전기요금은 주택용 요금의 경우 OECD 유럽 평균이나 전체평균보다도 싸다고 한다. 전기요금이 싼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인데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발전단가다. 단체든 정당이든 한 소리 하는 가운데 빠지지 않는 게 발전단가의 투명한 공개인데,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봐도 문외한의 입장에서는 발전단가계산이 보통 복잡한 게 아니다.
어떤 기준에서 가격을 결정할 것인가는 계속해서 고민할 일이지만, 누진세를 폐지하는 게 답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전기사용을 늘려갈 것을 전제로 가격논의를 하는 것도 맞지 않고, 막연하게 필요한 만큼을 공급한다는 식의 선문답도 의미 없다. 요컨대 전기를 어떻게 안 쓸 것인가 화두가 되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