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조회정치의 몰락

2012년 총선 기간 동안 거제에 있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가 두 차례나 거제에 지원유세를 하러 왔었다. 와서 한 말은 별 거 없다. "저 아시죠?" 또는 "저 믿으시죠?" 이게 다였다. 첫 번째 왔을 때는 자당의 후보 이름조차 언급하는 걸 듣지 못했다. 처음 왔을 때는 거의 2분도 안 되어 돌아갔고, 두번째 왔을 때도 5분도 못되 자리를 떴다. 

그런데 박근혜를 보러 나온 인파가 놀라울 정도였다. 고현 시장 네거리에 사람들이 빽빽했으니. 어르신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는데, "저 아시죠?", "저 믿으시죠?" 하는 질문에 목청도 우렁차게 "네!"하고 답을 하신다. 그 중에 어떤 할머니께서 눈물을 훔치시기에 은근슬쩍 왜 우시냐고 물어봤다. 대답인 즉슨, 

"불쌍해서 안긋나? 어매도 총 맞아 죽었제, 아베도 총 맞아 죽었제..."

감수성이라는 건 그렇게 작동한다. 박근혜를 지지한 사람들 중 상당수가 아마도 이 어르신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 지레짐작해본다. 요컨대 박근혜 지지의 큰 부분이 박근혜의 불행을 자신의 불행처럼 느끼는 감정의 동화에서 나온 것이 아닌지.

물론 이 순박한 감정의 동화 혹은 감정 몰입의 덕택을 톡톡히 받은 박근혜 본인은 타인의 감정이라는 것은 눈꼽만치도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의 절벽상태. 그럼에도 박근혜가 만만치 않은 것은 자신은 남의 감정에 동화되지 않더라도 남들이 자신의 감정에 동화됨으로써 발생하는 효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안다는 것.

 

朴대통령 "부모 잃었다" 한마디에..TK 지지율 12%p 급반등

 

 

기사는 "특히 사드가 배치되는 경북 성주가 위치한 TK지역에서는 박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가 전주보다 12.1%포인트나 급등해 47.9%를 기록했다"며 특기하고 있다. 국무회의에서 박근혜가 "가슴 시릴 만큼 아프게 부모님을 잃었다"고 한 말에 이반되었던 민심이 돌아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에서 주목할 부분은 따로 있다. 결국 박근혜로서는 부모의 후광이라는 것이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입증하였다는 거다. 상조회정치 끝판왕의 모습이다. 문제는 상조회정치라는 게 결국 죽은 자를 호명해야만 연명이 된다는 점이다. 비록 12.1%의 폭등을 보였다고는 하나, 박근혜의 지역적 아성인 TK에서의 지지율이 죽은 부모를 동원해도 50%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음은 상조회정치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다.

아마도 박근혜 정권을 끝으로 상조회정치는 한국에서 사라지리라 예상한다. 여진은 미약하게 남게 될지 몰라도 상조회 본연의 영업방식은 더 이상 한국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타인의 감성을 자극하여 감정적 동화를 일으킴으로써 성과를 얻는 정치행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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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5 14:22 2016/08/0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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