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습헌법

세 시간에 걸쳐 장안의 화제가 된 "관습헌법"에 대해 자판질을 했다. 결정적인 순간 등록을 하자 화면이 훼까닥 바뀌더니 로그인 한 다음에 사용하란다... 이런 쉣...
글은 삘을 받았을 때 날려야 하는데, 허무한 마음에 한숨만 폭폭 쉬다가 회의를 갔다. 회의 연기되었단다... 연락도 없이... 이런 쉣...
오늘 일당 30000원짜리 알바 갈라고 했는데, 회의때문에 포기했다. 그랬는데 회의는 연기, 알바비는 안뇽... 이런 쉣쉣쉣!!!

 

하지만 우짜랴, 기왕 뚜드렸던 자판 다시 한 번 뚜드려보자. 지금 10시니까 새벽 1시쯤이면 글이 올라갈라나...
블로그 쓰다가 글 날린 것이 한 두번은 아니지만, 오늘은 정말 허무하다. 기억을 되살려 다시 시작하도록 해보자.



1.
2004년 10월 21일은 신행정수도이전에 대한 위헌여부를 묻는 헌법소원에서 헌법재판소가 이를 위헌이라고 결정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그리고 이 날은 헌법이라는 학문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생소한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이 온 국민에게 알려진 날로도 기억될 것이다.

 

관습헌법. 노무현의 말마따나 "처음 들어보는 이론"이다. 물론 단어는 처음이라고 할지라도 그 의미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용어의 개념은 둘째치고 오늘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앞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할 소지가 다분하다. 헌법재판소의 오늘 결정은 헌법의 규범구조에 대한 확신을 흔들리게 할 우려가 있는 동시에 앞으로 헌법재판소의 앞날에 고난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무튼 헌법재판소의 오늘 결정에 대해서 많은 설왕설래가 난무하고 있다. 말잔치에 말 한마디 더 보태봐야 보는 사람 신경질만 날 수 있겠지만 이 시점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분석해보는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 오늘과 같은 사태가 벌어진 근본적인 이유는 수도이전과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본질적인 목적은 제쳐둔 채,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무조건 밀어부치기 식으로 진행된 사업의 추진과, 납득할만한 대안도 없이 자신들의 손으로 만든 법을 부정하는데 혈안을 올린 정치집단들의 몰상식 때문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여기 더해서 헌법의 본원적 정신을 밝혀야할 의무를 가진 헌법재판소 재판관들이 생소한 해석기준을 들이 밀면서 무리한 정치적 판단에 급급했었던 것 역시도 비판을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일단은 결정내용에 대한 논의를 하면서 정치인들의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대해서도 간단히 짚어보기로 하자.

 


2.
2.1.
장안의 화제가 된 "관습헌법"이라는 용어. 앞으로 당분간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2004년을 강타한 최고의 유행어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신비의 단어다. 먼저 확인해봐야할 부분은 관습헌법이라는 개념을 인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이다. 이를 위해 먼저 관습법에 대해서 간략히 살펴보자.

 

관습법은 사회공동체 안에서 일정한 규범력을 가졌던 결과가 그 사회 내에 자연적으로 계속적, 반복적, 확정적으로 적용됨으로써 발생하는 일정한 행위유형에 대해 법적인 효력을 부여하고 이를 일정하게 공식화한 것으로서 국가의 법질서 내에 포섭시킨 것을 말한다. 관습법에 대해 우리나라의 판례나 다수학설은 '확신설' 또는 '법적 확신설'을 취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어떠한 관행에 대해 일반인의 법적 확신, 즉 그러한 관행을 따르는 것이 올바른 행위라고 판단할 때 관습법이 성립된다고 한다. 관습법은 그 자체 존재의 형식이 명확하지 않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명문의 법규가 없을 경우 죄의 확정이나 형벌의 부과를 인정하지 않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가지고 있는 형법의 경우에는 관습법이 원천적으로 부정되고, 국가권력작용이 명백한 기준에 따라 이루어질 것을 요구하는 행정법의 경우에도 관습법은 최대한 배제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는 달리 민법의 경우, 사인간의 계약관계에 있어서 원칙적으로 국가의 개입을 지양하는 민법의 구조에서는 관습법이 인정될 뿐만 아니라 그 지위 역시 법률에 버금갈 정도의 보장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민법 제1조는 "민사에 관하여 법률의 규정이 없으면 관습법에 의하고 관습법에 없으면 조리에 의한다"고 규정함으로써 관습법의 법원(法源)성을 인정한다. 더구나 제106조에서는 "법령 중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관계없는 규정과 다른 관습이 있을 경우에 당사자의 의사가 명확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관습에 의한다"고 규정하여 예외적인 경우 관습법이 법률규정보다 우선적용되기도 한다. 민법은 동시에 법률과 관습법의 지위를 동위에 두는 조항을 두기도 하는데, 제185조가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그것이다. 관습법이 성문법보다 우월한 효력을 가지고 있음을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조항도 있는데, 그것은 상법 제1조이다. 이 규정에 따르면 "상사에 관하여 본 법에 규정이 없으면 상관습법에 의하고 상관습법이 없으면 민법의 규정에 의한다"고 하여 상행위에 있어서의 관습법이 민사에 관한 기본법인 민법보다 우위에 있음을 규정하고 있다.

 

관습법이 이토록 중요한 법원의 역할을 하는 이유는 전통적인 행위의 반복성에 더하여 당시의 시대적 현상을 잘 반영할 수 있고 시의성과 탄력성에서 성문법을 능가하므로 성문법이 미처 규범구조 안으로 수용하지 못한 상황에 대해 적절한 기준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은 역설적으로 단점이 되기도 하는데, 관습법에 어떻게 법적 효력을 부여하며 이를 어떤 식으로 확인할 것인가가 불분명하게 됨에 따라 과도한 관습법의 적용이나 관습법에 대한 의존은 결과적으로 예측가능성 내지는 법적안정성을 불안정하게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습법의 한계로 인하여 오늘날 대부분의 성문법 국가는 원칙적으로 성문법을 보완하거나 성문법이 포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하는 법의 흠결 등을 치유하는 등의 보충적 기능으로 관습법의 역할을 부여하고 있다.

 

2.2.
관습법이 그렇다면 '관습헌법'은 가능한 것인가라는 부분이 문제로 제기될 것이다. 우선 헌법은 최고규범성을 가진 법률로서 국체를 규정하고 국가구조를 형성한다. 그런데 이러한 특성에 따라 헌법은 그 내용이 다분히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형태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또한 헌법은 사회 내의 제 정치세력의 투쟁의 결과로서 탄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내용을 함축하고 있고, 지배권력의 이데올로기를 내포하게 되며, 동 시대의 역사적 현실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게 된다. 따라서 헌법을 해석하는 것은 단지 해당 조문의 문리해석만으로는 그 진실한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고, 해당 사회의 정치, 경제, 문화, 역사 등의 제반 인식이 필요하게 되며 그 결과 명문의 조문만이 아닌 주권자의 의지가 투영되는 모든 구조를 통합적으로 분석해야만 하는 광범위한 작업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이번 결정의 다수의견이 밝힌 바, 관습헌법이라고 하는 일종의 불문헌법의 개념이 동원될 수 있다. 다수의견은 관습헌법의 요건으로서 "오랜 전통에 의하여 형성된 게속적 관행이라고 평가할 수 있고(계속성), 이러한 관행은 변함없이 오랜 기간 실효적으로 지속되어 중간에 깨어진 일이 없으며(항상성), 국민이 개인적 견해차이를 보일 수 없는 명확한 내용을 가진 것이고(명료성), 국민들의 승인과 폭넓은 컨센서스를 얻고 있어야한다(국민적 합의)"고 한다. 이것은 계속적, 반복적, 확정적이라는 관습법의 요건을 그대로 적용한 것인데, 헌법해석의 방법을 고려할 때 이러한 관습헌법이 해석의 한 방법으로서 동원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 그런데 관습헌법을 헌법해석의 한 방법으로 동원할 수 있다고 하여도 관습헌법 자체가 성문의 헌법 규정처럼 헌재의 결정에 필수불가결한 판단기준이 된다고 하는 부분은 납득할 수 없다.

 

2.3.
전통적으로 판례의 법률적 성격을 인정하면서 사법부가 일정한 법 제정의 역할을 부여받고 있는 영미법계(소위 불문법계)의 경우와는 달리 우리나라는 성문의 헌법을 기본적 준칙으로 하면서 입법권이 전적으로 입법부에 부여되어 있고, 입법부는 주권자의 대표로서 대의권을 행사하여 법률을 제정하게 되는 법률구조인 대륙법계(소위 성문법계)의 국가이다. 따라서 헌법의 조문은 국민주권의 직접행사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며, 이 조문들이야말로 법해석을 위한 판단기준이 된다. 이 과정에서 관습헌법의 존재를 십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관습헌법은 어디까지나 성문의 헌법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뿐이지 성문헌법과 같은 지위를 가지거나 성문헌법보다 우위의 지위를 가질 수는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다. 다시 말해 관습헌법은 성문헌법에 대해 보완적 효력만을 가질 뿐이라는 것이다. 만일 다수의견과 같이 관습헌법을 성문헌법과 같은 지위에 두거나 우위에 두고 결정을 할 경우 우선적으로 다음 두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성문의 헌법규범 안에는 들어있지 않은 수많은 관습들이 관습헌법으로서 그 지위를 인정받게 된다면, 굳이 재적 2/3 이상의 찬성을 얻어 국민투표를 거쳐 성문의 헌법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헌법의 해석권한을 가지고 있는 헌법재판소가 상황마다 관습헌법의 존재여부를 확인하여줌으로써 헌법구조를 유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상황처럼 고도의 정치적 목적이 전제된 사안의 경우에는 반드시 일정한 관습헌법의 기준이 판단의 근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세력간의 힘의 관계가 판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정치판에서 벌어지는 충돌이 재판부 안에서 다시 재연되는 것에 불과하게 되며, 결과적으로 헌법재판소 자체 역시 존립할 당위성을 상실하게 된다.

 

둘째, 국민들이 현재 기존의 관습헌법에 따라 생활을 영위하고 있을지라도 그 관습헌법을 그대로 용인하는 것이 아닌 상황임에도 헌재가 관습헌법을 들어 어떠한 현상에 대해 합헌결정을 내릴 경우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이미 그러한 관습헌법은 국민적 합의에 의한 헌법현상으로 더 이상 확신할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헌결정이 내려지면 이것은 헌법과 현실간에 괴리를 일으키게 되며, 다수의견이 말한 관습헌법의 기준에 따를 때 실질적인 의미에서 합헌성을 담보할 수 없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하게 된다. 더구나 헌법재판소는 헌법수호의 최후 보루 역할을 하는 기관이라는 특수성을 가지고 있음으로 이 기관이 내린 유권해석은 그 자체가 법의 성격을 가지게 되는데, 이처럼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결정을 내릴 경우 이를 법률적 절차를 통해 되돌릴 방법이 없어지게 된다. 결국 헌법기관이 헌법구조를 파괴하는 행위를 할 위험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관습헌법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판단을 위한 도구로 이용될 수 있을 뿐이지 판단의 결정적 기준으로 작용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헌법재판소의 그동안의 관행 역시 관습법은 위헌제청의 대상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따라서 관습법이 헌재 결정의 결정적 준거가 될리조차 없는 것이다.

 


3.
또 한 가지 쟁점이 된 것은 '수도 서울'이 헌법사항인가 하는 것이다. 헌법사항이라는 것은 매우 포괄적인 개념으로서, 국가적 공동생활에 관한 기본적 규율은 물론, 국가기관에 관한 사항, 국가와 국민 간의 관계 등에 관한 기보적 사항을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헌법사항은 형식적 헌법인 '헌법전(憲法典)'은 물론이려니와 법률과 관습, 관례 등 그 존재형태와 관계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러한 헌법사항을 규율하고 있는 모든 법규범을 통털어 '실질적 헌법'이라고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헌법에 규정되어 있지 않은데 어떻게 헌법사항이냐?"고 물었는데, 그것은 헌법사항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었다. 헌법사항이라는 것이 이러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이해하더라도 '수도 서울'이 관습헌법의 내용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이를 살펴보자.

 

3.1.
일단 한 국가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제도나 관행은 헌법사항으로서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예를 들어 국기, 국가, 국화, 국어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데, 이러한 것들은 그 상징성이나 발현이 한 국가의 정체성을 확인하거나 인지할 수 있는데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고, 따라서 이에 대해 법률적이든 관습적이든 국가적 차원의 작용이 이루어지고 있어 헌법사항으로서 분류가 가능해진다. 수도 역시 마찬가지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각국의 경우 위 열거한 항목들을 헌법의 규정으로 명정하고 있는 사례가 있는데, 수도의 경우에도 헌법에 그 내용을 명정하고 있는 사례를 발견할 수 있다.

 

3.2.
우리의 경우 비록 수도를 어디로 할 것인가가 명문의 규정으로 헌법에 적시되어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다수의견의 논지에 비추어 그것이 헌법사항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비록 수도에 대한 내용이 헌법사항이라고 인정을 하더라도 그것을 곧 관습헌법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별개의 논의가 될 수 있다. 특히 다수의견이 논거로 들고 있는 세 가지의 경우에 비추어볼 때 현재 수도를 '서울'이라고 하는 것이 관습헌법으로 타당한 것인가는 의문이다. 즉, 수도 서울의 역사적 존속 경위에 대한 논거의 문제점이다.

 

첫째, 다수의견은 조선 건국 초기 현재의 서울이 수도가 되었고, 이에 대한 내용이 '경국대전'에도 그대로 명시되었으며, 이러한 수도의 지위가 500년 내내 계속 유지되어왔었다는 점을 들고 있다. 둘째, 다수의견은 또한 일제 강점기에도 서울의 수도성이 유지되었으며 서울이 우리나라의 수도로서 대외적인 상징성을 유지하였다고 한다. 셋째, 더불어 해방 이후에도 서울이 수도라는 것은 규범적 전제로서 받아들여져 왔고, 국민의 전통적인 법적 확신이 존재하였다고 한다. 고로 장장 600년이라는 세월 동안 수도 서울은 헌법사항으로서 기본적 규범의 일부를 이루어왔고, 이것이 관습헌법으로서 인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위에 언급한 계속성, 항상성, 명료성, 국민적 합의라는 관습헌법의 요건이 충족된다는 입장이 다수의견의 입장이다.

 

그런데 이러한 다수의견에 따른다면 수도 서울의 관습헌법성은 더욱 의심받게 된다.
첫째, 대한민국은 조선왕조의 법통을 계승한 국가가 아니다. 헌법의 전문이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대한민국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어받은 국가이고(그 진정성 여부를 떠나서) 임시정부는 조선왕조의 법통을 승계한 정부가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왕조의 수도가 서울이었다는 사실이 대한민국이라는 국체 안에서 그대로 계속성과 항상성을 유지한다는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일제 강점기의 수도는 서울이 아니라 도쿄였다. 일제의 식민지였던 조선은 대외적으로 일본의 한 지방에 불과하였고, 따라서 그 당시에 조선의 수도로서 서울이 대외적인 상징성을 유지했다는 것은 과도한 판단이다. 더욱이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을 한 곳이 서울이었다는 점에서 수도 서울의 의미를 찾는 것은 코미디에 불과하다. 일제가 비록 조선반도의 행정중심지를 서울로 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제국주의 일본의 행정편의를 위한 것일 뿐이지 식민지의 수도를 인정했기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셋째, 해방과 건국 이후 지금까지 단 한번도 수도 서울의 위상이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은 그동안 있어왔던 수도이전논의를 의도적으로 배제하거나 왜곡하는 행위이다. 대표적으로 박정희 군사정권은 안보상의 이유 등을 들어 현재 논의되고 있는 지역으로 수도를 이전할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운 바가 있고, 이는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해방이후에 수도 서울에 대한 국민의 법적 확신이 반드시 공고히 존재했었다고 볼 여지조차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 과정만 보더라도 이미 헌법재판소가 전제한 관습헌법의 요건 중 계속성과 항상성은 근거를 상실한다. 더불어 수도이전에 대한 국민적 논의가 분분한 상황에서 비록 과거에는 수도가 서울이라는 헌법사항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가 있었다고 할지라도 현재까지 그러한 컨센서스가 올곧게 유지되고 있다고 볼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이다. 결국 견해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어야한다는 명료성의 요건이나 국민적 합의의 요건 역시도 수도 서울의 건에서는 충족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이렇듯 헌법사항으로서 수도 서울의 위상을 관습헌법의 내용으로 규정할 근거는 매우 희박하다고 할 수 있다.

 

3.3.
더불어 앞에 열거한 다른 헌법사항들의 경우에 이를 관습헌법으로 인정할 수 있는가를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국기나 국어의 경우에 헌법재판소가 열거하고 있는 관습헌법의 요건을 갖추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더구나 국기나 국어의 경우에는 헌법의 명문규정에는 그 내용이 들어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여러 법률과 제도를 통해 그 현존성에 대한 구체적 권위를 가진 근거가 존재한다. 따라서 오히려 국기나 국어의 경우에는 수도를 관습헌법으로 할 수 있느냐의 논의보다 훨씬 명료하게 그것이 관습헌법으로 인정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명료하게 관습헌법으로 볼 수 있는 사항이라고 할지라도 이에 대한 변경이나 변화를 헌법개정에 준하는 성문법적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하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국가 내의 말글살이의 변천과 더불어 국어의 맞춤법도 변화한다. 그런데 이것이 관습헌법의 중요한 내용이 변하는 것이라고 하여 맞춤법 개정을 개헌에 준한 절차로 시행해야한다는 논리는 전혀 근거가 없다. 국기나 국장의 경우에도 비록 그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변경의 논의가 있을 때 이를 관련 법규의 개정을 통해 해결이 가능함에도 굳이 헌법개정과정을 거쳐야할 이유는 없다. 이 부분을 이해할 때 이후 논의할 관습헌법의 내용을 변경하기 위해 성문헌법 개정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다수의견이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
다수의견이 주장하듯이 관습헌법의 내용을 변경하기 위해 헌법 개정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의견은 원칙적으로 보거나 실질적으로 보거나 그 타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원칙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헌법적 판단을 위해 성문헌법의 보조적 역할을 하는 관습헌법을 성문헌법의 개정절차와 동일한 절차를 거쳐 바꾸어야 한다는 것은 지나친 형식논리로 전락하고 만다. 성문헌법주의원칙의 규범구조 내에서 헌법개정이라는 것은 국민주권의 행사를 통해 매우 강력한 절차를 거쳐 확정된 성문헌법에 대해서만 적용될 수 있는 수단이라고 보아야 한다. 만일 성문헌법에 적용되어야 하는 이러한 엄격한 절차적 요건을 관습(불문)헌법이라고 인정될 수 있는 모든 범위에 대해 적용한다면 존재하는 모든 헌법사항에 대해 동일한 절차를 적용하도록 하는 것이 되는데, 이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헌법개정절차라는 것이 앞서 언급했던 '실질적 의미의 헌법' 전체에 대해 공히 적용되어야할 것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측면에서, 다수의견이 논한 바, "관습에 의한 헌법적 규범의 생성은 국민주권이 행사되는 한 측면"임을 전적으로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국민주권의 발현형태가 모두 관습헌법의 일종으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며, 그것을 인정할 방법조차 확정적이지 않다. 유일하게 반대의견을 낸 전효숙 재판관은 "성문헌법 체제 하에서 국민주권의 행사는 저항권의 행사와 같은 특별한 예외가 아닌 한 성문헌법의 테두리 내에서만 이루어져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이 논지 역시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저항권조차도 그 권리의 행사가 성공을 거두었을 때만 성문헌법의 규정과 별개로 국민주권의 행사로 인정을 받는 것이지 성공을 거두지 못한 저항권의 경우는 결코 국민주권의 행사로 권력구조 안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한계는 논외로 하고 전효숙 재판관의 주장의 핵심만을 보자면 결국 성문헌법의 범위를 벗어난 국민주권의 행사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수도 서울 사태만 보더라도 헌법재판소가 '서울이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것은 관습헌법이다'라고 선언하기 전까지 과연 누가 이것을 관습헌법이라고 판단하고 헌법개정과정을 거치자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결국 헌법재판소가 관습헌법 여부를 결정해주기 전까지는 관습헌법으로 의심되는 모든 헌법사항에 대해서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것은 실질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5.
별개의견을 개진한 김영일 재판관의 근거는 다수의견에 비해 상대적으로 법리구조 자체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즉, 다수의견이 헌법 제130조의 규정을 근거로 생소한 '관습헌법'이라는 법리를 동원하고 있는 것에 반해 김영일 재판관은 위헌의 근거를 헌법 제72조에서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에는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국민투표에 붙일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사실 다수의견이 헌법 제130조를 근거로 들 때부터 왜 이들이 제72조의 규정을 위헌의 근거로 삼지 않고 제130조를 근거로 삼았는지에 대해 그 의중을 따져봐야했다. 일단 청구인들의 헌법소원 청구이유의 주된 내용이 제72조였음에도 다수의견이 130조를 근거로 했으며, 명확하게 국민투표조항의 위반을 논거로 삼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생소한 '관습헌법' 이론을 내밀었는지가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다수 의견이 제72조의 규정을 인용하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저 조문 자체의 문장구조 때문이다. 즉 제72조는 국민투표에 부의할 대통령의 책임을 반드시 의무사항이라고 명정하지 않고 "~ 수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제72조는 국민투표에 붙여야할 중요한 사항으로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을 열거하고 있다. 이것은 예시조항으로 봐야할 것인데, 즉 열거되지 아니한 정책일지라도 열거된 내용들에 준하는 비중을 가지고 있는 사항일 경우는 모두 이 중요 정책에 해당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중요정책들에 대해 제72조는 반드시 국민투표에 부의할 것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 수 있다"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서 최고정책결정권자의 결정사항으로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조문에 따를 때 대통령이 어떤 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의하는 행위는 전적으로 대통령의 자유재량 행위가 되는 것이다.

 

다수의견을 낸 판사들은 이 부분에서 헌법재판에 필요한 범위를 넘어서는 과도한 정치적 판단을 하였다. 만일 이 규정을 엄밀하게 적용하여 김영일 재판관과 같이 수도 이전의 내용을 국민투표에 부의하지 않음으로서 대통령이 "재량권의 일탈 내지는 남용"을 하였다고 결정할 경우 수도 이전이라는 행위가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인지 여부까지를 판단해야하는 부담이 발생한다. 그런데 이미 수도 이전에 관한 법률은 제16대 국회에서 입법권의 행사를 통해 통과가 된 법안이며, 이러한 과정을 볼 때 국민주권의 행사로서 인정되는 한 방법이 충분히 그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였으며, 그러한 입법권이 행사되는 과정에서 "외교, 국방, 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 정책"의 내용이 적절하게 검토되었을 것이라는 전제를 뒤집기에는 과도한 정치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행위는 수도이전에 관한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 와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강력하게 수도이전을 반대하는 한나라당의 입장을 대놓고 인정해주는 결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요컨대, 최고정책결정권자의 수도이전결정이 입법기관인 국회가 합법적으로 통과시킨 법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단지 재량권의 일탈 내지는 남용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결정할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 사건 법률은 16대 국회에서 전체 273명의 의원 중 194명이 투표를 하여 이 가운데 27인의 기권과 반대를 제외하고 167인이라는 압도적인 다수로 결정된 법률이다. 전효숙 재판관이 적절하게 지적하고 있듯이 "그러한 입법이 국민의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였다는, 혹은 민의를 배신하였다는 정치적 비난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별도로 하고, 적어도 헌법의 측면에서 그것이 국회의원들의 권한이 아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즉, "헌법은 국민주권과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법으로 대의제를 기본형태로 채택하고, 국민으로부터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대표기관이 입법작용을 통하여 그 이념을 수행하도록 하고 있다"는 전제에 비추어 보았을 때, 대의기관인 국회가 압도적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된 법률을 단지 특정 정치집단이 거부한다고 하여 그 존재의의를 부정할 수는 없는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법률을 기초로 결정된 수도 이전 행위가 "재량권의 일탈 내지는 남용"이라고 판단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딜레마를 무릅쓰고 제72조에 의거하여 위헌이라고 판단한 김영일 재판관의 논지는 역시 다수의견이 피하려 했던 정치적 부담을 그대로 안고 있다. 즉, 제72조는 어떠한 해석을 동원하더라도 대통령에게 자유재량권을 부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진행된 사안으로 볼 때, 대통령의 행위를 전적으로 재량권의 남용이나 일탈로 볼 근거가 희박하다. 비록 노무현이 대통령 공약 사항에서 수도 이전을 국민투표에 붙이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고 할지라도 이것은 정치행위의 일종으로서 헌법재판소가 특단의 판단을 자의적으로 동원할 부분이 아니며, 순전히 법률적인 측면에서만 보았을 때 국민의 의사를 "확정적으로 배제"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6.
헌법재판소의 결정과정을 생중계로 시청하면서 고소를 금치 못했던 것은 한나라당의 반응이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다른 측면에서 보자면 국회의원들의 대의성 자체를 전적으로 부정하는 판단이었는데,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의원들이 이를 반기는 모습이 어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본 건 법률이 통과될 당시 국회의원 273명 중 150명이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법안통과과정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이 대부분 참여함으로써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오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그러한 입법과정을 원천적으로 부정해버린 판단을 내렸다. 다시 말해, 당시 법안통과과정에 참여했던 의원들은 국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대의권자로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 이번 헌재결정의 다른 의미이다. 이걸 반기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심리는 도대체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또한 노무현과 열우당의 반응을 보는 심정 역시 착잡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노무현과 열우당은 국토균형발전의 전제조건으로서 수도 이전을 내세워왔다. 즉, "수도 이전 =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수도이전작업을 진행해 왔던 것인데,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주장이었다. 국토균형발전의 한 요소로서 수도권의 과밀집중현상을 해소하고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수도이전이 고려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수도 이전이 곧 국토균형발전의 필수적 전제조건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수도가 이전되지 않는 한 국토균형발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논리고 전환되어버린다. 이것은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다.

 

논리적으로 타당하지 않는 도식을 가지고 수도이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번 헌재의 결정이 나자 결국 노무현과 열우당은 수도이전 뿐만 아니라 국토균형발전이라는 청사진 자체를 원점으로 되돌릴 수밖에 없게 되었다. 수도 이전을 위해 투자되었던 자원은 고스란히 손실분이 되어버렸고, 수도이전 이후만을 학수고대하던 국토균형발전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좌초한 것이다. 이것은 국토균형발전이라는 비전이 국민들의 이해에 기반하여 이루어지지 않고 수도이전이라는 정권의 업적에 따른 부산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발생한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다.

 

 

7.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끝났다. 그러나 앞으로 많은 부분에서 논란의 소지가 남아 있다. 정치적 차원에서 분석해야할 문제들은 차치하고라도 국가최고규범인 헌법을 분석하고 적용하는 과정에서 지난한 기간동안 많은 사람들을 괴롭힐 문제가 발생했다. 예를 들어 관습헌법의 이와 같은 성격을 인정할 경우 참여연대의 논평처럼 '호주제가 관습헌법으로 인정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는 동성(同性)간의 혼인이 합법화될 경우 갓 쓰고 도포입은 노인들이 나와 "관습헌법이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할 경우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국가보안법이 지난 시기 동안 이 사회에서 "관습헌법"으로 역할해왔다고 주장한다면 이를 어떻게 할 것인가?

 

헌재의 정치적 판단이 과연 어떤 파장을 이 사회에 몰고 올지 두려움이 앞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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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0/22 01:58 2004/10/22 0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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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4/10/23 02:11

    요즘, 쿠키 자동만료시간을 잊으신채 글을 쓰다 글을 날리신 불로거들..포스트 쓰기 처리 과정에서 오류를 만나 글을 날리신 불로거들... 피해가 자주 목격되고 있습니다.곳곳에서 참혹한

  1. 우씨...글은 몇시간 안걸린거 같지만 법모르는 나같은 일자무식쟁이에게는 몇일 걸리겠네...안그래도 행인님한테 그 놈의 "관습헌법"인지를 쉽게 아주 쉽~게 풀어주세요~라고 하고 싶었는데...글렀따. 난 나중에 읽어야지. 모그리 나한테 중요한 주제도 아니고.. 시간 한가할때..헤~

  2. 재밌게 쓴 건데... 다시 함 보세요... 별로 안어려울 건데... ㅡ.ㅡ;;;

  3. 어 쒸... 세 시간 걸릴 줄 알았는데 한 시간 오버네... 풉...

  4. rivermi/ 혹시 쉬운 설명이 필요하시다면 나중에 밥 한끼 쏘세요. 그 때 차근차근 풀어드리리다. 움훼훼훼훼훼....

  5. 잘 읽었습니다~ 대단하세요..^^

  6. 햐~ 잘 보았어요

  7. 오늘 뉴스를 보니 사립학교법이 통과되면 그것도 헌재에 위헌소원을 한다고 하네요.... 왠지 이거 그분들이 탄력을 한 참 받고 있다는 생각이

  8.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퍼가도 되겠지요? 여러 사람과 함께 읽고 싶어서요.
    지금 외국에 체류중이어서 논란이 진행되는 과정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특별법에 대해서도 잘 몰랐고, 헌재까지 갔던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랬다가 인터넷 통해서 소식 듣게 되고, 헌재 판결문 보고 나서 깜짝 놀랐어요.
    오늘 글 읽으면서 여러가지 알게됐어요. 고맙습니다.

  9. gribeun, mic/ 정리도 안하고 올린 글이라 사실은 중구난방이죠... 용서를...
    bto/ 아마 한동안 이거 때문에 맘 설레는 사람 많을텐데...
    딸기/ 감사합니다. *^^*

  10. 행인/저야 영광입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