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폐지

입시제도 개선 따위 백날 해봐야 백약이 무효다. 바람직한 입시방안? 그런 거 없다. '입시'라는 제도가 존재하는 한 어차피 그 제도를 만들어 놓은 자들의 자식들이나 유리하지 그 제도 바깥에 있는 자들의 자제들은 이래 하나 저래 하나 엿 먹기는 마찬가지다. 그렇게 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 제도를 이용해 자식들을 대학보낸 이들은 어김없이 또 한 마디씩 할 것이다. "내가 법을 어겼냐? 뭘 잘 못했냐?"

걍 대학입시를 폐지하는 게 맞다. 대신 고등교육까지 무상교육으로 하고. 죽어도 대학 못 내놓겠다는 사립대학 몇 개만 남겨놓자. 대신 이들에게 국고보조 단 한 푼도 주지 말고. 나머지 대학들은 묶어서 국립대학 네트워크로 하면 된다. 어느 지역에 있는 대학을 가든 간에 동일 기준으로 교습하고 동일 기준으로 평가하고.

그런데 입시폐지가 실효를 거두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대학이라는 곳이 정말 공부 좀 하고 싶은 자들 외에는 그닥 필요가 없는 곳이 되어야 한다는 거다. 먹고 사는 것이 당면의 과제인 사람들이 굳이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먹고 살 수 있고, 대학 나오지 않았다고 차별받지 않는 사회. 그게 되면 입시폐지 저절로 된다.

오늘의 헬조선은 마치 대학 못나오면 사람도 아닌 듯이 대접하고, 대학 나온 자와 그렇지 않는 자, IN 서울 대학 나온 자와 지잡대 나온 자, IN 서울 안에서도 SKY 나온 자와 기타대 나온 자들로 가르고, 전자들은 독식하고 후자들은 개돼지 취급받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고 이야기되는 입시제도 운운은 그냥 있는 놈들끼리 주고받는 덕담일 뿐이다.

일부 연구에 의하면, 90년대 이후 대학을 매개로 하는 계층 간 이동은 오히려 그 전보다 훨씬 나아졌다고 한다. 현상적으로는 이게 맞다고 본다. 확실히 IN 서울이 되든 지잡이 되든 간에 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대학 나온 사람들 비율이 엄청 높아졌으니까. 따라서 대학이 계급 계층의 서열을 가르는 공식적 기구로 기능하는 건 형식적으로는 오히려 과거보다 무뎌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진짜 그런가?

고학력이라는 스펙을 갖출 수 없었던 사람들과 대졸자들, 대졸자들 간의 서열, 이너서클의 네트워크 유무에 따라 간극은 벌어지게 되고, 그 간극의 벌어지는 정도에 비례하여, 혹은 산술비례를 넘어 기하급수적 비례로 차별은 커진다. 이러한 차별을 뻔히 눈으로 보고 있고, 그 차별을 없애기 위한 국가적 및 사회적인 정책들이 기실 진짜 차별을 없애려고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기 한량 없는 상황에서, 결국 각자도생만이 살 길이고, 내 자식만은 저 천민 득시글 대는 소도로 보내지 않겠다는 열망이 상승하면서 인적 네트워크고 재력이고 할 수 있는 걸 다 쏟아넣게 되는 경쟁구도가 만들어지는데, 결국 여기선 빈익빈 부익부 승자승 패자패의 악순환이 이어진다.

헬조선을 극복하는 그날은 결국 입시폐지가 실현되는 그날이라고 본다. 이게 언제 될런지는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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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4 12:01 2019/09/04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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