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민낯

뭐 오늘로 상황 종료될 것 같긴 하다만, 우짰든 간에, 이번 조 후보자 인선파동을 계기로 나름 건진 것이 있다면,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난다 긴다 하던 소위 '지식인'들의 민낯을 가감없이 들여다볼 수 있었다는 거다. 하긴 이정도면 조국이 꽤나 거물이었던 모양이다.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내가 너무 사람을 깔봤는지 모르겠다. 어쩌겠는가? 이게 조선민족의 유전자인데. 미국놈, 왜놈, 뙈놈, 쏘련놈 하던 버릇이 어디 가겠나? 암튼 그렇고.

한 개인이 촉발한 사태 치고는 엄청난 사회적 반향을 불러 일으킨 사건임은 인정해야겠다. 지식인의 민낯도 보았지만, 그 뿐만이 아니라 오히려 이 사회의 민낯을 보았다고나 할까? 국가체계의 작동이 알려진 것보다는 훨씬 조악하다고나 할까? 이 건 말고도 정치경제사회문화 온데 사건이 안터지는 분야가 없는데 그럭저럭 사람들은 일상을 살아가고 있으니 오히려 이 체제가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튼튼하다고 봐야 하나? 거참 희안할세...

속해 있는 커뮤니티는 30년 역사를 자랑하던 곳이었는데, 이번 조국사태로 사분오열. 어제는 또 검찰 개혁문제로 논의가 비화했다. 조금 늦었지만 지상중계 하자면,

느닷없이 등장한 한 선수는 검찰이 잘 하고 있는 건 잘한다고 해야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비장히 칼을 뺏으니 장한 거 아니냐, 이럴 때일 수록 검찰에 힘을 실어주어서 고위공직자의 부정부패가 일소될 수 있음을 보이라고 요구하여야 한다고 주장. 이대로 두면 자한당 좋은 일 시켜준다는 사람들도 있는데,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담그냐고, 검찰이 할 일 제대로 하면 자한당도 다 깡그리 쳐줄 테니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라는 논지.

반대편에서는 검찰이 저러는 거 한 두번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한다는 보장이 어딨냐? 그리고 지금 조국 건에 대해 나오는 논란이 검찰에서 나오는 거라는 말이 있던데, 결국 검찰 개혁을 무위로 만들려고 하는 거 아니냐, 그렇다면 지금 검찰을 지지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검찰에 대해 비판하고 저따위짓 못하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게 논지.

이 와중에도, 형식논리적으로 사안을 따지면서 조국이 법을 어긴 게 없는데 임명에 어떤 하자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다수. 물론 이분들도 조국과 그 주변인들의 행태에 대해 입맛이 쓰다는 걸 인정하지만, 아니 법을 어긴 게 없는데 윤리적 사안으로 공직자격을 따지기 시작하면 어디까지 해야 하는 건가라는 문제를 조심스레 제기하기도 한다. 나름 일리가 없는 건 아니다.

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사회 전반에 걸쳐 문제가 확산되는 것이 그다지 나쁜 일은 아니라고 본다. 더 크고 더 깊게 근본적인 바닥까지 내려가 사회와 체제를 논할 수 있으면 더 좋겠다.

하지만, 특히나 '지식인'들이 보여주고 있는 이 좌충우돌은 이성적 객관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작은 계기로도 무너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일 듯 하다. 이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저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그동안 내게는 일종의 구루와 같은 존재들이었기에 충격은 꽤나 크다. 그들은 그동안 수많은 사건사고와 관련인물들에 대해 논의할 때, 형식논리를 넘어서서 저변의 본질에 천착함으로써 주관적 감정에 매몰되기 쉬운 나의 눈을 뜨게 해주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이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참으로 실망이다. 사안은 조국 개인에 대한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내가 화두처럼 굴리고 다니는 "법은 누가 만드는가?"라는 것에서부터, 제 권력의 관계들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공고하게 벽을 쌓아놓은 것이 확인된 이 계급 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등등 조국의 사태는 그 개인이 법무부장관이 되냐 마냐로 그칠 사안만 남겨 놓은 것은 아니다.

난 그런 의미에서 내 주변의 '지식인'들이 그 고도의 지적 능력을 발휘하여 이 현실의 문제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과 대안을 제출해주시길 학수고대한다. 물론 저 커뮤니티의 구성원들은 아마도 조만간 각종 논문과 기타 문건을 통하여 이 사태의 본질에 대하여 훌륭한 글들을 남겨주실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그 글들이 내게 어떻게 보일지 불안하다. 아무래도 선입견이 작동할 것 같다. 지금 이 난장판을 봤기 때문이다. 혹시 저분들 중에 어떤 분이 이 사건과 관련되어 아주 훌륭한 논문을 내놓으시면 나는 어쩌면 지금 커뮤니티에서 벌어진 사태를 복기하면서 그 때 이 분이 무슨 말씀을 하셨더라... 이러면서 과거의 어떤 글들을 추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오늘 한 말과 그 논문에서 나온 말의 괴리를 발견하면 아마도 나는 그분을 몹시 비웃을지 모르겠다.

음... 나도 그렇게 될지 모르겠다. 그래서 논문은 쓰지 말아야겠다. 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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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6 09:36 2019/09/06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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