義理에 대하여

내가 한학이나 유학에는 공부가 없으니 그냥 줏어 들은 대로 보자면, 이 동네에서 강조했던 게 공맹 이래로 '인의예지(仁義禮智)' 혹은 '인의예지신(信)'이라 하던데, 그 중 '의(義)'를 말하자면 이게 올바름이 주가 되는 어떤 의지가 가미된 것으로 해석되는 듯하다. 맹자에 따르면 수오지심의 근간이 된다고 하고, 거기에 더해 의를 행위를 하는 하나의 양상(바른 길)이라고 하여 일종의 실천노선으로서 강조한 듯 하다. 유관장 3인이 복숭아나무 아래서 피가 아닌 뜻으로 육친의 관계를 맺은 걸 두고 '의형제'라고 하는 걸 보면 아무튼 이 '義'라는 게 뭐 그런 쪽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는 충분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보면 '의리'라는 말은 참으로 좋은 의미를 가진 말이라고 보여진다만, 어찌저찌 세상이 변하면서 오늘날에는 그저 꼴마초들의 깽판연대 내지 꼰대들의 상호원조 네트워크를 가르키는 말이 되어버렸다. 하긴 과거 각국의 영화를 보면 홍콩영화가 가장 강조한 게 의리였는데, 그게 그냥 조폭의 조직논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었더랬다. 어쨌든 탄창을 갈지 않아도 무한 사격이 가능했던 권총을 난사하던 주윤발은 멋있긴 했었다.

최근에 조국 사태와 관련해서 진중권이 정의당에 대한 불만을 공개했다.

경향신문: 진중권 "조국 아들이 올렸다는 감상문, ID는 정경심"

일단 진중권은 언제나 약삭바른 사람임을 다시 확인. 어떤 상황이 되어서든 자신을 드러낼 공간과 자신이 빠져나갈 길을 만드는데는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자다. 그냥 '관종'의 한 전형 정도로 생각할까보다. 기사를 보면, 그가 "대중은 듣기 싫은 사실이 아니라 듣고 싶은 환상을 요구한다"고 말하지만, 기실 그도 환상을 뽕처럼 뿌려대곤 했었다. 암튼 뭐 그에 대한 호불호는 별론으로 하고.

그런데 이 기사가 나가자 진중권에 대한 비난이 쏟아진다. 그 중 눈길을 끈 비난은 진중권이 '의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조국하고는 친구라면서, 친구가 곤경에 빠져 있는데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허우적 거리는 친구의 머리통을 물 속으로 집어넣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게 그 비난의 요지다. 그러면서 하는 이야기가 진중권의 '의리' 없음이다. 원 별...

기실 이 대목에서 진중권의 의리를 운운하는 자들이야말로 저 조폭의 '의리'가 무엇인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자들이다. 애초 의리가 '올바름'에 다가가기 위한 실천적 노력을 나타내는 말이었다면, 이들은 조국이 보여주었던 비틀린 욕망을 비판할지언정, 이 욕망을 변론하지 않는 사람에게 '의리' 없다고 욕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변형된 '의리'의 뜻으로 본다면, 이들이 진중권을 '의리' 없다고 욕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왜냐하면 바로 저들이 조국과 같은 위치를 점유하고픈 동류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폭의 의리가 '의리'로 이야기되고 있는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폭적 의리를 지킬 의리가 없음을 공공연하게 선언해야 한다. 내가 아는 사람에 대하여 시비지심이 선행되고 수오지심이 곁들여는 때에 그에 대하여 나의 측은지심이 동한다면, 아예 이럴 때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때론 측은지심 전에 말해야 할 부분이 얼마든지 있을 터이고, 그렇게 해야만 할 때라면 당연히 측은지심은 나중의 일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기다 아니다를 이야기한 사람에게 다짜고짜 측은지심이 없다고 욕을 하면서 의리없는 자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건 상하선후를 재지 못하는 좁은 국량을 드러낼 뿐이다.

대인(大人)이 사라진 세상에서 의리에 대해 논하는 게 어쩌면 처음부터 지나치게 무리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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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6 13:33 2019/11/16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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