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있어야 할 자리
잠도 오지 않고 해서 뉴스를 뒤적거리다가 결국 힘이 좍 빠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공무원노조법이 환노위를 통과한 것이다. 빌어먹을 뉴스 한 꼭지 덕분에 그렇지 않아도 뒤숭숭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한 없는 무기력감 속에서 보낸다.
지난 공무원노조 총파업 당시, 당사에 들어와 몇날 며칠을 함께 보냈던 공무원 노조원들의 모습이 생각난다. 수배를 받은 몸으로 그동안 '철밥그릇'이라는 비아냥이 가능했을 정도의 안정된 직장에서 버림받고, 가족들에게 미안함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로 전화를 하고 있던 어느 공무원 노조원의 모습. 이 축복받아야할 성탄의 전야에 그는 지금 가족들과 함께 있을까?
이번에 환노위를 통과한 공무원 노조법의 특징 중 가장 큰 것은 단체행동권의 부인이다. 6급 이하 공무원들로만 이루어지게될 공무원 노조가 단체행동권을 박탈당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들에게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말아야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경찰, 소방, 외교 등에 복무하는 공무원들은 노조결성 자체를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렇다면 더더욱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말아야할 이유가 없다. 인사와 급여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노조활동을 할 수 없게 해놨다. 그럼 나머지 일반 공무원들이 단체행동권을 행사해서 발생하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뭐란 말인가?
현 정권의 대통령과 총리, 그리고 여당의원 중 상당수가 과거 공무원에게 노동3권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이 왜 이제 와서 노동조합의 권리가 보장되는 공무원노조의 출범을 두려워 하고 탄압하는 것인지 의문이다. 단지 화장실 찾을 때와 화장실 나올 때 생각이 달라져서인가? 문민정부를 지나 국민의 정부를 거쳐 이제 참여정부가 도래했는데, 군사정권의 폭압적 잔재가 남아 있을 때조차도 공무원의 노동3권을 보장하라고 주장했던 이들이, 정작 자신들이 정권을 잡은 지금 공무원노조의 무력화를 위해 군사정권에서조차 볼 수 없었던 노조파괴행위를 하고 있는 것일까?
무력감을 더욱 심화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뭘 하고 있는가? 환노위 단병호의원이 반대를 하고(표결처리 과정에서 찬성 7, 반대 4, 기권 1표가 나왔다. 당연히 단병호의원은 이 안에 반대를 했다), 공무원노조 파업참가자들에게 당사를 내주고, 공무원 노조 탄압에 항의하여 권영길 의원이 단식을 하는 것으로 우리의 의무를 다했던가?
국가보안법 철폐를 위해 의원들이 의회 안에서 단식농성이라도 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최고위원들은 공무원노조법의 통과를 막기 위한 단식농성을 제안한 적이 있었는가? 환노위 점거농성이라도 하자고 주장한 바 있었는가? 민주노동당의 존재이유가 국가보안법의 철폐에 있다고 뻔뻔히 주장하던 사무총장은 민주노동당의 당명에 왜 "노동"이 들어가는지를 잊었단 말인가?
심화되는 무력감을 치유하기 힘들어지는 이유는 또 있다. 노동3권에 대한 전면적 부정으로 점철된 공무원노조법이 허무하게 환노위를 통과하는 것을 보면서, 과연 비정규직확산을 통한 극단적 노동시장유연화정책의 일환으로 추진중인 각종 법률들을 내년에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 때문이다.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이 찬바람 부는 국회의사당 건설현장의 타워크레인에 올라 목숨을 걸고 농성을 하는 동안, 기껏 해낸 것이라고는 법안논의를 내년으로 연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에 대한 구체적 대응방안에 대한 논의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해가 바뀌면, 민주노동당의 구성원들이 이에 대해 초당적인 힘의 결집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비정규직 확산을 막아내고 궁극에 가서 사회적 고용안정을 위한 틀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인가? 공무원노조법이 별다른 저항 없이 환노위를 통과하는 것을 보면서, 비정규직 확산과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정권과 자본의 현재를 보면서 무력감을 넘어서는 절망감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96년 12월 26일, 노동법 개악안이 새벽에 통과되고 그 이후 봄이 다 갈 때까지 거리를 돌아다녔던 기억이 새롭다. 유독 추웠던 그 해 겨울, 그러나 춥지만은 않았던 이유는 정권의 정신나간 짓에 항거하는 노동자, 시민들의 물결이 거리를 메웠기 때문이며, 그 결과 노동법 개악을 일정정도 중단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비록 불과 1년도 가지 않아 터진 IMF 사태로 인해 노동자들의 생존권이 벼랑 끝으로 몰릴 수밖에 없었지만, 96~97 겨울의 그 투쟁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민중의 힘을 보여주었던 투쟁이었다.
만 8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노동법 개악보다도 더욱 가공할만한 위력을 지닌 법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기후로 인해 온난한 겨울을 보내고 있는 지금이 더욱 춥고 쓸쓸한 것은 어쩌면 8년 전의 투쟁의 열기가 사라졌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회공공망의 파괴로 인해 어린이들이 어처구니 없이 죽어나가는 뉴스가 연일 계속되고, 나락으로 떨어진 노동자들이 일거리를 구하지 못해 추운 겨울 발을 동동 구르고, 개혁놀이에 심취한 위정자들의 짜고치는 고스톱은 계속되고 있다.
메리 크리스마스...
* 이 글은 행인님의 [서 있어야 할 자리] 에 관련된 글입니다. 친구와의 영화한편보기도 괜찮았지만 정신없이 밀리는 도로를 거쳐 컴앞에 다소곳이 앉은 지금의 크리스마스가 훨씬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