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시간
작년에 조국사태가 터졌을 때, 사람들이 홍해가 갈라지듯 양편으로 명확하게 갈라서는 모습을 보았다. 그 양편의 대립각을 만든 건 이념이었을까? 가치관? 계급? 도통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내가 그동안 봐왔던 사람들이 날카롭게 각을 세우며 양편으로 갈렸다.
그 당시 나는 사태를 계급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계급적 입장에서 현 정부가 조국을 법무부장관으로 세우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그들은 어차피 세속적 지위와 결부된 각종 자본을 확보하고 있는 점에서 같은 계급들이었다. 같은 계급에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계급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서로를 등용하는 것은 그들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 대당의 지점에서, 바로 그들에게 자연스러운 그것들이 실상은 그들 계급에만 허용된 것이었음을 명확하게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저쪽에 있는 것들이 이쪽에 없었고, 저들이 누리는 것은 우리들로서는 만져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것은 저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것이었겠지만 우리의 입장에서는 부당한 것이었다. 저들이 향유하는 자본은 바로 우리들의 주머니를 털어간 것들이었기에.
하지만 계급적 관점의 사고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했다. "조국이 어떤 법을 위반했느냐"는 실정법주의자들의 목소리는 컸다. 그리고 그 목소리의 저변에서 기실 조국류가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릴 수 없는 사람들이 "내가 바로 조국이다"라고 외치며 조국의 친위대를 자임했다.
그리고 오늘날, 이번엔 정의연이라는 단체와 윤미향이라는 활동가를 두고 또다시 갈라짐이 일어나고 있다. 윤미향을 비판하면 '토왜'가 되고 윤미향을 옹호하면 '항일'이 된다. 희한한 일이다.
난 오래전에 정의연 방식의 활동에 문제가 있다고 비판한 일이 있었다. 활동가들 사이에서 했던 비판이었고, 난 그 당시 이런 식의 활동방식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랬다가 가루가 되도록 털리는 통에 그 이후 이쪽 운동에 대해선 말을 꺼내지 않아왔다. 그게 벌써 근 20년이 다 되어간다. 나는 여전히 운동의 방식이 적절하지 못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내가 틀린 게 하나 있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꽤나 오래 이 운동은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그 비판을 한 후 상당한 시간이 지나고 정의연 등 그쪽 그룹은 소녀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급기야 소녀상을 버스에 태워 돌아다니기까지 했더랬다. 상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지만, 난 그 상황이 슬펐다. 화도 많이 났고. 당에 있을 때 민주노총 모 지역본부에서 소녀상을 건립하면서 그 지역 광역당부차원의 결합을 요구했었다. 책임자에게 절대 동참하지 말라고 했지만,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이번 사태에서 난 풀풀 풍겨나오는 경기동부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이건 전형적인 경기동부의 사업작풍이었다. 시시콜콜하게 따지고 들어가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아마 내가 아는 이름들이 고구마줄기 나오듯 줄줄이 엮여 나오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이 제법 파고들고 있으니 그냥 그걸로 대신하자. 회계부정이니 뭐니 하는 위법혐의 역시 검찰이 파들어갈테니 그 과정을 지켜보기로 하자.
하지만 분명히 강조할 필요가 있다. 어떤 운동이든 이런 식으로 당사자주의를 왜곡하는 운동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당사자는 소녀 아니면 할머니로 박제된 채 대의를 위한 소품의 역할만을 부여받았다. 그 와중에 운동이랍시고 남은 건 진영논리뿐이다. 이러다보니 저 박유하나 이영훈 같은 자들의 논리를 논리로 깨기보다는 소송으로 몰아가는 일이 벌어진다.
난 어차피 이 논쟁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진작에 선언했다. 이건 이미 결과가 나와 있는 이야기다. 저들의 사업작풍을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정할 것이다. 이 싸움은 '친일' vs '반일'이거나 '토왜' vs '독립군'의 싸움이 아니다. 이미 이 싸움은 그냥 진영논리가 되어버렸다.
이 판국에 그동안 윤미향과 정의연이 해왔던 노력과 성과를 다 무시해선 안 된다는 볼멘 소리가 나온다. 그게 왜 윤미향이 한 건가? 그나마 생존자들이 그 수치심을 감내하면서 버텨준 덕분이지. 윤미향과 그 일군의 그룹을 해체시킴으로써 가장 큰 덕을 보는 건 일본이므로, 이들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일본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논리에는 그저 기함을 할 뿐이다.
대의를 사유화하고 투쟁을 영리사업으로 만드는 자들이 필연적으로 도달할 파국일 뿐이다. 결과가 뻔히 보이는데다가 옛날에 주어 터진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는데 굳이 끼어들 염을 못 내겠다.
다만, 조국사태에 이어 벌어진 이 윤미향 건에서 이 둘을 보위하는 것이 정권을 보위하는 것이며 더 나가 '토왜'와 '적폐세력'에 대한 숭고한 전쟁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겐 꼭 해 줄 말이 있다. 그러다가 당신들이 보위하려던 인물과 가치가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역사가 반드시 한번은 비극으로, 또 한번은 희극으로 반복되는 게 아니다. 역사는 비극만을 무한반복할 수도 있다. 그 비극을 만든 게 자신들임을 모르는 게 가장 큰 비극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