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람들

요즘 '외환은행' 광고를 보면 괜히 실실 웃음이 나온다. 외환은행은 이전에 자이툰 파병기지를 보여주면서 지들이 거기까지도 간다고 하는 컨셉의 광고를 내보낸 바 있다. 하여튼 보기 싫은 꼴은 피해도 보인다고, 어쩌다 TV 보면 항상 나오는 그놈의 광고를 보면서 행인이 했던 고정멘트는 '재수없어'였다.

 

그랬던 외환은행이, 요즘 이영표의 뒤에 외환은행이 서있는 컨셉으로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이영표, 쉴 새도 없이 열심히 연습을 하고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마다한 채 멀리 돌아가면서 드리블 연습을 하는데, 그게 다 뒤에서 지켜보는 조국과 민족때문이란다. 그리고 그 뒤를 또 외환은행의 보디가드가 든든하게 지켜준다 뭐 이런 내용이다.

 

개인적으로 축구라면 밥숟가락을 문채 달려가는 행인인데다가 이영표는 개인적으로 워낙 관심을 두는 선수다. 그런데 이영표가 토트넘에서 레프트 윙백을 뛰며 선전하는 이유는 대한민국이 뒤에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는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 노력했고, 그 노력의 결과로 지금의 위치에 올라가 있는 거다.

 

거기에 무슨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위해서나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쎄가 빠지게 뛸 이유가 붙는 것은 아니다. 그의 경기를 보고 있는 우리들 역시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그걸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냥 TV에서 틀어주니까 보는 거다. 토트넘 경기를 지켜보는 이유는 MBC espn에서 멘유와 토트넘 경기를 우선 배정하기 때문에 보게되는 것이 첫째고, 거기에 박지성이나 이영표가 뛰고 있다는 사실이 관심을 촉발시키는 원인이 된다는 것이 둘째다. 개인적으로는 아스날의 경기를 잘 안보여준다는 것이 불만이고, 프리메라리그 경기를 다른 채널에서 어쩌다 한 번씩 보여주는 것이 유감이다.

 

외환은행의 광고를 보면서 기분나쁜 이유는 그것이 전형적인 애국심에 기댄 마케팅 수법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질은 그 기업이 얼마나 건실하며 투명한 경영을 하고 있고 수익을 얼마나 남기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는가로 판명된다. 그건 쏙 빼놓고 그저 우리나라 만세 외치면서 이영표에게 당신의 뒤에서 대한민국이 째려보고 있다는 식의 광고를 해대는 것은 좀 유치하다.

 

유치한 광고 또 있다. 한국증권이라는 기업에서 하는 광고는 유치함의 극을 달린다. "한국사람은 눈이 작습니다"로 시작해서 그래서 얘네들 무섭게 성장한다는 이상한 논리, "한국사람은 불만이 많습니다"로 시작해서 그래서 얘네들이 세계시장을 다 석권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로 광고를 하고 있다.

 

광고 "그까이꺼 뭐 대~충" 재밌게 만들어서 시청자들의 뇌 주름 어딘가에 인상을 강하게 박는 거 뿐이라고 생각하면 쉽겠지만 애국심에 기댄 마케팅이 이렇게 먹혀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불길하다. 그것이 혹여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쇼비니즘의 반영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계속 들기 때문이다. 2005년 한 해 동안만 해도 정치권에서조차 국가우선의 구호와 주장들이 대중적인 호응을 얻은 사례들이 많다.

 

독도문제가 불거지자 거기다가 군대보내자고 설쳤던 정치인들이 예상보다 높은 호응을 받는다. 병역회피문제가 거론되자 내용도 없는 재외동포법 개정안을 내 국가우선주의를 선포했던 정치인은 광범위한 여론의 호응을 얻고 급기야 서울시장 후보로까지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껍데기를 벗겨보면 아무 실체도 없는데 포장만 '애국'으로 덧씌운 이 정책들은 물론 아무 것도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거 주장한 정치인들은 주가를 올렸다.

 

사회 전반에 이런 현상이 자꾸만 강화되고 있는 것은 2005년도 하반기 전 국민의 생명과학지식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황우석 박사 파동에서도 나타난다. 애초 황우석은 무죄다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이제 왜 황우석만 가지고 난리냐고 주장하면서 황우석을 감싸고 있다. 감싸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게 진실에 대한 옹호가 아니라 전혀 엉뚱한 원인에서 출발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실제 황우석에 대한 평가가 소위 "까"와 "빠"로 양분되어 난리법석을 치게된 배경 중의 하나는 그놈의 "국익"이었다. 미국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을 제시했는데 황이 미국으로 가지 않았다거나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예상 수익이 30조를 넘어선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가 퍼지면서 황에 대한 지지와 비판은 "애국 vs 매국"의 논리로 전환되었다.

 

이제 종교의 수준으로 발전된 황 지지운동은 결국 "우상"에 대한 숭배와 "애국"에 대한 절대가치부여로 경전을 만들게 되었다. 하긴 뭐 한국 땅 안에 있는 어떤 종교가 애국과 결합되지 않는 것이 있던가. 호국불교, 호국기독교... 줄기교로 표현되는 신흥종교의 경전 역시 이 틀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는다. 촛불을 들고 모여 통성기도를 하면서 황우석의 부활과 줄기세포의 영생을 바라는 이 집단들은 진실의 부재를 종교적 확신으로 대체하면서 목숨까지 내놓는다.

 

급기야 한 사람이 분신사망하기까지 이르렀다.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야 당연한 것이지만 그 죽음을 있게 만든 사람들의 안하무인은 참고 봐주기 어렵다. 한 사람이 죽음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는 그 순간에도 그를 죽음으로까지 내몰았던 장본인들은 검찰수사를 피하기 위해 끼리끼리 모여 입을 맞추고 있었다. 교주부활을 위해 거리로 나오라고 선동질을 하던 인간들은 드디어 죽은 사람을 열사로 추앙하고자 한다. 마치 교리를 지키기위해 순교한 성인을 받드는 종교인들처럼.

 

허위를 진실로, 진실을 허위로 받아들이게 한 맹목적인 신앙의 배경에는 그 빌어처먹을 애국애족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오늘도 광고는 애국심에 호소하는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고, 국회의원들은 애국심에 기댄 껀수를 찾아 하이에나처럼 돌아다니고 있고, 애국으로 황우석을 살리자는 선동이 인터넷에 도배질 되고 있다.

 

애국이고 된장국이고 이제 좀 냉정해질 때다. 진실은 "까"와 "빠"의 세싸움으로 확정되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을 분신사망으로 몰고 간 이 몰이성적인 선동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답답하다. 제발 이제 좀 애국이니 국익이니 하는 짓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는 짓이 중지되길 바란다. 또 누가 죽어야 정신들을 차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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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6 15:47 2006/02/06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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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글 보고 저녁밥 먹으러 갔다가 티비를 봤는데 공교롭게도 이영표 선수 나오는 광고가 나오더군요 ^^; 아하하... 방금 뉴스 나왔는데 황우석씨 연구자금 70억 횡령했다가 걸렸다죠... 쓰읍... 황우석씨에 대한 정당한 비판들을 음모론이나 황우석 죽이기로 몰아가는 분위기라니 쓰읍...

  2. 에밀리오/ 써프라이즈라는 대표적인 친노사이트, 지금 난리가 아닙니다. 얘네들, 빠콩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음을 부추기는 어둠의 세력들" 역할을 하고 있더라구요. 지들 그렇게 선동질 하다가 또 누구 하나 죽으면 그 땐 뭐라고 할지 참 난처합니다.

  3. 딴소리>올만에 듣는 단어네용~ "빠콩"이라..ㅎ
    다시 들어 보아도 영력한 싸이코 기질의 저 발언..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