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기자의 수준

지음님의 [두 군데 모두 방송이 됐네요.] 에 관련된 글.

공무원들이야 뭐 그렇다고 치자. 지들 설치한 CCTV 덕분에 범죄도 줄었고 안심도 되고 해서 구민들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으니까 그거 좀 알아달라는 그 심정. 이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국민들이 쎄가 빠지게 갖다 바친 세금 받아먹으면서 행정업무를 하는데, 대체 니들 한 게 뭐냐는 힐난을 받게 되면 공무원들 입장에서는 김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뭔가 막 만들어 낸다. 그리고 광고를 한다. "우리 CCTV 졸라게 많이 설치했어요. 설치했더니 범죄 줄었어요. 칭찬 좀 해주세요~~" 눈물의 호소...

 

그나저나 원하던 결과만 나온다면 세상 사는 재미가 없는 거다. 강남구청의 구청장을 비롯한 공무원들께서 원하던 바, CCTV 설치 덕분에 강남 일대가 "범죄 없는 거리"가 되는 것인데 이게 맘 같이 되질 않는다. 오히려 자랑하려고 하면 할 수록 망신살만 뻗친다. 범죄율이 줄었다고 해야하는데, 오히려 CCTV 설치하지 않은 지역보다 범죄율이 덜 떨어졌다. CCTV 덕분에 많은 범죄자를 잡았다고 해야하는데, 내놓은 자료 보니까 그거 CCTV 없었으면 아예 잡지도 못했을 범죄였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결국 공무원들의 눈물겨운 업무수행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은 "왜 돈 퍼질러 써가며 뻘짓을 하나?"라는 따가운 눈총 뿐이다. 100억원이 넘는 구 예산을 처들여놓고도 강도사건은 오히려 늘어나는 이 놀라운 현상에 공무원들은 함구할 수밖에 없고, 실제 내용을 모른 채 그저 막연히 안심하고 있는 구민들은 봉이 김선달에게 뒤통수 쎄려 맞았던 평양 주민들
꼴이 되어버렸다. 100억이면 한끼 식사 2000원 가격의 급식을 500만끼 제공할 수 있는데, 이 수치대로라면 강남구 내 각급 학교 학생들 급식을 무상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공무원들 망신살 뻗친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기자질 하는 사람들의 언론윤리라는 것은 기가 찰 노릇이다. 뻔히 실익이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CCTV가 일단 효과적이라는 전제를 깔아놓은 후 그게 없어서 불안한 것이 빈부격차에 의해서 발생하고 있다는 희한한 논리를 만들어 낸다. 돈 많은 강남은 CCTV 설치해서 안전한 동네가 되었는데, 돈 없는 강북은 CCTV 설치하지 못해 불안한 동네로 전락하고 있다는 이 놀라운 궤변의 출처는 한국 땅에서 공영방송이라고 떠들어 대는 KBS였다. 이병도 기자, 기억해야겠다.

 

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한다는 환상을 가진 사람들이 아직도 있긴 있다. 그러나 언론의 중립성이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이야기임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젠 다 알고 있다. 편집되지 않은 기사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고, 스트레이트 기사 하나에도 기자의 입장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언론의 ABC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병도 기자의 보도는 CCTV에 관련된 일반 시민들의 입장에서라기 보다는 더 많은 CCTV를 설치하고자 하는 공무원들의 입장, 더 나가서는 이런 공무원들에게 로비해서 제품 팔아먹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기업의 입장을 더 반영한 것이다.

 

기자가, 효과도 없는 CCTV 설치하느니 차라리 그 돈으로 굶는 애들 무상급식이라도 하고, 저소득층 세대에 대한 지원강화를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범죄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기사를 낸다면 그건 어떨까? 서울시 25개의 자치구가 강남처럼 100억 이상의 돈을 들여 CCTV를 설치한다면 그 돈만 2500억원이 된다. 강남구가 장기적으로 더 많은 CCTV를 설치하고자 하는 것을 반영한다면 CCTV 설치를 위해 편성될 수 있는 예산이 훨씬 더 늘어날 수도 있다. 2500억원이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월평균 10만 3000원의 주거비를 부담하는 영구임대주택 임대자들에게 이 돈을 쓴다면 전국 약 20만으로 추정되는 영구임대아파트 거주자들에게 거의 1년 간 주거비 부담을 주지 않아도 될 돈이다. 돈 있는 사람들에게야 10만원 남짓한 돈이 하룻 저녁 술값으로도 모자랄지 모르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10만원은 엄청난 돈이다. 차라리 이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고 한 푼이라도 자기 살길 마련하는데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사회 전반적인 범죄발생의 조건을 줄이는 효과가 있지 않을까?

 

CCTV는 범죄 예방의 효과가 전혀 없다! 전혀! 다만 사건 발생 후에 뭔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추측만 있을 뿐이다. 여기에 몇 백억 몇 천억을 들여 뭔가 예방할 수 있다는 가정을 세워봐야 주름 하나 없는 뇌에 고문하는 수작밖에 되지 않는다. 이걸 이야기하지 않고 오히려 CCTV 설치 못하는 것을 가난한 동네의 아픔 정도로 그려놓고 있는 기자는 무슨 생각으로 기자질을 하고 있는 걸까? 남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에서 안도감을 느끼는 도시인들의 비정상적인 인식구조의 문제야 두 말하면 혓바닥만 고생이니 제껴놓자. 이병도 기자,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 사람일까?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건가? 공영방송에서?? CCTV업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공영방송? 행정처리 개판으로 하는 공무원 사기진작시켜주는 공영방송? CCTV 하나 없는 골목길을 지나면서 아, 나는 지지리도 못사는 동네에 사는구나라는 자괴감을 주민들에게 심어주는 공영방송? 쥐랄도 가지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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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05 19:41 2006/02/05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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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병도 기자 예전에 주민등록번호 노출실태조사 할 때는 관심있는 척 친한 척 하더니만 결국 이런 식이네요. 이 글 메일로 보내줄까보다. ㅋㅋㅋ

  2. 이 이병도 기자도 지가 꽤나 진보적이라고 착각하면서 사는 건 아닐까요, 생리공결제가 역차별이라고 떠벌리는 평등연대처럼? 정말 거시기도 가지가집니다. 에휴~~~... 거시기 같은 인간들... 불쌍하다...ㅠㅠ...

  3. 지음/ ㅎㅎㅎ 그거도 괜찮은 생각이겠네요. 그런데 이런 글 본다고 뭔가 느끼기라도 할지...

    이재유/ 생리공결제 역차별론은 사실 내용 자체가 어이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저도 그거 보면서 기가 차서 뭐 이런 XX들이 있나 했는데, 같은 생각하신 분들이 많은 것 같더라구요. 오히려 평등을 주장하려면 생리공결제 하나를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거 보다는 왜 "개근상"이라는 제도가 필요한지를 먼저 논의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지... 아, 그리고 논문 참 재미있게 보고 있습니다. 한 번 봐서는 안 되는 거라 약간 부담은 되네요... ^^;;;

  4. 맞습니다, 맞고요. 왜 그런 제도가 필요한지, 왜 그게 인간답게 사는 것에 필요한 제도인지, 그들이 말하는 대로 부작용이 나타난다면 그 부작용을 어떻게 최소화할 것인지를 논하는 것이 논의의 핵심일 텐데 말입니다. 근데 논문 읽는 거 부담 드려서 죄송*^^*... 전적으로 글 잘 못쓰는 제 책임입니다요...ㅠㅠ... 부디 용서하시길...

  5. 이재유/ 헉...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요... 두고 두고 보고 잘 삭여야할 글이라는 뜻이었는데.... 글은 제가 잘 못 쓴 듯 하군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