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거슬리는 것 2

평준화지역의 학업성취도가 비평준화지역보다 높다는 권영길 의원실의 발표가 있었다. 이 보고를 근거로 권영길 의원측은 "하향평준화"라는 말은 근거없는 낭설임이 확인되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무한경쟁으로 내몰리고 있는 청소년들을 생각한다면, 평준화니 비평준화니 하는 말들의 성찬을 떠나 그들의 삶 자체를 풍요롭고 즐겁게 해줄 일들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보고서가 문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출발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평가가 가능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보고서를 보면서 종래 가시지 않는 의문이 있다. 보고서의 전제가 되는 평준화지역과 비평준화지역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가 딱히 정리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선 평준화지역이 어디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봐야 할 것은 "교육감이 고등학교의 입학전형을 실시하는 지역에 관한 규칙"이라는 것을 한 번 보자.

 

이 규칙을 보면, "교육감이 고등학교의 입학전형을 실시하는 지역", 즉 소위 '평준화지역'이 어디인지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규칙 제2조는 다음과 같다.

 

1. 서울특별시

2. 부산광역시

3. 대구광역시

4. 인천광역시

5. 광주광역시

6. 대전광역시

7. 울산광역시

8. 경기도 수원시·성남시·안양시·부천시·고양시·군포시·과천시 및 의왕시

9. 충청북도 청주시

10. 전라북도 전주시·익산시 및 군산시

11. 전라남도 목포시·여수시 및 순천시

11의2. 경상북도 포항시

12. 경상남도 창원시·마산시·진주시 및 김해시

13. 제주특별자치도(종전의 제주시 일원에 한한다)

 

쉽게 이야기해서 소위 '비평준화 지역'이라는 곳은 여기 규정되어 있는 지역 이외의 지역을 말한다. 권영길 의원은 이 규칙에 따른 '평준화 지역'과 이 규칙에 언급되어 있지 않은 '비평준화 지역'의 학생들의 성적을 근거로 이번 보고서를 제출했다.

 

그런데, 규칙에 정해져 있는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을 아주 상식적인 수준에서 비교해보면 이 보고서가 왠지 찝찝한 뒷맛을 남기고 있음을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다시 말해 언제든지 역공이 가능한, 그리하여 정책적으로 뒤통수를 맞을 수 있는 보고서가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생긴다는 거다.

 

규칙에 규정된 저 지역들을 보라. 왠지 대한민국의 돈과 인력과, 학원과 강사들이 다 몰려 있을 지역으로 보이지 않는가? 예를 들어 경기도만 하더라도, 규칙에 지정되어 있는 수원, 성남, 안양, 부천, 고양, 군포, 과천, 의왕과 지정되지 않은 각 군과 시를 비교해보자. 뭔가 좀 매끄럽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건 뭣때문일까?

 

이 뒷맛의 정체는 다름 아니라 권영길 의원의 다른 보고서를 통해 그 실체가 나타난다. 위 보고서는 이번에 권영길 의원이 낸 "수능성적 자료 분석 보고서"의 3번째 부분인데, 같은 보고서의 첫번째 부분은 주제가 이렇다. "강남권-특목고 지역, 타 지역과 성적격차 확연"

 

강남권-특목고 지역의 성적이 월등히 높은 결과를 가지고 분석한 권영길 의원실의 결론은 이들 지역이 다른 지역에 비해 "△강남 3구에 속해있거나 △특목고, 자사고, 기숙형으로 운영되는 자율학교가 위치해 있거나 △학생수 대비 학원수가 많은 지역인 지역"이라는 조건 중 어느 하나를 만족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동일한 논리적 추론을 대입할 때, 평준화지역이 비평준화지역보다 당연히 학생들의 성적이 높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바로 평준화지역이라고 되어 있는 지역들이 위 세 가지 조건 중 누가 보더라도 비평준화 지역에 비해 "학생수 대비 학원수가 많은 지역"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평준화지역의 성적이 비평준화지역보다 높은 것에 대해서는, 권영길 의원의 말을 빌자면, 평준화냐 아니냐라는 조건 보다는 오히려 "수능성적 분석 결과를 통해 계층간의 교육격차가 심각하다는 것이 확인됐다"고 하는 편이 더 나을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상기 규칙에 규정된 각 지역은 비평준화지역에 비하여 계층적으로 상위에 있는 사람들이 밀집한 지역이기 때문이다.

 

과도한 입시경쟁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평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런데 적어도 이런 보고서가 설득력을 얻으려면, 최소한 평준화라는 조건 이외의 다른 조건이 같다는 전제가 성립하고 있어야만 한다. 자칫하면 이 보고서가 평준화를 합리화시키는 것이 되기 보다는 정반대로 소득간 격차에 따른 불평등교육만을 확인하는데 머물 수 있다는 우려는 그래서 제기된다. 더불어 이 보고서를 근간으로 한다면, 전국적인 고교평준화를 실시한다고 해서 지역간 학업성취도가 평균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올 수도 없다.

 

이 보고서가 교육관계자들이나 강남불패의 신화를 창조하고 있는 사교육시장의 관계자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이라는데 10원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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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5 17:26 2009/09/2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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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째째하게 10원을 걸고 그러세요. 전 500원을 걸겠습니다. -_-;;;

    • 지율스님도 조선찌라시에 10원 건 판에 500원은 넘 큰 욕심이 아닌감?? ㅎㅎ

      그나저나 벌써 오늘자 동아일보에는 교육학자라는 어떤 분이 컬럼을 실었는데, 권영길의원의 보고결과에 대해 견강부회, 혹세무민이라고 혹평을 하고 있구먼... 이렇게 쉽게 당할 걸 몰랐는지 원... 에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