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유연성 헌법소원 각하

지난 4월,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공동성명이 우리 헌법의 규범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음을 들어 제기한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각하결정을 내렸다. 그 이유는 첫째, 이 공동성명이 고도의 정치·외교적인 행위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고, 둘째,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이나 기타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 없어 당사자 적격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결정문은 다음과 같다.

 

주문

이 사건 심판청구를 각하한다.

 

이유

청구인들은 피청구인 대통령이 2003.11. 경 합참의장 김종환을 통하여 미국과 주한미군의 군사임무전환에 관한 합의각서를 교환하고 연합군사능력증강에 관한 서신교환을 하면서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였다고 주장함과 아울러 피청구인 대통령과 외교통상부장관이 2006. 1. 19.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와 '동맹 동반자 관계를 위한 전략 대화출범에 관한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였다고 주장하며, 피청구인들의 위 행위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헌법 제72조, 제130조), 납세자의 권리(헌법 제37조제1항, 제23조제1항), 행복추구권(헌법 제10조)을 침해받았다고 하여 그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청구인들은 피청구인 대통령이 국방부장관을 통하여 그리고 외교부장관이 미국과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이란 9.11테러 후 미국의 대외 군사·외교전략이 변화됨에 따라 대두된 것으로 기존의 특정위협의 대응을 위한 고정배치에서 기동력을 위주로 하는 군사력의 재편을 추진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과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2006. 1. 19. 워싱턴에서 양국간 제1차 '한·미 동맹 동반자 관계를 위한 전략대화'를 갖고 발표하였다는 공동성명의 주요내용은 "반기문장관과 라이스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관하여 양국 정부의 양해 사항을 아래와 같이 확인하였다 : 한국은 동맹국으로서 미국의 세계군사전략변화의 논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의 필요성을 존중한다. 전략적 유연성의 이행에 있어서 미국은 한국민의 의지와 관계없이 동북아 지역분쟁에 개입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한국의 입장을 존중한다. 양장관은 공히 한반도에서의 항구적 평화체제를 위한 기반이 북한 핵문제의 해결과정에서 모색되기를 희망하였다. 반장관과 라이스장관은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을 재확인 하였다."라는 것으로 양국의 외교관계 당국자 간의 동맹국에 대한 양해 내지 존중의 정치적 선언의 의미를 가지는데 불과하다.

 

그렇다면 청구인들 주장의 위와 같은 피청구인들의 행위는 고도의 정치·외교적인 행위로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이거나 또는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청구인들의 국민투표권, 납세자의 권리 등 기본권이 침해되는 문제가 발생된다고도 볼 수 없어 그 행위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심판청구는 기본권침해의 자기관련성이 인정되지 아니한다.(헌재 2004.4.29.2003헌마814, 판례집16-1, 601; 헌재 2001.3.21. 99헌마139등, 판례집13-1, 676; 헌재 2003.12.18.2003헌마255등, 판례집15-2하, 655 각 참조)

 

따라서 이 사건 심판청구는 부적법하고 그 흠결을 보정할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므로 헌법재판소법 제72조제3항제4호에 의하여 각하하기로 하여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2006. 5. 16.

 

재판장 재판관 조대현

          재판관 권성

          재판관 송인준

 

"대~한민국" 헌법재판소가 내릴 수 있는 가장 표본적인 결정이라 할만하다. 헌법소원을 청구한지 불과 한달 남짓 만에 나온 이 신속한 결정은 앞으로 이 싸움이 어떻게 진행되어갈지에 대한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헌재결정에 대한 법리적 평가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 결정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부분 하나만 보자.

 

결정문의 본문에 보면 이런 부분이 있다. "양국의 외교관계 당국자 간의 동맹국에 대한 양해 내지 존중의 정치적 선언의 의미를 가지는데 불과하다"

 

여기서 헌법재판소가 이번 공동성명의 성격을 뭐라고 판단하고 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위 공동성명은 국가간 조약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록 국회의 비준이라는 절차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한미관계, 특히 주한미군의 신속기동군화에 관한 한국의 역할을 법률적 차원에서 보장하겠다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정치적 선언의 의미를 가지는데 불과"한 성격으로 이 공동성명을 판단한다. 국제법적인 관행에 따를 때 헌법재판소의 이러한 판단이 적절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반대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정확한 것이라면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하여 이루어진 이번 공동성명은 아무런 법적 규범력을 가지지 않은 것이고, 따라서 전략적 유연성에 관한 공동성명에 의한 이후 조치는 이루어질 근거를 가지지 못하게 된다. 정말 그런 걸까?

 

여러 전문가들과 이 문제에 대해 앞으로 논의를 해봐야겠지만, 아무튼 헌법재판소가 내린 각하결정의 타당성에 대한 논의를 떠나서 앞으로 위 공동성명의 성격에 대한 논의는 점점 더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독이 될 것인가 약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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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5/30 14:28 2006/05/30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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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6/05/30 20:40

    행인의 [전략적 유연성 헌법소원 각하] 에 관련된 글. 헌법소원은 각하결정이 떨어졌고(각하결정이 난 날이 5월 16일이다. 거 참 찝찝하네... 5.16이라뉘...), 이제 남은 것은 노회찬 의원이 제기한

  1. 헌법재판소는 정권의 방탄막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서 이거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