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러디

행인[새마을 운동과 이슬람식 예배] 에 관련된 글.

욱일승천기를 붙인 선도차량에 의해 잠시 교통통제를 당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들은 손을 흔들며 우리 조선반도 실태 조사단을 맞이해 주었다. 황군 민사작전참모는 사소한 물건을 하나 전달할 때도 '받는 이의 마음(자존심)'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한다고 했다. 민심을 얻은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황군 부대의 민사작전은 만점을 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마을 곳곳에서 황군의 공적은 찬란하게 빛났다. 황군은 학교를 지어주고 조선인민의 문맹퇴치에 앞장섰고 검도를 가르쳐 조선인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 조선의 아이들은 대일본제국의 말로 검도 동작에 사뭇 진지하게 열중했다. 하오리와 하카마를 입고 게다를 신은 아이들은 머리에 욱일승천의 문양을 하고 대본영의 사람들을 졸졸 따라다니며 애정표현을 했다.

 

황군의 활동으로 쓰레기 더미의 마을 입구는 말끔하게 단장되었고, 수백년간 붕당파벌의 다툼으로 인해 고생했던 조선인민들은 황군의 운동회에 참여해 화해하고 있다. 황군 영내에 위치한 병원에서는 병들고 굶주린 조선인민들에게 파견된 간호장교들의 극진한 의료활동으로 한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분들이 있다면 이 글 역시 매우 기분나쁠 것이다. 어떤 시러배 왜인(倭人)이 쓴 글일까 궁금할 수도 있다. 미리 이야기하지만 이 글을 쓴 일본인은 없다. 왜정시대 당시의 글들을 찾아보면 이와 비슷한 글이 있을지 모르겠으나 행인이 옮긴 이 글의 원전은 다름 아니라 오마이뉴스에 실린 정청래의 글이다.

 

물론 정청래가 일본제국주의를 찬양한 글을 썼을리는 없다. 원래 정청래가 어떤 글을 썼을까 궁금하신 분은 다음과 같은 약간의 수고를 하는 것으로 그 의문을 푸실 수 있겠다.

 

욱일승천기 - 태극기

조선반도 - 이라크

황군 - 자이툰

만점 - 에이 플러스 학점

조선인민 - 쿠르드

검도 - 태권도

조선의 아이들 - 쿠르드 어린이들

대일본제국의 말 - 한국 말

하오리, 하카마, 게다 - 태권도복

욱일승천의 문양 - 태극 문양

대본영 - 한국인

수백년간 붕당파벌의 다툼 - 수십년간 대립

한양 - 아르빌

 

자, 말만 몇 자 바꾸었는데, 기분이 어떠신지. 삼삼하신가? 아류 제국주의는 이렇게 빛을 발한다. 정청래는 오마이에 기고를 하면서 결론적으로 자이툰은 철군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정청래 왈, "자이툰 부대가 새마을 운동을 하기 위해 그 극심한 '파병반대'를 무릅쓰고 이라크에 주둔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은 쉽게 가시지 않는다."

 

그걸 이제 알았나? 그 이야기 행인이 벌써 1년 전에 한 이야기다. 문제는 정청래의 발언이 가지고 있는 위험성이다. 자이툰이 주둔하고 있는 아르빌은 전쟁지역이 아니다. 자이툰은 '전후재건'을 목적으로 파병되었는데, 전쟁도 없는 곳에서 '재건' 씩이나 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미국침략전쟁의 들러리로 가서 새마을 운동 하고 있는데 이게 말이 되냐? 그러니 철군하자. 이게 정청래의 의견이다.

 

그러면서 앞서 패러디 했던 발언을 하고 있다. 위험한 이야기다. 아이들이 머리에 태극문양 그려진 머리띠를 하고 태권도복 입고 한국사람 환영한다고 해서 거기 에이 플러스 학점을 줄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그들은 침략군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군 중 조선인민들에게 일단의 편리와 선행을 제공한 집단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탐관오리에 고혈을 빨리던 당시 사람들 입장에서 그들을 환영하고 기꺼이 반겼을 수도 있다. 사탕 몇 개 던져 주고 같이 놀아주는 군인들을 보며 즐거워 했던 애들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침략군에게 에이 플러스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침략군을 보낸 사람일 뿐 침략당한 사람들은 결코 아니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그 일군의 일본군대를 상기하면서 일제강점기에 에이 플러스 학점을 줄 수 있는가?

 

정청래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이 나서서 파병을 선도했고, 열우당은 여기에 힘을 실었다. 한 해 1700억에 달하는 예산을 소요하면서 60~70년대 새마을 운동을 재현하고 있는 자이툰의 긍정적인 면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을 수도 있다. 그래야 마음 속에 남아 있는 일련의 죄책감을 단편적으로나마 벗을 수 있을 테니까.

 

정청래가 주장하듯, 자이툰 부대를 당장 철군시켜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게다가 비록 행인이 1년 전에 주장한 "새마을 운동본부" + 홍사덕 파견의 주장에 일부 부합하는 자발적 "새마을 운동부대" 파견에 대해서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의 근저에서 아르빌의 사람들이 마치 침략군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상황인 것처럼 포장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정청래 본인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아르빌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자이툰에 분노했다. 평화로운 아르빌이라면서 자이툰 부대 밖으로의 활동에 대한 엄격한 통제에 대한 분노였다." 자, 스스로 이렇게 이야기하면서 에이 플러스 학점이라고? 이 이야기인 즉슨 사실은 침략군은 침략군일 뿐임이 증명되는 것 아닌가?

 

70년대 새마을 운동이 한창일 때, 마을마다 골목마다 새벽같이 울려퍼지는 "새벽종이 울렸네~~"하는 노래를 양아치 같은 동네 형들이 이렇게 개사를 해서 불렀다.

 

"새벽 X이 꼴렸네, 벽이라도 뚫겠네, 너도 나도 일어나 ㄷㄷㅇ를 칩시다~~!"

 

개념없는 양아치 쉑덜의 음담패설이라고? 이게 바로 반동(反動)이라는 거다. 그 지긋지긋한 동원체제에 대한, 그 동원체제를 미화하고 선동하는 새마을 노래에 대한 반발로 양아치 아닌 사람들조차 술자리에서 이런 노래 불러제꼈던 거다.

 

아르빌은, 이라크는 그 새마을 운동의 뒤끝에 어떤 반동을 보여줄까? 새마을 노래 개사하는 정도로 끝날까? 아니면 WTC에 들이박았던 것처럼 하이잭킹 몇 건으로 자신들의 분노를 보여줄 것인가?

 

에이 플러스 학점 아무렇게나 주는 것이 아니다. 정청래는 학점 줄 처지가 아니다. 지가 학점을 받아야 할 처지를 망각하고 있는 거다. 이런 사람에게는 황산벌에 출정했던 보성벌교 욕쟁이들을 불러다 오바이트가 쏠릴만큼 욕지거리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도 불현듯 든다.

 

* 보성벌교분들은 혹시 노여워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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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6 02:12 2006/09/26 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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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역시 대단하십니다 >_

  2. 정청래라... ㅋ~~~(쓴 웃음)...

  3. 에밀리오/ 에에?? 뭐가 대단하다는 것인지... ^^;;;

    곰탱이/ ^_____________^

  4. 뒷말이 다 잘렸군요 orz... 걍 설득력 있으시다 그런 이야기였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