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제정신인가?

한미 FTA 반대를 위한 집회신고를 경찰이 금지통고한데 따라 범국본이 제출한 긴급구제조치에 대한 결정이 인권위로부터 나왔다. 그런데 인권위의 결정내용이 매우 괴이하게 되어 있다.

 

인권위의 주문 사항에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진정인과 피진정인이 평화적 집회 개최에 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거나 또는 공동기자회견을 하는 등의 방법을 통하여 동 집회의 평화적 개최 진행을 보장하는 것을 조건으로 피진정인이 금지통고한 행정처분을 철회"

 

이 내용을 들여다보면 지금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들이 자신들의 위치가 무엇인지 분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자신들의 입으로 "집회의 자유는 개인의 인격발현의 요소이자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요소라는 이중적 헌법적 기능을 가지고 있고, 표현의 자유와 더불어 민주적 공동체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불가결한 요소로 헌법의 기본권 중에서도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본질적인 권리"라고 밝히고 있다.

 

집회의 자유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본질적인 권리의 속성으로 인해 현행 집시법은 당연하게도 집회와 시위에 대해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의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다. 물론, 앞서 포스팅을 했던 것처럼 현행 집시법의 구조가 아예 집회 및 시위를 하지 못할 수도 있게 해놓았고, 그리하여 실질적인 집시허가법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실질은 어쨌건 간에 형식상으로는 현행 집시법이 허가제의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국가인권위원회는 현행 집시법의 명문 규정을 실익없는 규정으로 전락시키는 경찰의 태도를 비판하고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속하는 본질적 권리"로서의 집회시위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를 강력히 요구했어야 한다.

 

현행 집시법에 따르면 제6조에 집회시위주최자는 사전에(720시간 전부터 48시간 전) 서면으로 집회시위에 관한 신고사항을 명기하여 관할 지방경찰서장에게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걸로 신고제가 갖추어야할 요식행위는 이미 끝난 것이다. 신고사항 중 미비한 것이 있으면 보완조치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까지(제7조) 두고 있다.

 

오히려 현재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제8조의 규정으로서 동법 제5조제1항, 제10조, 제11조, 제12조에 위반되는 내용의 집회가 예상될 때 경찰서장의 직권으로 집회시위를 금지 또는 제한하도록 한 것이다. 각 조문들은 제6조와 제7조가 규정하고 있는 신고제로서의 집회시위 요건을 위반한 채 한국에서의 집회시위를 허가제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조항들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바로 이 부분에서 오바를 했다. 정치권의 입장 또는 찌라시들이 조장한 "폭력시위"논란에 대한 일반인의 오해에 대해 과도한 눈치를 본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국가인권위원회가 권고한 "양해각서 체결 또는 공동기자회견"은 집시법의 원칙, 즉 신고제가 아닌 실질적 허가제를 이야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지금 "국가인권위원회"가 할 결정인가?

 

기간 국가인권위원회가 마치 헌법재판소처럼 인권의 보편적 원리에 의한 결정이 아닌 성문법조문의 해석준거 안에서의 인권판단을 하는 것에 대해 비판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결정을 보니 헌법재판소가 해야할 일을 했던 기존 국가인권위원회의 관행이 오히려 훨씬 나았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헌법을 준거의 틀로 인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헌법이 보장한 이념을 벗어나는 집회시위 허가제 용인, 즉 "양해각서 체결 또는 공동기자회견"을 제안하는 희안한 모순을 국가인권위원회가 보여주고 있는 것은 법률에 대한 지식이 조금만이라도 있는 사람이 볼 때는 말도 되지 않는 코메디인 것이다.

 

더욱 웃기는 것은 결정문 말미에 붙은 단서다. "이와 같은 위원회의 권고가 양측으로부터 받아들여진다면 위원회도 인권지킴이 활동을 통하여 동 집회의 평화적 개최 여부를 모니터링할 예정임"이란다. 국가인권위원회, 망가질 대로 망가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지킴이를 가동시키는 것은 "양해각서 체결 또는 공동기자회견"같은 전제조건이 충족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전제조건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이 필요할 경우 국가인권위원회가 할 일은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자신들이 당연히 해야할 일을, 그것도 인권침해에 대한 감시를 일정한 사전 조건이 충족될 때에 가능하다고 하는 것은 인권위원회가 자가당착에 빠져도 보통 심한 지경이 아니라는 것을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다보니 그 미쳐돌아가는 세상 좀 어떻게 해보라고 만든 국가인권위원회마저 미쳐 돌아가나보다. 지금 이 사람들, 제정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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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6 20:23 2006/12/0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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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6/12/08 00:16
    Subject: 인권..

    "경제적 난민도 있다. 먹고 살기가 아주 힘이 드는 그런 경우..." 인권 아카데미 강의 중 한 수강자의 질문이었다. 질문 포인트가 거시기 하구먼.. 난민신청은 생존권이라기 보단

  1.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의 탈을 쓴 국가관료, 인권침해로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더 한번 살을 도려내는 아픔를 주는 곳이죠. '인권'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확산시키는 곳이 아니라 인권침해를 국가가 나서서 정당화해주는 곳 같아요. 인권위 때문에 마음의 평화가 깨졌던 아픈 기억이 생각나 휘리릭~.

  2. 네이버 덧글은 안 보려고 노력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뉴스에 덧글들에 국가인권위원회는 누구의 것이냐!라는 덧글들이 무수하기에 오잉하고 봤더니, 대부분 불법집회를 허가하는 인권위가 어느 국가의 인권위냐라는 거더군요. 잠시나마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만 흑

  3. 마음의 평화/ 어차피 인권위도 국가권력의 확장된 날개의 역할을 피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 있기에 이를 하라고 강제하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겠네요...

    Rory/ 그렇다고 슬퍼하실 필요까지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