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님의 덧글에 대한 답변

행인[학력이라는 말이 없는 사회] 에 달린 덧글에 관련된 글.

(덧글에선 존칭을 사용했지만 본문에서는 그냥 쓰기 쉽게 평어체로 씁니다.)

 

요 직전 포스팅이었던 "학력이라는 말이 없는 사회"에 '음'이라는 분이 덧글을 주셨다. 평소 블로그에 심각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응?)는 신조를 가지고 살던 행인이지만 손꾸락이 항상 가던 자판 위로만 가지는 않는 일이라 간혹 이렇게 심각한 포스팅을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옛말에 이르기를 하던 짓 하지 않으면 깨빡치기가 좋고 사람이 바뀌면 저승사자와 미팅이 있다는 말이 있듯이 이런 글 올리면 여러 방문객들을 혼란하게 만들고 급기야 이렇게 별도의 포스팅을 해야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교육개혁에 대해 많은 연구를 하신 분들과 비교할 때 행인이 가지고 있는 교육개혁의 단상은 구체적이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개인사적 경험을 전제로 하는 특수한 내용이 많다. 그러다보니 내 블로그라고 안심한 채 대충 생각나는 대로 글을 올리면 이렇게 빈틈 투성이의 글이 되고 기껏 힘들여 방문해주신 분들에게 오해를 일으키게 된다. 다 내 탓이다.(요즘 이걸 유시민이 써먹고 있더만...)

 

암튼 '음'님께서 제기해주신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몇 가지 생각을 꺼내보면 이렇다.

 

먼저 행인이 '전문대학원 제도'의 도입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힌다. 필요한 분야에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더불어 '대학'이라는 곳이 12년간 이루어졌던 초중등 교육의 연장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직업훈련원으로 전락한 마당에, 보다 충실한 전문적능력(여기엔 인문학적 소양과 사회학적 인식능력이 포함된다)을 갖춘 소위 '인재'를 키우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할 때 전문대학원제도가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전문대학원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더불어 '학력'이라는 것이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 않는 사회를 바란다고 해서 당장 진행되어야할 대학평준화(국립대학 네트워크가 선행되는)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적어도 대학평준화가 작금의 이 터무니없는 입시과열을 일정정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는 기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포스팅에 상세히 입장을 밝히지 않음에 따라 발생한 '음'님의 지적에 대해선 설명이 되리라 판단한다.

 

지난 포스팅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운동권 용어로(사실은 군사용어로) '전략'과 '전술'이 구사되는 과정이 적절한가에 대한 지적이었다. '말걸기'의 댓글에 대한 답글에서 밝힌 것과 같이 두 가지 측면에서 교육개혁을 생각하는 다수 대중으로 하여금 의문을 가지게 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 두가지 우려지점이 발생시키는 결과는 학력차별에 대한 문제를 덮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음'님은 현재 입시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대학평준화가 가장 핵심적인 방안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만, 행인의 관점에서는 대학평준화가 입시문제를 해소하는 결정적 방안이 되지는 못한다는 것에 차이가 있다. 다시 표현하자면 '일정정도' 문제해결에 도움은 될 수 있을 지언정 그로 인해 해결가능한 입시문제는 아니라고 보는 것이 행인의 입장이다.

 

대학을 가야만 대우받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대학이 평준화되어있다고 해도, 설혹 모든 대학이 국립화되고 어디서 학교를 다니던 학벌에 의한 차이가 없다고 해도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몸살을 앓아야 하는 일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더욱이 평준화니 국공립화니 된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같은 백화점식 종합대학체제가 공고히 유지되는 한에서는 그놈의 학벌이라는 것이 완전 해소될 가능성은 0에 가깝다는 것이 행인의 판단이다.

 

따라서 '초졸 중졸 고졸 대졸이라는 학력차별을 없애자는 말'이 '음'님의 지적처럼 급진적일지는 몰라도 이 문제만큼 입시문제를 본질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그닥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의 본질은 여전히 '대학은 나와야 밥 벌어먹고 살 수 있다'는 인식이다. 대학평준화는 한국사회 교육모순을 해결하는 중요한 방안이긴 하지만 그것이 "교육모순을 해결하는 가장 핵심적인 지점"이라는 '음'님의 입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전문대학원 제도 도입'과 관련하여 부연하자면, 당시 민교협을 비판했던 부분은 '전문대학원 제도' 자체가 아니라 그 제도의 도입을 통해 대학교육정상화가 가능할 수 있다는 관점에 대한 것이었다. 이분들의 발상을 인정하자면 예컨대 "의과전문대학원"이 들어선 후 이공계대학은 안정적으로 자기 학문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공계대학들은 "의과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용이한 학과들이 덕을 좀 봤을 뿐 이공계 대학교육 정상화는 눈을 씻고 봐도 진행된 바가 없다. '법학전문대학원'은 어떨까? 법학전문대학원이 만들어지면 문과계열 대학교육이 정상화 될까?

 

'음'님의 지적에 대한 개인적 해명은 이정도로 충분하다고 판단한다. 더 깊은 고민과 연구는 또 그러한 역할을 하는 분들이 이야기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답답함은 여전히 남는데, 진보블로그에도 간혹 올라오는 어떤 분의 교육관련 포스팅은 언제나 '인문계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의 '대학입시'가 주제일 뿐이다. '실업계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은 이미 한국사회에서 재학중에 사람취급을 못받고 있다. 이들에게 대학교육 정상화니 대학평준화니 하는 말은 대학 가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일 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9/01 02:07 2007/09/01 0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