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살아 남는 거였엄...(2)

행인님의 [중요한 건 살아 남는 거였엄...(1)] 의 시리즈.

공장생활을 하면서도 대학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군복무를 하기 전에도 그랬고, 군복무를 할 때도 그랬고, 막 전역해서 다시 복직했을 당시만 해도 대학에 대한 욕구는 없었다. 반면 대졸자들에 대한 분노는 많았다. 학력이라는 것이 공장 안에서 위계의 구분을 만들고, 그 학력을 밑천으로 학력 떨어지는 사람들에 대한 시덥잖은 짓거리들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 당연히 그들에 대한 적개심이 발생할 수밖에. 누군가 그러더라, "꼬우면 대학 가지?"

 

많이 배웠다고 해서 좋은 사람이 되는 것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된 공장생활이었다. 대학을 나왔다는 것은 하나의 권력이었다. 천박한 생산과의 '공돌이'들과 사무직 대졸사원들의 격차는 그들이 입고 있는 작업복의 때깔만큼이나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행인이야 뭐 원래 개념이 없는 인간이었으므로 대졸사원 알기를 사료푸대에 들어가는 옥수수가루 정도로 알고 있었다. 당연히 허구한 날 충돌이 일어나기 일쑤였고, 인사고과를 담당하고 있는 자들은 어차피 그들이었으므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애초부터 글러먹은 일이었다.

 

훈련병 시절, 내무반에 있던 훈련병들 중 행인과 동기생 한 명을 제외한 나머지 20여명의 동기들이 모두 대재 이상의 학력을 가지고 있었다. 훈련소 안에서 학력에 따른  차별은 형식상 없었지만, 이래 저래 배운 놈과 못 배운 놈의 차이는 여러 면에서 나타났다. 군대는 평등하다고 누가 그러더라만 그건 개 뻥이다. 암튼 좋고 편한 보직은 학력 좋은 녀석들이 다 차고 앉았다. 다만, 행인은 오히려 밖으로 싸돌아다니기 편한 통신병이 되려 힘들어도 맘에 들었다. 사무실에서 간부들 얼굴 쳐다보며 어케 사냐?

 

암튼 이런 생활이 계속되었었는데, 복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 나도 대학에 다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일이 있었다. 선배하고 만나기로 한 장소가 하필 인천의 ㅇ대학교였다.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약속장소로 갔다. 퇴근버스를 타고 나간 바람에 약속시간보다 상당히 일찍 도착했다.

 

학교 안 어디서 만나자고 했는데, 사실 행인은 그 당시 대학교에 함부로 들어가서는 안 되는줄 알고 있었다. 기냥 정문에서 만나자고 할 일이지 왜 안으로 들어가서 만나자고 했을까 하면서 선배를 원망하기도 했고, 안으로 들어가도 되나 마나 눈치도 살폈다. 조금 있다가 이렇게 많은 학생들이 드나들고 수위실에 아저씨 한 분뿐인데 내가 들어간다고 해서 학생인지 아닌지 알아볼 도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정문을 통과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쑥맥도 이만저만 쑥맥이 아니었군...)

 

가을무렵이었는데, 학생들의 표정과 차림새와 손에 손에 들고있는 책이며 가방이며가 너무 낯설었다. 일에 지치고 술에 쩔은 공장의 사람들과 학생들의 얼굴은 피부의 때깔부터가 달랐다. 어찌나 이쁘고 뽀송뽀송한지... 옷들도 화려했다. 물론 그 교정 안에서 학생들이 입고 돌아다니던 옷이 당시 패션의 첨단은 아니었을 거다. 하지만 첨단 패션의 현실을 전혀 알지 못하던 행인에게는 맨날 땟국물 줄줄 흐르는 작업복 걸치고 돌아다니던 공장사람들에 비한다면 그야말로 화려하기 그지 없는 정도였다.

 

각종 공구를 들고 다니는 공장사람들의 목장갑 낀 손들만 보다가 책을 쥔 학생들의 손을 보니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더라. 공구상자를 들고 뛰던 공장사람들을 보다가 책가방을 든 학생들을 보니까 약간의 시샘도 나고.

 

더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했던 것은 그 학생들의 나이였다. 물론 행인보다 어린 사람들도 있겠지만 어차피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사람들. 다 내 또래였던 거다. 비교가 확 된다. 같은 또래인데, 저들은 저렇게 이쁘고 곱게 살고 있는데, 나는 완전 생노가다에 인생 험악하게 살고 있구나... 줴길슨...

 

나중에 만난 선배와 코가 비뚤어지도록 술을 퍼마시다가 물었다.

"형, 나도 대학 가볼까?"

"대학 가서 뭐하게?"

"기냥, 공부하지 뭐."

"뭔 공부할 건데?"

"글쎄... 그건 아직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쉑갸. 기냥 닦고 조이고 기름이나 쳐. 뭐 할지도 생각하지 않고 대학가서 뭘 할거냐?"

 

오호... 이런 명답을. 그래서 잠깐이나마 대학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행인은 바로 마음 고쳐먹고 성실하게 일하는 모드로 돌입...이 아니라 술마시는 모드로 돌입했던 거다.

 

정작 문제는 공장생활을 하면서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는 거였다. 왠지 다 때려부수고 싶었고, 앞날에 대해 전망를 세우지 못하는 자신에 대해 분노하게 되었다. 대졸사원들과 티격태격하는 것 역시도 어쩌면 일종의 자격지심때문인지도 몰랐다. 쥐뿔도 모르는 것들이 아는척 하기는 하는 심정.

 

대졸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을 한 적이 있다. 현장실습이었는데 나름 성실히 안내해줬다. 어차피 이 사람들이 불과 1~2년 안에 상사가 될 터이니까. 그런데 교육받는 자세가 완전 개판이다. 네가 알아봤자 얼마나 알겠냐하는 표정이었다. 며칠 후 결정적으로 사고가 터졌다. 실습이 끝났으니 청소하고 마치자라고 했더니 한 쉑이 이렇게 궁시렁 거린다. "쉬파, 내가 청소할라고 대학나왔나..."

 

성질 더러운 행인, 바로 대걸레 자루 집어 던졌다.

"이 개쉐이야, 난 니 밑닦아 줄라고 여기서 5년 짬밥먹은 줄 아니?"

 

개싸움 날 뻔했는데 주변 사람들이 뜯어 말리는 통에 거기서 끝났다. 그 쉑은 다른 공장으로 전보되었고 행인은 애꿎은 소주병만 씨를 말렸다.

 

뭐 어쨌든 대학이라는 것은 그 때도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대학 나와봐야 같잖은 인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자 더 그런 생각을 했던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지만서도.

 

그럭저럭 가방끈 길이를 늘려놓은 상태인 지금, 오히려 대학이라는 공간은 좀 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야할 곳이라는 판단이 든다. 왜 대학을 가게 되었고, 어떻게 대학을 가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거기에도 꽤 웃기는 에피소드들이 많지만. 다만, "꼭 대학을 가야하는지?"라는 질문이 아니라 공부라는 것이 뭔지에 대해서 고민이 많아졌다. 대학은 하나의 수단일 뿐이니까.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 되어버린 이 희한한 사태가 웃기니까.

 

그렇다면 "대학을 가야하나?"라는 질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이야기해봐야 겠다.

 

고건 또 나중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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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6 17:17 2007/04/26 1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