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책!]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허세욱 동지의 사망에 대해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노무현이 버지니아 공대 총기난사사건의 희생자들에 대해 즉각적인 애도의 염을 발표하는 것을 보며 추모에도 등급이 있음을 새삼 깨달았던 요즘. 기분 더럽다. 이 더러운 기분에 시인 김지하도 한 몫 하는 것을 보며 생명운동의 선구자이자 김지하의 장모인 박경리 선생은 무슨 생각을 하실지 궁금한 때이다. 기분 더 더러워진다.

 

어떤 빌어먹을 룸펜이 "세상이 X같을지라도 결코 노여워하지 마라, 케세라 세라~"라고 했다던가? 사실 그렇게 살면 속은 편할지 모르나, 노여움을 거세당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결코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가슴에 돋는 분노의 싹을 잊지 않고 다듬고 키우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어 나가는 것이겠지. 그래서 이 분노를 꼭꼭 눌러담아 마침내 더 이상 눌릴 길 없어 폭발하는 그 순간에 그래도 뭔가 조금이나마 바뀌는 것이 있지 않겠나...

 

이렇게 근엄한 마음으로 살아가려니 속이 답답하다. 언제 그 폭발의 순간을 기다리나? 지금 당장도 폭발하기 직전인데. 이렇게 열이 활활 나는 순간 손에 잡힌 책 하나가 하룻밤을 꼴딱 세우게 만들었다. 그리곤 솟구치던 울화통을 희미한 미소로 바꾸어주었다.

 

그 책은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었다.



인류의 100%는 자궁의 은혜를 입고 태어나지만 정작 그 자궁을 가지고 태어난 50%는 아직도 차별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채 살고 있다. 그리하여 이 차별받는 50%는 자신들이 가진 본연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당위는 그러하지만 그 노력을 현실화하기는 힘들다. 현실화하려는 순간 체제에 대한 도전, 미풍양속과 사회질서를 혼란에 빠트리는 부도덕한 자들로 낙인찍히기 쉽다. "빨갱이"라는 낙인만큼이나 아직은 두려운 "페미니스트"라는 낙인 말이다. 그것도 자궁을 가지지 '못한채' 태어난 50%에 의해서.

 

운동하는 사람들의 거개가 그러하듯, 페미니스트 '운동'의 영역에서 역시 엄숙하고 근엄한 무엇인가가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벗어나는 순간 경박하다는 비판과 함께 "이 엄혹한 시기에" 어쩌구 하면서 욕을 먹기 십상이다. 그래서 항상 경건한 자세로 현학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운동의 순수함을 몸으로 보여주려 한다.

 

그러나, 아주 유쾌하게 이런 엄숙함에 메스를 가하는 사람도 있다. 발랄하면서도 상큼하게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면서, 찰나에 지나치는 재기넘치는 말 몇마디로 사람을 웃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서도 그 웃음 뒤에 두고 두고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되는 화두를 슬쩍 묻혀주는 재주마저 가진 사람이 있다. 물론 드물다. 그 드문 사람 중의 하나가 조주은이다.

 

가끔 조주은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보면 정말 시간가는 줄을 모른다. 조주은쌤은 사람을 웃게 만든다. 머릿속이 하얗게 될 정도로 즐겁게 만들기도 한다. 무서운 것은 그러한 즐거움이 단지 한 순간 시간 때우기 좋은 정도의 수준에서 머물지 않도록 조절한다는 거다. 그게 의도적인지 아니면 타고난 재주인지는 모르겠으되 전자라면 치밀하다못해 약삭바른 것일테고 후자라면, 뭐 태생이 그러려니 해야할 판이다.

 

그게 태생적이건 후천적이건 간에 조주은쌤이 이야기하는 것이 웃음과 동시에 고민을 던져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그 내공에 있을 거다. 이냥반이 쓴 '현대 가족 이야기'를 봤을 때만 해도 그 내공은 이미 대충 짐작이 가는 것이었다. 처음 행인은 '현대 가족 이야기'를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긴줄 알고 봤다가 나중에 그것이 "현대"라는 거대그룹 안에서 살아가는 노동자와 그 "가족"의 이야긴줄 알게 되었을 때 솔직히 쬐끔 당황했었다.

 

'현대 가족 이야기'에서 조주은 쌤은 노동자의 아내이자 또다른 노동자일 수밖에 없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그 책에서 노동자의 아내들은 노동자에게 착취받는 또다른 피억압층이었음이 낱낱이 까발려진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 스스로 자부했던 노동자들이 실은 세상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에 얼마나 혜택을 받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꺼끌꺼끌한 무엇인가가 뒤통수를 벅벅 문지르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이 가지는 비중도 비중이지만 '현대 가족 이야기'에서 조주은 쌤의 내공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의 전개가 아니라, 노동자의 아내들로 하여금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꺼내놓게 만들어놓는 조주은 쌤의 능력이었다. 아무리 여성에 대해 여성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했다고 할지라도 노동자의 아내가 노동자인 남편의 문제, 그 문제에서 파생하는 자신의 문제를 쉽게 꺼내기는 어려울 것이었고, 더구나 그 공간이 울산이라는 "현대"의 아성이었다면 노동자의 아내들이 어떻게 그토록 민감할 수밖에 없는 내면의 이야기를 조주은 쌤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암튼 이런 내공을 가진 조주은 쌤인데.

 

여러 매체에 올렸던 칼럼형식의 글과 자신의 레포트를 정리하여 하나의 책으로 묶어낸 것이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다. '현대 가족 이야기'보다는 훨씬 덜 딱딱한 글들일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읽다보면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하기도 하고, 저절로 폭소가 터져나오게도 만드는 것을 보면서 참 맛있게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조주은쌤이 건드리는 문제는 일단 남성들에게 매우 부담스러울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인격적)구분 자체가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행인의 입장에서조차 간혹 난처한 부분이 있다. 지독한 마쵸이즘의 화신으로 살았던 십 수년 전의 행인이었다면 아마 이렇게 욕을 했을 것이다. "이런 꼴페미 같으니라고..."

 

그러나 내용을 구체적으로 꼼꼼히 들여다보면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을 스스로 쾅 찍어놓은 조주은쌤의 이야기는 단지 "여성"에 대한 애정과 "여성"의 해방만을 목적으로 쓰여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페미니스트"라는 낙인과는 어울리지 않게 조주은 쌤의 글은 사실 모든 인간을 향한 이야기이다. 경건하고 근엄하며 방향성이 명확한 운동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혹시라도 "페미니즘" 운동의 방향을 흐리는 논점이라 비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을 읽는 사람이 "남성 진보주의자"라면, 또는 "남성 노동자"라면 이 책은 더욱 부담스러울 수 있다. 자칭 진보주의자를 주장하면서, 또는 자칭 "철의 노동자"를 주장하면서 세상의 변혁을 부르짖는 남성들의 상당수에서 발견되는 엄청난 자기모순을 조주은 쌤은 아주 예리하면서도 즐겁게 찢어발기고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 가지고 있는 장점은 결코 엄숙하지 않다는 거다. 그러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다는 거다. 조주은쌤은 자신의 경험을 아주 솔직하게 드러내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를 들면, 자신을 사랑한다고 이야기했으면서도 사실은 이미 다른 사람과 커플이 되어 있었던 선배의 이야기(책 146~147쪽)나, 세례명이 생리대 상품 이름과 같아서 쪽팔려 했던 기억(책 240쪽)같은 소소한 이야기로부터 문제를 풀어나간다.

 

그런가 하면 강사나 문예활동가 등에 대한 노동의 댓가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면서 노동운동이랍시고 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경험(책 178~179쪽)이나, "생각이 깨어 있다는 부모가 대안학교를 보내려는 욕망이나 중상류층 부모가 자녀를 외국으로 유학 보내려는 욕망은 동전의 앞뒷면"임을 확인하는 과정(책 245쪽)에서는 씁쓸하거나 또는 섬찟한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가볍게 시작했지만 결코 가볍게 끝나지 않는 조주은쌤의 글들은 이성적으로는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책을 덮고 난 다음에 "그럼 너는?"하고 나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에는 선뜻 "난 다 할 수 있어"라고 답할 수 없었다. 여성의 희생에 근거한 남성노동자들의 투쟁성과 도덕성 확보("철의 노동자는 반역이다")에 대해 내 스스로에게 "네가 결혼해서 너의 반려자에게 그런 희생을 감수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할 수 있나?"라고 던진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할 수 있겠나?

 

머리는 가지만 가슴은 가지 못하는 이 괴리감을 조주은쌤은 잘근잘근 씹어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씹어주는 과정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이 씹어주는 맛은 씹힘을 당하는 입장에서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조주은쌤이 건드린 다양한 분야와 주제와 담론은 다양한 입장에 설 수밖에 없는 개인에게 다양한 동의와 함께 다양한 문제의식을 동시에 느끼도록 조장하기 때문이다. 맞아 맞아 하면서 읽다보면 어라? 이건 아닌데? 하기도 하고, 또 그러다가 "아, 혹시 나도?"하는 의문과 때론 부끄러움을 가지게 하는 것이 바로 이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이었다.

 

유쾌, 상쾌, 통쾌한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놓는 재기발랄 명랑싱싱한 조주은쌤의 당차고 시원한 글을 읽다보니 피곤에 쩔은 몸인데도 밤을 홀라당 새우고 말았다. 그 덕택에 다시 피곤에 쩔은 하루를 보내고 있지만서도 아직까지 머리 속이 맑은 것은 밤새 이 책을 보며 실실 웃다가, 심각하게 인상을 그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혼자 쪽팔려 하면서 낯을 붉히다가 하느라고 몸이 피곤하지 모른 채 시간을 보낸 덕분일 것이다. 그 시간에 몸이 푹 쉬었겠지.

 

철저한 페미니스트들이라면 뭐 이 책을 안 읽으셔도 무방하겠다. 삶과 이론이 하나로 일치되어 움직이시는 페미니스트들은 이 책을 안 읽으셔도 이미 다 내용을 꿰뚫어보고 있을 수도 있겠다. 책 서두에 조주은 쌤이 이렇게 밝혀놓았다.

 

"이 글에서 기대되는 독자는 (사회변혁 운동에 참여하고 있거나 그런 경험이 있는) 남성이다. 또한 내 전공이 가족이다 보니 가족(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 역시 기대되는 독자다"

 

책을 읽어본 결과, 역시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이 읽을만한 것이라고 강추하게 된다. 꼴통 마쵸들이 이 책을 읽고 감화받아 달기똥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그동안 이 지구상의 절반의 사람이었던 여성들에게 자신이 했던 온갖 구린 짓들을 참회하는 일은 아마도 거의 발생하지 않을 것이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함으로써 혹시라도 관심을 가졌을지 모르는 꼴마쵸 독자의 구매욕구를 저하시키는 바람에 인지대 수입에 막대한 지장을 끼쳤다고 조주은 쌤이 항의하실지 모르겠으나 그건 뭐 별 수 없다. 어차피 마쵸 행인이 여기까지 교화되는 과정도 십 수년이 걸렸으니 십 수년 후에 오늘날의 꼴마쵸가 을지로 어느 중고책방에서 조주은 쌤의 "페미니스트라는 낙인"을 발견한 후 환호의 함성을 올리길 기원할 밖에.

 

그래서 꼭 한 번 보라고 하고 싶은 분들. 우선 민주노동당 지도부 여러분들 중 남성여러분. 민주노동당 남성 활동가 여러분. 민주노총에서 노동해방의 한 길을 향해 쎄가 빠지도록 뛰고 계신 남성 활동가 여러분. 헌신적인 내조에 힘입어 국회의원 한 자락 하면서 과거의 영광을 팔아먹고 있는 세칭 386 여러분. 꼭 한 번씩 보시면서 뜨끔뜨끔한 그 짜릿함을 느껴보시라.

 

여성동지들이야 뭐 당연히 보실만 하리라. 잘근잘근 씹어주는 맛이 일품이니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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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0 12:08 2007/04/20 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