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지근성

중학생때였는데, 몇 학년때였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고, 아무튼 행인이 징글징글하게 싫어하는 선생님 한 분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노력 없이 결과를 바라는 거, 남 잘 되는 거 보면서 배아파 하는 거, 기타 등등 이런 거 저런 거, 이게 거지근성이다. 니들의 거지근성을 고쳐놓겠다"

 

고치는 방법은 구타였다. 대걸레 자루 몇 개가 작살이 나고, 애들 엉덩이에 피멍이 들었다. 행인이야 뭐 두드려 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노력 없이 결과를 바랬으니. 그러나 같이 주어 터지던 애들 중 몇은 참 억울했을 거다. 걔들은 밤낮없이 노력을 했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는 걸 어쩌란 말이냐...

 

매타작을 했던 그 선생님은 여러 측면에서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많고, 선생같이 여기지 않던 인물 중 하나였지만, 그 "거지근성"이라는 말, 이건 참 기억에 많이 남는다. 물론 이 말이 구걸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다. 또한 빈곤의 책임을 사회가 지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개인의 몫으로 전가하는 책임회피의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차원이 아니라 진짜 안 좋은 의미에서 이 "거지근성"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의외로 꽤 된다.

 

근래 이 뭣같은 근성을 시시때때로 보여주는 집단이 있는데, 다름 아닌 정부 여당이다. 특히 선거철만 다가오면 흰 소리를 늘어놓으면서 예의 그 '민주대연합', '반한나라당 선거연합'과 같은 이상한 구호를 내지르면서 통 큰 단결 요구한다. 대한민국 최대 의석을 가진 정당이면서 정권까지 가지고 있는 정당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치졸하다.

 

지난 2002년 대선 당시에는 민주노동당이 대통령 후보를 사퇴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더니 2004년 총선에서는 유시민이 눈물 콧물 흘려가며 전략적 투표가 필요하다고 징징거렸다. 후보단일화가 정몽준의 옆차기 한방으로 끝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상당수 민주노동당 후보에 대한 지지를 유보하고 노무현을 찍고 나자 유시민, 민주노동당 지지자들에 의한 변수는 그리 크지 않았다고 씩 웃어버렸다. 2004년 총선에서는 비례대표는 민주노동당 후보는 열우당 찍어달라고 하소연을 하던 유시민, 결국 비례표는 물론이려니와 지역구 후보에게 돌아갈 표까지 싹 쓸어갔다. 그리고 나선 당연한 결과라나...

 

그런데 이런 발상은 유시민 개인의 머리속에서 나오거나 개인적인 바램이 아니었다. 총선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얼굴도 쳐다보지 않는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나름대로 지역구에서 어른으로 대접받으시던 분이다. 사회과학서점을 운영하기도 하고 운동하는 학생들의 뒷바라지도 많이 했고 여러 단체에 글보시도 많이 하시는 분이다. 이 분이 민주노동당 지역구 후보의 후원회장이 되셨다.

 

선거막판에 유시민이 갑작스레 전략적 투표를 이야기하지 민주노동당 후보의 후원회장이었던 이 분이 자기 홈페이지(정확하게는 까페)와 메일링리스트를 통해 열우당 후보를 찍어주자고 선동을 했다. 선거를 하루 앞두고 벌어진 이 사태에 당황한 행인, 그 분에게 전화를 넣고 도대체 이게 뭐하는 플레인지를 여쭙고 까페에 계속 글을 올리고 하다가 그래도 해결이 되질 않아 찾아가 항의를 했다. 이분, 노무현을 탄핵하는 것은 반민주행위이고 이러한 반민주행위를 저지른 한나라당을 심판하기 위해서는 사표를 줄이는 것이 필요하고 사표를 줄이기 위해선 열우당 후보를 찍어야 한다는 거다.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이 분은 당원이 아니다. 워낙 지역에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신망이 있으신 분이라 후원회장이 된 거다. 항상 운동의 원칙을 이야기하면서 변절을 걱정하던 분이다.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항상 염려하던 분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신망이 쌓이게 된 거다. 그런 분이 돌연 자기가 후원하는 후보를 찍지 말자고 하니 이 분을 신뢰하는 많은 사람들의 표가 최소 몇 백표 열우당으로 날아가버렸다. 졸지에 닭 쫓던 개된 민주노동당 지역위, 선거로 쪽박차고 표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아직도 그 궁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때마다 이런 짓을 하고 있는데, 이거 달리 표현할 방법도 없고 딱 "거지근성"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제버릇 개 못준다고 이 짓거리 하던 인간들 또 시작했다. 얼마전 경남도지사선거와 울산시장 선거에서 '전략적 제휴'를 하자고 김두관이가 뻘소리를 하더니 이번에는 부산시장 선거를 두고 오거돈이가 '후보단일화'를 제안했다. 제휴고 단일화고 간에 그런 거를 하려면 뭔가 통하는 것이 있어야 하는 것인데, 솔직히 열우당 구성원들, 도대체 민주노동당과 뭐가 통하는 것이 있다고 이런 뻘짓을 자꾸 하는 걸까?

 

까놓고 열우당이 단일화를 이야기할 대상은 민주노동당이 아니라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 되어야 한다. 한나라당과 열우당의 차별성은 입으로만 떠는 색깔에 있지 그 속은 똑같이 보수 일색이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보다는 한나라당이 열우당의 입장에서는 더 통하는 면이 많지 않겠는가? 정 그게 어색하다면, 쪽박까지 다 깨놓고 깽판치듯 우르르 몰려나와 집구석 다 망해버린 민주당 본가로 기어들어가던지.

 

만만한 게 뭐라고 하더니 이것들이 민주노동당을 호구로 아는 건지 가관이다. 으리번쩍하게 금뱃지 달고 한 국가의 장래를 좌지우지 한다고 해서 그 뱃속 깊이 박혀 있는 "거지근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페어플레이고 나발이고 간에 일단 선거철이 되면 표 구걸하고 신파눈물흘리고 애걸복걸하다가 막상 지들 원한 대로 표 나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쌩까고, 표 안나오면 지들 못난 거는 생각 못하고 민주노동당이 사표를 만드네 어쩌네 궁시렁 거리고.

 

어떤 때는 가끔 그 징글징글하게 싫어했던 중학교 때 선생님에게 이것들을 꼰질러서 대걸레자루 몇 개 부러질 때까지 흠씬 주어 터지게 했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다행인줄 알아라, 그 선생님 연락처 잃어버리고 산지가 20년이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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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6 10:59 2006/04/26 1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