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 온 편지

방금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그런데, 발신지가 교도소다. 무슨 편지일까 궁금해서 얼른 뜯어보았다. 그리고 편지를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지고 힘이 든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일단 블로거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를 해보고 싶어 편지 전문을 올린다. (발신인을 익명으로 해야하는가 고민하다가 전문을 그대로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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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식씨에게

 

먼저 이 편지를 보고 화가 나지 않을까란 걱정이 들지만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어서 보냈으니까 좀 이해해 주십시오. 그리고 바쁘신 중인데 이렇게 읽으신 기회를 주신 것에 고마움을 느끼고요.

 

그래서 짧게 소개를 하자면, 전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로 지금 김천교도소에 수감중인 다산인권센터 자원활동가 이승규라고 합니다. 물론 이미 아시겠지만 지금도 '국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이라는 '양심의 기반' 위에 '재소자의 본인확인수단을 지문날인으로만 인정하는 현행규정'에 저항하는 '지문날인거부'를 258일째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수감한 경력이 없으면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이미 관련된 국가인권위 결정이 있지만, 또 다시 인권위에 진정하고-아직 결정이 안 되었고 기각한 결정 때문에 기대할 수는 없지만- 제 스스로 교도소측에게 최소한의 대책-영치금 사용, 영치품 수령을 서명으로 확인 가능-을 마련해달라고 하였지만, 대답은 규정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는 답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장기화가 되고, 밖에선 병역거부자운동을 하는 활동가 중심으로 대응을 한다고 하지만 지금은 서적류와 편지에 동봉한 우표 이외에는 일절 구매와 수령을 하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다만, OO(판독불가)에선 나름대로 노력을 하는 흔적이 있으나, 본질적인 대책을 수립할 수가 없이 사실상의 '경제제재'를 당하고 있지요.

 

왜? 이런 일을 썼는지 아시겠지요? 전 윤현식씨가 예전에 '지문날인반대연대'에서 활동하였다는 걸 알고 있기에, 제 자신이 인권활동가이고 같은 단체에 있는 박김형준씨에게 많이 배웠으나 솔직히 병역거부에 대해 논리가 정연해도 그 밖에 OOOO(판독불가)에 대해선 빈약함을 느꼈기에 이렇게 늦게나마 관심과 지원을 바라고자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유가 없는 건 아닙니다. 전 솔직히 열지문을 국가에 저당당하면서 주민등록증을 받았지만, 병역거부를 선언하면서 지문날인제도에 대한 반인권성과 앞서 쓴 병역거부사유-'국가의 부당한 명령에 대한 불복종'-에 따라 앞으로 지문날인 거부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래서 경찰 및 검찰조사를 임하면서도 지문날인을 거부하였고 수원구치소에 입소한 작년 8월 2일에도 당연히 지문날인을 거부하여 서명으로 할 것을 요구하면서 어느 정도의 성과는 있었으나 바로 불이익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신체가 억압을 당하는 것인 징역살이 자체가 심신이 힘든데 피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격론을 하고 나니까, '국가안보', '병역거부 수감자는 양심수이기에 범죄자가 아니다', '재소자도 하나의 시민이기에 지문으로만 수인확인이 가능하다는 관행에 거부한다', '소수자연대' 등의 생각을 하면서 '양심에 따른 지문날인 거부자'라는 명칭이 어울린다는 결론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감옥인권개선'이라는 저의 사명에도 있듯이 적어도 출소할 때까지라도 이 행동을 멈출 수 없고 끝까지 갈 것입니다.

 

윤현식씨!

 

그렇다고 해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닙니다. 다만 저도 민주노동당 당원이기에 그토록 첨예하게 맞서고 있는데도 거대 담론에 몰두하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서운함과 분노가 많았었습니다. 특히 병역거부에 대한 당의 태도의 극단적 변화는 '진보정당'이 맞는지 묻고 싶은 정도입니다.

 

물론 '붉은 이반' 등의 사례가 있듯이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어떠한 성과가 없다는 걸 느끼게 되었지만, '병역거부권 인정이 당론이다'라는 이덕우 인권위원장이 말하는 걸 되짚어 보면 솔직히 '뭐 하는 것이 있나?'라고 묻고 싶었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속이 좁은지 뒤늦게 공태윤씨-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네요-에게 이의를 하였는데... 미안하다는 답일 뿐이었죠.

 

저의 일이 병역거부 쪽으로만 갔지만, 앞의 당의 태도처럼 이렇게 법규에 의해 인권침해를 당하면 당은 관련규정 개정을 요구하면서 당 인권위 차원에서 조사를 할 수 있는 등의 대응을 해야 하는데도-실제로 유승희 전 최고위원이 장소변경접견시 요구를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아직도 무반응이라는 건 솔직히 답답합니다.

 

물론 읽으시면서 답답하실 것입니다. 내용을 봐도... 글씨를 보아도(?). 그러나 이젠 다른 건 필요 없습니다. 마음같아선 당 인권위나 노회찬 의원실 등에서 제의를 해달라고 하고 싶지만 지금은 최소한의 소통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전에는 공태윤씨가 있었는데 지금은 누군지 모르구요. 그 다음 필요한 정보를 구해주면 좋겠고 일반우편(등기는 안 됨)에 우표를 넣어서 답장을 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그럼 이 불순한 글을 끝까지 읽으시는 걸 고마우며 다음에...

 

2006. 4. 16 김천교도소에서 이승규 올림

 

(주소) 740-600 경북 김천시 김천우체국 사서함 12호 김천교도소 56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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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갑하기가 한량이 없다... 수감자에 대해 수시로 지문을 찍으라고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그대로 인정하고 마는 국가인권위원회나 당원이 이렇게 혼자 싸우고 있는데 도움도 주지 못하는 민주노동당이나... 이런 편지가 와서야 답답해하는 내 자신이 환장할 정도로 초라해보이고...

 

글을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어서 오독을 하거나 판독이 불가능한 단어도 있었지만, 어쨌든 굳굳하게 싸우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었고, 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어떻게 진행을 해야할까... 뭐가 이 분에게 가장 적절한 지원과 도움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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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1 18:18 2006/04/21 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