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냥..."에 대한 변명

행인님의 [기냥...] 에 관련된 글.

기냥 열받은 김에 한 푸념 한번이 사회적...은 아니고 블로그적 물의를 일으켰나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기냥..."에 언급된 직종의 전문업을 전혀 해보고싶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직은 그런 직종에 가기 보다는 그런 직종을 가지지 않으면서 그저 평범한 개인으로서 뭔가를 할 수 있음을 증명해보고싶은 욕망이 많다. 나 자신에게 증명하고픈...

 

쬐끔 늦으막히 들어간 학교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별 짓을 다해봤지만 별로 후회하는 것은 없다. 그러나 후회하는 것 중 대표적인 것은 "학생회"를 맡았던 일이다. 학생회를 맡아서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 대해서,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만족한다. 어느 집단처럼 모든 것을 "승리적 관점"으로 해석해서가 아니라 실제 내 능력만큼 일을 했고, 그 일한 만큼 목적한 바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회"를 맡았던 배경에 대해 후회한다. 애초 무슨 "장"이니 "대표"니 하는 자리에는 경기를 일으키는지라 별로 임원 같은 거 하고픈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없다. 그런 행인이 왜 "학생회"를 맡았던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비공인 찌라시를 생산해내는 일을 아무도 맡기지 않았는데 지 혼자 방세 빼가면서, 후배들 닥달해가면서 진행하던 행인, 지하언론이던 공인언론이던 간에 글질을 하려면 정보가 필요한 법이고 그 일을 하다보면 남들이 모르던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가 알게 된 사실 중 재단과 관련된 일이 있었고, 그 건에 대해 파고들게 되었다. 하지만 날고 기는 홍길동도 아니고, 정보를 캐내는 것이 한계가 있어서 결국 학생과를 찾게 된 행인. 학생과 담당직원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행인 : 이러이러한 건이 있던데, 관련된 저러저러한 자료를 좀 주세요.

직원 : 학생입니까?

행인 : (뻘쭘...) 예 학생인데요.

직원 : 무슨 과에요?

행인 : 거시기 괍니다.

직원 : 학생회에요?

행인 : 아니요?

직원 : 그럼 동아리연합회?

행인 : 아닌데요?

직원 : 그럼 뭔데?

행인 : 학생인데요?

직원 : 아니, 뭐하는 학생이냐고?

행인 : 학생이 공부하는 학생이지 뭐 딴 학생이 있어요?(사실 공부 안 하기로 소문난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하는 것이 어찌나 쑥스럽던쥐... ㅋ)

직원 : 아무 것도 아닌데 그건 알아서 뭐하려구요?

행인 : 학생이 학교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물어보는 건데 꼭 무슨 학생회 이런 거 하는 학생들에게만 알려주는 겁니까?

직원 : 아, 글쎄 정 필요하면 단과대 학생회나 총학생회 통해서 요청해요.

 

이런 식으로 서로 신경질을 부리다가 어영부영 이야기는 끝났다. 이후에도 같은 건과 다른 건 등으로 여러 차례 요청도 하고, 싸움도 해봤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결국 부아가 치민 행인, 그래 까이꺼 내가 한다, 학생회~! 이렇게 되어서 학생회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1년 간 학생회활동을 하면서 느낀 것은 학생회 활동을 한다고 해서 근본적으로 뭔가 차이가 나는 것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아무 직위에 있지 않은 학생으로서 학교에 대해 요구를 하고 이를 관철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 필요한 것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계속 떠나질 않았다. 물론 정신없이 학생회 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그런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지만 임기 끝날때쯤부터 끝난 후에도 한참동안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누구나 자신의 권리를 향유할 수 있고, 그 권리를 향유하는데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는 사회. 그리고 그러한 권리를 향유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보장과 시스템이 이루어지는 사회. 그게 가장 이상적인 사회라면, 그리고 그러한 이상적인 사회를 향한 바램이 아직도 살아있다면, 힘들고 어렵더라도 내 위치라는 것을 똥고집처럼 고수할 필요도 있을 것 같다. 하긴 뭐 지금 이 위치, 이거도 내겐 엄청난 신분이다. 몸에 걸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자주 있을 정도로 일종의 사치다. 괜시리 시건방져질까봐 겁나는 자리이다.

 

사실 그까이꺼 무슨무슨 "사"자 붙고, 직위가 하늘만큼 높아봐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 자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가 중요하지 않은가? 마빡에 새똥도 벗겨지기 전부터 책상머리에 "미래의 대통령"이라는 표어를 붙여놓고 살았다던 그 사람. 대통령은 수단일 뿐인데, 그 수단을 목적으로 달려가다가 결국 한 국가를 난파선으로 만든 사람이 있다. 행여 그런 우를 범할까 무섭다.

 

푸념은 함부로 할 일이 아닌갑다. 다시 한 번 되새길 일이다. "多言數窮不如守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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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9 14:58 2006/04/19 14: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