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의 법과 지상의 법

일요일 여의도 당사 근처는 차가 빽빽하다. 벚꽃축제때문인가? 천만의 말씀이다. 윤중로 벚꽃축제가 아니더라도 이 근처는 일요일만 되면 차가 사람보다 많다. 왜냐? 순복음교회 때문이다. 말씀을 들으러 오는 신자들의 발길은 일요일마다 근처의 교통을 마비시킨다. 거의 성지순례수준이다. 과거의 성지순례가 먼 길을 걸어가는 그 자체로 자신의 성의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면 요즘은 시원한 강변도로를 자동차로 온다는 차이일 뿐...

 

신기한 것은 믿는 사람은 이렇게 많은데, 왜 하느님의 말씀은 예배당 안에서만 웅웅거리는가 하는 거다. 한 조사에 따르면 17대 국회의원 중 75%가 종교인이란다. 이 중 개신교 신자는 113명, 천주교신자는 70명, 불교신자는 40명이라고 한다. 기타 종교인도 있겠는데, 그건 안 보이네... 어쨌건 전체 의원 중 37%가 개신교인이고, 종교를 가지고 있는 의원들 대비로는 개신교가 50%에 가까운 비율을 차지한다. 할렐루야... 국회의사당은 사실 복음의 전당이었던 거다.

 

그런데, 복음의 전당 국회에서 벌어지는 기기묘묘한 행태들을 예수가 보면 뭐라고 할까? 특히나 없는 놈 쥐어 짜고 있는 놈 뒤바주는 법률들을 속속 만들어내는 사람들 보면서 예수가 기뻐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예수 가라사대들을 훑어보면 국회의원들 하는 짓들이 예수의 제자감이라기보다는 예수한테 맨날 놀림이나 받았던 바리새인들과 별반 다를 바가 없는 듯 하다. 그들의 말은 듣되 그들의 행동은 따르지 말지니...

 

복음이라는 것이 예수 후대 그 제자를 자칭하는 자들에 의해 쓰여진 것이니 그게 진짜 예수의 말인지, 아니면 예수를 빙자한 지들의 말인지 헷갈리기는 하다. 혁명가 예수가 종교의 창시자로 변질되어버린 점에 있어서는 통탄을 금하지 못할 일이나 어쨌든 그 혁명가의 말과 행동 일부가 이렇게 전해내려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일 게다. 그런데 요즘 그 예수를 둘러싸고 또 이런 저런 말이 많이 나오고 있다.

 

얼마전 얼핏 뉴스를 보니 예수가 물 위를 걷는 기적을 보였던 갈릴리 호수가 사실은 얼어붙은 빙판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물위를 걸어가 고기를 낚는 어부들에게 사람 낚는 어부가 되라는 가르침을 준 예수가 사실은 빙판위를 걸어가 그 가르침을 줬을지도 모른다는 설이다. 그렇다면 그 때 고기를 낚던 그 어부들은 얼음낚시를 하고 있었던 건가? 빙판에 구멍 뚫고 낚시 의자에 앉아서??

 

이번엔 또 근 2000년 가까이 감추어져 왔던 유다복음이 공개된다고 해서 난리다. 예수의 사망과 부활을 위해 유다가 배신자의 오명을 뒤집어 썼고, 결국 유다로 인해 예수의 행적이 완성된다는 내용이란다. 이미 사해문서를 비롯한 여러 문서들이 논란의 대상이 된 바 있고, 이러한 '외경'들은 '정경'이라 불리는 현재의 복음서들에 밀려 이단의 교리로 몰린 바 있다. 어쨌든 또 시끌벅적한 교리논쟁이 벌어질 참이다.

 

압권은 영화 '다빈치코드' 상영반대운동이다. 한기총을 위시한 교단에서 영화 '다빈치코드'의 상영을 반대하면서 서울중앙지법에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했단다. 소설을 보고 느낀 점은 예전부터 많이 돌아다니던 이야기를 잘 짜깁기 했다는 것이었다. 원래 음모론과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던 행인, 어릴 적부터 온갖 기상천외한 사건 사고에 관한 책을 즐겨 읽었더랬다. 유령, UFO, 괴수, 타임머신, 불가사의, 기적 뭐 이런 등등에 대해 관심이 좀 있는 사람들은 결국 종교이야기에 귀착하고 만다. 그리스도교 뿐만 아니라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고대 종교와 인도의 갖가지 종교까지 희안한 이야기가 있다면 다 섭렵하게 되어 있다. 예수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도 무궁무진 하다. 그런 이야기들 중에서 특히 예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종합적으로 잘 꾸며 놓은 것이 다빈치 코드였다. 그러다보니 소설적 재미 이외에는 그닥 새로운 이야기가 없었다. 다만, 미술에는 문외한인 행인이 소설을 보면서 서양(중세와 르네상스) 미술에 대해 아주 쬐끔 알게 된 것이 있다면 있을 뿐.

 

예컨대, 한 때 영국의 고고학자들이 예수의 가족묘를 발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가족묘에는 예수의 부모는 물론이려니와 예수, 그리고 막달라마리아의 자리까지 있었단다. 이게 사실로 인정될 경우 지난 2000년 동안 예수의 부활을 믿었던 수십억의 그리스도교인들은 뻥을 진실로 믿고 살았던 것이 된다. 그래서 그 사실의 공표를 막았다나 어쨌다나... 암튼 이런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성배가 사실은 어떤 문서였다는 둥, 성의가 여러 벌이었다는 둥 하는 이야기들이 이런 저런 사료를 근거로 설득력있게 다루어진 책들이 무척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들이 한국 개신교의 확장에 별로 악영향을 끼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어차피 예배당 다니는 사람들이야 신학자가 아닌 이상 그런 책을 볼 일이 없고, 그저 목사님 설교말씀이나 잘 듣고 할렐루야 아멘 하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헌금내고 한 달에 한 번씩 십일조나 바치면 천국행 티켓 예매는 끝이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이 좀 더 좋은 말씀 많이 해주고, 그 영화 개뻥이다라고 하면 순박한 신도들, 기냥 목사님 말씀 믿고 만다. 그런데 왜 이 난리를 벌이는 걸까?

 

한기총에서 발표한 성명은 전문을 찾을 수가 없어서 관두고, 한기총이 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하면서 발표한 보도문을 보면 이사람들의 위기의식이 무엇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이들이 기분나쁜 이유는 우선 "이 영화는 예수님의 신성과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에 기초한 기독교의 기본교리를 왜곡할 뿐만 아니라 그 줄거리는 교회가 살인을 불사하면서까지 예수님 후손의 생존 사실을 숨기려 했다는 음모론을 기초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거때문에 남한 내에 1300만 교인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는 개신교가 화들짝 놀라는 것은 좀 오바다 싶다. 음모론이야 뭐 어느 시대에나 있었던 일이고, 이만한 음모론으로 교회가 박살이 날 거라면 지난 2000년 동안 박살이 나도 골백번은 났겠다.

 

그런 음모론으로 충만한 이 영화가 상영될 경우 "허구를 역사로 착각하게끔 하여 일반인은 물론 기독교인들에게 소설보다 더한 혼란과 갈등을 초래하게 될 것은 명약관화"하단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허구를 역사로 착각"하는 현상이 가장 극명하게 보이는 집단이 종교집단이다. 그 착시현상으로 인해 오늘날에도 수많은 종교들이 새로이 생겨나지 않는가? 가장 최근의 줄기세포교를 비롯해서... 게다가 그토록 절실하게 "역사"를 믿고 있는 신도들이라면 '다빈치코드' 아니라 '다빈치 할애비 코드'가 나와도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종교지도자들이 신도를 너무 못믿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차피 구원받으실 분은 하느님이 다 알고 계신다. 방패에 십자가 그려놓고 약탈전쟁을 "성지탈환전"으로 포장했던 십자군 전쟁 당시 한 지역에 대한 공격을 앞두고 교황 특사 아르노에게 책임자가 이렇게 묻는다. "어린이나 기독교인들은 살려둬야 하지 않을까?" 이 때, 아르노의 대답. "모두 죽여라. 하느님은 자신의 백성을 알고 계신다." 차라리 잘 되었지 않은가? 이 참에 '다빈치코드' 보고서 구원의 말씀을 의심하는 자, 모두 지옥불로 떨어지리라. 목사보다야 하느님이 더 잘 아시지 않겠나?

 

한기총, 평소에 하는 일을 볼 때, 하느님의 말씀을 정말 잘 포교하고 있는지 의심가는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사학법 개정 반대에 가장 목소리를 높였고, 지금도 사학법 재개정을 소리높여 외치는 선두단체가 바로 한기총. 야훼와 예수가 언제부터 그렇게 사유재산제도를 옹호했는지 그거부터 설명을 해줘야할 텐데 여기에 대해선 한 마디도 하지 않은 채 교리의 가르침이 위험해질 수 있다는 뻘소리만 하고 있다. '다빈치 코드' 반대하기 전에 우선 야훼와 예수가 어떤 취지에서 사유재산을 옹호하고 있는지부터 교리적으로 이야기해줬음 싶다.

 

건 그렇고... 오늘 일요일. 뭔가 하려고 당사에 나왔는데, 할 건 하지 않고 지금 뭔짓을 하고 있는 거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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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09 16:36 2006/04/09 1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