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2백리...

노무현이 비장한 얼굴로 독도문제에 대한 "강력대응"을 천명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약 10분 정도 진행된 대통령 특별담화는 구구절절히 일본에 대한 경고와 정면대응의 결의가 넘쳐 흘렀다. 결의의 클라이막스는 다음 문장이다.

 

"일본 정부가 잘못을 바로 잡을 때까지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 밖에도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할 것입니다.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 가슴이 부르르 떨리지 않는가? 한 세기 가까이 지나는 동안 혈관속에서 잊혀져가던 기미년 만세소리의 뜨거움이 뒤통수를 힘껏 때리며 살아나지 않는가 말이다. 반세기도 훨씬 전에 한반도를 태극기로 덮으며 뛰어나왔던 민중의 함성소리가 귓전을 때리는 것 같은 느낌이 올라오지 않는가 말이다.

 

감격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솟구쳐 올라와야 하는데, 이상하게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공허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가 된다.

 

공허한 것은 이런 거다.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 왜 그동안에는 동원하지 않았을까? "조용한 외교"라는 것이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가만히 두는 것이었나? 뻥삼 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주겠다"고 헛소리 한 번 한 후 지금까지 국가적 차원에서 뭔 일을 한 건가? 박정희 전두환 당시 돈 몇푼에, 엔고에 기대기 위해 찍소리 한 마디 제대로 못했던 이후 지금까지 이놈의 정부는 기냥 "조용"히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묻어두고 있었단 말인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한미 FTA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대미외교에서 한국정부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사실 독도도 독도지만 한미 FTA나 전략적 유연성문제에 대해서도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그 밖에도 필요한 모든 일을 다 할 것입니다.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라는 발상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했다고 할 거다. 그러나 정부의 변명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나 전략적 유연성과 관련된 대미외교를 보는 국민들은 객관적으로 우스워한다.

 

그런데 이상하게 "일본"이 대상이 될 때는 "어떤 비용과 희생이 따르더라도 결코 포기하거나 타협"하지 않겠다고 하는 이 정부가 "미국"이 대상이 될 때는 알아서 설설 기는 모습을 보인다. 신기한 일이다. 일본은 '맞다이' 떠서 '쑈부'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우려되는 점은 이런 거다. "그 밖에도 필요한 모든 일"이란 무엇일까? 예컨대 일본 정부가 구축함을 끌고 오면 어떤 일을 하겠다는 건가? "어떠한 비용과 희생"이라는 것은 혹시 민중들의 목숨까지도 포함시켜 이야기하는 것인가? 그렇게 해석될 때 이번 노무현의 발언은 선전포고에 준하는 발언이다. 자, 한 세기 전 당했던 굴욕을 이번에 갚자~! 일본이 독도에 발이라도 담그는 그 순간 일본에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악몽을 되살려주겠다~! 뭐 이건가??

김진명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현실화하겠다는 것일까?

 

노무현의 특별담화를 보면서 감동을 받기는 커녕 이러한 공허함과 우려를 동시에 가지게 되는 이유는 담화 자체에서도 구체적인 대응의 내용이 없다는 것이고 그동안의 정부대응에서 역시 구체적인 방향성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 이래 영토주권은 해당 국가가 가지고 있는 주권행사의 외형적 표준이 되어왔다. 한국 헌법의 영토조항은 분명하게 지리적 요건을 규정하고 있고(한반도와 그 부속도서) 독도는 그동안 실효적 지배를 통해 헌법규정에 포함되는 영토의 일부로 국민들의 머리 속에 각인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일본의 도발적 독도영유권 주장은 이러한 한국의 실효적 지배와 헌법사실에 대한 전면 부정을 전제한다. 따라서 주권국가로서 한국은 이러한 일본의 주장을 효과적으로 봉쇄할 필요가 있다.

 

문제는 노무현이 특별대담을 통해 밝힌 내용이 완전 새로운 무엇인가를 제시하고 있는가이다. 전시체제조차도 용인할 수 있다는 발언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담화는 알맹이가 없는 이야기다. "조용한 외교"는 그 조용함 뒤에서 "국가적 역량과 외교적 자원을 모두 동원하여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 조차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시끌벅적하게 "버르장머리 고치기" 2탄을 쏘면서 실질적 내용도 없이 허송세월 하기보다는 좀 더 실질적인 내용의 정책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실질적 내용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국민들에게 충분히 알리고 평화공존을 위한 방법에 합의를 도출하면서 그 합의가 국제사회에 승인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일본의 주장을 봉쇄하는 길이 될 것이다.

 

더불어 한 가지. 한미 FTA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서도 좀 이렇게 강력한 대응을 해주기 바란다. 독도야 물고 늘어지면 이기는 게임이다. 그 과정이 지금처럼 어영부영하지만 않으면 된다. 그러나 한미 FTA나 전략적 유연성 문제는 울릉도에서도 동남쪽으로 뱃길따라 200리에서 벌어지는 문제가 아니라 수도서울 한복판에서, 수도서울의 바로 코 밑 평택에서, 전국의 농토에서, 산업체에서, 휴전선에서, 중국과의 경계수역에서 우리의 주권행사가 방해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건 그냥 내버려두면 완전히 골로 가는 전쟁이다. 해달라는 대로 퍼주고 알아서 기고 하다가 어떻게 될라고 그러나? 독도에 목청 돋구는 정열의 딱 10분의 1만 한미 FTA와 전략적 유연성 문제에 대해 쏟아주기 바란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미군기지 경비업체 노릇 하는 거 좀 그만 두고 말이다. 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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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5 16:01 2006/04/25 1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