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고민

전철 안에서 힐끔 넘겨다본 옆자리 어느 아저씨의 손에 들린 신문 한 귀퉁이. 어떤 넘이 말씀하시기를 분배로는 성장을 할 수 없다고 떠들어 놨다. 결론이야 뭐 뻔한 이야기. 성장을 하다보면 분배는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명쾌한 도식. 이놈의 글을 찾아 링크를 시킬려고 했는데, 도저히 무슨 신문에서 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다가 그거 본 날짜도 며칠 지난 상태고, 거기 더해 검색실력이 거의 빵점에 가까운 행인, 결국 기사 찾아 링크 거는 것은 포기.

 

건 그렇고, 그전부터 해오던 고민이 이 기사를 본 이후 더욱 심각하게 뒤통수를 당기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까지 성장을 해야하는 것일까?

 

아주 오래된 내 기억에 '수출 100억불 달성'이라는 '단군 이래 초유의 뉴스'가 온통 도배질 된 적이 있다. 하루 밥 한끼를 걱정해야하는 처지라 집에 텔레비전이 있을리야 만무하고, 그런데 그 뉴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아무튼 그렇게 기억할 건덕지도 없는 상황이 머리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것은 쥐뿔 아는 거 하나도 없던 얼라의 귓전에도 '수출 100억불'이 뭔가 그럴싸하게 들렸기 때문이리라.

 

그게 1977년이란다. 그리고 지금 20세기를 넘어 21세기의 한국. 전체 수출이 100억불을 넘어선 그 순간을 역사상 길이 남을 금자탑을 완성한 순간처럼 환호했던 한국사람들은 2003년에 이동통신분야에서만 수출 100억불을 달성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삼성은

2007년도에 디지털 TV 매출 100억달러를 달성하겠다고 기염을 토하고 있다. 2005년 수출 2850억 달러 달성, 1977년 이후 28년만에 무려 28배 이상의 수출실적이다.

 

그런데 사회는 양극화현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귀청을 울리는 새벽종소리 들으며 잘살아보자고 국민총동원령이 내렸을 때, '조금만 더 허리띠를 졸라매자'며 닥달을 하던 그 구호 앞에는 수출 잘 되서 살림 피면 국민들의 살림살이도 나아지게 되어 있다는 희망찬 청사진이 있었다. 그놈의 청사진은 수출 실적 28배 이상이 달성된 오늘날에도 여전히 펼쳐져 있다. 청사진은 청사진이었을 뿐이다.

 

이 청사진 뒤에서 전태일은 제 몸에 불을 지르고 산화했다. 그리고 제2, 제3의 전태일이 등장했다. 인간답게 살고싶다는 절규를 남긴 채 스스로 제 목숨을 내놓은 사람뿐만이 아니다.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사람,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 노숙자로 전락하여 끝내 노상에서 횡사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강남 유흥가의 불빛은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데, 아직도 분배를 하기 위해서는 더 성장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당연하다는 듯이.

 

사회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정부가 고용안정을 요구하고 사유화반대를 주장하는 철도파업을 불법으로 규정한다. 비정규직을 '보호'씩이나 해주겠다고 하면서 2년마다 일자리를 뺏겨야 하는 법안을 강제로 통과시키려 한다. 여기에는 어떠한 분배의 논리도 없다. 누가 분배를 해주어야하는 주체인지, 분배를 받아야할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해선 아무런 말도 없다. 그러면서 경제가 어렵단다. 성장을 해야 한단다. 그렇게 노동자들이 절규하고 있을 때, 의원은 술처먹고 성추행을 하고 총리는 골프채를 매고 필드를 누빈다.

 

다시 본래의 고민으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분배가 가능한 성장은 어디까지인가? 수출이 치금의 28배가 되는 시점까지 또 기다려야 하나? 국민소득 20000불 시대가 도래하면 분배가 되는 건가? 국민소득 20000불 시대를 위해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죽어 나가야 하나? 또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의 결단이 불법으로 매도되어야 하나? 삼성 재벌의 8000억원이 분배를 목적으로 헌납된 것인가?

 

누구를 위한 성장인지, 어디까지 가야하는 성장인지에 대해 성장지상주의자들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분배'의 개념조차도 마치 거지 적선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이해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이야기하는 성장이 누구의 손으로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한다. 아니, 왜곡한다. 그 성장의 주역들에게 성장의 결과물이 돌아가야한다는 점에 대해서 이들은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들은 성장의 주역들을 결코 노동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이야기하는 선성장 후분배의 논리는 언제나 그렇듯이 공허하다.

 

성장지상주의자들의 결론은 이거다. 내가 가진 것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 우린 우리 것을 빼앗길 수 없다. 오히려 더 많이 가져가야겠다. 그런데 이 성장지상주의자들이 완전 착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건 그들이 가진 모든 것이 원래부터 그들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의 것을 가져오는 것은 그들의 것을 빼앗아 오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자리에 다시 가져다 놓는 것일 뿐이다. 결국 분배로 인해 손해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빌어먹을 성장지상주의자들은 끝내 지들이 손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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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6 00:09 2006/03/06 0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