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3월 1일, 3·1절 풍경

기미년 3월 1일... 그날 울려퍼졌던 자주독립의 함성을 기념하는 날, 3·1절. 2006년 3월 1일은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겉으로는 제대로다. 온 거리가 태극기로 넘쳤고, 태극기를 몸에 두른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고, 그 목적의식은 다르지만 다들 "조국"에 대한 사랑, 즉 애국애족을 몸으로 실천(?)하기 위해 나왔으니까.

 

앙골라와 평가전을 가진 국대팀에 보내는 환호. 간만에 합류한 해외파 선수들의 팀 플레이와 적응능력을 호기심있게 바라보았으면서도 오늘만큼은 관전평을 올리고 싶지 않다. 묵직해진 분위기때문이기도 하고, 오늘 하루 벌어졌던 "애국애족"의 물결 속에 스스로 왠지 고립되어버린듯한 느낌도 있기 때문이다.

 

상암경기장은 또다시 "대~한민국"이라는 함성으로 가득찼다. 수많은 관중들이 붉은 옷을 입고 태극기를 휘두른다. 간만의 이벤트를 놓칠세라 방송3사는 똑같은 화면을 아나운서와 해설자만 달리한 채 똑같은 시간동안 중계방송을 했다. 4천8백만 국민들은 3개 공중파에서 보내주는 축구경기를 보던지 KBS 1 채널에서 보여준 드라마나 뉴스를 보던지 둘 중의 하나의 선택을 해야했다(물론 케이블 방송이나 위성방송을 본 분들이야 별론으로 하고).

 

낮부터 축제열기는 닳아 올랐고, 도시 구석 구석에서는 이 땅에 축구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광화문에서 명박운하(소위 청계천)에서 상암에서 방송국에서... 그들은 그 곳에서 한국사람으로서의 일체감을 느끼고 있었다. 거기에는 계급도 없고, 사회적 문제도 없었다.

 

또 다른 풍경 하나. 4000여명이라는 대규모 시위대가 광화문 일대에 진출했다. 이들은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몸에 태극기를 두르고 거리로 쏟아졌다. 축구때문이 아니었다. 이들은 황우석을 살리자는 마음 하나로 거기에 모였다. 황우석을 살려야하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다. 바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서였다. 황우석이 다시 연구를 시작하고 국가가 그에게 또다시 온갖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조국과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특이하게도 이번 시위에는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들이 내건 구호 하나가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종교에는 국경이 없지만 종교인에게는 조국이 있다" 아마도 황우석이 이야기했던 과학자와 조국간의 함수관계에 관한 표현을 패러디한 것인 듯 하다. 석가모니가 살아 있었으면 기절을 하실 일이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국가주의에 매몰된 호국불교에서조차도 살생유택(殺生有擇)을 이야기하는 이 종교에서 그것도 종교를 위해 속세의 삶을 버리고 출가를 한 승려들이 종교인의 조국을 운운하면서 생명윤리에 대해 보여주고 있는 이 지극한 무지를 석가는 어떻게 이해할까?

 

'어머니 애국단'이라는 단체까지 등장했다. 3·1절에 걸맞는 이름의 등장이다. 애국을 위해 분연히 일어난 어머니들의 일성은 황우석을 살리자는 것이었다. 논문조작으로 인해 '조국'을 국제적으로 개망신 시킨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애국이라니 도대체 무슨 논리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이들이 사랑하고자 하는 조국이 어딘지 궁금하다. 아무래도 한국은 아닌듯 한데...

 

광란의 애국 퍼포먼스가 국제도시 서울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던 3·1절 하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다시 거리로 나서야 했고, 파업에 돌입한 철도는 공권력의 침탈에 떨고 있다. 애국 하는 사람은 이렇게 많은데, 어째서 밥벌이 할 곳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져야하는 사람들이 또 이렇게 많아야 하나. 그 애국심의 만분의 일만이라도 나누어 이 빌어먹을 상황을 만들고 있는 재벌과 정치모리배에게 비판의 목소리 한 번 내 줄 수는 없는 건가.

 

지금 밖엔 눈이 온다. 봄은 왔으되 아직 봄이 아닌 게다(春來不似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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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3/01 22:48 2006/03/01 2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