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인의 가출기

그게 고등학교 2학년 겨울이었다. 암튼 지독시리 추운 겨울이었고 눈도 참 많았던 그런 겨울이었다. 방학은 다가오고, 겨우내 좁디좁은 방구석에 처박혀 있어야할 생각을 하니까 몸이 근질근질한 것이 도저히 견뎌내지를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냥 집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 생각없이, 아무 기대없이 기냥 떠나보자는 생각을 했다. 집나간다고 하면 대번에 불호령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말을 않는 것이 상책이다. 결심은 섰고, 행동만 남았다. 방학식이 끝나자마자 집으로 가지 않고 H라는 친구넘과 작당을 하고 가출을 결행했다. 차비도 없었다. 주머니엔 한 푼 없었고, 가진 돈 다 털어 당시 최고급 담배였던 "빽솔" 두 보루를 사서 친구넘 돈을 빌려 고속버스에 올랐다. 친구넘이 참 좋은 곳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따라 나선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넘이 가자고 한 곳은 지 큰집이었다. 거창하게 가출씩이나 하자고 나섰는데 기껏 간 곳이 친구넘 큰집이라는 사실은 참 거시기한 것이었다. 암튼 이넘의 큰 집을 갔는데, 덜렁 도착한 곳이 알고보니 우리 고향에서 20리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갈수록 가관이었다. 여주와 양동, 양평 딱 중간에 위치한 곳이었는데, 역시나 산골 깡촌이었다.

 

이넘 큰집은 심심산골 산 중턱배기에 있었는데, 어느 집안 문중 선산이었다. 큰 집이 묘직이를 하는 집이었다. 사는 집 바로 위에 사당이 있고, 그 사당 윗편으로는 죄다 봉분이었다. 와도 꼭 이런데를 와서 귀신들의 은덕을 기대해야하다니... 어쨌든 집에다가는 일체 비밀로 붙였고, 이 산 속에서 나름대로 가출생활이 시작되었다.



아침 무지하게 일찍 먹는다. 왜 가출했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일어나는 시간보다 서너시간은 일찍 일어난다. 겨울에 할 일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 시골생활이라는 것이 어쩔 수 없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밥을 먹는데, 처음에는 고문도 이런 고문이 없었다. 시골밥상, 반찬은 헐해도 밥은 엄청 많이 준다. 사기밥그릇이 마치 쬐끄만 양푼 크기는 되는데 거기다가 수북하게 밥을 담아준다. 안먹으면 난리난다.

 

씻고 산에 나무하러간다. 땔감 주으러 간다는 얘기다. 발이 푹푹 들어가도록 눈이 쌓인 산으로 돌아다니면서 마른 나뭇가지를 줍거나 통나무를 자른다. 잘라낸 통나무 집까지 끌고 가려면 죽음이다. 끌고 간 다음에는 도끼로 장작을 패야 한다. 환장한다. 때때로 소 운동시켜줘야 한다. 한 겨울이다보니 이넘의 소가 방구석, 아니 외양간에만 묶여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루 한 번씩 운동을 시켜줘야만 한다.

 

시골 구들장 두껍게도 깔아놔서 장작을 한 번 때면 한 일주일간 장작을 때지 않아도 된다. 열효율 끝장이다. 그런데 문제는 장작 땔 때부터 한 사흘간은 방바닥에서 잠을 잘 수가 없다. 살이 다 익어버리기 때문이다. 눈밭에 뒹굴고 토끼몰이 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게 일주일이 지나고 한달이 지나니까 도저히 심심해서 견딜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참지 못하고 전화를 돌렸다.

 

여주 사는 친구넘들에게 전화를 했다. 시골길 빙빙 도는 버스타고 40분이면 여주읍내로 나갈 수 있는 거리였다.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H에게 차비를 빌려서 여주로 나갔다. 혹시나 읍내나가는 버스에 아는 어르신들이라도 있을까봐 매우 걱정이 되던 순간이었다. 암튼 여주로 나가서 간만에 고향친구들을 만났다. 역시나 빠질 수 없는 우리의 윤활유, 술을 펐다. 시골 촌놈들이라 들어가는 술의 양이 장난이 아니다. 한참 술을 마시는데, 밖에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좋은 분위긴가 말이다. 한잔 들어갈 술이 열잔 들어가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엄청나게 퍼마셨다.

 

낮부터 마신 술이 엔간히 올랐는데, 아무래도 산골짜기에 있는 거처로 갈려니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친구넘들 집에 가서 자도 될 일이었는데, 무슨 심사였는지 돌아가겠다고 어거지를 부렸다. 오밤중에 산을 걸어서 넘어가야하기 때문에 친구넘들이 가지 말라고 하는데 똥고집을 부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저녁 8시쯤 되었을까?

 

가진 돈이 없어서 친구넘들에게 택시비를 얻었다. 시골 택시 어지간히 비싸다. 주머니에 있는 돈 다 털어내서 받아들고는 다시 H의 큰집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고 XXX가자고 하니까 아저씨가 난색을 표한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그쪽까지 가지 못한다는 거다. 아, 그럼 어떻게 하느냐, 난 집에 가야한다, 억지를 부렸더니 아저씨가 그럼 자기는 어쩌냐는 거다. 눈밭에 차가 못들어가는데 무슨 수로 밀고 들어가느냐는 이야기다. 그래서 갈 수 있는데까지만 가기로 하고 택시를 출발시켰다.

 

역시나 였다. 버스로 40분이면 가는 거리를 택시타고 한시간이 넘게 이동했다. 미끄러워서 속력을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꾸역 꾸역 가다가 결국은 택시가 섰다. 아예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곳이라서 눈이 그대로 쌓여있었고, 택시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림짐작으로 친구넘 큰집까지는 아직 10리길... 이거 환장할 노릇이었다.

 

별수 없이 걸어가기로 작정을 하고 택시를 내렸다. 눈이 허벅지까지 올라와있었다. 이걸 밀치고 간다는 것이 장난이 아니다. 20여미터를 눈을 밀고 가다가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다시 그짓을 또하고 하다가 보니 밤새 걸어야 도착할 것 같았다. 술기운이 점점 가시면서 몸에 힘이 빠지고 있었다.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었고, 눈은 계속 쏟아지고 있었다. 산속으로 들어가면서 눈은 허리춤에까지 올라왔고, 이렇게 가다가는 중간에 강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산길을 돌아나가는데, 논 한 가운데로 불뚝 솟은 낟가리가 보였다. 도저히 10리길을 이 눈밭을 헤치고 밤을 세워 갈 수는 없다고 판단하고, 해라도 뜨면 가자고 맘먹었다. 그리고는 낟가리쪽으로 향했다. 낟가리에 도착하자 볏짚단을 하나씩 빼기 시작했다. 어릴적부터 겨울에 낟가리 짚단 속에 들어가 노는 것이 일이었기 때문에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아뿔사, 낟가리가 꽁꽁 얼어있는 것이었다. 볏짚단이 잘 빠지질 않는다. 그래도 어쩌랴, 강시가 되지 않을라면 이 볏짚단을 빼는 수밖에 없다.

 

처음 몇 개를 뽑아내는데 무척 힘이 들었지만 그렇게 구멍이 하나 생기자 안쪽의 볏짚단들은 쉽게 뽑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계속 작업을 하자 한 사람 들어가서 잘만한 공간이 넉넉히 생겼다. 안쪽은 넓게 만들고 입구는 사람 하나 기어들어갈 정도의 구멍만 내놓은 채 다리쪽부터 낟가리 안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 입구를 볏짚단으로 꽁꽁 틀어막았다.

 

라이타를 켜서 대충 자리를 본 다음에 그대로 드러누웠다(낟가리 안에서 불장난 잘못하면 통구이 되는 수가 있다). 따뜻했다. 체온으로 내부가 데워지자 별로 추운 느낌이 들지 않았다. 워낙에 추위를 타지 않는 체질이기도 했지만 볏짚 자체가 훌륭한 보온재역할을 해주었던 거다. 암튼 그렇게 그 안에서 잠을 잤다.

 

잠이 깼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당연하지... 일단 다시 라이터를 켜서 입구자리를 확인한 다음에 손으로 볏짚단을 밀어냈다. 구멍이 뻥 뚫린다. 그리고 밝다. 눈이 부시다. 천천히 기어나갔다. 온 세상이 하얗다. 눈 천지다. 아무도 밟지 않은 깨끗한 눈밭... 그 눈밭에 내 손도장이 먼저 찍혔다. 손바닥에 단단한 것이 잡히지 않는 바람에 머리부터 눈속으로 한참을 파묻혔다.

 

따뜻하게 잤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보다. 자리가 비좁아서 한 쪽으로 모로누워잤는데, 바닥에 붙어있던 쪽 어깨와 팔이 얼어서 움직이질 않는다. 감각이 없다. 주무르고 난리가 났다. 겨우 피가 통하게 해놓고 눈밭을 헤쳐가며 H의 큰 집으로 향했다. 혹시나 이넘이 집에 전화를 했을까봐 걱정을 하면서 허겁지겁 들어갔다. 다행히도 이넘은 여주친구들과 밤새 노는줄 알고 암 걱정도 안했다고 한다. 썩을 놈...

 

(후기) 두달 가까운 가출 끝에 집에 들어갔다. 들어가는 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부모님보다 먼저 집에 들어가 있다가 오시면 참회의 표정을 짓고 크게 반성하는 기미를 보여 사태를 무마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결론을 내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오후 6시 경이었다. 열쇠로 문을 따는데 문이 잠겨져 있지가 않았다. 앗, 이 불안함...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게 왠 일인가, 아버지께서 떡 하니 앉아계시지 않는가...

 

아무리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지만 이건 큰일 났구나 싶었다. "다녀왔습니다"하고 삐죽이 인사를 하면서 들어갔는데, 아버지가 고개를 돌려 등 뒤 벽에 걸린 시계를 한 번 쓱 쳐다보시더니만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씀 하신다.

"오늘은 일찍 들어온다?"

 

허걱.... 마치 아침에 학교간다고 나갔던 넘 저녁에 들어온 듯한 이 분위기...

"네..."

그랬다... 행인의 가출은 집안 식구들에게 아무런 뉴스거리가 되지 못했던 거였다. 그로부터 상당기간 행인은 행인이 줏어온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계속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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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8/16 01:05 2004/08/16 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