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동트기 직전이 정말 제일 어두운가

지난 한 주 내내 한국 사회 여성들이 집단으로 싸다구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손정우 사건이야 더 이상 보탤 말도 없지만, 안희정, 박원순 두 정치인에 대해서는 아 정말 복잡한 심경이...

 

처음에는, 수감되어 부모의 임종도 지키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자식의 심정이 오죽할까 연민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장례식도 결혼식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이 상황에서 보란 듯이 실세 조문객들과 언론을 불러모으고, 어머니의 죽음을 하나의 거대한 정치적 복귀 퍼포먼스로 만들어내는 모습에서, 대체 내가 뭘 보고 있는 건가 어안이 벙벙했다. 

몇 십년을 같이 활동해왔던 지인이 말도 안 되는 잘못을 저질렀고, 그가 마침 부모님 상을 맞았다면 나도 아마 조문을 갔을 것이다.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 일부러라도.... 인간의 마음에는 여러 단면들이 있고, 그와 활동했던 시절, 그 때의 마음 또한 모조리 진심이 아니었다고는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라도 커다란 슬품 앞에서 잠깐 위로는 받을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가 저지른 잘못에 현재 명백한 피해자가 있고, 그가 앞서 보여준 활동의 가치와 모습을 전면 부정하는 종류의 윤리적 잘못을 저지른 것이라면, 개인적 연민과 위로는 전하되 차마 화환을 보내고 공개적으로 조문하는 일은 못할 것 같다. 내가 그와 관계가 깊으면 깊을수록 친구 단속 제대로 하지 못한 부끄러움 때문에라도 말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전혀 거리낄 없이 행동한다면 너 이러면 안 된다고 따로 불러 따끔하게 이야기해줄 것 같다... 친구를 진심으로 아낀다면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알파메일클럽에서는 그런 종류의 염치나 속깊은 우정은 애시당초 의미가 없는 것인가보다.

 

이런 착잡함과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박원순 시장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일이 벌어졌다. 

실종 뉴스 직후부터 온라인에는 성범죄가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지만,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평소 그의 인격을 높이 평가해서가 아니라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기도 하고),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는 것을 조금도 감추지 않은 지난 몇 년이기 때문에 도덕이고 인품이고를 떠나 그 정도의 리스크 관리는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너무 안달복달하는 모습이라도 좀 숨겼으면 낫겠다 싶을만큼 대선레이스에 대놓고 관심을 보여온 그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나....

또다른 측면은 변호사로서 서울대교수 성희롱 사건이나 부천서 성고문 사건 변호인단 활동도 하고, 20년을 넘게 참여연대,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같은 곳에서 활동을 해왔는데 성추행을 저지를 정도의 윤리적 감각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바닥에 소문이 나도 진즉 나지 않았게나, 이런 판단도 들었다.

그런데.. 사망이 확인되었다. 소문이 점차 확증으로 바뀔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다른 동기를 생각할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면서 또 생각이 복잡해졌다. 여전히 의도적 성폭력이라는 생각은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영페미들이 온라인에서 들끓을 때도, 난데없이 민정당 후예들이 하이에나처럼 몰려들어 미투를 이야기할 때도 그저 양쪽 다 듣기 싫었다.  아무리 시장 한 사람이 다 한 것은 아니라지만 지난 10여년 동안 서울에서 일어난 여러가지 변화들, 특히나 주거복지, 노동인권, 건강불평등 측면에서의 정책과 사업들,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과 촛불 시민들이 광화문에 설 수 있도록  보호하는데 그의 정치적 리더십을 빼놓고는 이야기하기 힘들다. 물론 아쉬운 부분이 더욱 컸지만, 그렇다고 성과를 전면 부정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그가 씨를 뿌린 시민단체들은 여전히 제 몫을 하며 한국사회 변화에 기여한 것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떠나는게 참 허망하고, 착잡하다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러면서 별별 가설을 다 세워보았다.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개념을 모르지는 않을테고, 혹시 자기 혼자 로맨스라고 착각했나? 여성 하급직원이 사무적으로 공손하게 응대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혼자 소설쓰고 있었던 거 아냐?  자신의 매력을 과대평가하는 K저씨들의 고질병?? 

 

그/러/나/... 

두 차례의 피해자 기자회견을 보면서, 내가 정말 알파메일을 모르는구나.... 머리를 맞은 듯했다.

그래도 그가 남긴 유산을 기리며 인간적 애도를 하던 마음이 정말, 말 그대로 차갑게 식어버렸다.

로맨스 착각이 아니라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분명한 성추행을 저질렀고, 이것이 대선가도에 리스크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피해자가 감히 문제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만큼 권력의 속성을 알았기에. 

심지어 정당한 법의 심판을 받거나 피해자에게 사과도 하지 않은 채 무책임하게 생을 마무리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정말 환장할 노릇 아닌가... 4년동안 괴로웠던 사람이 누군데, 이 마당에서 왜 타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까지 가져야 하나.... 

부러질지언정 굽힐 수는 없다는 자존심과 자기애가 이런 선택을 가져온 것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때로는 치욕을 견디면서 과제를 완수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그게 책임윤리 아닌가.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정당한 댓가를 치르고...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과오를 반추하면서 본인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를 바꾸는 데 1이라도 기여를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명색이 정치인이고 그에 앞서 활동가였는데....

 

최소한 20년 전 시민단체 활동을 했던 그 시절에도 지금과 같았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권력에의 도취가 도덕과 윤리의 끈을 놓아버리게 만든게 아닐까 싶다.

허나 인간이란 사회의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사회를 바꾸어나가는 주체이기도 한데 최소한의 자기성찰조차 하지 못했다니 그저 놀라울 뿐...  알파메일의 세계란 그런 곳인가? 20만 년 인류 진화의 역사로도 극복하지 못할 만큼 수컷 우두머리의 렙틸리안 속성은 강력한 것인가? 

먹이에 가장 먼저 접근하고 독점하던 알파메일 원숭이들이 식중독으로 모두 죽고 나니 남아 있는 원숭이 무리에 평화와 협력이 찾아왔다는 사폴스키 교수의 연구결과가 문득 떠오른다. 이 정도 되면, 펜스룰을 적용해서 여성을 남성 주변으로부터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권력있는 자리에 아예 남성을 앉히지 않는 게 답인 것 같다.

 

사실 지금 제일 어이 없는 것은 서울시에서 시장을 보좌했던 정무라인 사람들이 보이는 무책임한 태도. 심지어 젠더특보는 사건 터지자마자 휴가를 냈다더니 아예 사표를 제출했다가 그나마 반려되었나보다. 그의 정치적 동지들이 고인에 대한 동지애가 1이라도 남아있다면, 이 사건을 제대로 평가하고 약한 고리와 미흡한 부분이 어디었는지 찾아내서, 비록 그가 다시 살아올 수는 없겠지만 그의 죽음을 계기로 조직내 민주주의가 한발 나아가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래야 죽음에 의미를 1이라도 부여할 수 있는 거 아닐까?

 

동트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데 실제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그저 문학적 메타포인지...

어찌 되었든, 지금이, 많은 사람들이 절망과 탄식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이 시기가, 바로 동트기 직전의 그 시기이기를, 그렇게 함께 만들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