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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급하게 남겨놓은 메모만으로 당시의 고민과 감정을 유추해서 '추리'하며 써내는 독후감의 쟝르는 대체 무엇인가... ㅜ.ㅜ
감정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리사 펠드먼 배럿 생각연구소, 2017 |
뭔가... 내 세대에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여러 학문 분야에서 일정한 지점에 이르러 비슷하게 공통의 문제에 직면하고 새로운/하지만 비슷한 시각을 취하기 시작한 것 같음. 자동적 지식과 타동적 지식의 구분, 우리의 감각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실재'와 그것을 인식하는 우리의 value-laden, idea-laden, 혹은 affection-laden 인식에 대한 공통된, 메타적 자각이랄까???
실재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반드시 정확한 반영이 아니고, 인식론적 상대주의를 취하게 된다는 점. 이것은 너도 옳고 나도 옳다, 각자 나만의 세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아님. 이러한 비판적 실재론 패러다임을 통해서 "구성된 감정이론" 또한 이해할 수 있음.
가장 원초적인 것이라고, 그 자체로 실재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감정조차 개인과 사회적 문화, 관습, 학습에 의해 (그리고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뇌의 신경망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구성'된다는 것...
이러한 개념은 몹시 흥미롭고 설득력있는데, 다만 기우라면 우리가 '스스로 감정을 구성하는 설계자'라는 관념이 마치 합리적/이성적 과정을 통해 감정을 연출하고 완벽히 통제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이 오해할 것 같음 ㅡ.ㅡ . 그래서 사이비 마음수련이나, 엄연한 고통의 실재가 존재하는데 다 마음먹기 나름이라는 일체유심조 순응의 이데올로기로 악용되지 않을까..... 너무 지나친 걱정이려나???
* 구성된 감정이론 theory of constructed emotion
"감정은 내장된 것이 아니라 더 기초적인 부분들을 바탕으로 구성된 것,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문화에 따라 다르며, 촉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낸 것. 즉 신체 특성, 환경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발달하는 유연한 뇌, 이 환경에 해당하는 문화와 양육조건의 조합을 통해 출현. 감정은 실재하지만 분자나 뉴런이 실재하는 것과 같은 객관적 의미에서 실재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화폐가 실재하는 것과 갆은 의미에서 실재. 감정은 착각은 아니지만 사람들 사이의 합의의 산물"
"감정 개념이 있어야만 관련된 감정을 경험하거나 지각할 수 있음"
즉, 공포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공포를 경험할 수 없고, 슬픔에 대한 개념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지각할 수 없음
구성된 감정이론에 포함된 구성은 사회적 구성 (문화와 개념의 중요성) + 심리적 구성 (감정이 뇌와 신체의 핵심체계에 의하여 구성된다고 간주) + 신경 구성 (경험에 따라 뇌의 배선이 달라진다는 견해 수용)의 세 가지를 포함
* 감정 입자도 emotional granularity
내면의 감정 상태를 얼마나 정확히 판독할 수 있는가...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도록 훈련시켜서 감정입자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말함. 이는 자기 객관화와 메타 인식의 세계이며, 묘하게 불교의 마음수련과 닮아있고 실제 저자도 자주 언급함.
신체 반응이나 표정으로 감정을 예측하거나 읽어내는 것은 매우 부정확함. 동일한 감정 범주가 상이한 신체반응을, 반대로 다른 감정이 비슷한 신체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음.
"일관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표준"
감정 지문은 신화! 이런 면에서 개인의 표정이나 신체 반응을 통해서 감정상태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위험
* 정동실재론 affective realism
자주 등장하는 두 가지 개념
정동을 모른 채 정동을 경험할 경우, 정동을 세계에 대한 자신의 경험이 아닌 세계에 관한 정보로 취급할 확률이 높음. 하지만 우리가 세계에 관한 사실로 경험하는 것의 일부는 우리의 느낌에 의해 만들어짐. 화창한 날이면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산다는 보고를 더 많이 하지만, 날씨에 대한 질문을 노골적으로 받으면 이런 편향 사라짐.
"우리는 뇌가 느낀 대로 믿는다"
사람들은 합리적 사고를 통해 감정을 극복할 수 없음. 왜냐하면 신체 예산 상태가 모든 사고와 지각의 기초이며 내수용과 정동이 매순간에 개입하기 때문.
이렇게 보면 인간 뇌의 진정 놀라운 점은, 패턴을 인식하는 능력과 통계적 학습에 최적화되어 있다는 점 아닐까 싶음. 이런 면에서 베이지안의 a prior/posterior 확률 추론은 뒤늦은 깨달음 같기도 함. 오히려 머신러닝을 통해 인간 스스로의 뇌에 대해 더 잘 이해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인간의 가장 주목할만한 적응 특성 중 하나는 인간 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배선을 위해 모든 유전물질을 후세에 전달할 필요가 없다는 점 이는 생물학적으로 엄청 많은 비용을 초래할 수 있음. 인간 유전자는 뇌가 주위 사람들의 뇌를 바탕으로, 즉 문화를 통해 발달하는 긋을 가능케 함!!! 인간의 문화는 진화의 효율을 높이는 역할을 하며, 우리는 후손의 뇌를 배선(!)함으로써 그들에게 문화를 전수
지각, 시각이든 청각이든 사실 객관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발견하는 신체와 이런 변화의 의미를 구성하는 뇌가 세계와 상호작용할 때 구성되는 경험
감정의 기능 - 1) 감정 개념이 다른 모든 개념과 마찬가지로 의미를 구성한다는 사실에서 비롯, 2) 개념이 행동을 명령한다는 사실에서 비롯, 3) 신체예산을 조절하는 개념의 능력과 관련
* 다양성에 기초한 개체군 사고
동일성에 기초하는 본질주의와 다양성에 기초하는 개체군 사고는 근본적으로 양립 불가! 하지만 본질주의는 반대 증거에 대한 면역력을 가지고 있음. 이건 종교도 마찬가지 아녀??? 본질주의가 감정이론에 적용될 때 이는 학설 이상의 것이 됨. 이는 인간존재의 의미에 대한 그럴듯한 이야기를, 즉 인간본성에 대한 고전적 이론을 제공하기 때문!!!
감성지능의 핵심은 우리의 뇌가 특정 상황에서 가장 유용한 감정개념의 가장 유용한 사례를 구성하도록 하는 것. 그리고 감정을 구성하지 않을 때는 가장 유용한 다른 개념의 가장 유용한 사례를 구성하는 것!
바이러스는 신념, 성실, 가치관에 관심이 없고 인격에 대해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지만, 정동은 내수용 감각을 우리 자신에 관한 어떤 것으로, 나의 잠정과 단점이 결부된 어 떤 것으로 변모시킴. 그러면 감각은 인격적인 것이 되고 나의 정동적 적소 안에 머물게 됨. 불편은 순전히 신체적인 것이지만 괴로움은 인격적인 것이며, 이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함.
* 올바른 법률 제도를 위한 조언 "법률제도를 위한 정동 과학의 선언"
저자는 감정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혹은 과도하게 '근본적'인 것으로 해석되는 현실, 특히 법률체계에서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안을 제시함
"감정은 진화의 결과이지만 동물조상으로부터 물려밭은 본질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신은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더라도 감정을 경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신이 이런 경험의 수동적인 수취인은 아니다. 당신은 따로 지시를 받지 않더라도 타인의 감정을 지각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감정을 타고나거나 학습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가 타고난 것은 개념을 사용해 사회적 실재를 구축할 수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이 사회적 실재를 통해 다시 뇌가 배선된다. 감정은 사회적 실재의 매우 실제적인 창조물이며, 이것이 가능한 까닭은 인간의 뇌가 다른 인간의 뇌와 협조하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개념들을 가진 보편적인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 모두가 같은 종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에 따라 배선이 진행되어 결국에는 여러 종류의 마음을 산출하는 대단히 복잡한 뇌로 충분하다."
* 인간의 마음에 설정된 세 가지 모드
마음의 이런 세 가지 필연적 측면을 통해 구성적 견해가 주는 교훈은 바로 '회의적 태도'!!!! (반면 본질주의는 확실성을 깊이 신봉) 우리가 파악할 단 하나의 현실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뇌는 주위에서 들어오는 감각 입력에 대해 하나 이상의 설명을 만들어낼 수 있음. 적당량의 회의주의는 고전적 견해의 요전적으로 공정한 세계와는 다른 세계관을 낳음. 사회에서 당신이 차지하는 위치는 무작위로 결정된 것도 아니지만 필연적인 것도 아님. 예컨대 인종에 대한 사회적 고정관념은 사회적 실재에서 뇌 배선의 물리적 신재로 변화할 수 있으며 그래서 빈곤이 유전자 탓이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음. 이 대목에서 필자가 스티븐 핑커 까대서 기분 급 좋아짐 ㅋㅋㅋ 흑인이 백인보다 복지 수당 받을 확률이 더 높다고 믿는 것이 비합리적인 것이 아닌게, 이게 현실에서 맞기 때문. 다만 핑커는 과학자들이 정치적 공정성 때문에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석하는데 비해서, 바렛은 복지 통계가 맞는 것은 '우리가 사회를 통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함.
물리학, 화학, 생물학은 소박실재론과 확실성에 뿌리를 둔 직관적이고 본질주의적 이론으로 시작했으나, 이런 이론을 넘어서는 진보가 이루어진 것은 낡은 관찰이 특정 조건에서만 참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 이에 따라 개념의 대체 작업이 이루어짐. 정치 혁명을 통해 새 정부와 사회질서가 들어서는 것처럼 과학혁명은 특정한 사회적 실재를 또다른 사회적 실재로 대체. 과학의 개념들은 본질주의에서 다양성으로, 소박 실재론에서 구성으로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있음
다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시에, 무언가 실재론과 구성주의의 양날개가 크게 펼쳐지고 지금의 학문 세대가 거기에 함께 올라타 어디론가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게 됨....
타인에 대한 연민 - 혐오의 시대를 우아하게 건너는 방법 마사 C. 누스바움 알에이치코리아(RHK), 2020 |
왜 원서의 제목을 이따구로 바꾸었는가.. The monarchy of fear - 두려움이라는 군주... 책을 쓰게 된 동기이자 전반적인 주제의식을 담고 있는 좋은 제목이었는데 말이지
뜻밖에 누스바움의 생활세계를 들여다보게 되었는데, 밤에는 일을 하지 않는다거나 좋은 아이디어도 컴 앞에 바로 앉아있을 때 차근차근 떠오른다든가 ㅋㅋㅋ 트럼프가 당선된 미국 대선 결과를 해외에서 맞이하면서 근심과 불안에 시달리다가 이 두려움이야말로 미국 사회의 현재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라는 것을, 이 감정에 대해 더 정리해보아야겠다는 "행복한 발견"으로 "희망을 품고 잠에 들었다"는 뭐랄까... 탈인간급의 경지를 엿보게 되었는디 ㅋㅋㅋㅋ 진짜 서론에서 육성으로 현웃 터졌음....
글쎄. 이런 차분함을 전선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활동가들은 누릴 수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다고 '팔자 좋다'고 치부해버릴 수 없는 것이 이렇게 한발 떨어져 문제를 숙고하고 장기적 전망과 근본적 질문을 던져주는 철학자의 존재가 있기 때문에 우리도 나아갈 수 있는 것... 향수를 불어일으키는 역사상 완벽한 민주주의 사회도 없었고, 지금의 상황이 '우리의 행진이 뒷걸음질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대재앙은 결코 아니라는 사실... 을 말하면 지금의 현장에서 절박하게 싸우는 이들에게는 서운하게 들리겠지만 오랜 역사를 두고 본다면 그래도 진실....
절대 군주제 국가라면 복종을 가능케 하는 두려움만 있으면 되지만 민주주의에서는 그 이상이 필요하다는 지적부터...
"선에 대한 믿음, 미래에 대한 희망, 민주주의를 좀먹는 증오와 혐에오 맞서려는 결심입니다. 저는 이 증오, 혐오, 분노가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고 생각합니다. "
그래서 민주주의 개 피곤하고 어려움.... ㅜ.ㅜ
감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과 규범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형성된다는 지적은 중요함. 이 대목에서 배럿의 연구를 인용했고, 그래서 오랫동안 보관함에 담아두기만 했던 책을 드뎌 읽게 되었음.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분명하게 말해주는 것이 좋음
"인종 혐오, 여성 멸시, 이민자들에 대한 두려움, 장애인을 혐오하는 감정들 중 불가피하거나 '자연스러운' 것은 결코 없다. 지금까지는 그래왔을 수 있으나 앞으로는 결코 그래서는 안 된다. 그리고 당연히 그러지 않을 수 있다."
두려움의 나르시시즘을 극복하고 해방되는 과정을 인간발달을 비유로 설명. 하지만 개인들의 관계에서든 사회와의 관계에서든... 두려움의 군주에 사로잡힌 나르시시즘은 얼마나 만연해있는가 ㅜ.ㅜ
"사랑은 자기중심적인 요구 이상으로 타인을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는 능력, 상대가 무엇을 느끼고 원할지 상상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노예가 아닌 분리된 삶을 허락하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는 절대 왕정에서 민주주의적 관계로의 이동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아기의 분노는 근본적인 모순에 입각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모든 인간은 이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나는 무력하고 우주는 내게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생각과, 나는 독재자이며 모든 사람이 나를 돌봐야 한다는 생각이 공존한다. 무력한 신체, 자기애, 유아기적 나르시시즘의 조합이 그 모순을 만들었다."
분노는 확실한 생각을 동반하는 명환한 감정으로, 강하고 남성다운 중요한 감정처럼 보이지만, 분노는 두려움의 산물. 그 이유는 1) 인간은 타고난 취약성 때문에 자신이 곤란해지지 않는다면 절대 분노하지 않을 것 (문제는 두려움을 잃으면 사랑도 잃게 된다는 점 2) 두려움은 상대적 지위에 대한 집착에도 불을 붙인다는 점.
마찬가지로 혐오 또한 비인지적 감각반응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두드러진 인지능력.
그리고 인간 사회에서 자신의 혐오스러운 모습을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다면 흔한 전략의 도움을 받을 수있는데, 특정 집단을 우리보다 더 동물적이라고, 더 많은 땀을 흘리고 냄새가 나고 성적이며 죽음의 악취가 풍기는 집단이라고 규정하면.. 그런 집단을 만들어 성공적으로 지배하면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지도 ㅋ . 이것이 바로 투사적 혐오 개념의 토대 (projective disgust).. 사람들이 혐오를 느낄 때 원하는 것은 문제 해결이 아니라 회피...
진보적 운동에서 중요한 점은 행위와 행위자를 구분하는 것이라는 지적에 이성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음. 타인의 인간성을 포용하면서 그들이 저질렀을지 모르는 잘못된 행동만을 반대해야 함. 그래야 동료 시민의 말과 행동에 찬성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친구로 여길 수 있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전래 속담이 바로 이런 철학적 숙고를 담은 내용이었다니.. ㅡ.ㅡ
성소수자를 향한 폭력에 대한 연구가 말해주는 타깃 선택의 이유는 뿌리 깊은 증오보다는 오히려 단지 경찰이 그들에게 관심이 없어 그들을 공격해도 처벌받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 이런 면에서 법과 규제, 통합과 가시성이 중요.. 그래서 젊은이들이 보다 많이 커밍아웃해야 한다고 메시지.. 그러면서 소셜미디어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코미디가 소중한 반혐오 장르라면서 그리스의 희극 시인을 데려왔는데 ("몸의 우스꽝스러운 움직임에 웃을 수 있다면 소수자들의 신체도 불안함 없이 바볼 수 있게 된다") 한국의 다수 코미디가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에 앞장서고 있는 것을 보면 이런 말씀 못하실텐데?
시기와 비판의 차이? 시기는 적대감과 함께 파괴적 소망을 담고 있어 소유한 자들의 기쁨을 망치고 싶어한다 ㅋ
최근 성평등을 둘러싼 백래쉬 중 여성들의 평등, 공적인 삶에서의 완전한 평등을 방해하는 것이 세 가지 있는데: 1) 의무를 다하지 않는 여성 (집안일 안 하는 여자들 ㅋ) 이데올로기, 2) 육체성을 가진 여성 존재의 강조 (그래서 여성을 단속해야 함 ㅋ) 3) 성공한 경쟁자로서의 여성 ㅋㅋ (그래서 더 이상 여성우대가 필요 없다!) - 이는 이민자들에 대해서도 옹일하게 적용 가능 하지만 1, 2가 결합하면서 여성 문제에서 더욱 두드러짐 하지만 누스바움의 반론은 간단.... "여성이 타고난 본성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라면 하지 못하게 막을 필요가 없다" ㅋㅋ
성차별주의자와 여성 혐오자의 구분도 명쾌한데, 전자는 '불쌍한 여성들, 언제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지'라고 말하는 반면 후자는 '빌어먹을 여자들이 못 들어오게 해' 라고 표현함 ㅋㅋㅋ 이런거 보면 한국의 중장년세대는 성차별주의자, 떠오르는 이대남들은 여성혐오자로 분류하는게 맞을 것 같음
여성혐오와 성차별주의가 항상 같은 것은 아니며, 성차별주의자들의 믿음은 증거로 반박할 수 있고 실재로도 그래왔음. "진짜 문제는 조롱, 혐오 표현, 고용과 선출의 제한,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존중 거부 등의 방법을 써서라도 구시대의 질서를 유지하겠다는 남성들의 결심!" 하지만 '여성혐오는 순간의 위안일 뿐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지만 현실에서는 혐오 자체가 여성들을 위축시키고 제약하는 칠링 효과가 엄청나잖아.. ㅡ.ㅡ 누스바움 전반적으로 낙관적이심....
희망은 두려움의 반대편에 있으며, 둘다 불확실성에 반응하지만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반응. 희망은 전진하고 두려움은 물러선다, 희망은 취약하고 두려움은 자기방어적이다... 두려움은 타인의 독립성에 대한 믿음보다는 통제하고자 하는 군주의 욕망과 비슷. 마찬가지로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지 않는 사람은 통제하려는 사람, 군주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음. 내욕망에 부합하지 않는 것은 무엇도 좋지 않으며 불확실성과 취약성의 여지도 없고, 희망도 없다! 뭐 이런 논리...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희망을 지탱하는데 도움이 되는 영역으로 추천해준 것이.... 시와 음악을 비롯한 예술, 교육기관이나 다양한 토론 집단의 비판적 사고, 타인에 대한 사람과 존중을 실천하는 종교단체 (????), 폭력을 지양하고 대화로 정의를 추구하는 연대단체, 그리고 (그런 단체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정의에 대한 이론들..
허나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ㅋ '혐오와 수치심'에서도 그러했지만 '사회정의를 으뜸으로 삼는 유대교'를 향한 신실한 신앙... 이 양반 사상에서 제일로 이해 안가는 것이 종교.. 고상하고 진보적인 엘리트 유대교회 신도라서 그런가... 당최 이해불가.... 존재론적 유신론도 아니고...
"철학자들은 종교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무척 종교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철학자들이 대중적 영향력을 거의 끼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어리석거나 천해서 종교를 믿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종교를 믿는 개개인이 그 안에서 분열과 보복보다느 포용과 애정이라는 희망의 요소를 찾길 바라야 한다. 철학은 적을 존중하는 법은 알려주지만 적을 사랑하는 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예술이, 또 많은 이들에게는 종교가 필요하다"
네? 뭐라구요???????
인종과 계급의 차이를 넘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초월하는 공동의 목표를 생각해내는데 도움을 주는 방법으로 공공업무 의무복무 제도 제안.... 계급분리가 고착화되는 상황에서 나도 동의함.. ㅜ.ㅜ 하지만 이게 체험학습으로 끝나지 않게 하려면.. 하...
전반적으로 찬찬히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가끔은 과연 이 방법이 통할 수 있을지 고개를 갸우뚱하며 깊이 빠져들 수 있는 묵직하면서도 희망적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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