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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이지 않은 것 같지만 본격적인 정치이야기

밀린 독서노트 틈틈히 정리해보자. 티끌은 모아봤자 티끌이라지만, 어차피 태산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으니 작은 티끌들을 소중히 줍줍..

 

# 그런 세대는 없다 (신진욱, 2022)

그런 세대는 없다 -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그런 세대는 없다 -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신진욱
개마고원, 2022

 

신진욱 선생님의 진정한 빡침이 느껴지는 책 ㅋㅋㅋ 내가 그놈의 88만원 세대 때문에 20년동안 W 욕했지만 메인스트림에서 실명으로 이를 비판한 경우는 보기 드물었던지라, 일단 책에 급호감 ㅋㅋㅋ
이 책의 미덕은 이러한 빡침에도 불구하고 차근차근 세대론의 이론적 기원을 설명하고 (만하임 등장!),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을 실증적으로 검토하면서 "세대" 그 자체가 아닌 "세대 담론"을 둘러싼 지형을 세밀하게 분석함.

불평등 그 자체에 대한 분석은 이미 오래 전에 신광영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사회학자가 수행하여 세대 간 불평등보다 세대 내 불평등 문제의 본질을 지적했던 바 그리 새로울 것은 없었지만, 세대 담론의 진화는 매우 인상깊게 읽었음. 박근혜 정부의 소위 노동개혁을 거치면서 청년과 불공정 담론이 본격 만나게 되고, 조국 사태를 거치면서 이것이 폭발적으로 팽창하는 경과를 뚜렷이 보여줌. 사실 나는 조국 사태가 이 정도의 폭발력을 가진 사건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었는디...  물론 그것이 보수언론과 정치이데올로그들에 의해 적극 조장된 담론/프레임이라 해도 일단 이렇게 폭발하고 나면 담론 그 자체가 새로운 힘이 되어버린다는 점에서 심각성이 존재.

 

"기성세대라는 가상의 악을 만들어 청년들에게 비난의 대상을 만들어주고 청년의 편인 듯 가장하여 인기를 얻으려는 발상은 어쩌면 큰 걸림돌이 없는 일일지 모른다. 왜냐하면 그 기성세대른 동일한 이해관계를 가진 사회집단으로서 실체가 없기에, 비난에 대해 반박하지도, 보복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냐나 만약 당신이 고용주에게, 직장상사에게, 집주인에게 맞선다면 당신은 곧바로 응당한 댓가를 치를 것이다. 그가 노인이든, 중년이든, 당신보다 젊은 청년이든 말이다. 계급은 실체이기 때문이다"

 

제도권 정치든 사회운동이든 고령화가 진전되고, 젊은 리더들이 기성 정당으로 편입하여 정치게임의 '작은 부품으로' 편입되는 현상에 대해서도 속시원하게 간명하게 진단을 내림

"구조의 본질은 나이가 아니다. 이미 권력자원을 점하고 있는 기성 정치세력들이 현존하는 정치질서의 근간을 위협하지 않으면서 개혁적 에너지를 흡수하여 체제를 지속하는 체제. 안토니오 그람시가 변형주의 transformism 이라고 불렀던 반 개혁 정치가 본질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MZ 세대 담론은 압도적으로 경제력과 문화자본을 가진 상류층과 중산층 청년들에게 접속하는 청년담론. 그렇다보니 사실 소비자로서 청년 세대를 호명한 1990년대 X세대 신세대 담론과 다르지 않음. MZ 세대 어쩌구 볼 때마다 저거 30년 전에 했던 똑같은 이야기잖여 라고 마뜩찮아했던 X 세대의 직관을 분석으로 잘 보여줌.

근데..... 아무리 이런 분석이 있고, 심지어 이를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책을 내면 뭐하냔 말인가... 쓰나미같은 미디어와 상업자본의 공세에 어떻게 맞설 수가 없잖여 ㅜ.ㅜ

 

#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허시먼, 2016)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 퇴보하는 기업, 조직, 국가에 대한 반응
앨버트 O. 허시먼
나무연필, 2016

 

2년 전에 읽은 책에 대해서, 에버노트 쪽메모를 기반으로 독서노트를 정리하는 나란 사람.. 대체.. ㅜ.ㅜ

기억이 나지 않아, 기억이 나지 않아... 곽재식의 '칼리스토 법정의 대역전극'에서 마금희 변호사가 로봇판사에게 어뷰징을 걸기 위해 불렀던 노래를 내가 여기서 부르게 될 줄이야...

하여간, 노력을 해보자면...

 

제발 번역서 제목 좀.. "Exit, Voice, and Loyalty: 이토록 간결한 원저 제목을 왜 이따구로....  ㅡ.ㅡ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오래된 고사에도 불구하고, 어떤 공동체에 남아 부단히 뭔가를 바꿔보려했던 사람들의 고민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가.... 하면 그건 아니고 ㅜ.ㅜ

경제학자이자 정치사상가답게 어떤 상황에서 이탈이, 혹은 항의가 조직 혹은 구성원들의 목표 달성에 기여할 수 있는지, 그 와중에 충성심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논리적으로 탐색한 책이었음.

합리적 주체 (호모 이코노미쿠스)와 완전경쟁 시장에서 수요-공급이 지배하는 경제학의 세계에 이탈 이외에 충섬심이나 항의라는 개념은 존재하기 어려움. 소비자는 이 상품이 맘에 안 들면 다른 상품으로 옮겨가면 되잖여. '회복가능한 일탈'이란 개념이 존재하기 어렵지....  허나 현실은 그보다 구질구질하고
또 독점인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적극적 항의를 통해 변화를 도모하는 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라도 이런 작업이 필요했다고 설명함. 놀랍게도 책의 발간 시점은 베트남전으로 미국이 혼돈에 휩싸여있던 1970년...

저자가 1958년에 출판한 [경제발전전략론]의 기본 명제가 "발전은 주어진 자원과 생산요소들을  최적으로 조합하는 것보다는 여기저기 숨어있거나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자원과 능력을 발전 목표에 맞게 이끌어내 정렬시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는디, 어쩐지 너무 절절하게 공감.. ㅜ.ㅜ

모든 조직이 매 순간 최대한의 능률로, 최대한 활기차게 움직이는게 아니라, 그게 운동조직이든 민간기업이든 공공부문이든... 시간이 되면 어찌 되었든 느슨해지는디.. 허시먼은 "느슨함은 매순간 태어난다'며 "제 아무리 기능을 잘 고안해서 제도적 틀을 갖춘다 해도 기업 등의 조직은 합리성, 효율성, 잉여생산 에너지를 서서히 잃어가는 지속적이고 임의적인 퇴보와 쇠락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퇴보는 언제나 공격을 멈추지 않고 존재하는 힘이라고 생각하는 이 급진적 비관주의는 스스로 고유의 치유책을 마련해낸다" 고 기술함. 기이할 정도로 냉정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관점이여 ㅋㅋㅋ

 

밀턴 프리드만을 비롯한 경제학자는 이탈이야말로 효율적이고 심지어 유일한 문제 해결방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예컨대 공교육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비롯된 것임. 부모들에게 쿠폰 나눠주고 경쟁적으로 제공되는 교육서비스를 선택하여 구매하지 못하는 경우, '오로지 성가신 정치적 채널을 통해서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라는 문장이 대표적. 항의에 대한 경멸이 아주 잘 드러남.

그러나 현실에서는, 국가에서 가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제도들은 성가시더라도 항의를 다루는 것이 일상적이고 때로는 유일한 대처법이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지.. 밀턴 프리드만 이 냥반, 이 시절에도 까였는데 나중에 무슨 세상 멘토인 것처럼 사람들 떠받드는거 꼴보기 싫어 죽겠음. (심지어 내가 2년 전에 이런 메모를 남겨놨는데, 자칭 대한민국 1호 영업사원께서 밀턴 프리드먼을 끔찍이 떠받드는 걸 실시간으로 보고 있어야 함. 뭔 시련인가!!!)


하지만 정치학 영역에서 이탈은 '변절, 반역'이라는 이름표가 붙은 범죄행위로 낙인찍히기도 함.. 이것도 진짜 꼴불견이자 세상 망조의 지름길. 변화를 위해 싸우는 것도 아니고 일단 우리가 남이가 해서 결속만 외치는 것도 꼴보기 싫기는 마찬가지..

근데 현실에 이 두 가지 극단 정말 분명한데,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이를 어느 한쪽만 지켜봤다는 것도 좀 의외이기는 함 (1970년 이 저작 이후는 좀 달라진 것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잖여)

  • 이탈 exit : 경쟁(즉 이탈)이 하락한 성과를 회복시키는 기전으로 작동하려면 예민한 고객과 둔감한 고객이 혼재되어 있어야 함. 썰물처럼 모두 빠져나가거나 아무도 이탈하지 않으면 그냥 망해버리거나 아니면 개선의 기회를 놓치게 됨. 이런 면에서 모두가 초예민하고 정치의식, 참여의식이 드높은 것만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음 (문제가 생길 때마다 마치 가슴속에 시말서 품고 다니는 직장인이라도 되는 양, "내 이럴 줄 알았다" 며 돌아서는 행태가 떠오르지 않냐고... ㅜ.ㅜ)
  • 항의 voice: 물품을 구매하는 기업보다는 자신이 속한 '조직'과 관련해서 더 중요한 역할. 당연히 후자의 숫자가 더 적기 때문이기도 함. 경쟁이 적어서 마땅히 이탈할 곳이 없...ㅜ.ㅜ 이탈이 '이것 아니면 저것'의 확실한 구분만을 필요로 하는 것이라면 항의  방식은 기본적으로 계속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는 예술 (이 아니라 '기예' 아님??? art?)
  • 이탈과 항의의 결합: 품질 변화에 가장 민감한 소비자들이 신속하게 이탈. 공립학교 교육 질 나빠지면 교육에 관심많은 중산층 이상이 빠져나가는데, 문제는 이들이야말로 가장 활발하게 교육의 질 개선을 위해 항의할 수 있었던 사람들. 사립학교에서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으니 이들은 항의 기전을 더욱 열심히 활용 (사립학교에서는 이탈이 강력한 원상회복 기전). 반면 공립학교에 남아 있는 이들은 목소리 내기 어렵거나, 이탈이 발생해도 반응성이 낮다는 문제.  이는 한국의 공립학교, 공공병원이 가진 문제 그대로... 결국 사적 부문을 축소하여 이탈의 가능성을 줄이고 공공부문의 이탈/항의에 대한 반응성을 높여야 하는디.. ㅜ.ㅜ 삶의 질과 관련된 기본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항의 방식이 특히 중요! (그런데 대개 고품질 범주에서 이탈보다 항의가 쉽게 발생하기 때문에 계층 간 간극이 더욱 커짐)
  • 게으른 독점의 문제: 경쟁은 예상과 달리 독점을 억제하기보다 말썽많은 고객을 제거함으로써 부담을 덜어주는 경우가 많음 ㅜ.ㅜ '일종의 '전제적' 독점.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  이 경우, 강한 자가 약자를 억압하고 게으른 자가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즉 독점에 대한 야심은 없지만 동시에 독점으로부터 탈출이 가능한 까닦에 더욱 견고하고 억압적 ㅜ.ㅜ (라틴아메리카 독재 국가들이 언어나 문화가 비슷한 이웃 국가로의 망명을 적극  부추겼던 사례) 하지만 다른 곳에서 거래 상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기업/조직이 자신의 욕구화 취향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유혹하고  협박하고 유도하는 소비자들의 힘 존재

 

쉽게 이탈할 수 있으면 항의 방식에 호소하는 일이 줄어들 것 같지만, 항의 방식의 효과는 이탈의 가능성 덕분에 강화됨. 즉 이탈의 위협 덕분에 항의가 작동함.

충성파가 조직을 떠날 시점을 판단할 때, 이탈 시 감내해야 할 도덕적 혹은 물리적 고통보다는 자신들이 떠나면 이 조직이  악화일로에 처할 것이라능 생각 때문에 쉽게 이탈하지 못함...  (ㅜ.ㅜ 한국 운동조직의  또 다른 일면 아닌가. 하지만 이렇게 해서 망할 조직이면 진즉 망해야 ㅡ.ㅡ)
또다른 문제는 조직의 산출 혹은 질이 구성원들이 떠나간 후에도 문제가 되는 경우인데, 즉 완전한 이탈이 불가능한 경우를 나타냄. 이를테면 중산층이 자기 자녀를 사립학교 전학시키는 방식으로 공교육에서 이탈해도, 이 지역 공교육의 질은 공동체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공립학교 문제는 내 알바 아니라고 할 수 없음. "빠져나올 수 없다"는 표현이 쓰임. 이것이 바로 공공재의 외부효과 아니겠나 싶지만, 이것조차 감당하기 싫어서 더 멀리 떠나는 것이 현실이기도....


미국은 전통적으로 이탈의 국가.  유럽 맘에 안 든다 - 미국 신천지로 이민 - 미국 동부가 마음에 안 든다 - 서부로 진출... 이는 기묘한 순응주의와도 연관되며, 떠나가는 이민자라기보다 항상 떠나온 이민자들이라 할 수 있음. 떠나고 나면 이전에 속했던 공동체에 더이상 신경 쓰지 않음. (다만 저자가 이 책을 쓰던 시점의 히피 운동은 이탈의 방식이되 기묘하게 항의와 결합되어 있었음) 어쨌든 싸우지 않고 이탈하는 습성 때문인지 미국 베트남전 관련한 정부의 잘못에 대해 어떤 관료도 항의하며 그만두기보다 개인사, 가족사 등을 언급하며 도망치듯 이탈하는 것에 저자 화냄 ㅡ.ㅡ  '공직자들이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정책에 항의하여 싸우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있다'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반대자의 순치'가 존재함. 베트남 정책에 회의적인 관료들에게 '공식적 반대자' 혹은 '선의의 비판자' 역할을 부여한 것. 회의자들은 이를 통해 스스로 양심의 위로는 받겠지만 그의 입장은 명확하고 예측가능해지며, 이들의 권력은 심각하게 손상되고 입장은 무시당함. 반대자들은 그저 팀의 일원으로서 역할분담에 참여하고 있다는 조건 하에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게 됨. 이를 통해 강력한 무기, 즉 반대의견을 제시하며 사퇴위협하는 행동이 사전에 포기당함... (나도 주류 학회에서 이런 거 여러 번 느꼈음. 너에게 비판자의 역할을 기꺼이 줄테니 이 경계 안에서 마음껏 말하려무나..... ) 이 경우, 기회주의는 공식적 의무감으로 합리화될 수 있음

"좀더 미화하자만 비밀스러운 순교라는 가면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달콤하고 복합적인 동기유발이 주어진 상황에서 비들기파는 자신의 정당화 논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한층 강도높게 지속적으로 기회주의 행동에 빠져들게 된다. 비둘기파는 자신의 이탈이 상황에 미칠 영향력과 파괴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게 된다"

 

요약하자면...

 

조직원의 
강력한
반응 양식
이탈
아니오
항의
자발적 결사체, 경쟁적 정당, (예) 소수 구매자를 대상으로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가족, 종족, 국가, 교회, 전체주의 아닌 일당 지배적 정당
아니오
고객과의 관계에서 경쟁적인 기업
전체주의적 단일정당, 범죄조직

 

가능한 조합
조직이 퇴보할 때 구성원 반응
이탈
항의
조직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피드백 방식
이탈
경쟁적 기업 
반대가 허용되지만 그것이 (순치를위해) '제도화'되어 있는 경우
항의
대체제의 경쟁에 직면한 공기업, 게으른 과점체계, 기업-주주 관계, 도시 중심부 등
구성원들의 충성심을 상당히 확보하고 있고 민주적으로 반응하는 조직

 

그니까.. 대체 언제 갈라서야 하냐구 ㅜ.ㅜ  나는 그게 알고 싶은데...

 

이런 종류의 책에서 보기 드문 방식으로 저자는 글을 마침

"이 책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그것이 무엇이든 현재 무시되고 있는 반응 유형의 숨겨진 잠재력을 이끌어내 이탈 혹은 항의 방식을 택하도록 고무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글쓰는 자의 꿈이 적으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쫌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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