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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메일

엄마가 딸이랑 이야기 한 번 해보시겠다고 컴을 배우기 시작한지 어언 10개월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컴을 만지는 것도 불안해하시더니, 요즘은 혼자 영화 예고편을 동영상으로 보시질 않나, 불쑥 메신저에 나타나서 말을 거시지 않나...

심지어 "ㅎㅎㅎ ㅋㅋㅋ" 같은 문자를 보내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하신다. 

그야말로 일신우일신이로다.

 

사실, 엄마가 나한테 처음으로 보낸 이메일에는 딱 세글자가 써 있었다.

아직도 기억난다. "미얀해"

내가 대전에 있을 때 한 30분 동안 전화통을 붙들고 똑같은 이야기를 수십번 하면서 이메일 쓰는 법을 갈쳐드렸는데 (목소리는 자꾸 커지고 ㅡ.ㅡ)... 기어이 성공하면서 이런 편지를 보내셨던 거다. 엄마가 뭐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어디 나가도 생전 전화 안하는 딸한테 어떻게듯 연락을 닿아보려고 하는 필사의 몸부림인데....

 

하여간 우리네 엄마들 정말 대단하다. 한다면 하는 정신.... 지금 다니는 구청 주부 교실에 한 아주머니는 아들이 컴퓨터를 만지지도 못하게해서 오셨단다. 암 것도 모르는 엄마가 잘못 손대면 고장난다고... 그 이야기 들은 학급 동료 아줌씨들... 일치 단결하여 어디 보란 듯이 우리도 배워 봅시다. 하며 결의가 장난 아니란다.....  

 

컴을 다룰 줄 모르는 울 아빠, 딸이랑 연락하려면 엄마 눈치를 슬슬 봐야 한다. 얼마 전에 엄마가 음성채팅을 연결하더니 "야, 너네 아빠가 말 한 번 해보려고 저렇게 잠도 안 주무시고 기다리고 있다. 바꿔줄께..." 하신다. "아빠.. 요즘도 술 많이 드신다면서요?" "누가 그래? 개떡같은 느이 엄마가 그러지? 요즘 통 술 안 마셔.." 이 때 혜성같이 나타난 엄마의 목소리.... "어디서 애한테 거짓말을 하고 그래요? $$$%%% " 급기야 아빠는 마이크뺏기고 깨갱.... 정보 권력... 대단하다... ㅡ.ㅡ

 

오히려 최근에 엄마의 맞춤법과 띄어쓰기가 부쩍  부실해진거 같아 신경 좀 써달라고 (독해가 어렵다고) 했더니만 엄마의 답변... 

  

"엄마가 타자를 않보고 치느라 그런데 이해하슈 ㅎㅎㅎ"

이해하슈 ㅎㅎㅎ............... 허거덕....

 

 

지난 주에는 류미례 감독님의 다큐를 꼭 봐야 한다고 엄마한테 강추했더니만 주말에 혼자 어렵사리 찾아가서 기어이 보셨나보다. 같이 갔었어야 하는데.... 근데 영화평이 진짜 간명하다 -.-;;

 

"오늘 성다에 갖다가 극장에가서 보고왔어,

봄이오면 이라는 엄마라는것을 동시상영 하드라

손님은 나혼자더라 나 하나 때문에 필림을 돌리니 미얀하기도 하고 무섭기도하드라

봄이오면 이라는영화는 언니는한국살고 동생은 외국 사면서 서로 그리워하는 것이고 엄마라는영화는 남편이 술 먹고 때리고하여 집을 나갖다가 남편이죽자 들어와서 엄마도 장사하면서 아이들 한테 불친절하게하고 시장바닥에서 춤추고하다가 나이먹어 남자친구를

사귀어 술도 끊고 웃는얼굴를 하니 자식들이 불만을 하면서도 이제야 엄마가 새 인생을 산다고 좋아하는 영화더라 재미있다기보다 우리가 사는 현실인것 같드라 압구정 역에서 버스로 4정거장이더라 찿느라고 고생이 많었어 아빠 저녁차려야하니까 고만쓸깨

 

지난 번에 산에 다녀왔을 때에는 이런 편지를 보내기도 하셨다.

 

"딸

엄마야

썰매장 가서 잘 놀았니?

너는 운동하고는 담 싼 사람인데 걱정이 돼는 구나

다칠까 걱정이다 "

 

예리한 엄마 같으니라구....

 

하여간...

오늘 편지를 보니 부쩍 엄마가 보구 싶다. 그리고 까맣게 잊고 있었던 봄나물과 된장국이 떠오른다. 흑흑.... 어무이....


"딸 잘있니?

오늘 OO엄마가 우리집에와서 자기메일열어보고 눈물를 흘렸다 왜냐하면 OO가 자기엄마한테 메일를 보냈는데 그동안 잘못한 일과 컴퓨터 배우려고 애쓰는데 곰살굳게 가르쳐주지못해서 미얀하다는 글을 썻거던 그래서 너무감격해서 으으으

엄마들은 자식이 열번잘못해도 한마디 사과에 감격 하느법이다....

이제는 날씨도 따뜻하고 꽃도 피는데 우리딸 쑥국먹고 싶어서 어쩌나 꾹 참고 있어 한국에 오면 엄마가 많이 끓여 줄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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