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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알제리 전투]

소문은 무성했으나 볼 기회는 없었던 영화 [알제리 전투] (1966년 작)를 보았다.

개봉 소식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명불허전이라....

칠레전투가 완전 다큐라면, 이 영화는 다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큐가 전하는 것 이상의 리얼리티를 담고 있었다. 어쩜 다큐가 아니기 때문에 긴장감을 극대화하는 '연출'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잘 만들어진 영화나 소설이라면 으례 그렇듯,

이 영화는 결코 계몽적이거나 '단선적'이지 않다. 긴장과 갈등, 그리고 관객들의 고민을 불러일으키는 무수한 상황들이 툭툭, 때로는 미묘하게 제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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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즘을 다루는 태도도 그랬다. 가시적인 테러와 좀처럼 가시적이지 않은, 그러면서도 실질적 효과는 더 엄청난 구조적 폭력의 문제 중 무엇에 비판의 무게를 두어야 할까? 후자의 극복을 위해 전자는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예전(?) 같으면, 일고의 여지도 없이 후자의 '근본적' 문제를 지적하며 전자를 (상대적으로) 옹호했었을 게다. 그런데, 이제는 도저히 못 그러겠다. 입장은 지지하지만, 내가 그렇게는 못하겠다는 소리다. 대의를 위해 누군가에게 구체적인 위해를 가하는 행동을 이제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고 예전에 했다는 소리는 아니고... ㅡ.ㅡ  하지만 대의명분이랍시고 후배들을 위험에 처하게 했던 몇몇 일들을 지금 떠올리면 등골이 서늘하다.....) 조지오웰처럼, 결국 어느 순간에는 (전적으로 지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총을 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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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서 진정한 모범군인으로 등장하는 마띠유 대령의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대사는 IMDB 에서 퍼옴)

"We aren't madmen or sadists, gentlemen. Those who call us Fascists today, forget the contribution that many of us made to the Resistance. Those who call us Nazis, don't know that among us there are survivors of Dachau and Buchenwald. We are soldiers and our only duty is to win."

"Should we remain in Algeria? If you answer "yes," then you must accept all the necessary consequences.:

 

알제리의 식민모국은 프랑스...

공화주의의 모범을 세웠고, 나치스에 그 어느 나라보다 격렬하게 저항했고, 현재에도 막장 미국에 비하면 나름 똘레랑스를 갖추고 있다고 인정받는 그런 나라...

하지만 인도차이나, 알제리까지, 무려 60년대까지도 식민지를 유지했던 대표적 제국주의 국가 중 하나라는 점을 나는 종종 잊는다. 

알제리에서 학살을 저지르고 엄청난 차별과 억압을 자행했던 130년의 역사는, 프랑스의 소수 제국주의자나 꼴통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대령의 이야기가 바로 그 점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게 바로 슬픈 현실인 것이다. 내부로부터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혹은 묵인이 합의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제국주의가 가능할 수 있겠는가. 이건 자본의 폭력적 속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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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일제 시대에 부역하던 이들은 정말로 해방이 올 줄을 꿈에도 몰랐단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하면서 의아해했는데, 30년 이상 식민통치가 지속된다면 그럴 법도 하겠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진다. 그리고 정권이 바뀌면서 불과 1년 사이에 사람들이 속내를 드러내거나 혹은 변해가는 모습들을 보니, 그 때에는 어땠겠구나 하는 짐작도 새록새록....

120년이라는 식민통치를 겪으면서도 소진되지 않고 남아있는 독립의 열망은, 자유를 향한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성으로 해석해야 할까?

 

영화에 보면, FLN 지도부가 다 소탕(?)되고 난 2년 후, 다시금 들불처럼 민중봉기가 끓어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모두들 국기를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데, 국기라기보다는 넝마에 가까운 천쪼가리들.... 걸치고 있는 옷들도 그닥.... 그걸 보고 있자니그보다 훨씬 오래 전인, 조선의 독립운동은 얼마나 더 추레하고 볼품없었을 것인가 저절로 연상이 되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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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파농의 [대지의 저주받은 사람들] 을 읽고 복잡다단한 생각과 의문들이 들었었는데 정리를 못하고 넘어간 적이 있다. 차분하게 앉아 좀 정리를 해봐야겠다. 그가 책을 썼을 때 불과 서른 여섯.... 결국 독립은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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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이라면, 엔리오 모리꼬네가 영화음악을 맡았다는데, 정말 딱! 이었다.

그리고, 영화에서 FLN 지도부로 등장하는 배우는 실제로 주도적 활동가였고, 나중에 정부 각료가 되었다고....ㅡ.ㅡ

 

참, 주인공인 알리가 교도소에서 혁명운동에 눈을 뜨고 출소하여 첫 임무를 수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글을 몰라.... ㅜ.ㅜ 그래서 지령을 전달하러 온 꼬마가 지령을 읽어준다. 나 원... 글도 모르고 어떻게 혁명운동을 한다는겨... 순간 속터져 죽는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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