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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도전적인 제목의 책이다.

 

야마다 마사히로 지음, 장화경 옮김. [우리가 알던 가족의 종말 - 오늘날 일본 가족의 재구조화 ] 그린비 2010

 

 

전적으로 동의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고 뭔가 정치적으로 불편하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상당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일본사회 가족과 결혼의 문제를 경제적, 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하고 있다.  부부 개별 성 쓰기와 이혼 자유화라는 민법 개정을 모티브로 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시작했지만, 이들 사건은 향후 벌어질 사건들의 원인이라기보다 최근까지 변화된 일본의 사회상황이 나은 결과물이라고 이해하는 편이 나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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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제 1장에서 이러한 현상을 '가족의 규제완화'라고 표현했다. 애정의 고도성장과 경제의 저성장 속에서 '싫어진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는 불합리성'을 제거한 조치이자 '감정표현의 자유화'라는 것이다.  저자는 경제와 애정, 가족관계가 밀접하게 얽혀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드는 애정 이데올로기, 연애결혼의 제도화가 사실은 아주 최근의 산물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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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장과 3장은 '점차 없어지는 전업주부', '저출산과 기생적 싱글'이라는 제목으로 경제적 저성장이 초래한 미혼화 현상과 결혼난 (그로 인한 저출산) 문제, 그 원인들을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현재 저출산의 원인이 (기혼 가구의 출생자녀수가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미혼화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단호하게 그 원인을 여성의 수입이 어중간하여 혼자 살 수는 있지만 가정을 유지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 전업주부 지향성, 부모와의 동거를 통한 생활수준 유지 (소위 기생적 싱글)에서 찾고 있다.

전업주부 지향성이라.... 21세기에 이게 뭔 일인가 싶다만 실제 조사 결과가 그런 걸 어쩌랴.

사실 근대 사회에서 지지리 고생하던 농촌 여성에게, 도시에서 샐러리맨 남편을 둔 전업주부야말로 로망 중의 로망이라 할 수 있었다. 집안 일이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새벽부터 가혹한 육체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농사일에 비하랴....  하지만 놀랍게도, 일본사회에서 오늘날까지도 여성들의 이러한 전업주부 로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대도시에 거주하는 대졸 여성이라고 특별히 다르지도 않았다.... ㅡ.ㅡ  오히려 지방에 거주하는 비교적 저학력, 혹은 저소득 계층의 여성이야말로, 예전의 그 여성농민들처럼 어쩔 수없이 숙명적인 일을 해야 하는 처지... 

이러다보니, 여성의 직장진출이 미혼화나 저출산의 원인이 될 수 없고, 한편으로 가정-직장 양립이 저출산의 해결책이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에 대해 맘이 편한 것은 아니지만, 또 부정하기도 어려운 듯 싶다. 최근에 읽은 한 논문에서는 여성들이 사회진출을 하고 싶어하고, 일을 통해 자기실현을 하고싶어한다는 게 'femist myth' 의 일종이라는 지적을 했더랬다. 업무 몰입도가 남성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는 것으로 흔히 이야기하지만, 실제로는 다수의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노동시장을 떠나있기에, 현재 노동시장에 남아있는 여성들은 매우 선택된 집단이고, 그걸 토대로 여성일반과 남성일반의 업무 몰입도가 같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무리라는 이야기도....

 

사실 여성들이 가진 일자리의 질이 높거나, 임금이 높거나, 혹은 자기성취감을 높일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기에 쉽게 떠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만한다. (그럼 남성들은 일자리가 다 괜찮아서 떠나지 않는 것인가?)  하지만 사실 그렇게 쉽게 떠나서 전업주부의 '로망' 을 실현할 수 있는 여성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래서 저자가 말한대로 취업을 계속하고 싶어하는 여성의 증대가 미혼화를 초래한 것이 아니라 '고생스럽게 직장일을 하지 않고도 풍족하고 여유있게 자녀를 양육하고 싶다는 전업주부 소망을 가진 여성이 눈에 차는 배우자를 찾지 못해 (그리고 부모와의 기생적 동거) 미혼화 현상이 초래되었고, 이러한 여성들의 존재는 오히려 취업과 가사/육아를 양립하려는 여성과 생계를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는 여성들을 방해하고 있다는 지적은 전적으로 부정하기만은 힘들듯하다.

미혼화가 그렇게나 사회망조인지 동의하기는 어려우나, 최소한 사회경제적 조건의 변화 속에서 여성들의 이해가 단일하게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해보인다.

 

어제 한 의과대학에 강의를 가서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쪽지를 돌렸는데  놀랍게도 '현모양처 겸 교수'라는 답변이 나왔다. 기업적 마인드로 교수들을 쪼아대는 요즘의 대학에서 교수하면서 현모양처 되기란 일단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지만, 21세기에, 그것도 여성전문직의 상징적 존재인 미래의 여의사에게 듣는 현모양처라는 단어가 주는 울림은 참으로 굉장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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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적 싱글이라는 단어를 유행시킨 게 바로 이 저자라고 하는데, 이 또한 선후관계에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여유있는 생활을 즐기고 싶어서 부모에게 기생하는 (!)  비혼자들이 물론 많은 것도 사실이겠지만, 독립을 하고 싶어도 일본이나 한국사회의 빌어먹을 부동산 시세가 이를 허용하지 않기에 또다른 많은 이들이 눌러앉는게 아닐까??? 어쨌든 저성장 추세 속에서 자신의 부모세대만큼 남편이 경제적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그래서 기생적 싱글은 물론이거니와 결혼 후에도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는 현상은 '신분제' 부활의 신호일 수 있다는 지적에는 그래도 백퍼센트 동의!!!

사족이지만, 내 주변을 돌아보면, 나이가 들어서도 부모로부터 통제나 간섭을 받는 경우는 대개 경제적 의존 때문이다. 안 그런 것 같지만,  부모가 자녀에게 해주는 것도 없이 무언가를 요구하거나 자신의 규율을 강제하는 경우는 (극히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 이를테면 드라마에서 내눈에 흙이 들어가기전까지 운운하며 성인자녀들을 휘두르는 경우 예외없이 경제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경우이고, 현실에서도 이건 마찬가지이다.  성인자녀 입장에서도 받았으면 상응하는 댓가를 지불하는 것이  바람직한 경제적 행동이다.

 

하여간, 그래서 미혼화/저출산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미혼 성인자녀와 동거하는 가구에 대해 세금을 매기자는 제안에는 동의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개인의 선택들이 온전히 개인의 것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에 대해서만은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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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부는 개호, 가사, 육아 문제를 현황을 진단하고 진정 바람직한 가족관계라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있다. 가사가 부인의 애정표현으로 간주되거나, 자녀양육에 목숨거는 형태가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는 것이다.

한편 5부에서는 앞으로 일본 가족이 어디로 갈 것인지 전망하는데, 간략한 가족의 사회사와 함께 가족제도의 규제완화가 가져올 파장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나 전후 일본 사회에서 가족은 동원, 총력전의 대상이 되었던 경험을 지적한다. 반전집회에서 우리 아이를 위해 전쟁에 반대한다는 슬로건만큼이나, 주전론자들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는 것 또한 설득력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이런 가족 지상주의적 태도, 사회질서와 결부된 가족주의가 가져온  오랜 갈등의 미봉... 세기말적 위기 속에서 한편으로 가족원리주의가 다시금 부활하기도 했는데 이건 어쩌면 최후의 단말마...

이제 일본사회는 '아내 전업주부, 남편의 고수입'이라는 비현실적 꿈을 버려야하고 가족의 구조조정과 새로운 사회보장제도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로 책은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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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일본 사회의 어제, 오늘, 그리고 미래의 우울한 전망들은 사실 약간의 시차를 둔다면 한국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다.

 "미혼화나 저출산이  문제다"에 전적으로 동의하기 어렵고, 또 현재 여성들의 전업주부 지향이나 노동시장으로부터의 후퇴, 부모와의 기생적 동거를 편하게 살아보려는 여성의 선택 (심지어 약사빠름?)으로만 해석하는 경향이 불편하기는 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없는 부분들이 상당히 많다.

과연 오늘날 한국사회에서의 가족 특성과, 또 그러한 특성이 가져온 사회적 영향은 무엇일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없다. 특히나 사회적 불평등과 관련하여............ 어디 좋은 책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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