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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회 다녀오면서 도덕경을 읽었다.
오강남 풀이의 현암사 버전이다.
부피가 크지 않으면서 너무 후딱 읽어버리지 않을 책으로 딱 한 권을 엄선하여 들고나간 책이다.
번잡하고 시끄러운 공항에서,
청명하기 이를데 없는 시애틀 해변에서,
삐딱하게 앉아 이 도덕경을 읽었다. 부조리극의 한장면..... ㅡ.ㅡ
책에는 워낙 여러가지 판본이 있고, 번역서 또한 적지 않다고 들었다. 그리고 각 버전마다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풀이가 되어 있다고...
무엇이 가장 원전에 가깝고 노자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진실을 잘 드러냈는지 나야 알 길이 없다만, 책을 읽으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 금강경이나 법구경을 읽었을 때도 생각했던 것인데, 처음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담긴 내용과 구절들은 결코 낯설지 않았다. 예전에 그리스-로마 신화나 성경이 서구인의 정신세계와 문화 속에 깊이 뿌리박혀 있다는 것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던 적이 있다. 어려서부터 많이 들어서 관련 상식이 풍부하다는 소리인가? 하지만 불경이나 도덕경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그동안 내가 읽고, 생각하고, 살아왔던 수많은 장면과 방식들 속에 이미 이러한 내용들이 상당 부분, 다양한 수준과 형태로 체화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가 특별히 공부를 하거나 지식을 쌓아서가 아니라, 그야말로 문화 속 깊이 뿌리를 두고 전승되어왔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러면서도 한편 당혹스러웠던 사실은 추상적인 개념어가 포함된 구절들을 이해하는데, 주석으로 붙어있는 한자보다 영어 단어가 더욱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영어 단어의 미묘한 뉘앙스를 잘 이해하고 있다거나 한자실력이 형편없다는 뜻이 아니다. (물론 한자 실력이 형편없는 건 사실이다 ㅡ.ㅡ). 이성적인 사고, 혹은 추론과 추상화의 과정에 한자어보다는 영어가 더욱 익숙하고 편하다는 것인데, 문제는 영어를 그만큼 자유롭게 구사할 능력이 없으면서도 여전히 한자보다 영어가 편하다는 점이다. 이는 (상당한 수준으로 한자가 포함되어 있는) 모국어로 사고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애국심이 부족해서 큰일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다만, 스스로의 사고를 모국어로 제대로 개념화하지 못하고, 또 이를 다른 이들에게 정확하고 적절하게 전달할 수 있는 능력마저 제한된 것이라 생각하니, 안타깝고 조금 한심스럽다는.... ㅡ.ㅡ 또 한편으로는 모국어로 사고를 성숙시키고 추상능력을 발전시키는데 학교교육이 어찌나 부실했었나 하는 원망...
도덕경을 다 읽었다고 해서 '도'가 무엇이지 깨달은 것은 아니다. 시도 때도 없이 접근하여 '도를 아십니까' 묻는 이들이라고 해서 그 도를 깨달았다고는 물론 생각지 않지만,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다'라는 표현이 역설적으로 도의 정체를 가장 잘 드러내는게 아닌가 싶다.
무위의 정신, 집착을 놓아버리고 자연의 뜻을 따르기를 강조하는 것들이 언뜻 불경에서 이야기하는 열반 혹은 깨달음과 비슷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폭과 깊이에서 열반의 개념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
어찌 본다면, 속세의 강을 건너 열반의 섬에 이르는 나침반이라기보다 이 곳 현세에서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한지를 제시하는 현장 지침서?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도'라는 것이 유가에서 이야기하는 인/의/예보다는 한 수 위의 경지라는 것이다.
"...
도가 없어지면 덕이 나타나고, 덕이 없어지면 인이 나타나고
인이 없어지면 의가 나타나고, 의가 없어지면 예가 나타납니다.
예는 충성과 신의의 얄팍한 껍질, 혼란의 시작입니다.
..."
도덕경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경서이기도 하지만 특히 당대의 위정자와 지배계층에게 나라를 다스리는 올바른 길을 전하는 책이기도 했다. 여러가지 기억해둘만한 구절들이 있지만,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가장 와닿는 것은 이것이다.
"...
백성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
윗사람이 지나치게 삶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
이때 윗사람이 집착하는 삶은 꼭 개인의 복락만을 의미하지 않을 수 있다.
나라를 위해서... 민족을 위해서....우리 집단을 위해서.....그 형태는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헛된 집착 -- 내가 속하거나 다스리는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 타자에게 적대적으로 변해버리는 배타적인 집착, 혹은 타인의 삶을 압도해버리는 집착이 가져오는 결과들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면, 짧지만 참으로 핵심을 찌르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오늘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많이도 아니라, 단 한뼘만큼의 진정한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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