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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박한 시간에 대한 이야기들

엄청 웃긴데, 사실은 슬픈 내용이고,

또 가슴이 무너질듯 하지만, 주저앉지만은 않게 만드는 기묘한 두 권의 책 이야기다

 

#1. 더글라스 아담스, 마크 카워다인 [ 마지막 기회라니?]

 

" 마지막으로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나는 이것 말고 더 필요한 이유는 없다고 믿는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코뿔소와 앵무새와 카카포와 돌고래를 지키는 데

인생을 거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그들이 없으면 이 세상은 더 가난하고 더 암울하고

더 쓸쓸한 곳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마지막 기회라니? - 20주년 개정판
마지막 기회라니? - 20주년 개정판
더글러스 애덤스.마크 카워다인
홍시, 2010

그러게나 말이다.

 

오랜만에 독특한 그의 글을 읽자니,

사라져버린 도도새만큼이나 아쉬운 것은

더글라스 아담스 역시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리차드 도킨스도 책머리 추천사에서 이 점을 대단히 아쉬워하고 있다.

 

더글라스 아담스가 사라져서,

나에게 지구는 조금 더  가난하고, 암울하고, 쓸쓸한 곳이 되었다.  ㅜ.ㅜ

 

#2. 프리모 레비 [ 지금이 아니면 언제?]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존재로서 역사의 소용돌이에 내팽겨쳐진 삶에 대해서라면,

나는 이 작품보다  [태백산맥]을 더 꼽고 싶다.

정서적 거리가 가깝기도 하거니와

(분량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으나) 그 생생함과 짜임새있는 플롯에서 훨씬 낫다는 생각이...

사실, 상당 부분 사실에 기초한 자전적 소설을 두고

플롯이니, 등장인물의 속성들을 논하는게 좀 '미안해지기도' 하지만 ('사실'이 그렇다는데...)

그래도 이것이 르포가 아니라 소설인 이상,

아쉬운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책이 안 좋았다는 것은 아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 - 투신자살한 아우슈비츠 생존작가 프리모 레비의 자전적 장편소설
프리모 레비
노마드북스, 2010

 

" 난 책 없는 빨치산 배낭은

실탄 없는 총이나 조종사 없는 전투기와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네.

그런 자들은 좋은 세상이 와도

살 자격이 없는 인간 쓰레기들이지.

그리고 책은 읽고 난 다음엔 반드시 덮게.

모든 길은 책 바깥에 있으니까."

 

시오니즘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곳곳에서 단서를 찾아볼 수 있다.

유태인 빨치산 대장 게달레는 이야기한다.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이 척박한 팔레스타인에 정착해

사막에 오렌지와 올리브 나무를 심는 자유로운 삶의 공동체를 희망하고 있다고 생각하네..."

하지만 분명히, 빨치산 여전사 라인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동료 포로들의 학살 '작업'에 참여한

유태인 포로들을 비난한다.

".. 도대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뭐죠? ... 아무리 하늘같은 상관의 명령이라 할지라도 그게 잘못된 명령이면 당연히 거역해야죠. 왜냐하면 인간은 바로 생각할 줄 아는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저 포로들은 자기들이 살기 위해 그런 생각을 모조리 유보해버린거예요.

무뇌아나 짐승이 됐단 말예요!"

 

현대사에서 가장 큰 아이러니 중 하나는

맹목적 폭력의 희생자였던 유태인들이,

희생의 역사를 전가의 보도 삼아 듣도보도 못한 깡패짓거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인 것 같다.

자기들이 살기 위해서...

 

오늘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벌이는 짓거리들을 떠올리면, 

그저 땅한뙈기 얻어서 오렌지, 올리브 심는게 소원이라던 소박한 유태인들의 모습이

마냥 따뜻하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사실, 시오니즘 이야기는 이 책의 아주 작은 부분이다.

어둡고 혼돈으로 가득찬 시절에,

과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 핵심이다.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전작 [이것이 인간인가?] 에서 했던 질문이 이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 내가 나를 위해 살지 않는다면

과연 누가 나를 위해 대신 살아줄 것인가?

내가 또한 나 자신만을 위해 산다면

과연 나의 존재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길이 아니면 어쩌란 말인가?

지금이 아니면 언제란 말인가? "

 

이보다 더 폐부를 찌르는 '잠언'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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