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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이성에 대한 책들

 

# 올리버색스 [깨어남]
 
 
 
고통에 빠졌던 이들을 생각한다면 신비롭다는 표현이 적절할지 모르겠지만, L-dopa에 의해 그야말로 깨어남을 경험한 이들을 본다면 그저 신비롭다는 표현밖에 할 수 없는, 기면성 뇌염 환자들의 놀라운 깨어남과 시련, 적응에 관한 이야기...
 
수십년 만에 깨어난 순간, 그토록 오랜 "갇혀" 있던 삶에서도 내면이 시들지 않았다는 점을 경외감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고,
하지만 그 이후의 걷잡을 수 없는 시련에 가슴이 철렁 ㅡ.ㅡ
어쩌면 잠깐의 깨어남만 맛보고 다시 심연의 세계로 침잠해야 하는 그 시련이 너무나 격렬하여, 과연 이러한 투약이 윤리적으로 적절한 것이었나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조마조마조마... ㅜ.ㅜ
 
'내게 있는 것은 어떤 끔찍한 실재다.. 그리고 어떤 끔찍한 부재가 있다"
 
 
이 한 마디에 담겨 있는 차마  몇 마디로 풀어낼 수 없는 고통을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나는 지옥이란 그 누구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러나 나의 환자들은 돌아왔다. 돌아온 이들에게서는 그 경험의 자국이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샌드맨의 유폐가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것이었나 의문이 들어 찾아보니 정말 그러네.....
영원히 잠들고 꿈이 사라진 세계라니....
 
 
# 마이클 셔머 [사람들은 왜 이상한 것을 믿는가]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마이클 셔머
바다출판사, 2007

 

너무너무 기대하며 봤는데 생각만큼 속시원하지는 않음.
굉장히 미국사회 맥락 의존적임 한국이라고 다르지야 않겠지만 구성하는 사례들이 그렇다는 소리...
걱정인 건 이러한 괴상하고 황당한 믿음일수록 전염력이 강해서 시차를 두고 한국에 재현된다는 점 ㅡ.ㅡ
 
 
회의주의는 '입장'이 아니라 주장에 접근하는 '방법'이며 과학 또한 '주제'가 아니라 '방법'이라는 언술은 무척이나 명쾌함.
 
회의주의의 열쇠는 '아무 것도 모른다'는 회의와 '어느 것이든 괜찮다'는 미혹 사이의 불안정한 지협을, 과학의 방법을 쉬지않고 적용하면서 빠져나가는 것
 
 
인용해놓은 스피노자의 발언은 지금, 여기에서, 매우 유효함
 
내가 지금까지 쉬지않고 노력해온 목적은 사람의 행동을 조롱하기 위해서도, 통탄하기 위해서도, 모욕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바로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다른 사람의 믿음체계가 아무리 엉뚱하고 근거가 없고 해롭게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덮거나 숨기거나 억압하거나 아니면 최악의 경우 국가의 힘을 빌려 억눌러서는 안되는 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함
1) 그들이 옳을 수 있음
2) 그들이 부분적으로 옳을 수 있음
3) 그들이 완전 잘못이지만 그것을 검토함으로써 진실을 찾아내고 그 과정에서 생각의 기술 연마 가능
4) 과학에서 절대적 진리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늘 유심히 살펴야함
5) 다수에 속했을 때 관용 베풀면 소수에 속했을 때 관용 얻을 가능성 커짐. 예컨대 검열 메커니즘 확립되면 정세 역전 시 우리에게 검열의 칼날이 날아올 수도 있음
 
그런데 혐오 발언이나 차별 논거의 "실질적" 해악을 과소 평가한건 아닌가 우려됨 ㅠㅠ 물론 검열 그 자체가 위험한 것은 틀림없지만 논리와 이성으로 설득되고 억제하기 어려운 무대포 믿음은 어쩌라고 ㅠㅠ
 
어쨌든 사람들이 이상한 것을 믿는 이유는 요약하자면...
1) 크레도 콘솔란스 credo consolans : 내 마음을 달래주기 때문에 믿는다 (철학적 유신론)-- 과학이나 이성으로 해결할수 없는 형이상학적 문제에 직면했을때 신앙의 도약을 인정한다고 저자는 이야기하지만 난 싫음 ㅋ
2) 즉석 만족
3) 단순성
4) 도덕과 의미: 현재의 과학 혹은 비종교적 체계로는 도덕과 의미에 대한 설명이 불만족스럽다는 것. 과학은 차갑고 잔인한 논리라는 건데, 과도한 뜨거움이 더 문제여 ㅋㅋ
5) 영원히 마르지 않는 희망 - 이게 진짜 문제. 나 좋을대로 생각해서 믿어버리는 것에는 정말 약도 없음
 
그래서 마이클 셔머가 주는 메시지는
"Cogita tute ㅡ 스스로 생각하라" 이지만,
이렇게 안 하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스스로 생각하라고 하냐고... ㅜ.ㅜ
 
 
# 레베카 솔닛 [A Paradise built in hell]
 
 
 
솔닛의 책 처음 읽었는데... 부정적 느낌만 싸~~~
.
밑도 끝도 없는 아니키적 자율주의에 대한 상찬과 제도화된 권력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은 낯선 것도 아니여...
담론의 균형을 놓고 본다면야 사실, 시민참여와 자율성을 강조하고 관료주의의 경직성과 엘리트의 민중 불신에 대해 비판하는 것을 적극 권장할 만하다만.....
역사적으로 제도와 권력의 공백이 사라진 곳에 자율적 평화보다는 카오스적 폭력이 횡행하지 않았냐 말이여... ㅜ.ㅜ 특히 여성과 소수자,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 
제도화된 권력으로서, 합법성을 부여받은 폭력으로서 국가에 대한 불신은 건전한 비판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국가와 제도는 사라져라, 알아서 놔두면 주민들끼리 알아서 다 잘 할거야... 이건 아니잖여.. ㅜ.ㅜ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갖고, 위기 상황에서 기존 질서와 제도를 넘어서는 협력의 포텐셜이 터지는 것은 참 아름답지... 기존의 강고한 제도가 사라진 곳에서 자기효능감을 획득하는 것도 쉽고...
하지만 책에 달아놓은 메모 "밑도 끝도 없는 낙관에 질식할 지경"이 나의 심정을 잘 드러냄
 
긍정적인 사례에 대한 삽화적 근거만을 제시하는 것으로는 논증을 뒷받침할 수가 없다고요...
이것이 학술서적이 아니라 실천적 담론을 강화하는 것이라면, 더더군다나...
실패와 성공의 사례들을 검토하고 그로부터의 교훈들. 특히나 국가가 실패하는 이유, 혹은 시민이 실패하는 이유와 조건, 성공하기 위한 여건과 조건들을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나중에 그렇게 할 수 있지 않겠나...
 
자연발생적으로, 위기나 재난이 터지면 알아서 다 잘 될 거라고 기다릴 건가???
뭐 꿈과 희망을 심어주는 것, 우리는 잘 하고 있어라는 믿음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면야 의미가 있겠지만...
 
사실 세월호나 메르스 보고서 쓸 때, 시민참여에 대해서 누구보다 강조했지만,
여전히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고 어떻게 인권과 참여 민주주의를 존중하고 강화하면서도 정부의 책무성을 강화할 것인가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시민들이 알아서 자발적으로 할테니 정부 빠져... 정부가 끼어들고 나서 생동감이 사라졌어!" 이런 거 너무 위험하다고.. ㅜ.ㅜ
 
심지어 "매일의 일상이 이미 재난 상태라, 실제 재난이 우리를 해방시킨다"니... 와... 위험 불평등은 갈아 드셨나.... 매일이 재난인 사람은 진짜 재난 닥치면 그레이트 재난에 처하게 된다고.. ㅜ.ㅜ
 
물론 지배 엘리트들이 재난 상황에서 민중을 2차적 재난으로 생각하고 패닉에 빠져서 강압적 통제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매우 적절한 비판이라고 생각함. 한국의 메르스나 세월호 때에도 우리는 보았지..
그렇다고 해서 정부 물러나라고 하면 그만한 물리력과 자원을 가진 정부가 없는 곳에서, 아무런 이해관계도 갖지 않은 순수한 시민들과 비정부기구들이 협력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해야 망상....
거버먼트와 거버넌스의 개념을 혼돈한게 아닐까 싶음
 
지배 엘리트를 설득하는 사례로 소개하기에는 좋으나,
지금 여기 한국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오히려 합리적 국가의 제도적 개입이라는 점에서 아쉬움이 몹시도 큰 책...  
 
* 뱀발: PTSD 개념의 오용과 과용, 소위 trauma industry 지적하는 것에는 매우 동의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도서관 대출 순서 1년 기다리다가 결국 사서 읽었음 ㅜ.ㅜ
몹시 흥미로웠는데, 후반부로 가면 어째 좀 기력이 떨어지는 느낌?
 
호모 사피엔스의 성장과 번성 과정을 네 가지 테마로 풀어감
1) 인지혁명 - 근력도 약하고 어디 특출난 데가 없지만, 인지혁명을 거치며 생태계의 가장 위험한 (ㅜ.ㅜ) 종으로 자리잡게 됨
2) 농업혁명
3) 인류의 통합 - 여기에는 돈, 제국, 종교
4) 과학혁명
 
"스스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불만스러워하며 무책임한 신들, 이보다 더 위험한 존재가 또 있을까?"
 
후덜덜.. 아이쿠야....
 
1) 인지혁명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이 진화의 법칙이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효율성 법칙에 의해 설명되지는 않는 법. 게다가 외계는 끝없이 변한다고.. 그런 의미에서 다음의 해석에 고개를 끄덕이게 됨.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인간은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차 있었고, 그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2) 농업혁명
 
근대 산업혁명 이래 인류가 생태계에 가장 치명적인 존재가 되었고, 그 전에는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존재였다는 거 개뻥이라고 설명함 ㅋㅋㅋ  이미 농업혁명 시절부터 범죄는 시작됨.. 그러니 지금이라도 더 열심히 보호해야 한다고 이야기함. 역시 진화론에 입각한 필자들은 피도 눈물도 없음.. 목가적 낭만주의 따위는 개나 줘버리곤 하지 ㅋ
 
현재의 농업작물들이 대개 기원전 9800-3500년 사이에 작물화한 것이고 지난 천년 동안은 주목할만한 작물화나 가축화의 진전이 없었다는 점에서, '우리의 마음이 수렵채집인 시대의 것이라면, 우리의 부엌얶은 고대 농부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함 
 
게다가 수렵채집에서 농업혁명으로이행하면서, 식량 사정은 더욱 불안정해지고 삻은 더욱 고달팠다는 지적에 눈물이.. ㅡ.ㅡ  
 
'역설적이게도 일련의 개선이 합쳐져서 농부들의 어깨에 더 무거운 짐으로 얺혔다. 각각의 개선은 삶을 좀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었는데 말이다... 진화적 성공과 개체의 고통 간의 이런 괴리는 우리가 농업혁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
 
'상상 속의 질서' - 더 커진 공동체를 운영하기 위한 힘으로서 신화 등의 상상 속 질서는 현실에서 실제로 막강한 힘을 발휘했다는 설명에 매우 동의. 이는 직접 연결되지 않은 거대한 집단을 하나로 결속시키게 됨.  
그래서 작가는 매우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함. 이를테면 인권의 개념, 평등의 개념 또한 상상 속 질서라고... 당연히 동의함. 인권이 유전자에 각인된 것은 아님. 하지만 이렇게 상상 속의 질서가 일단 확립되면 그것이 실체가 된다는 점 또한 분명함.
저자는 이러한 상상 속 질서가 언제나 붕괴의 위험을 가지고 있기에 (중력과는 달리) 이를 보호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활발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 특히 일부는 폭력과 강요의 형태를 띤다는 점 지적함. 그리고 폭력과 강요를 넘어선 진정한 믿음의 중요성 이야기함 
생물학적 결정, 생물학적 신화를 통해 정당화하려는 노력을 구분하는 경험법칙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는 기준 너무 적당함 ㅋ
 
3)  인류의 통합
 
'인지부조화는 흔히 인간 정신의 실패로 여겨진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핵심자산이다. 만일 사람들에게 모순되는 신념과 가치를 품을 능력이 없었다면 인간의 문화 자체를 건설하고 유지하기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철학가와 사상가와 예언자는 수천년에 걸쳐 돈을 흉보면서 돈이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매도했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한편 돈은 인류가 지닌 관용성의 정점이다. 돈은 언어나 국법, 문화코드, 종요,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다. 인간이 창조한 신뢰 시스템 중 유일하게 거의 모든 문화적 간극을 메울 수 있다. 종교나 사회적 성별, 인종, 연령, 성적 지향을 근거로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유일한 신뢰 시스템이기도 하다. 돈 덕분에 서로 알지도 못하고 심지어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협력할 수 있다'
 
오케이!
 
로마인들이 오랫동안 관용을 거부했던 유일한 신은 일신교이며 개종을 요구하는 기독교 신이었다는 점에 나 너무 동의함. 율도국에서는 다신교만 인정할 것임 ㅋㅋㅋㅋ 유일신교 혼자 맘으로 믿는 건 말리지 않겠으나 공개적 전파 행위는 절대 금지라고 ㅋ 생각만 해도 짜릿함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4) 과학혁명
 
'길가메시 프로젝트는 과학이 하는 모든 일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한다.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길가메시의 어깨에 목말을 타고 있다  길가메시를 막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프랑켄슈타인을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 우리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행동은 이들이 가고 있는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어떻게? 유발 하라리는 답을 하지 않지만 칼 세이건 할배는 이야기하지 ㅋㅋ
 
 
# Carl Sagan [The Dragons of Eden]
 
에덴의 용 -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
에덴의 용 - 인간 지성의 기원을 찾아서
칼 세이건
사이언스북스, 2006

 

요즘 트럼프 꼴 보면서 문득 할배 생각이 나서 꺼냈더랬지... 
나미비아 여행을 함께 했던 책. 아마 지금 살아계셨어도 홧병으로 쓰러졌을거라 생각하며 읽어나갔지.. ㅜ.ㅜ
 
이미 40년 전에 발행된 뇌과학에 대한 책인데,
정말 믿을 수 없이 아름답고, 명료하고... 그리고 너무 정확함.
두 마리의 말을 모는 전차, 에덴의 용 같은 메타포들 너무 아름답고 직관적임.
그거 예상했던 것보다 뇌의 더 많은 것이 밝혀졌고, 예측했던 것보다 과학기술/정보통신의 발달 속도는 더욱 빨랐지만,논리적 추론으로부터 비롯된 그의 예측 방향은 틀리지 않았음.
과학책이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유효하고 흥미로울 수 있다니 이거 너무 이상한 일이잖아..
 
그리고 과학의 위력에 대한 경고, 그래서 시민의 지적 능력이 향상되고 이 무서운 수단을 통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그의 믿음은 이후로도 한치도 변하지 않았음을 나는 이후 저작을 통해 알고 있음.
 
eloquent 하다는 말은 이런데 써야 한다고 여러 번 생각했음.
스티븐 핑커의 [Better angels of our nature] 읽는 중인데 현재 마음 몹시 불편함. 하지만 그동안 칼 세이건 할배의 책들에서는 1세계  리버럴들의 그런 거슬림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구... 할배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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