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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다룬 책들

# 지그문트 바우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
지그문트 바우만
동녘, 2013

 

 
작년 하반기 쯤 읽고 미처 정리 안 해놓고 있었는데, 올해 초에 돌아가심...
돌아가신 분께 좀 죄송하지만,아무래도 스타일이 안맞음 ㅠ
게다가 도서관 책에 이렇게 깨알같이 메모하는 미친 놈은 또 누구인가??? 책에 집중할 수가 없더라니...
 
새로운 아야기는 없고 다른 사람들의 논거를 '종합' ... 실증과 경험없는 세계에서 인용과 공허한 추상어들이 난무 ㅠ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운동의 사례가 슬로푸드 운동이라니, 이 운동이 자본에 의해 혹은 문화엘리트에 의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모르시남???
 
 
# 엄기호,하지현 [공부중독]
 
 
 
이 책도 도서관에서 어찌나 인기 있던지 출간된지 1년이 지나서야 겨우 빌려볼 수 있었던 책...
엄기호 선생의 책을 읽으면 막연한 불만과 불편함들이 (해결은 안 되어도) 뭔가 개념으로 정리되어서 사회를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됨...
 
공부가 재미없어진 이유에 대한 지적에 매우 공감하면서도, 이것이 공부를 업으로 삼은 인문/사회과학 대학원생에게 한정된 문제가 아닌가 하는 생각.....  하지만 최소한 대학원 이상의 학력을 취득하는 이들 중에서 상당수가 여기에 들어맞으리라
 
"어느 순간부터 공부가 삶의 문제를 푸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식민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부를 하면 언어를 배우게 된다. 세상을 읽고 삶을 해석하는 언어가 늘어나는 것이 공부의 과정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치며적인 부작용이 일어난다. 세상과 삶이 지나치게 단순화되고 추상화된다는 것이다... 구체적 삶은 왜소해지고 대신 이미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어떤 개념들이 그 구체적 삶의 자리를 분해한다. 나의 삶은 그 개념들의 지식 권력의 정당성을 확인해주는 도구에 불과한 것으로 전락한다"
 
개인은 공부를 통해 '유예를 합리화'하며, 통치자는 "너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고 합리화하면서 1인분 몫을 쳐주지 않는다는 지적은 명쾌함.
 
강유원 선생이 생각의 근육을 키우자고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현, 엄기호 선생은 '인간관계의 근육'을 키우자고 함... 아주 적절한 메타포라고 생각됨.
 
위험한 것을 모두 불온시하고 '위험하지 않게' 배우려 하는 것의 위험을 지적한 부분은 리차트세넷의  [무질서의 효용]이 제기한 문제와 맥락이 닿아있음.
 
"위험을 감수할 수밖에 없는 삶의 과정에서 배우는 것은 위험한 일이기 때문에 피해야 하고 대신 그걸 커리큘럼으로 만들어서 관념적으로 배우게 되는 것... 기스 하나 없이 말끔하게 배우는 것이 가능"할까...?
 
자아중심성의 세계에서 나를 환경에 구겨넣기도 싫고, 환경을 바꾸고 싶지도 않고, 다만 환경이 알아서 바뀌어주면 좋겠다는 생각 ㅋㅋㅋ
 
수업과 강의에 대해서도 엄기호 선샘이 이야기한, 서로의 성장이 아닌 '팬 분들과의 엔터테이닝 관계'라는 지적도 무슨 말인지 너무 이해가 잘 됨 ㅋ 문화센터나 시민학교에서 엮는 강좌에 중독... 되는 것도 비슷한 현상... 
 
 
진보, 운동권 낭인 청년들에 대한 하지현 선생의 지적 - 흐트러져 있는  disorganized '라는 표현 너무 한 번에 이해가 됨.
 
 "하자나 시민단체, 아니면 홍대 근처에서 공동체를 만들어.... 책임감도 없고 훈련도 전혀 안 되어 있고 약간의 압박감만 느껴도 도망가버리고, 그렇게 모임을 만들었다 깼다를 반복하면서 적당히 굶어죽지는 않고 살고 있는데 성인으로서의 책임과 의무같은 것은 없고, 히피라고 하면 주관이라도 있느데 그런 주관도 없고"
 
"배울 수 있는 데 가르칠 수 없는게 있다" !!! 이것도 너무 좋은 개념
공부가 교육이 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심지어 공부, 학업에서의 성취가 인간의 '존재 가치'로 여겨지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지적에도 백퍼센트 동의.
그리고 아주 구체적인 사례로 지역아동센터의 역할이 '앎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해주는 것'이라는 지적에 매우 공감.. 그랬으면 좋겠음.
 
"공부의 자리를 원래대로 돌려놓자.. 당대의 문제를 파악하고 헤쳐나가는 삶의 지혜, 기술을 익히는 과정으로서의 공부... "
나도 그랬으면 좋겠음.
 
이것이 '요즘 애들'에 대한 푸념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따뜻한 시각으로 이렇게 된 구조의 문제를 지적해주었다는 점에서 고맙고 다행이긴 한데, 정말 과연 누가 이 불타는 수레에서 감히 먼저 뛰어내릴 것인가,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낼 것인가... 가 관건 아닐까???
"표준화된 삶의 시나리오에 대한 압력이 사라져야 한다...  서구나 일본과 달리 이러한 사회적 압력이 오히려 더 심해지는 한국사회 큰일이다" 이런 지적을 하고 있는데, 나야말로 한국사회의 표준적 삶의 시나리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으니, 존재만으로도 이 사회에 커다란 기여하고 있는 셈이구나  ㅋㅋㅋ
 
 
# 파울 페르하에허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개인이 사회적 진공 상태에 존제하는 것이 아니며 사회 또한 개인의 총합만은 아니라는 전제에서 출발하여 소위 신자유주의적 인격 정체성의 탄생을 분석하고 있음. 비슷한 심리학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살레츨의 [선택이라는 이데롤로기] 보다는 오히려 세넷의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 더 가까움
 
정체성이란 타인과의 동화 혹은 구분, 일치와 분리의 상호작용이라는 점에서 사회와 결코 분리될수 없음. 타인의 신뢰나 존중을 통헤 나의 자존감, 자신감, 타인을 대하는 태도도 결정. 즉 나를 만들어가는 것은 내가 아니라 사회. 이런 곳에서 사회가 모두 신자유주의 규율에 따라 미쳐가는데 나만 고고한 인격을 만들거나 유지할수 잇다는 생각은 좋게 봐야 망상 ㅠㅠ 규범이나 가치는 결코 개인이 소유하거나 잃어버릴수 있는 것이 아님. 고고한 개인주의는 기껏해야 소비주의로 귀결된다는 지적에 슬프지만 공감 ㅠㅠ
 
옛날, 특히 오해를 기반으로 한 낭만과 결합된 기억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태평성대, 도덕과 우애가 곷피는 시절과 대비되는 요즘 것들의 패악에 대한 사회의 통탄과 비난에 대한 비판은 왕고소함 ㅋㅋ
 
신자유주의는 단순히 경제이론이 아니라 이데올로기. 신지유주의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그렇게 똑똑한데 왜 돈을 못버나?"라는 질문에 너무도 이들의 정수가 담겨있음 ㅋ
사실 능력주의 초기에는 신분적 구질서를 해체하는 긍정적 기능이 있기도 했지만 유사이래 순수하게 작동한 경우도 없거니와 현재는 불평등과 차별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로 작동한다는 지적에도 역시 슬프지만 동의 ㅠㅠ
 
능력을 평가하는 자들은 평가에서 벗어나 있다는 지적도 너무 공감. 되도 않는 스펙을 요구하고 청소년에게 자신도 갖추지 못한 창의성과 리더십을 기대하는 제도권 교육이나 노동시장은 물론이거니와, 도대체 알 수 없는 권위로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고압적 평가를 내리는 심사위원들 볼 때마다 그 해괴한 존재의 타당성을 납득할 수 없었음.
일을 하는 사람은 발언권이 없는 사람이고 감시는 점차 감시자가 없어도 저절로 작동하는데 바로 이것이 훈육. 다른 한편으로 배려와 공동체 윤리, 도덕이 사라진 곳에 늘어나는건 계약서... 도덕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아동기로의 후퇴에 다름 아님 ㅠㅠ
누가 보지 않아도, 체벌과 보상이 없어도 스스로 해나가는 건 이제 불가능한 것인가 ㅠㅠ  연대감 대신 보편적 불신이 지배하는 곳에서 이제 고용주는 충성심과 소속감마저도 투자를 통해 억지로 배양해야 하니, 이게 뭔 사회적 비용이란 말인감 ㅠㅠ 
 
권력과 권위, 지배자와 권한자의 차이가 실종되면서 권력을 "입증"해야 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이는  결국 강자의 "권리"가 득세하는 상황으로 귀결되며, 역설적으로 이는 적자생존을 입증하는 증거로 인용된다는 지적에 고개를 끄덕임 ㅠㅠ
상징적 행동방식과 확인가능한 권위가 사라지고 사회윤리가 경쟁지향적 인간상으로 대치되면 실질적으로 적자생존 ... 이렇게 되면 역설적으로 과도한 개입 발생한다는 지적에 다시 대공감 ㅠㅠ
 
사회진화론의 마지막 단계를 나치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라는 지적에 동의. 일본어 강독에서 신자유주의와 사회진화론을 연결하는 게 신기했었는데 이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음
 
이 책 강추...
 
 
# 에드워드 로이스 [가난이 조종되고 있다]
 
 
책이 학부생이나 똘똘한 고등학생을 위한 상세 지침서 같은 느낌적 느낌...
1, 2, 3으로 정리해 주는 거 좋긴 한데 미국식 학술 대중서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끝도 없는 근거의 나열과 너무나 친절한 해설.... 너무나 필사적으로 논리를 방어하고 있다는 생각.. 왜 이렇게 집요하게까지 이야기해야 할까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긴 하다만...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개혁안들이 이미 유럽과 캐나다에서는 하고 있는 것들이라는, 반복되는 애타는 주장... ㅜ.ㅜ
 
사람들이 '느끼는 진짜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지적에 너무나 공감... 그냥 없어졌으면, 안 보였으면 좋겠는 거지....
 
빈곤문화론이 1960년대 처음 등장했을 때에는 빈곤문화를 가난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로 해석했다고.. 하지만 1960년대에 이르러 가난의 책임을 사회에서 개인으로 돌리면서 1970년대 이후에는 학계와 정치계에서 빈곤의 원인 담론으로 만연하게 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음.
 
또한 인적자본론도 비판하는데, 가난의 원인이 교육의 부족에 있다고 하지만, 그보다는 가난하기 때문에 교육 수준이 낮아진 것... 이런 것도 일일이 설명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슬픔 포인트 ㅜㅜ
 
부정적 사회적 자본에 대한 지적 역시 동의. 빈곤층이 그들의 사회적 자본 성격 때문에 이중고를 겪는다는 지적... 빈곤층의 관계망은 사회적 신분 상승에 도움이 되는 자본은 부족한 반면, 자기 구성원을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은 높은 특징. 가난하지만 따뜻한 공동체 따위는 지구상에 없다구요...
 
요약 시간 ㅋ
1) 가난과 불평등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이론 세 가지 - 유전이론, 문화이론 (빈곤문화), 인적자본론
2) 가난 규정하는 네 가지 시스템
  - 경제 (숙련 편향적 기술진보, 경제권력의 불균형, 세계화, 제조업 쇠퇴, 기업구조조정, 일자리 부족)
 - 정치시스템 (특권층 편향, 기업의 정치장악, 정경유착, 노동자와 빈곤층 배제)
 - 문화시스템 (아메리칸 드림과 개인주의 이데올로기, 언론, 우파의 이데올로기 선전기구, 빈곤담론)
 - 사회시스템 (소속집단, 이웃 효과, 사회연결망)
3) 가난을 대하는 사회구조적 관점과 10가지 장애물 - (1) 인종 및 믹족차별, (2) 거주지분리, (3) 주택, (4) 교육, (5) 교통, (6) 성차별, (7) 아동교육, (8) 건강과 보건, (9) 은퇴위기, (10) 법적 권리 박탈
 
결국은 빈곤이 권력을 동원해야만 근절할 수 있는 문제라는 저자의 지적에 누가 반대할 수 있겠나...
번역서 제목도 그냥 poverty & power 그대로 [가난과 권력]이라고 했으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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