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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과학의 상품화 2부

홍실이님의 [] 에 관련된 글.

과학의 상품화는 특별한 변환이 아니라 자본주의 발전의 자연스러운 일부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를 논의하는 것은 분노를 표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과학 활동에서의 이러한 변화가 낳은 결과를 검토하기 위해서이다. 상품 형태는 매우 다른 재화들 사이에서 등가(等價)를 성립시킨다. 낙타 한 마리가 담요 한 장에 상응하지는 않지만, 낙타 한 마리의 가치는 담요 몇 장의 가치와 같을 수 있다. 즉 C≠ B 이지만 V(C) = V(B) 가 될 수 있다. 질적으로 동등한 교환가치를 통해 재화들을 거래하고, 이렇게 해서 서로 다른 것으로의 변환이 가능해진다. 시장은 연금술사들이 할 수 없었던 것을 해내고 있다. 이를테면 1980년 현재, 납 5백 파운드와 금 1온스라는 교환 비를 통해 납은 금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 서로 다른 재화들 사이에 동등성을 성립시키는 이러한 능력은 인간 노동 산물의 교환이 개별 가구 밖에서 주로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여기에는 물론 다른 형태의 교환, 이를테면 관례적인 선물 증정, 공유, 어려운 시기의 재분배, 의례로 자리 잡은 교환 등이 존재한다. 그러나 심지어 가족 안에서도 분배는 상품 관계에 의해 주도된다. 가장 좋은 음식은 돈을 벌어오는 사람한테 주어지며 여성들은 스스로의 벌이를 관리하기 위해 투쟁을 벌여야만 한다. 상품화는 개별 재화들이 경제적으로 비슷하면서 물리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에 기반하고 있다. 비슷함과 다름이 거래의 기본적인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서 이는 추상적 사고의 위대한 진전이라 볼 수 있다. 교환이 완벽하게 상품화되고 교환가치가 재화의 객관적이고 경제적인 속성으로 나타나려면 그 전에 수(數)의 법칙이 작동할 수 있을 만큼 빈번한 교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같은 재화들이 규칙적으로 사고 팔릴 때, 구매자들이 생산자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다른 곳에서 똑같은 생산품을 찾을 수 있을 때, 생산자들이 다른 고객들을 기대할 수 있을 때, 개별 구매자들의 특이한 취향, 상대적인 구매력, 개인적인 절박성 등은 매끈하게 제거된다. 투자가들이 더 큰 이윤을 약속하는 기업에 자본을 쏟아 부을 때, 그리고 사람들(심지어 매우 숙련된 사람들)을 일반화된 노동력으로, 생산의 대체 가능한 비용으로 다룰 때 상품화는 더욱 심원해진다.


19세기 말까지, 과학은 화학․전기 산업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에 채 이르기 전, 대대적인 과학의 상품화가 진전됨으로써 과학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게 되었다. - 연구는 기업의 투자 분야가 되었다. 기술 산업의 경우, 매출의 약 3~7%는 연구와 개발에 지출된다고 알려져 있다. 자본 투자의 한 가지 방식인 연구 투자는 다른 투자 방식들, 이를테면 생산 증대, 광고 증가, 변호사와 로비스트 고용, 다른 사업 분야 기업의 인수, 노조의 궤멸, 잠재적인 고객 국가들의 정책 결정자들에 대한 뇌물 살포 등과 경쟁 관계에 있다. 이 모든 가능성들은 이윤 극대화라는 단일 척도를 기준으로 우열이 가려지게 된다. 기업이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연구 투자가 예산 삭감의 1순위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기술 혁신은 즉각적인 성과물을 내지 못하는 반면, 광고 증가나 노동 혹은 재료비용의 감소는 이윤에 즉각 반영되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의사 결정에 관한 연구결과들을 살펴보면, 관리자들의 전형적인 결정 지평이 대개 3~5년 정도로 나타난다. 연구에 대한 투자는 이 정도의 시간에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만다. 한편,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들은 개별 기업이 아닌 대학, 국립 연구소 등 공공 기관에서 수행되면서 그 비용의 사회화가 이루어진다. 이러한 방식을 통해 개별 기업들은 투자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며, 전체 비용은 세금을 기반으로 사회 전체에 고루 퍼지게 된다. 그러나 이렇듯 사회화된 연구라 할지라도 시장에 내놓을만한 상품의 생산 시점에 이르면 최종 개발은 다시 민간 기업의 손으로 넘어가고 이를 통해 배타적인 소유권 행사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면, 이는 새로운 품종 개발과 관련하여 농업 분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국립 연구소들이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여 인증된 종자 생산자들에게 이를 배포한다. 그러면 품종은 이제 일반적인 소유권이 되어 그것들을 “세공”하고 최종 결과물을 농민들에게 판매하는 종자회사가 독점하게 된다. 연구 투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학술 컨설팅 회사라 할 수 있다. 연구 보고서는 이들의 유일한 생산품이다. (1983년 당시, 보스턴 지역에만도 1~2백 개의 기업들이 생태학적 자문과 관련되어 있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보고서의 질을 검증하는 것은 동료 심사가 아니라 고객의 만족도라는 점이다. 그 보고서가 환경 영향 평가에 관한 것이라고 가정해보자. 이 때 고객을 만족시킨다는 것은, 의뢰한 회사가 법률을 준수하고 있으며 그 활동이 무해하고 최소 비용으로 문제를 잘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해당 감독 기구에 납득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컨설팅 회사와 기업 고객의 관계는 복잡하다. 컨설턴트는 당연히 소규모보다는 대규모 계약을 선호하며, 따라서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보다 더욱 완벽한 조사를 시행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다른 한편, 이 분야의 극심한 경쟁 때문에 컨설턴트들은 비용 절감의 강한 인센티브를 갖게 된다.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은, 환경 지배가 득이 된다는 것을 보증하고, 발생 가능한 문제들을 나열하며, 문제가 될만한 상황들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는 정도로 연구를 끝내는 것이다. 모험을 시도하는 것은 컨설팅 기업들에게 매우 위험한 행동이다. 이들의 자본이란 대개 전산 설비와 사무용 가구들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요 자산은 고객들의 신용이라 할 수 있다. 환경 컨설팅 업체들이 시장에서 빠르게 교체되는 것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학술 보고서가 일단 상품이 되고 나면 이 또한 기업 세계의 두 가지 다른 측면에 의해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역마차는 탈취될 수 있고, 맥주에는 물을 탈 수 있다. 즉, 이들 과학적 상품들은 도둑맞거나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 다른 이들의 업적을 가로채거나, 성공담을 출판하기 위해 혹은 경쟁자를 물리치기 위해 결과를 변조하는 행위는 점차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다. 과학적 사기는 과거에도 일어났고 (널리 알려진 필트다운의 사례처럼) 우선순위에 관한 논쟁은 명예를 두고 경쟁하는 개인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과학적 사기는 이제 합리적인 경제적 기반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점점 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 과학적 발견은 수량화가 가능해졌다. 기업은 신약이나 컴퓨터를 개발하는데 평균적으로 필요한 노동과 비용, 시간을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연구개발 회사나 개발 부서들은 학술 활동을 특정 문제의 해결 방식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일반화된 인간 노동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 과학자들은 “학술 인력”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생산 비용, 대체 가능한 존재, 관리감독의 대상이 되었다. 학문 분야에서의 노동 분업에 해당하는 전공과 서열의 창조가 점차 합리화되고 있다. 학술 활동의 창조적인 부분은 과학자들 중에서도 점점 소수에게로 집중되고 있다. 나머지는 점차 프롤레타리아화되면서 문제의 선택과 접근 방법에 대한 통제권은 물론 매일의, 혹은 매 시간의 활동에 대한 통제권마저 상실해가고 있다. 과학적 관리는 포드(Ford) 사의 악명 높은 테일러 체계 하에서 자동차 산업을 위해 처음 개발되었으나 점차 상업, 사무직 노동, 학술 연구에까지 확장되었다. 관리적 접근은 노동력을 관리자의 목적을 위해 쓰이는 객체로 인식한다. 기술이 분절되고 그에 따라 특성화가 심화되는 현상은 해당 분야의 지적 필요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관리자의 비용 계산으로부터 비롯된다. 두 명의 일반 의료기사를 훈련시키는 것보다는 혈액검사요원과 소변검사요원을 한 명씩 훈련시키는 것이 비용이 적게 든다. 또한 분절화와 단순작업화는 노동력의 통제를 것을 공고하게 해 준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학술활동의 단순작업화는 더욱 큰 소외 현상을 낳는다. 생산자는 전체 생산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이 어디로 어떻게 가고 있는지 알 수 없으며 창조적인 지적 능력을 연마할 기회도 갖지 못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일단 노동이 소외되면 과학은 더욱 강도 높은 감독을 요구하는 하나의 일자리로 전락하고 만다. 이러한 감독의 부담은 소외를 더욱 촉진하며 부패나 무관심을 부추긴다. 이는 통제권을 과학자의 손에서 빼앗아 관리자에게 넘겨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자신의 업무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없으며, 학술 행정 담당자들도 더 이상 그들 동료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이 없다. 대부분의 책임은 조직 위계의 상부에 자리 잡고 있는 자원의 통제권자들에게 돌아간다. 이로부터 파생된 한 가지 결과는, 연구비 지원기관에 제출되는 연구계획서의 분량이 늘어나면서 좀더 상세하고 신중해졌고, 연구 의도를 정직하게 반영하는 경우가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결론을 합리화시키는데 관심이 있는 연구비 지원기관들은 좀더 신중한 쪽을 선택하며 이를 위해 더욱 상세한 기술을 요구한다. - 학술 노동자 그 자체가 생산되어야 한다. 대학과 전문학교의 목적은 다양한 기술 수준의 학술노동 인력을 최저 비용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또한 민간 기업의 인력 부서를 위해 교육 과정 그 자체를 외부 서비스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경제적 효율성이라는 미명 하에 교육자들에 대한 압력으로 작용한다. 학생들이 지나치게 많은 것을 알지 못하도록 하며, 그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즉, 기업주들이 원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즉, 대학원 교육 기간을 단축시키고 돈이 되는 박사학위를 더욱 많이 배출해야 한다. 초등 교육에서의 이러한 압력은 “기본으로 돌아가기”를 뜻한다. 실용주의적 접근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며, 언제나 그렇게 노골적인 것만도 아니다. 교육자들은 가끔씩 사회의 지배적 경향과 충돌하며, 자신들만의 목표를 갖기도 한다. 그러나 보다 창조적인 프로그램마저도 체계를 유연하게 통제하고 유지해야 한다는 불분명한 임무를 위해 인력을 생산한다. 과학자들은 이러한 상품화에 대해 대조적인 방식들로 반응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이를 애통해한다. 그들 중 다수는 중간 계급 출신으로서 거래의 세계를 벗어나는 방편으로 학문을 선택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 산물이 교환을 위해서라기보다 그 자체로서 가치 있는, 즉 사용가치를 갖는 일에 헌신하려고 과학자라는 진로를 선택했다. 그들은 과학이 상품화되기 이전 시대의 신화인 협동정신, 진리에 대한 숭고한 헌신이 사라졌음을 한탄한다. 그들은 학술 노동의 프롤레라티아화, 자율성의 소실을 개탄하며 관리 통제와 가치에 대한 관료적 결정에 대해 개인주의적 방식으로 저항한다. 만일 그들이 조직을 결성한다고 해도, 이를 노동조합이라 부르기를 꺼려한다. 다른 한편에서 과학자들은 새로운 사업 기회를 이용하는데 몰려들고 있다. 일부는 (특히 스푸트니크 발사 이후 미국 번영의 짧은 시기 동안) 재정적 혹은 다른 보상을 가져다주는 여러 가지 대안들 중의 하나로 학문 분야의 직업을 선택한다. 실제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과학자의 약 2/3이 민간 기업에 고용되어 있으며, 이 곳에서는 이윤 추구가 솔직하게 목표로 인정된다. 전문가적 지위를 상실하고 자본주의 체계의 일부로 편입되어 가는 이행 상황은 직업 지식인으로서 과학자들의 이념적 위치와 사회적 행동 사이에 존재하는 모순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그 형태는 개인적 책임감과 이견(異見)을 대담하게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신중한 비판 혹은 고의적인 무관심, 그리고 비굴한 아부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또한 관료화나 프롤레타리아화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저항, 새로운 질서에 대한 현실적 혹은 열광적 참여, 또는 자본주의 반대 투쟁에서 다른 소외된 부문과의 연대까지 실로 다양하다. 이러한 발전의 결과,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계급 분할이 과학 분야에서도 나타나게 되었다. 미국에서 일하는 백만여 과학자들 중 다수는 학술 프롤레타리아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판매하며 그들의 생산품이나 자신의 노동에 대한 통제권이 없다. 그 반대편에는 많아봐야 수천 명 정도가 부르주아 집단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연구에 자본을 투자하며 연구 개발 방향의 상당 부분을 결정한다. 이 두 극단 사이에는 혼자 일하거나 대학, 혹은 연구소 등에서 소규모 집단 활동을 하는 쁘띠 부르주아 전문가 집단이 존재한다. 그들의 동기는 매우 다양한 관심사에 의해 유발되지만, 그들의 연구 활동은 점차로 정부 기관, 민간 기금, 혹은 기업으로부터의 연구비에 좌우되고 있다. 이제 이들에게 연구비는 필수품이다. 그리고 연구비와 연구의 관계는 점점 변해가고 있다. 원래 연구비는 연구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과학 기업주들에게는 연구가 연구비를 위한 수단이다. - 과학에 대한 자본 투자는 주요 산업이 되었다. 여기에는 화학, 기계, 문화 매체, 실험용 동물의 표준 품종, 그리고 학술 정보들이 포함된다. 이로 인해 나타난 결과 중의 하나로, 과학 기술의 발전이 원래 기여하고자 했던 학술 연구로부터 분리되는 일이 나타났다. 기술은 자연 탐구에 필요한 가장 저렴하거나 최선의 방법을 찾는 쪽으로 향하기보다 특정 시장에서 이윤을 획득하는 쪽으로 몰리게 된다. 제 3세계 국가들에서 활동하는 세일즈 관리자들은 새로운 연구소들이 “최고의”, “최첨단의” 장비를 보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품 보충이나 서비스 수선, 안정적인 전력의 가용성 문제 등은 확인도 하기 전에 말이다. 물론 이들 국가의 대통령은 정신과 병원에 기증된 휘황찬란한 최신식 16채널 뇌파측정기 앞에서는 포즈를 취하겠지만, 과실 파리(fruit fly) 조사에 사용되는 바나나 곤죽으로 가득 찬 양동이를 시험하는 데에는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기관을 새롭게 설립하는 것은 기존의 시설을 작동하도록 유지시키는 것보다 훨씬 극적 효과가 있다. 열대 지방 전역에 존재하는 사용되지 못하거나 파손, 혹은 방치된 시설들에 관한 이야기들은 이제 의미심장한 전설이 되어버렸다. 현재 미국에서 과학자 한 명이 일하는데 드는 비용은 1년에 약 10만 달러 정도인데, 이는 산업 혹은 서비스 노동자 다섯 명의 급여에 해당한다. 제 3 세계 국가들의 경우, 과학자들이 받는 월급은 훨씬 적고 장비와 보급품 비용이 더욱 비싸며 기반 시설이 갖추어지지 않는 경우도 흔하다. 한 명의 과학자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자원을 공급하는데 50명 이상의 노동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학술 잡지는 원래 학술 사회의 개인적인 소통 공간을 마련할 목적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출판사들이 학술 서적과 학술지 발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출판사의 대표들은 과학자들에게 아첨하거나 이들을 부추겨서 또 다른 교과서를 쓰게 만든다. 이를테면 “우리 출판사는 분자 유전학과 발생 유전학에서 이미 베스트셀러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이제 이 책을 통해 그 시리즈를 완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새로운 집단 유전학 교과서를 집필하도록 만든다. 이제 무엇이 출판되는지는 학술지를 채우려는 출판사와 편집자의 필요, 그리고 정년 심사, 새로운 일자리, 혹은 승진을 위해 시의 적절하게 게재가 이루어져야 하는 저자의 필요에 달려 있다. “이러한 학술 출판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은 거의 하지 않는다. 따라서 흔히 언급되는 정보 급증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잡음의 급증이라 할 수 있다. 대학 학문의 상품화는 대학의 재정적 필요로부터 비롯되었다. 대학은 네 가지 측면에서 과학자들을 투자 대상으로 여긴다. 첫째, 정부기관과 기업으로부터 연구비를 얻기 위해서, 둘째, 학술 보고서로 홍보효과를 얻고 그 명성을 이용해 기부금을 확보하기 위해서, 셋째, 대학의 “위상”을 높임으로써 등록금을 인상하고 학생들을 유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대학 교원에 의해 개발된 발명품의 특허를 공유하기 위해서이다. 그 결과, 대학 내의 자원 할당은 연구자들의 명성과 다양한 사업에서의 돈벌이 능력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많은 대학의 학자들이 관리자들로부터 그들의 연구를 자금이 좀더 풍족한 분야 (이를테면 유전 공학)로 전환하라는 압력을 받는다고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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