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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들과 영화

이번 봄에는 유례없이 바쁘기도 하고 감기 때문에 나들이 다녀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사막같이 황폐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 Nell 앨범 발매 공연 - 2012.04.14 올림픽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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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음 ㅡ.ㅡ

 

그들의 음악을 들은지 어언 10년이 넘었지만 얼굴 첨봤는데,

같이 간 도끼가 보컬 김종완의 얼굴이 개그맨 최효종 닮았다고 지적 ㅋㅋ

 

나의 음악취향을 두고 흔히 친구들은 '온 몸에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의 음악만 듣는다고 하는데

막상 공연장에서 들어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구!!!!

공연의 구성이나 연주나 보컬이나 아우..... 담에 꼭 다시 가야겠다는 생각이 절절...

 

 

#2. 델리스파이스 2012.04.22 농협아트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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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들... 

아 공연 중 불안과 긴장을 초래하는 멘트 좀 안 하셨으면 ㅋㅋ

그냥 노래만 해요... 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다네...

 

넬의 공연과는 또 다르게... 뭔가 같이 늙어간다는 친숙한 느낌?

하지만 꽉 찬 연주와 힘없는 (?) 보컬이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기묘한 조화와 박력은 역시!!!

 

아참, 게스트로 나온 옥상달빛의 4차원 만담과 아름다운 노래도 역시 일관된 부조화의 조화 ㅋㅋ

 

 

#3. 정재은 감독 [말하는 건축가] 2011

 

말하는 건축가

 

 

 

건축, 공간,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죽음이 예견된 자의 '마무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받는 감동은 슬픔도 회한도 환희도 아니다.

공공적 쓰임새와 심미적 아름다움의 조화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얻게 된 데서 얻는 깨달음의 감동과

죽음을 앞에둔 한 낭만주의자의 성공과 좌절, 고집과 철학에 대한 소박한 존경의 마음... 이런 것?  

 

"문제도 이 땅에 있고, 그 해법도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는 이야기는 비단 건축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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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생각 메모

밀린 일 때문에 바쁘기도 하고 지독한 목감기 때문에 컨디션이 정말 메롱이다.

 

근데 꼭 기록해두고 싶은 게 있다.

 

얼마 전에 변영주 감독이 진보신당 지지를 공식적으로 표명하고 나섰다.

전후 사정은 나도 잘 모른다.

허나, 누가 부탁한다고 마음에도 없는 일을 그녀가 억지로 했을 것 같지는 않고

또 평소의 행보에 비추어볼 때 그닥 예상못한 일도 아니기는 하다.

 

그런데, 그 전에 나는 그녀가 당적을 옮겼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예전에 연구소 모임에 특강 오셨을 때 뒷풀이 자리에서 그녀는 노와 심에 대한 지극한 애정을 표명한 바 있다. 

이들의 생각에 동의할 뿐 아니라 인간적으로도 이 사람들이 너무 좋다고 이야기했었다.

나는 그래서, 혹시나 그녀가 그들을 따라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입네 뭐네 사람들이 거품을 물고 욕을 해도,

그래도 나는 여전히 노/심/조에 대한 애정이 적지 않다.

그들의 행보가 아쉽기는 하지만, 그것이 정말 개인의 야욕 때문이었다고는 지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이 진심으로 잘 되었으면 좋겠고, 

국회에 입성한다면 기여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우리 불쌍한 '조'... ㅜ.ㅜ)

아마, 예전에 노심조를 좋아하고 지지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마음들이 다 남아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인간적인 애정 (?)과 정당 활동을 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당원'과 '빠'의 차이점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사회의 노동없는 민주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했던 최장집 교수가

개인적 인연을 들어 손학규 후원회장으로 나섰을 때 세상이 좀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정실 정치, 정당없는 정치, 노동없는 정치를 비판하셨던 분이... 이게 뭔 일인가....

일개 필부도 아니고... 그것이 미치는 파장에 대해서 모르지도 않으실 분이....

 

이런 맥락에서

변영주 감독이 그 좋아하던 노/심이 아니라 진보신당의 당원으로 남아 있고 공개적 지지를 표명했다는 사실은 다소 상징적이다. 그리고 이건 변 감독 개인 뿐 아니라 노/심을 아직도 아끼고 지지하지만 진보신당 당원으로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정치학자도 하지 못한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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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설과 과학 논평

출퇴근 길이 가까워져서 한 가지 안 좋은 점은 책을 읽기가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ㅡ.ㅡ

사실, 출퇴근 시간 절약된 분량을 차분히 앉아서 책읽는 시간에 써도 될텐데...

아무래도 자리에 앉으면 항상 어디에선가 적체되어 있는 일을 하게 되는지라...

 

저녁 독서시간 할당을 지키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듯... 이러다 바보되겠쓰... ㅜ.ㅜ

 

#1. SF 명예의 전당 2권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SF 명예의 전당 2 : 화성의 오디세이
로버트 A. 하인라인 외
오멜라스(웅진), 2010

 

이거 사실 첨 출판되었을 때 번역자 중 한 명인 네오한테 선물받은 건데

뭉기적거리고 있다가 최근에야 다 읽었다.

내가 번역에 참여했던 '명예의 전당' 시리즈 (?) 중 단편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역시나 느끼는 감정은... 놀랍다/대단하다/신기하다.......

 

*

아무런 맥락없이 읽는다면 빈번하게 등장하는 정형화된 클리세들이 눈에 거슬리고

공장에서 찍어내듯 고만고만하게 나오는 헐리우드 블록버스터들이 자연스럽게 연상될 법도 하지만,

여기 실린 이 글들이 현재의 그 클리셰, 혹은 스테레오타입의 원조였음을 생각하면 대단하다는 말로는 오히려 설명이 부족하다.

이를테면, 서글프고 애틋하면서도 약간 소름이 돋는 '헬렌 올로이' 같은게 대표적이다.

감정을 갖게 된 로봇, 로봇인 줄 모르는 로봇, 그 정체를 알면서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

SF 업계에서 이 얼마나 상투적이고 흔해빠진 스토리인가 말이지.. ㅋㅋ

근데 이게 1938년 작이라는 사실이 완전 후덜덜......

스터전의 경우에도 그 명성만 익히 전해듣고 작품은 첨 보았는데, 역시 소인, 기계인간의 창조주, 우리 주변의 소우주, 사회성 빵점인 과학자....  오늘날 흔해빠진 플롯들의 원조 ....

반인/반기계를 다룬 '스캐너의 허무한 삶'도 그렇고,

초능력을 갖게 된 누군가 (대개는 어린이 ㅋㅋ)의 축복받지 못한 삶을 다룬 '즐거운 인생',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과도 관련된 안전한 로봇 패러다임에 반하는 '즐거운 기온'도 이런 유형...

 

*

미래를 내다보는 혹은 사회문제를 예측하거나 뚫어보는 눈 또한 놀라운데,

이를테면 핵 노출에 의한 기형아 문제를 아주 짧고도 인상적으로 그려낸 '오로지 엄마만이',

도덕/차별/배제 문제의 복잡성을 빼어나게 그려낸 '친절한 이들의 나라',

그리고 무엇보다 '앨저넌에게 꽃다발을'은 엄청난 수작....

정체성/능력주의/과학기술의 사회적 영향 같은 어려운 당대의 이슈를 어쩜 이렇게 짜임새 있으면서도 서정적으로 그려냈는지.... 읽는 내내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음.. ㅜ.ㅜ

 

*

근데... 하인라인의 노동자 적대성은 도대체....

누가 쓴 건지 확인하지도 않고 읽다가 '혹시?' 하면서 다시 앞쪽을 들춰보니 '역시' 그였어... ㅡ.ㅡ

글은 참 맛깔나게 쓰는데...   짜증이 화르륵..

 

 

#2.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 - 창조론이 과학이 될 수 없는 16가지 이유
리처드 도킨스 외
바다출판사, 2012

 

당대의 일류 과학자들이 바쁜 시간을 내서 이렇게 책을 써야 하는 미국의 현실이 그저 안습....

나도 2004-05년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어처구니를 상실했던 공립학교 지적설계론 교육을 둘러싼 되도 않는 '논쟁'에 과학자들이 이건 정말 심각하구나 하면서 함께 팔을 걷어붙인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뭐 미국 상황이 한심하기는 하지만,

한국에서도 KAIST 에 '창조관'이 버젓이 존재하고, 미국의 복음주의 영향이 남유난히 강한 점을 생각한다면 남 욕할 처지는 아닌 듯...

담배회사나 석유회사들이 건강영향, 지구온난화 등 자신들에게 불리한 연구결과를 반박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하는 수단은 의심을 창출하고 논란을 만들어서 시간끌기.... 사실 창조과학의 최근 버전인 지적설계론이 동원하고 있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될 듯... 

진화론이 완전 틀렸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도 있고, 지적설계론이라는 대안적 설명도 있는데, 학문의 자유, 선택의 자유라는 미국 정신에 따라 과학 시간에 여러 가지 견해를 다 가르치는게 좋지 않겠냐...  이런 접근전략...

말만 들으면 그럴듯해보이지만, 일단 지적 설계론은 '검정'이 가능한 형태가 아니라는 점에서, 그리고 실제로 전문가동료 심사 학술지에 증거가 제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이건 뭐 과학도 아닌데.... 어디 듣보잡이 나타나서 진화론과 자기가 동급이라고.....

워낙 지적설계론을 포함하여 종교 - 특히 기독교는 정파, 사파, 구교, 신교 가리지 않고 인정하지 않는 입장이기에 책의 내용이 신기한 것은 없었으나,

'자연선택은 누가 더 생존율이 높을지 모르는 상태로 생겨나는 무작위적인 변이들을 재료로 삼는 무작위적이지 않은 과정'이라는 간단명료한 문장으로 진화론의 핵심을 설명한 것이 기억에 남고, 또 두 가지 인상적인 부분....

 

첫째는, 신학교에 다닐만큼 독실한 기독교도였던 다윈이 자신의 믿음, 그리고 기존의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 자신의 발견 때문에 몹시도 괴로워했다는 점....

만일 이 때 다윈이 '어 이게 아닐 거야, 내가 뭘 잘못 봤겠지, 이럴 리가 없잖아'라고 넘어갔으면 현대의 위대한 발견은 없었거나 아니면 한참이나 뒤늦게 다른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을 것.... 코페르니쿠스의 위대한 발견도, 기존 지식으로부터 예측된 것과는 미묘하게 다른 자신의 관찰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왜' 라는 끈질긴 질문으로 추구한데서 비롯된 것임을 떠올려보면, 과학적 태도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믿음'이 아닌 '이성'에 의해 질문하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리라...

이에 비하면, 내가 그동안 했던 연구들에서 이런 태도는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 ㅡ.ㅡ

뭐 내가 다윈이나 코페르니쿠스 쫓아가려다 가랑이 찢어지겠지만,

기존 지식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에 대한 경시, 혹은 안일한 해석은 돌아보면 민망할 지경............ㅜ.ㅜ

 

둘째는 과학이 도덕원리를 제공할 수 없는 것만큼이나 종교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 (스티븐 핑커)에 완전 공감!!! 종교가 일부 (!)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것도 사실이지만, 그 패악질을 두고 손익계산서를 비교해본다면 인류에게 손해가 더 클 것이라는 것이 평소 나의 지론인데다, 종교가 과연 윤리와 도덕 영역에서는 소중한 존재인가에 대해 깊은 의구심을 가졌던 나에게 아주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 의견....

종교, 특히 자기성찰로서의 도구가 아니라 어떤 절대자와의 관계를 상정하는 종교의 경우,

그러한 절대자의 존재가 사람을 과연 더욱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들까???

역사적으로 한국을 비롯하여 세계 곳곳에 훌륭한 종교지도자들이 많았고 (많았나?)

또 일반인들 중에서도 해당 종교가 내세운 본연의 미덕을 실천하며 사는 이들이 적지는 않았으나, 그렇다면 counter-factual condition 을 가정했을 때 과연 이들이 해당 종교에 귀의하지 않았더라면 인간 말종이 되었을 것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ㅋㅋ

종교 없었어도 충분히 그들은 도덕적인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싶다는....

실제로는 버트런트 러셀도 누누이 지적했듯, 종교의 이름으로 자행되고 혹은 인가된 패악이 너무너무 많은데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도덕이 종교의 영역에 속한다는 전제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스티븐 핑커의 경고는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종교가 없다는 것이 물질만능주의 인간말종으로 살겠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잖나....

 

좀 다른 이야기이지만, 몇 주 전 한겨레 21에 실린 김인국 신부의 인터뷰를 읽다 약간 허거덕 했다. 이 분은 김용철 변호사가 양심선언을 할 때 도와주고 힘이 되준 훌륭한 분이다. 인터뷰 중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뱀이 시키는 대로 놔두면 안 된다. 창세기에 나오는 원죄 이야기다. 아담과 이브가 금지된 과일을 따먹은 것보다 더 무거운 죄는 지각능력과 판단능력을 버리고 뱀이 시키는 대로 행동한 것이다. 운명의 결정권을 뱀에게 넘긴 것이 죄와 불행의 시작이었다. 세상의 불법과 폭력에 우리가 공범자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할 줄 알아야 한다. 세상의 악에 우리도 어떤 모양으로든 일조하거나 간접으로 승인하거나 결과적으로 방조 또는 묵인한 측면도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이 이럴 수는 없다." (한겨레 21 900호 김인국 신부 인터뷰)

 

글쎄다.. 나는 이 에덴동산 장면을, 창조주가 시키는 대로 무개념 상태로 살다가 뱀을 통해 처음으로 각성을 하고 자신을 돌아보게 된 상징적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운명의 결정권을 뱀에게 넘긴게 아니라, 뱀을 통해 돌아보게 된 것 아니여? 그 전에는 결정권이 오로지 그분에게 있다가??? 이런 걸 보면 정말 건널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한다는 생각밖에....  뒷부분 논지에는 완전 동의하는데, 이게 정말 적절한 사례인지는 도대체 납득이 안 됨...

하긴, 뭐 믿는다는데 어쩌겠나.... 과학적으로 입증하거나 반박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나는 절대자 믿는 종교가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사족이지만, 이건 실존인물을 둘러싼 종교적 빠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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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의 영화... 화차

 

 

하필이면! 이 영화를 용산 CGV에서 보았다.

경선, 혹은 선영이라 불리길 원했던 그녀가 정신줄을 놓고 용산역사를, 백화점을 지나 주차장으로 질주하던 중 당장이라도 극장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게 아닌가 하는 괜한 걱정마저... ㅡ.ㅡ;; 

 

 

1. 영화는 무서웠다.

 

그건, 잔혹한 장면들이 있거나 혹은 '앗 깜딱야' 하는 놀래킴의 장면들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당대, 오늘 이곳 한국사회가 너무나 생생하게 드러나 있어서 무서웠던 것이다.

마치, 여고괴담이 무섭게 느껴졌던 게 귀신 때문이 아니라 그 익숙하고 공포스러운 공간으로서의 학교 때문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 사라지고 연락이 끊어져도 사람들은 무심하다.

대낮에 무법천지 폭력이 자행되도 공권력은 어디에도 눈에 띄지 않는다.

그리고 폭력과 소외의 피해자는 자신의 처지와 비슷한 또다른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새로운 가해자로 거듭난다. 차라리 이 사회의 기득권을 향한 한방이라면 속이라도 시원하겠지만, 그건 허구에 존재하는 심리적 위안일 뿐, 현실은 대개 그렇지 않다. 

 

나는 그녀가 말할 수 없이 가여웠지만, 내 옆에 다가올까 두려웠다.

"다 이해할 있어, 괜찮아" 라고 품어줄 수는 없었다.

누구도 처음부터 살인마고,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은 아니리라.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스스로에게 몸서리를 치는 사람과, 주도면밀하게 우편함을 털고 고무장갑과 여행가방을 준비하는 이는 슬프지만 같은 사람이었다. 그저...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어서.....

지금 또 어디에선가 이렇게 아름답고도 공포스러운 괴물을 만들어내고 있는 이 사회가 사무치게 두려워졌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미덕일지 모른다.

관객으로 하여금, 연민과 공포를 동시에 불러일으키는....

 

2. 영화는 감독의 것...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김민희 의 연기가 참 좋았다.

과하지 않다는 것... 이게 참 어려울텐데 말이다.

이선균이나 조성하, 다른 조연들의 연기도 다들 과하지 않았다.

경선의 친한 언니, 전남편, 동물병원 간호사, 동료형사, 은행다니는 문호 친구까지...

나는 이것이 전적으로 감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아주아주 현실적인 소소한 장면들도 좋았다.

이를테면 문호 아버지가 파혼을 두고 아들을 야단치는 장면 같은 경우,

대부분의 TV 드라마에서 호쾌하게 뺨을 한 대 날리거나 뒷목을 잡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는데 비해

영화에서는 마구잡이로 아들의 등짝을 때려댄다. 

헐리우드 영화에서처럼 퇴물 형사가 갑자기 능력자로 변신하는 일 따위도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가라앉을 겨를이 없었던 문호의 충격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일단 약혼자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 자체가 충격인데

그녀에게는 과거 파산기록이 있고 파산신청서에는 술집에 나갔다는 기록이 있다.

일단 한방 먹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결정적으로 심지어 본인이 아니야... ㅡ.ㅡ 

여기서 완전히 멘붕...

천신만고 끝에 신분을 확인하고 보니 이혼 경력...나중에는 심지어 아이까지....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등장인물들과 똑같은 대사 "뭐? 애까지?"를 내뱉고 말았음)

이런 긴장의 매듭들을 관객들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끌고 갈 수 있는 게 바로 감독의 힘이 아니고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 얻은 힘을 바탕으로 변영주 감독이 더 나은 작품들을 많이 들고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리고 배우 김민희가 앞으로도 계속 '배우'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램....

 

* 사족이지만...

사람을 새로 뽑거나 만나게 될 때.... 레퍼런스 체크가 중요하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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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성과 원칙 사이

기본적인 원칙을 강건하게 지켜나가는 가운데, 

구체적인 맥락 속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은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전진'에 대한 목표를 잊지 않는다면,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가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그런데 현실 세계 속에서 이 문제는 좀처럼 분명하지도, 간단하지도 않다.

또, 거대담론으로서의 진보와 일상 정치에서의 진보가 항상 함께 가는 것도 아니다.

 

현실성, 유연성을 이유로 들면서

일상의 가부장과 권위에 순응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결코 버릴 수 없는 가치일텐데 그것을 전술적으로 잠시 접어둘수도 있는 것인양 취급하는 모습을 요즘 많이 본다. 

 

김동원 감독의 '송환'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더랬다.

"그깟" 전향서 한 장의 무게가 무엇이길래, 저들은 그 고통을 감내했던 것일까?

 

엊그제 일본어 수업 중에 선생님께서 예전에 아들 출생신고를 하면서  '소화@@년' 이 아니라 '서기@@년'이라고 쓰기 위해 공무원과 얼마나 실랑이를 벌였는지 말씀하시는 걸 들으며 또 이런 저런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싸움에 져서 '소화'로 표기했던 일이 아직도 속상하시단다..ㅡ.ㅡ

나도 주민등록증을 안 쓰려고 필요할 때마다 여권을 제출하고 들고 다니면서 실랑이를 벌이고 불필요한 설명을 하느라 고샘했던 기억, 국기에 대한 경례를 안 하면서 뒤통수가 따가웠던 소소한 기억들이 있는지라, 그 심정이 십분 이해가 갔다.

 

그런데....

대개는, 고루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비춰지겠지만,

그래도 짧지 않은 (?) 인생 돌아보건데, 유연성보다는 원칙이 우선인 것 같다.

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고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것도 우습다. 

 

물론, 하늘에 한점 부끄럼 없는 원칙적인 삶이라는 게 가능하지도 않고, 필요하지도 않겠지만,

그나마 최대값을 지향해야, 최소값이라도 실천할 수 있는 것 같다. 

이런 삶은, 사실 많~이 피곤하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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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단상

요즘처럼 정치판이 어지럽고 엉망진창인 시기는, 철들고 나서도 처음 보는 것 같다.

혹시 해방 정국이 이랬을까나??? ㅜ.ㅜ

 

도대체 인지부조화 때문에 정신사납기가 그지없다.. 

 

공천을 둘러싼 논란을 지켜보면, 새삼 원칙이 뭔가 하는 의문이 든다.

마치 새인물을 공천해야 개혁이고, 기존 의원들을 재공천하면 구태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참 우습다.

무슨 최신 휴대폰 세일즈 하는 것도 아니고... ㅡ.ㅡ

 

거기에다 모바일 투표하고 국민경선해야 '민주적'인 것이고, 당원들만 후보 추천에 참여하면 그건 구악이다

진보정당에서 '진성당원' 제도를 자랑으로 내세웠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건 도대체 뭔가 모르겠다.

정당이고 뭐고 다 해체하고, 방송국 오디션 프로그램처럼 그냥 모바일 투표로 다 결정해버림 어떨까 싶다.

 

현재의 경제상황에 직접적인 책임이 있는 새누리당에서 출마한 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자기와는 무관한 일인양 이야기하고

실질적으로 현 정권의 정책과 그리 다르지도 않았던 이전 정권 사람들은 모두 집단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 싶다.

 

통합진보당, 진보신당은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문제를 두고 한창 신경전인데

민주노총 전직 간부들은 민주당에 개선장군처럼 입당....

닭쫒던 개라는 표현은 딱 이럴 때 쓰는 거 아닐까....

 

진보신당에 대한 기대를 어느 정도 접었던 상황에서

또 사람들이 비장한 각오로 한걸음씩 옮기는 걸 보니 차마 모른 척 못하겠고...

 

이번 총선과 대선을 지나고 나면 '일단' 87년 체제는 문을 닫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모두 안녕 이라고나 할까...

물론 역사에 단절이야 없다지만

좀더 차분하게 새로운 내일을 준비할 수 있는 '포맷 (!) 상태'에는 이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당장 선거에서 진보신당이 '공식적으로' 소멸될 것이 거의 분명해보이지만 (ㅜ.ㅜ)

그 이후를 웬지 기대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은 든다.

 

모두들 장렬하게 '산화'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그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고 생각하며 조금만 숨을 고르는 게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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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로운 간단 원칙

뭐 하찮은 소생의 도움을 갈구하는 곳이 많은 건 아니지만,

활동의 총량을 늘릴 수 없다는 점에서 원칙을 준비해두는 건 필요하겠다.

 

몇 가지 예전부터 생각해두었던 건데, 잠깐 메모로 정리해두자

 

1. 각종 '자문'

뭘 안다고 어디 자문하러 다니겠냐마는

의외로 면피용/정당화용 외부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는 곳이 적지 않아 종종 불려다닌다.

 

이 때 참여 원칙은 세 가지

 

첫째, 정부(관련)기관의 경우 내용적인 측면에서 국가단위 서베이/조사 같은 기초자료를 만드는 과정에는 사회역학 연구자로서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한다.

 

둘째, 그밖의 정부(관련)기관의 자문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이러한 원칙은 에드워드 사이드 할배의 co-optation 에 대한 지적에 공감하기 때문이다. 또한 추상적인 자문일수록 실제 내용보다는 구색갖추기나 면피용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경험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또한 나 말고도 도와줄 사람이 수두룩하다.

 

셋째, 사회운동 진영의 자문이나 도움 요청은 시간을 낼 수 있고, 전문성으로서 자신이 있는 분야라면 성실히 응한다. 하지만 문어발식 영역 확장이나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이름 올리는 것은 하지 않는다

 

 

2. 토론회나 발표

 

첫째, 독립적인 (?) 학술 행사에는 연구자로서 열심히 (?) 참가한다.

 

둘째, 사회적/정치적 성격의 토론회, 학술행사에는 개인이 아닌 조직의 이름으로 참가한다.

 

 

3. 프로젝트

 

첫째, 정부의 정책용역에는 가급적 참여하지 않는다. (비교적 독립성 보장되는 연구재단이나 기금과제는 오케이)

근데 이 경우 가끔 생계형 일자리로 연루될 때가 있어서 고민이여... ㅡ.ㅡ

 

둘째, 시민사회 진영의 프로젝트성 과제는 시간이 나고 전문성이 있는 영역이라면 기꺼이 참여한다. 마찬가지로 마구잡이 참여는 절대 지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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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생각나는 거 있음 나중에 추가하자...

쓰고 보니 어디에서 대단한 러브콜이라도 받는 사람 같네 ㅋㅋ

아무도 찾지 않는데 혼자서 막 복잡한 원칙을 만들고 있는 꼴이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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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의 정치...

지난 1년, 아니 민주노동당의 분당 이래로 '안정'의 시기는 없었던 것 같다.

무언가 항상 유동적이고 잠정적이었으며, 그래서 확신은 점점 더 작아져만 갔다.

 

돌아보면,

생애 처음으로 당원이 되고, 또 당의 이름으로 이런저런 활동을 함께 하면서,

항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로 뿌듯했었다.

가슴벅찬 순간들도 적지 않았다.

대중강연이나 포럼 등에서 당의 이름으로 발표를 하고,

청중들로부터 비판과 격려, 혹은 하소연이나 부탁을 들으면서

당이 나에게 부여하지도 않은 괜한 (?) 책임감마저 느끼곤 했었더랬다.

 

사회운동에는 여러 영역과 층위가 존재하지만,

운동과 제도를 매개하는 고리이자 현실정치 수단으로서 "결국은" 당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나의 정치적인 정체성을 당과 동일시하려고 했다.

별도의 정치서클이나 정파조직에 가담되어 있지 않은데다 내가 활동하는 단체들은 특정 부문에 집중하고 있는 터라

정치성과 관련해서라면 나에게 당이 유일하고 우선적인 귀속단체였다.

 

그러나 지난 통합과 독자생존을 둘러싼 논쟁의 과정은 피로 그 자체였다.

민주노동당에서 분당할 때와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는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은 기어이 다시 합쳐야 한다고 했다. 그리할 수밖에 없는 정세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그런 판단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석연찮기는 하지만 통합이 되면 어쨌든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통합안이 부결되었다.

그 과정 또한 석연치 않아서 '다행이다'라는 표현을 쓸 수도 없었지만,

그래도 이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독자적인 생존 노력을 해야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일부가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탈당해버렸다. 그럴 거면 투표는 왜 했나 싶었다.

심지어 민주노동당이 국참당이라는 자유주의 세력과 합쳐지는 걸 막아야 한다던 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국참당과도 통합을 이루어냈다.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 했다고는 하지만, 유시민은 사회 정책 영역에서 박근혜보다 더욱 오른쪽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이라크 파병, 의료급여 제도 등을 둘러싸고 보여준 그의 행태, 민주노동당 사표론 등등은 도저히 용서가 안 된다. 선거 때 전술로서 '비판적 지지'는 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유시민이라는 인물, 또 그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세력이 포진한 정당에 내가 귀속되어야 할 필요는 없을 듯 싶다. 

 

그렇다고 소위 독자파들이 보여준 당내 정치의 모습도 가히 아름답지는 않았다. 

더구나 당내 게시판의 정신병적 상태는 정말 환멸이라는 단어로밖에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도 저도 다 보기싫어 탈당하려 했지만, 미적거리던 와중에 홍세화 선생이 대표로 출마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감이 교차했다.

"오르고 싶지 않은 무대에 오르는" 그의 심정을 듣고서도 탈당할 만큼 매정하지는 못했다. 

 감정은 그러했지만 피로는 가중되었고, 모든 것에 심드렁해져갔다.

물론 당 때문만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먹고 살기가 그리도 힘들다는데,

출마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하고,

그 어떤 선거보다 정치가 아닌 정치 공학이 만개 중이다. 

또다시 온 국민이 정치평론가가 되었고, 내놓는 정책들만 봐서는 정당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짐작할 재간이 없어졌다. 소위 새인물들이 소용돌이처럼 정치판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데, 그야말로 빨려 들어갈 뿐 흐름이 바뀌지는 않고 있다.

나는 그저, 내 손으로 탈당계라는 비수를 꽂고 싶지 않을 뿐,

4월 선거가 지나면 진보신당이 자연스럽게 해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냉정하게 이 예측이 틀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홍세화 대표의 때늦은 신년 인사글 때문에 마음이 무척 무겁다.

 

 

척탄병이 되기에는 회의주의가 너무나 강렬하고, 

눈감아 버리기에는 아직 사그라들지 않은 내면의 불꽃이 불편한 충동질을 해대는 판국이다.    

누구도 시지프스의 삶을 살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이 정말로 필요한 일이라면, 하기 싫어도 그리 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21세기 한국사회에서 자기기만과 자만심이 아닌,

자존감으로 정당활동을 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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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난 거 메모..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못하겠는데,

예전부터 한번 의견을 정리해보고 싶었던 것...

 

왜 멀쩡한 성인 여성들이 혀짧은 소리를 하는가..... ㅡ.ㅡ

모든 여성이 그렇다는 건 아니고...

 

예전에 본과 2학년 (말하자면 4학년) 여학생이 토론수업 중에

'그래서여~~~' 하면서 혀짧은소리로 대대대대' 하는 거 보고 식겁했는데

공적 자리에서 그런 말투를 쓰는 여학생과 심지어 직장인 (?)이 의외로 많더라는....

 

중딩인 조카 토끼도 이런 현상을 지적하는 걸 보면, 하나의 사회적 현상아닐까 싶기도....

 

이건 변종 가와이 문화인가???

 

시간 날 때 좀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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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에 대한 이야기?

#1. 강준만 <강남좌파>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남 좌파 - 민주화 이후의 엘리트주의
강준만
인물과사상사, 2011

 

작년에 출판된 이래, 구립도서관에는 줄곧 대출상태라 볼 수가 없었는데,

이제 읽을 사람은 다 읽었는지 책을 빌릴 수 있었다.

 '조국 붐'이 한창 뜨겁던 시점에 나온 책인데다, 롤러코스터 같은 한국사회에서 무려 1년이라는 '장구한' 시간이 지났으니 몇몇 내용들은 시의성이 좀 떨어지지만, 문제의식 자체는 새겨들을 만하다.

강남좌파의 문제가 결국 민주화 이후에 여전하고 어쩌면 점점 더 강해져가고 있는 엘리트주의, 특히 한국사회 학벌주의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길게까지 쓸 필요는 있었나 싶다.

엘리트주의의 문제가 심층적으로 논의된다기보다, 진보-보수 양측의 주요 정치적 아이콘들의 엘리트주의적 속성을 인물평 중심으로 기술하다보니, 어떤 이야기들은 굳이 이것이 엘리트주의라는 맥락에서 기술될 필요가 있나 싶은 것들도 적지 않다. 저자 스스로 한국사회의 인물 중심주의 문화에서는 이상적인 정치적 논의와 토론이 어렵다는 점을 지적했으면서도, 기저의 흐름보다 개별 인물들의 특징에 지나치게 집중한게 아닌가 싶다.

강남좌파로 지칭되는 진보적 (?) 엘리트들에 대한 비판이라 보기도 뭐하고, 소위 '강남좌파' 담론이 소비되는 한국사회의 지형 분석이라 보기도 뭐하고.....  마지막 장에서는 가장 치열한 계급투쟁의 장이 입시전쟁이라고 했는데, 앞의 개별 정치인들에 대한 분석과 연결점을 찾기가 힘들다.. ㅡ.ㅡ

지속적으로 새로운 엘리트들을 갈구하는 대중적 정서를 '새것신드롬'으로 명명한 것에는 공감이 되지만,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구조적 분석이 없다는 점도 좀 거시기...

 

저자의 구체적 지적 중에 가장 공감하는 것은,

최장집 교수의 '오래된 인연'에 기반한 손학규 지지와 대학교수/지식인들의 각종 지지서명에 대한 비판이다.

그리고 "적에게 가혹할수록 친구에게 잘하는 법이다. 적에게 관대한 사람은 친구에게도 헌신하지 않는다"는 문장..

 

나보고 엘리트주의 사례를 하나 더 추가하라고 하면, 각종 언론사에 '선배/형' 호칭 써가면서 기고하는 교수들의 해괴한 행태를 꼽았을텐데..... 전화하던가 이메일 보내서 할 이야기를 왜 언론에 공개적으로 쓰는지??? 이렇게 애틋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는 당신에게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는 걸 강조하는 레토릭인 건 알겠는데, 소위 지잡대 출신들이 그리 글쓰는 걸 본적은 없다는 점에서 그것이 '말할 기회를 가진' 엘리트들 사이의 기회 남용이라는 걸 인식이나 하고 있는지....

예전에는 '염치'라도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걸 점점 잃어가는 듯...

내가 잘나서 명문대학 나왔으니 굳이 감출 필요도 없고, 꼭 우리 동문이래서가 아니라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찾다보니 마침 우리 동문이네... 이런 식?

최근에 참여한 몇몇 모임 - 진보적 성향의 연구 모임과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모두 특정대학 동문들로만 구성된 걸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일부러 타대 출신을 배제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음. 뭐 그 따위 연구모임 자체야 대단한 권력은 아니지만, 학연, 사회적 자본이란 것이 이렇게 투명하게 은밀하게 모든 사회적 권력위계에 영향을 미칠 것을 생각하니 새삼 오싹.....

    

존재가 의식을 규졍한다지만, 개인적인 차원에서 의식이 존재에 의해서만 결정된다면 인간으로서 너무 서글픈 삶 아닌가?

그나저나, 나도 다음 주에 사당동으로 이사가면, 한강 이남이니 강남좌파가 되는 겐가???

 

 

#2. 제이슨 델 간디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다른 세상은 가능하다 -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수사학
제이슨 델 간디오
동녘, 2011

 

책 본문보다 하종강 선생님의 추천글이 더 기억에 남는 책... ㅡ.ㅡ;;

 

저자의 '내공'이 그리 깊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고, 

미디어와 메시지란 분리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급진주의에 대한 저자의 시각이 약간 불편한 부분이 있었음.

 

레토릭과 관련해서라면, 다분히 상식적인 이야기들이라 그닥 새겨들을 만한 것이 많지 않았음.

하지만, 그냥 혼자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 활동가들이 함께 읽고 워크샵 방식으로 구체적인 사례들을 만들고 연습하는 기회를 만든다면 상당히 좋은 교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성찰적인 책이라기보다 구체적인 매뉴얼에 가까운 책....  

그래서 이 책이 나쁘다기보다는 쓰임새가 좀더 적절했으면 좋겠다는 사사로운 의견...

 

저자의 급진주의는 미국의 유구한 (?) 아나키 전통을 따르고 있는데, 

중심없는 네트워크, 자율주의...  오직 이런 것들만이 저자의 시야에 포착되고 있다는 느낌.

치아파스의 사파티스타 운동에 대해서도 이후 여러가지 비판적 성찰들이 이어지고 있음에 비해,

그들의 "스타일"과 운동방식에 너무 집착한다는 인상....

 

이는 전에 읽었던 <글로벌 슬럼프>에서 무대 이면의 조직화된 노동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과는 상당히 다른 시각.

 

사회적/문화적 변혁의 일환으로 이러한 중심없는 운동, 자발적 네트워크들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미국의 현실이 보여주듯, 이러한 운동들이 조직노동이나 정당정치로 연결되지 못하는 경우 대개 휘발되 버리고, 특히나 계급정당/급진정당이 없는 상황에서 운동이 어떤 성과로 수렴되지 못하고 영원히 '운동'과 '캠페인'으로만 남아버리는 현실에 대한 이해는 별로 드러나지 않음...

활동가들의 헌신을 폄훼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저자가 이 책에서 그리고 있는 급진주의자의 모습은 히피 같은 차림새에,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난을 즐기며, 하지만 공정한 소비를 하면서, 사회이슈가 터지는 곳마다 달려가는 젊은이?  글쎄 뭐 이렇게 사는게 딱히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현실에 오직 이런 운동만 존재한다면 과연 세상에 변화가 오기는 올까??? 

 

저자는 하워드 진 할배의 스타일을 상당히 높이 평가했지만, 할배의 고갱이는 잘 포착하지 못하고 있는 듯 싶다.

물론 책의 초점이 운동의 내용 그 자체보다 수사학에 있다는 점에서 이런 것들이 치명적인 문제는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 

 

딴 소리이기는 하지만, 책에서 급진주의자들이 좀더 친화적이고 정서적 울림을 줄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데 비해 (즉, 급진주의의 언어라고 꼭 과격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한국사회에서는  '씨바' '쫄지마'로 상징되는 마초계 언어가 진보 (?)의 언어로 사람들에게 먹혀들고 있다는 현실이 참으로 난해...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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